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96
096 재건 시대(3)
깡──까아앙──까앙──!
대낮부터 도심지 곧게 뻗은 도로에 귀 따가운 소리가 아우성치듯 요란스러웠다.
다른 때면 몇 대라도 마차가 달렸겠지만, 오늘은 인부들이 곡갱이나 해머 같은 연장을 마구 내리쳐댔다.
까아앙─까아아앙──!
도로를 보수하려면 응당 잘 정비해야 할 터이거늘 오히려 부숴댄다.
“자, 잘들 부숴주세요. 지금 표면을 잘 부숴야 위에 기층재 깔고 나중에 눌러줄 때 모양이 이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새뮤얼 앤드루스가 분주하게 다니며 인부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감독관님, 저쪽 구역에 기층재를 다 덮고 평탄화까지 다 했답니다. 그 위에 이제 아스팔트 덮을까요?”
그때 중년의 인부 하나가 다가와서 새뮤얼에게 물었다.
그는 인부 중에 나름 공사에 참가해본 경력이 있어 이 현장에서도 십장이었다.
그에 비해 새뮤얼은 공사 현장에서 경험은 전무하다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으레 현장과 사무실 사이에 갈등이 생기듯 새뮤얼을 무시할 법도 하거늘.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 아스팔트를 잘못 깔면 새로 다시 해야 해서요.”
“예, 알겠습니다. 가시죠.”
십장의 말이나 행동에서는 새뮤얼을 무시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 경험 없다며 무시하려면 일단 자기부터 베테랑이어야 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도로를 아예 부수고 자갈을 깔고 아스팔트··· 랬던가요? 아무튼 석유 찌꺼기 그 시커먼 걸 덮어서 굳힌다니.”
헌데 지금 십장이 조심스레 던지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 현장 베테랑인 그조차도 이건 금시초문이었다.
심지어 태클을 걸어도 뭐가 비슷해야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참견이라도 하지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예, 됩니다! 저만···아니, 첫날에 태선 사장님 오셔서 이번 도로 공사의 개요를 설명한 거 들었죠?”
“듣긴 했는데 솔직히 아직도 뭐가 뭔지 저는 잘······.”
“그럼 저랑 태선 사장님만 믿으시면 됩니다.”
더구나 새뮤얼 앤드루스의 목소리는 항상 자신감 가득했다.
“미국에서는 저희가 처음이라 어색하시겠지만, 당장 파리만 보더라도 이런 도로가 있어 생활이 편하다고 합니다.”
“예, 저도 이 바닥 물을 많이 먹었지만 이런 공사는 처음 해봅니다. 일단 다른 인부들을 다독이고는 있는데 뭐가 뭔지······. 다른 데도 이런 도로가 있다고요?”
태선이 귀띔해줬지만 역시 유럽을 팔아먹는 건 잘 먹힌다.
“예, 암요!”
하물며 자기가 감압증류한 아스팔트를 쓴다는 자부심에 더해 새뮤얼은 다 물이 올랐다.
마침 저쪽 앞에 아스팔트 반죽을 만든 통을 보자 새뮤얼은 덧붙였다.
“제가 연구한 아스팔트의 품질에 태선 사장님이 고안한 공법까지 더하면 기존 미국 도로는 물론이고 프랑스 도로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에서 큰돈 들여가며 이런 공사를 허가했겠습니까?”
“우린 돈만 받으면 되니까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커다란 통 앞에 서며 십장은 코를 쓱 훔치며 말했다.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니라 그는 진심인 모양이었다.
“현장에서 늘 하던 대로 짓고 쌓고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연구라는 걸 해서 새로운 방법을 만들 수도 있다니.”
같은 분야인데 자신은 전혀 모르던 경지를 엿봤을 때의 경탄하는 기분.
십장이 하는 말에서는 그런 기분이 언뜻 느껴졌다.
그리고 크게 내색은 안 해도 새뮤얼 앤드루스 역시 십장의 심리를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태선 사장님이 도로 공법을 처음 알려줬을 때 나도 저 기분이었지.’
지금이야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고 감독관으로서 주도하고 있지만 도로를 부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싶었다.
하지만 차츰 설명을 들으며 납득했다.
도로를 부수고 거기에 일단 자갈부터 시작해 알갱이가 큰 것부터 기층재를 깔아두란다.
‘그 와중에 인도가 될 곳과 경계에는 연석을 깔고 그보다 도로는 약간 밑으로 내려가게···거기에다 그 밑으로는 트렌치를 놓아놔서 빗물이 빠지게 하는 안배까지 설계하다니.’
그리고 가장 위에 아스팔트 반죽을 덮는데 누구보다 재료 성질을 잘 알고 있는 새뮤얼 앤드루스는 곧 감탄했다.
큰 알갱이부터 위로 갈수록 깔아두고 마지막에 아스팔트 반죽을 올렸기에 쿠션 역할이 극대화되고.
거기에 측면 트렌치로 배수 효과를 살리면서 도로와 인도를 경계 짓는 상냥한 배려까지.
‘절정은 마지막에 열을 가해줘서 굳히는 작업이지.’
보관할 때 골치 아프기만 했던 아스팔트의 굳는 성질을 이렇게 이용할 줄이야.
그리고 그 이론을 마침내 실행에 옮길 순간이 왔다.
이 역사적이 순간을 태선도 같이 봤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는 너무 바빴다.
‘그렇기에 내 두 눈으로 잘 봐뒀다가 그걸 태선에게 전달해줘야 해.’
그런 결심을 하며 새뮤얼 앤드루스는 마지막으로 아스팔트 반죽의 상태를 체크하고 기반을 다져둔 도로 상태도 살폈다.
“음, 이쪽 연석 사이가 좀 헐거운 것 같은데 조여주세요. 이쪽은 기층재가 부족한데 다른 구역에서 모래나 자갈 남는 거 얼른 가져와주시고요.”
“이봐, 새뮤얼 감독관님 말 들었지. 서두르라고! 그 뭐시냐, 아스팔트 다시 굳기 전에!”
십장까지 나서서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 치자 인부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기층재가 다소 성한 곳에 자갈을 더 덮어주고 연석을 바짝 붙여서 트렌치와 틈이 새기지 않도록 해주고.
그 뒤에 다시 새뮤얼 앤드루스가 점검을 마치고 나자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십장과 눈빛을 교환했다.
“······이제 합니까?”
“···예, 하죠.”
새뮤얼이 고개를 끄덕이자 십장이 한쪽 구석 인부에게 손을 들어 뭔가 신호를 보냈다.
구르릉──구르르릉───!
묵직한 소리를 내며 커다란 장치가 굴러왔다.
수레처럼 생겼는데 위로 굴뚝처럼 기둥이 치솟았고 후면에는 도로 폭과 같은 너비로 장치가 펼쳐졌다.
그걸 몇몇 인부가 달려들어 뒤에서 밀어서 아스팔트 타설을 시작할 곳에 가져갔다.
“반죽 피니셔에 실을까요?”
“예, 실으세요.”
새뮤얼이 지시하자 인부들이 통에 있던 아스팔트 반죽을 꿀뚝처럼 생긴 투입구로 쏟아부었다.
“드디어 저걸 써보는군요. 이름이 피니셔라고요?”
“예, 저걸 쓰면 이제 공사는 끝나는 거다···는 의미로 태선 사장님이 피니셔라고 부르자고 하셨었죠.”
피니셔라 불린 기계를 보며 정말 마음에 든다는 듯 십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실은 저 장치를 처음 봤을 때부터 가슴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더군요.”
“······예에?”
“하하, 다들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기차나 기계를 보면 감독관님은 안 그러십니까?”
새뮤얼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자 십장은 더 말해서 뭐하겠냐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대신 그는 직접 성큼성큼 걸어가서 피니셔에 올라탔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새뮤얼 감독관님.”
“예, 시작하세요. 그리고 당부드리지만 균일하게 깔아야 하니 반죽 내리는 작업을 멈추면 안 되고 피니셔 끄는 분들도 쉬면 안 됩니다.”
“이봐, 다 들었지? 쉬더라도 끝나고 나서 쉬자고. 자, 가자!”
탕──! 탕──!
십장이 차체를 두어 번 두드리며 소리치자 피니셔 앞에서 인부들이 힘껏 끌어당겼다.
구르륵──구르르륵──!
피니셔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위에 올라탄 십장은 옆에 달린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는 돌렸다.
안 그래도 덩치가 좋은 십장이었건만 그로서도 여간 기운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닌지 팔뚝에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오, 나옵니다!”
그리고 옆에서 보던 다른 인부의 외침처럼 핸들이 돌아가자 뒤의 옆으로 펼쳐진 장치에서 아스팔트 반죽이 고루고루 펴져서 깔렸다.
이제 저 위로 롤라라 이름 붙인 묵직한 금속 바퀴 덩어리를 굴리면 작업은 끝난다.
“다른 인부 분들은 롤라 준비해주세요. 사람 안 깔리도록 조심하고요.
“알겠습니다.”
인부들이 롤러를 가지러 간 사이 새뮤얼은 아스팔트 도로를 만들며 도로 중간쯤을 가로질러 가는 피니셔를 바라보았다.
“내 연구를 통해서 도로가 만들어지다니.”
새뮤얼 앤드루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게요. 그동안 고생 정말 많았어요, 새뮤얼.”
그때 누군가 말을 걸어오자 그는 놀라며 옆을 봤다.
“여긴 어떻게··· 할 일이 많으시잖아요?”
새뮤얼의 물음에 태선은 담담히 웃으며 새까만 아스팔트 도로를 보고만 있었다.
정작 답을 해준 건 그 옆에 같이 따라온 샬롯이었다.
“하아, 맞아요. 바쁘죠. 주정부에서 공사 입찰 낸 곳에도 가봐야 하고 주의원 만나야 하고 석유 파이프 공사에 자동차에 보일러······.”
“그렇지만 이 현장에 와보고 싶었거든요. 마침 트렌턴에 올 일도 있기도 했고요.”
태선의 말에 새뮤얼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가 입이 귀에 걸리기라도 할 듯 웃음이 번져갔다.
“역시 태선 사장님과 마음이 통했군요. 저도 이 순간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감동하기는 이르죠.”
태선이 문득 새뮤얼의 말을 끊더니 100여 미터 도로 끝에 다다른 피니셔를 보며 말했다.
“이제 막 뉴저지 트렌턴에 깔았을 뿐입니다. 앞으로 10년···아니, 몇 년이 지나기 전에 미국 전역에 아스팔트 도로가 안 깔린 곳을 찾기가 힘들 겁니다.”
“미국 전역이라······. 하하, 그 정도면 미국뿐 아니라?”
조심스레 운을 떼는 새뮤얼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겠다는 듯 태선은 피식 웃으면서도 장단을 맞춰주었다.
“예, 영국에도 깔게 되겠죠. 어쩌면 빅토리아 여왕님께서 그 도로로 다니실 수도 있겠군요.”
“제가 증류한 아스팔트가 여왕님이 다닐 길이 되다니···. 엄청나게 환상적인데요?!”
그 사이 롤러가 와서 아스팔트를 누르며 지나갔다.
구르르릉───!
그걸 보며 태선은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새뮤얼에게 말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공사를 잘 마쳐야겠죠. 롤러라고 만들었는데······. 사실 저걸로는 압력이 부족하니 몇 번 더 눌러줘야 합니다.”
“음, 사실 저는 저 거대한 금속 바퀴 덩어리가 지금만 해도 무서울 정도인데요.”
사실 새뮤얼로서는 그렇게 말할 만했다.
매입한 금속가공회사를 통해 특제로 금속을 통짜로 주물러서 바퀴를 만들어서 달아놓았다.
저걸 가져오려면 말이 몇 마리나 붙어야 했고 그러면 길에 무슨 지진이라도 난 듯 울릴 정도였다.
구르릉─────!
하물며 아스팔트 도로를 압착해야 할 때는 말도 못 쓴다.
지금 뒤에서 저걸 밀고 가는 인부들의 표정을 보면 이제 몇 미터를 나아갔을 뿐인데 헉헉거리고 있었다.
“···부족합니다.”
하지만 태선의 시선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21세기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에는 비할 수조차 없겠지만······. 피니셔도 그랬지만 롤러도 간신히 구색만 갖춘 수준이라니.’
전생에서 본 것이 있으니 저절로 비교되는 것이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없으니.’
나중에 결함이 생기면 업그레이드 장비로 보수하기로 하고.
“새뮤얼도 이미 알겠지만 이 작업을 몇 번에 걸쳐서 반복해주셔야 하는 거······.”
“에이, 이제 귀에 딱지가 박히겠습니다. 걱정마세요, 따지고 보면 제가 낳은 아이들 아닙니까! 최고의 도로가 되게 몇 번이고 눌러주죠.”
하다 하다 이제 아스팔트가 자기 아이들이라 하다니···이걸 소명의식 있다고 해야 할지 지나치게 심취했다고 해야 할지.
‘나중에 새뮤얼도 그렇고 직원들 데리고 힐링 좀 해야겠어.’
사실 지금까지도 각자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재건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더 열렬히 해주고 있어서였다.
다만 나중에 쉴 때 쉬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이니.’
지금은 더 달려야 한다.
“태선, 슬슬 가봐야 해요.”
그때 샬롯이 말했다.
“벌써 가려고요? 이제 막 오셨으면서······.”
“미안해요, 샘. 그치만 오늘 태선도 트렌턴주 연방의원들 만나러 와서 겨우 시간 짜내서 왔거든요.”
“하하, 농담이죠. 저도 그냥 말해본 거였어요.”
태선은 다가가서 새뮤얼의 어깨를 손으로 턱 짚었다.
“좀 더 있고 싶지만 이번에 의원들 만나러 다니는 안건은 정말로 중요한 거라서요. 그러니 아스팔트 도로 공사는 샘에게 맡기겠습니다.”
“예, 태선. 맡겨만 주세요!”
그렇게 새뮤얼 앤드루스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 격려해주고는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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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는 가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뒀어요.”
샬롯 덕분에 공사 현장을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마차를 바로 탔다.
이 정도로 한시가 급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실 아스팔트 도로 현장을 방문한 것은 정말로 신경 써서 그랬던 것.
“후우, 그나저나 정말 시간이 빠듯하네요. 이러다 태선이 쓰러지는 거 아녜요?”
“전 괜찮아요. 오히려 샬롯이 걱정인데.”
빈말이 아니라 지금 태선은 이곳저곳을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연방정부에서 재건 사업이 통과되면서 사업 시행을 놓고 주정부에서도 활발히 움직임이 일고 있는 시기.
그렇기에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바삐 다니며 로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샬롯, 보고서 좀 줘볼래요.”
“네, 여기요.”
“그리고 도량형에 대한 것도 같이요.”
마차 타고 이동하는 막간의 틈을 이용해서도 태선은 꾸준히 보고서를 검토했다.
다만 오직 로비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렇게 연방의원, 주지사, 주의원 안 가리고 만나러 다니는 시기이기에 할 수 있는···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에.
‘미국이 파운드나 야드를 버리고 킬로그램과 미터법을 쓰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
지금 이 시기에는 가능하다, 하물며 기준을 세운다는 스탠다드라는 이름에도 참으로 걸맞지 않은가.
어떤 의미에서는 재건 사업이라는 타이틀에도 상당히 그럴 듯하게 어울린다.
하지만 뭣보다 연방의원이든 주의원인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른 말로 설득했지만.
‘···내가 불편하거든. 역시 도량형은 킬로그램과 미터법이야.’
자기가 불편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