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0)
흑막 범고래 아기님 (10)화(10/275)
제10화
‘지금쯤이면 부글부글 끓을 때가 되었다 싶었지.’
시간을 보면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내가 일부러 수업을 방해한 것도 벌써 4시간이 넘었단 소리다.
“자, 여기는 새로 들어온 친구 ‘칼립소’예요.”
나를 안내한 반을 본 순간 바로 깨달았지.
‘아, 얘네가 내 지능을 안 믿는구만?’
할머니에게 인정을 받았다던 소문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완벽한 언어 구사를 하는 나를 굳이 이 반에 넣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내 인사를 받아 놓고도 이랬단 말이지.
‘두고 봐라. 보란 듯이 수업을 깽판쳐 주마!’
그리고 내 계획은 성공했다. 그것도 대성공.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뭐야, 이 애기 고래들은 왜 이렇게 나한테 달라붙는 거야?’
그저 수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애들의 관심을 좀 끌었는데, 애들이 지나치게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를 쳐다보는 아기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확실히 이때까지만 해도 애들이 아직 약육강식 본능도 덜하고 귀엽긴 한데. 대체 왜?’
이 지나친 초롱초롱함 뭐냐고.
게다가 각자 간식을 주려고 안달이었다. 빨다가 주는 사탕 따위 사양이라고!
그러다 마침 라일라의 시선을 느꼈고 깨달은 것이다.
‘오호라, 이제 인내심이 다 했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를 탁탁 털었다.
내게 밀린 아이가 후에에엥 울상을 지었다.
“우쭈쭈. 훌륭한 고래는 울면 안 돼.”
“헤헤.”
나는 쓰다듬어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라일라에게 다가갔다.
“라일라.”
“……교육 중입니다. 제게 말을 거시면 안 됩니다.”
내가 아는 라일라란 여자는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실수는 금방 인정하고 바로 잡는다는 소리기도 했다.
“내가 여기 있기엔 너무 수준이 안 맞지 않아?”
“…….”
“아니면 시간이 더 필요해?”
“과연, 그렇군요.”
바로 이렇게.
“죄송합니다. 제가 공녀님에 관한 소문을 멋대로 판단해 잘못 결정을 내린 것 같군요.”
“괜찮아. 고래라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라일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트집 잡진 않았다.
“아무래도 공녀님께서는 윗반으로 입소하셔야 할 듯합니다. 혹시 원하시는 반이 있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을 빛냈다.
‘……이 순간만 기다렸지.’
여기서 대충 한 단계에서 두 단계 정도만 올라가 평화롭게 이 생활을 만끽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할머니의 귀에 들어가지 않아. 눈에도 띄지 않지.’
지금은 교육 기관에 들어왔지만 물의 힘을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 이상 언제 다시 쫓겨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확실하게.
천재가 되어야지.
“고래 8세반. 그중에서도 알파반으로 넣어줘.”
“……네?”
라일라의 얼굴이 처음으로 흐트러졌다.
오 지금까진 AI 같더니만. ‘시리’가 표정을 짓는 경우도 다 있네.
“어찌 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모르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말씀하신 반은…….”
“초급 기관의 최연장자들이 있는 반들이자, 그중에서도 제일 우수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지? 알아.”
“…….”
“나는 라일라와 이 정도 수준의 대화가 가능하면, 내가 충분히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라일라가 흠칫했다.
내가 예쁘게 웃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거기 반 애들 중에 나보다 더 말 잘하는 애 있어?”
마치 다 안다는 듯한 눈을 하고서.
“……그렇군요. 확실히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라일라의 검은 눈이 차갑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째 피에르에게서 느끼던 압박보다는 현저하게 작은 압박이 느껴졌다.
물의 힘이다. 허어, 교육 기관 수장이라고 물의 힘도 사용할 줄 아나 보네.
“하지만 모든 선택에 대한 결과는 공녀님께서 스스로 지셔야 하실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라일라.”
나는 압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방긋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은 나를 3살로 보지 않는단 소리잖아?”
그 말은 라일라의 완벽한 패배였다.
라일라의 얼굴에 미미하게 붉은 기운이 올라왔다.
화를 내는 걸까? 여기서 화를 내서 들어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작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것 참. 남매는 남매이신가 보군요.”
“뭐?”
“공녀님의 셋째 오라버니 이후 저를 이렇게 당황하게 만드신 건 공녀님이 처음입니다.”
고개를 들면 라일라가 작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공자님도 공녀님만큼 저를 당황하게 만들진 못한 것 같군요.”
내가 눈을 깜빡하는 사이에 라일라가 손을 내밀었다.
조금은 누그러진 얼굴이었다.
“공자님들과는 교류하지 않으시는 걸로 아는데, 이곳 교육 기관 반별 단계에 대해서는 누가 알려 주신 겁니까?”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빠가 알려 줬어.”
“……네?”
이 말에 라일라는 물론 근처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교사들도 흠칫하며 나를 보았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아 물론 거짓말이지. 하지만 회귀자여서 알고 있다고는 할 순 없잖아?
나는 뻔뻔하게 웃었다.
“아빠가 나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하나하나 다 알려 줬지 뭐야.”
* * *
교사들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 사이에서도 라일라만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했다.
“아빠라 하시면…… 피에르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 아빠. 하나 더 있어?”
애비야 미안하다. 서동요 작전 좀 쓰마.
칼립소가 싱글거리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라일라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으나, 얼른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피에르 님이…… 딸을 돌보셨다고?’
피에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이 땅에 사는 귀족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제 자식들을 단 한 번도 보러 간 적이 없단 이야기 또한 유명했다.
‘가만…… 피에르 님이 거주하시는 곳이, 현재 공녀님이 머무시는 곳과 멀지 않지 않나?’
실제로는 아이의 걸음으로 찾기엔 조금 복잡한 곳이지만 이미 눈앞에서 칼립소의 영특함을 본 라일라에게는 새로운 가설이 세워진 뒤였다.
그간 칼립소가 피에르와 만나거나 혹은 교류했다는 이야기.
어쨌거나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주 극 최근의 일이었을 뿐이지.
‘……언어 구사 능력이 타고났더라도 언어란 본디 상호작용으로 발달하는 능력이야.’
그런데 이토록 완벽한 대화와 화술을 구사할 줄 안다니.
필시 좋은 스승이 옆에 있었단 소리다.
3살까지 아이들을 키우는, 아니 방치하는 건물에 이런 스승이 있을 리 없으니.
자연히 남은 건 지금 막 떠올린 가설이었다.
라일라는 숨을 삼켰다.
‘……어쩌면, 이건 단순히 직계손이 하나 더 등장한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후계 구도에 도전자가 나타난 것일지도 몰라.’
세 살을 두고 하기엔 지나치게 비약적인 생각이었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 비약적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피에르가 나서기만 한다면, 무엇이 어려울까.
라일라는 저도 모르게 살짝 날숨을 삼켰다.
……이건 칼립소의 오빠들, 그 사고뭉치이거나 살벌하기 짝이 없던 공자들을 상대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따라오시겠습니까, 공녀님. 새로운 반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칼립소의 사기극은 너무나, 칼립소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먹혀 버렸다.
오늘 일이 여기 있던 교사 하냐와 보조 교사 헤니의 입을 통해 어떻게 퍼질지, 칼립소 또한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 * *
“생각보다 아주 순조로웠어.”
나는 한 손에 든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기척이 없다 우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안 먹어?”
“안 먹어.”
“왜, 플랑크톤 취향이 아니야?”
“……범고래가 플랑크톤을 좋아하는 게 이상한 것 같은데.”
“왜, 큰 고래 애들이나 좋아하니까? 스승님, 그거 취향 존중 못 하는 거야. 인생 혼자 사네……. 아야!”
나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고개를 들면 내 이마를 때렸을 게 분명한 물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뭐가 순조로웠다는 거지?”
내 이마를 때린 주범은 언제나와 같이 권태롭고 인생 다 놓은 듯한 나른한 얼굴이었다.
요즘 들어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은데…….
‘그게 애정 뭐 이런 게 아니라, 뭔 과학자가 신기한 개미 보듯이 보는 것 같단 말이지.’
뭐 나도 이용할 게 있어서 피차 이용하는 사이니까 상관없지만.
“뭐가 순조로웠긴. 내가 이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는 게 순조로웠단 거지.”
“너 같은 아메바가 말인가?”
“아메바 아니거든? 내 뛰어난 언어능력! 모르겠어? 스승님 같은 사회성 부족한 사람이랑도 이렇게 훌륭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살!”
“오늘 10바퀴를 추가하고 싶은가?”
“……라고 33행시를 지어 보겠숩니다.”
이 인간, 가만 보면 할머니 아들이 맞네.
촌철살인의 직구,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오늘 초급 교육 기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