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01)
흑막 범고래 아기님 (101)화(101/275)
제101화
바이얀의 죽음 이후, 다음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나 다름없던 벨루스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뭐, 실제로 그 첫째 오빠는 그렇게까지 신경 쓰진 않았겠지만.’
새로운 천재의 등장은 그야말로 그 당시 범고래 가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
혹자는 하자가 있는데도 어떻게 이리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앞선 회차에서 리리벨은 자신의 약점을 철저하게 감췄다.
“약하게 태어난 줄로만 알았건만, 극복하다니 대단하구나! 너야말로 진정 천재이자, 가줏감이로다!”
아무도 이 애가 내 아빠 피에르 아콰시아델과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숨겨 왔던 힘을 드러냈다고만 생각했다.
‘백부와 백모도 그저 몸이 허약해서 버릴 딸이었던 리리벨이 성장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실 리리벨로서는 목숨을 걸고서 자기 힘을 드러낸 셈이었으니까.
“죽기 전에 반드시 가주가 되고 싶어졌어. 그게 내 마지막 사명이자 목표야.”
나는 리리벨이 낮고 조용히, 그리고 처절하게 중얼거리던 말을 기억한다.
본인이 각오한 만큼 성가시고 힘든 상대였다.
왜냐, 내가 나타나기 이전 이미 웬만한 방계며 괜찮은 수중 동물 가문을 포섭한 탓에.
나는 자연히 나와 같은 놈들, 일명 ‘언더독’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수하로 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벨루스 그놈은 본인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제 마음에 드는 알짜배기 몇몇만을 포섭했을 뿐.
사실상 연약한 수인들의 특별한 ‘특기’에는 관심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리리벨은 일찍이 이런 이들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옆에는 그런 범고래답지 않은 넓은 사고관을 지지해 줄 백모 헤일라도 있었다.
“리리벨 아콰시아델은 개인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단체전으론 다신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날 따르던 수하이자 책사인 돌고래 놈이 후에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뭐, 결국엔 내가 승리했으니 지금 읊는 건 내 승리의 역사기도 하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긴 한다.
‘만약 리리벨 그 애가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자기 힘을 드러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싸움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게 일찍이 후계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면?
그 병은 힘을 사용하는 횟수를 줄이면 최소한의 수명을 보장받는다.
물론 살아가면서 질끔찔끔은 힘을 쓸 수밖에 없다.
다만 이마저 거의 쓰지 않으면 시한부긴 하지만 적어도 남은 시간은 평화롭고 평온하게 살 수 있단 소리다.
내 아빠가 칩거해서 살았던 이유기도 했다.
‘리리벨이 왜 더 일찍이 아니라, 굳이 열여섯 살이 되어서야 힘을 드러낼 결심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나 어쨌든.
내가 만난 3회차의 리리벨 아콰시아델은 병으로 인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된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알던 것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단 소리지.’
리리벨이 아빠와 같은 병을 앓았다는 사실은 리리벨이 죽고 나서야 알려졌다.
그리고 내가 가주가 된 이후 이 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건 유전병이고 대체로 힘이 강한 이들 중에서 아주 낮은 확률로 이런 유전병을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 나왔다.
‘실제로 불치병인 건 여전했지만.’
하지만 나는 이 불치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빠와 리리벨이 죽은 지 한참 후에야 해결 방법이 나타난 건 두 사람 인생에서는 불행이었겠지만.
‘이번 생에서는 아빠를 죽게 둘 생각은 없어.’
새삼 느끼는 거지만…….
앞서 말했듯 아빠가 앓는 병은 힘의 총량에 비해 쓸 수 있는 횟수를 한정시켜 버린다.
‘그럼에도 아빠는 방계 가문 하나를 쓸어버리면서도 멀쩡했지.’
어떻게 병의 증상마저 나타나지 않지? 듣기론 어느 시기부터 증상으로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지금 내가 한 해에 한 개씩으로 제한을 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대체 얼마나 강하단 거야?’
혹은 이런 가정을 해 보기도 했다.
‘죽을 걸 알기에 힘을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거거나…….’
이런 거라면 애비라지만 가만둘 생각은 없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병으로 인해 죽음이 임박했을 때, 혹은 병이 더 깊어졌을 때의 증상을 잘 알고 있기에 유심히 관찰 중이었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치료약’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곧이야.’
생각에서 막 벗어나는 순간 옆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저, 여동생님?”
“왜?”
아게노르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까부터 불러도 그렇게 무시하더니 이제야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방치도 나쁘지 않지만…….”
“용건만 간단히.”
“스승님에게 간다더니 왜 여기로 온 거야?”
우리는 막 리리벨의 방이 있던 건물을 나오는 상황이었다.
본성 중에서도 백부 가족이 사는 건물이다 보니 지나가는 방계들의 눈초리가 영 심상치 않았다.
5년 전 아콰시아델로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저런 멸시 어린 시선을 받았다면 그 즉시 박살을 내 줬겠지만.
나는 철저히 무시했다.
어차피 저놈들은 끈 떨어진 줄을 붙잡은 채, 전전긍긍하다가 정리될 테니까.
“여동생님, 쟤 눈깔이 마음에 안 드는데 때려 줄까?”
“아서라. 여기서 문제 일으키면 괜히 존재만 드러나.”
“여동생님 아직도 그 놀이 하는 거야?”
“무슨 놀이?”
“힘숨찐!”
“…….”
4년 전이었다.
내가 5학년에 오른 뒤로 더는 월반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사는 걸 두고 대체 왜 이 대단한 능력을 드러내지 않느냐며.
“모두에게 강한 걸 알려야지! 왜! 대체 왜?! 위협은 큰 무기야, 여동생님! 가서 반을 평정하자. 아니, 학년을 평정하는 거야!”
저 셋째 오빠가 여차하면 자기가 소문낼 것처럼 난리 난리를 치길래.
참다못해 귀찮아서 한마디 해 줬다.
“나는 오늘부터 힘숨찐이야.”
“……그게 뭔데?”
“힘을 숨긴 찐따.”
“……!!!”
아게노르는 뜻과 설명을 듣더니 입을 가로막았다.
“멋……있어!!”
그 후로 저 꼴이었다.
내가 무언가 자기 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을 하면 늘 이것으로 종결되었던 것이다.
“힘숨찐은 적진에 들어가서도 조용히 빠져나오는 거야? 싸우지도 않고? 깽판도 안 치고?”
“깽판을 왜 쳐.”
아게노르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숨긴 찐따란 거 생각보다 많이 힘든 거구나. 대단해 여동생님.”
“……그래.”
내가 떨떠름하게 보자, 아게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앞을 막는 장애물 따위, 자신의 무력으로 해결했을 아게노르에겐 낯선 일……은 무슨.
‘네가 했던 일도 힘숨찐이었거든?’
본인이 왕따를 자처하다가 짜잔, 내가 포식자였다 이 새끼들아! 하고 때려 패려 했던 계획은 까맣게 잊은 듯한 얼굴이었다.
“차라리 정의로운 힘숨찐을 해, 이 XX야. 자꾸 신입들 앞에서 약한 척 왕따 노릇 하지 말고!”
앞선 회차에서 아게노르에게 그 짓 좀 그만하라고 똑같은 단어를 썼던 기억이 났다.
이놈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피식 웃는 동안 아게노르가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쟤가 바이얀을 죽인 거였어?”
“응.”
어차피 건물 밖을 벗어나 아빠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빠는 딱히 거처를 바꾸지 않았고,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싫어했기에 가는 길은 한산하기만 했다.
“잘 죽긴 했는데…… 약해 빠진 자기 동생한테 죽을 줄은 몰랐네.”
“쉽게 보면 안 될걸?”
“엉?”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산뜻하게 대답했다.
“걔 강해.”
나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아, 하고 정정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빠만큼 잠재력이 있다고 봐야 하나……?”
“에에엥?”
아게노르가 깜짝 놀랐다.
얼마나 놀란 건지 걸음마저 멈춘 채였다.
“뭘 그렇게 놀라. 너도 대화하는 동안에 옆에 같이 있었잖아.”
“아니, 아니. 그 소리가 그 소린 줄은 몰랐지!”
“……아 깜짝이야. 소린 왜 질러? 게다가 왜 그런 표정인데?”
“못 싸워 봤잖아!”
……이놈도 범고래는 범고래였지.
“싸웠으면 넌 내 손에 죽었어.”
“왜애.”
확실히 힘을 드러낸 리리벨은 강하긴 할 것이다.
“리리벨 아콰시아델은 건강이 안 좋다고 했는데, 그것도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건 사실이었을걸. 나름 극복했던 거겠지.”
“흐음, 나이를 극복한 너처럼?”
글쎄다, 나랑 같은 케이스는 아닐 건데.
그러나 아게노르는 나름의 납득을 한 건지 끄덕였다.
“그래서 얼마나 강한데? 설마 진짜 스승님처럼 강하진 않을 거 아니야.”
“만약 걔가 자기 목숨 깎아 가면서 덤비면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걸.”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라면 모를까.”
아게노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5년이 지나 꽤 커졌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각인되어서인지, 여전히 퍽 귀엽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럼 너는 어떤데?”
아게노르의 질문에 나는 씩 웃었다.
“어떨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자신만만한 얼굴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