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02)
흑막 범고래 아기님 (102)화(102/275)
제102화
“이긴다는 거지? 이겨? 완전 때려 눕혀?”
“단어를 좀 더 성숙하게 써 봐. 너도 이제 나이를 먹었잖아.”
“오늘도 대련 어때? 날 때려 줘도 괜찮은데.”
“……닥치고 어서 에키온에게 가기나 하자.”
나는 슬쩍 아게노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여동생님, 굳이 리리벨 아콰시아델에게 네가 알고 있던 정보를 준 이유는 뭐야?”
보통 그런 건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게노르의 중얼거림에 나는 씩 미소 지었다.
머릿속으로는 조금 전 리리벨과의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너, 우리 아빠랑 같은 과잖아.”
이 말을 했을 때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티를 내고 만 경악이 눈에 선명했다.
“이런, 걱정하지 마.”
잔뜩 경계하던 리리벨의 모습.
내가 틈을 내주는 데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그저 인사하러 온 거니까.”
‘본인에겐 다르게 느껴졌겠지만.’
거기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아게노르, 걔처럼 똑똑하고 생각이 많은 애들은……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줘야 돼.”
지금쯤, 새로운 정보에 혼란스러워하느라 다른 건 생각 못 할걸?
‘내가 폭탄을 안겨 주었으니까.’
내가 먼저 걸어가자, 옆에서 물개처럼 쫄래쫄래 쫓아온 아게노르가 계속 말을 걸었다.
신난 모습이 공만 주면 영락없이 즐겁게 뛰어놀 돌고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떠들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빠가 사는 건물은 오늘도 변함없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건물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눈을 살짝 찌푸렸다.
‘왜 이렇게 고요한 거지?’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닌지. 아게노르 또한 의아한 표정이었다.
“스승님 안 계신가?”
“그럴 리가 없을걸. 오늘은 나갈 일이 없다고 했어.”
“으음…… 네가 왔는데 기다리는 스승님이 안 보이는 건 처음이야.”
“…….”
서로 의아함을 주고받으며 문을 막 열었을 때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무언가에게 콱 덮쳐졌다.
“어라, 여동생님?”
나는 아게노르에게 재빠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왜냐, 익숙한 냄새가 코를 덮었기 때문이다.
곧 아게노르 또한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자세를 풀었다.
청량한 물의 향기다.
아마도 우리 수중 동물 수인들만 느낄 수 있는 냄새가 아닐까?
시선을 내리면, 새파란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나를 덮친 존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칼립소!”
뽀얗고 새하얀 얼굴, 기왓장처럼 섬세하게 휘어진 긴 속눈썹. 예쁜 금안이 휘어진다.
에키온이었다.
놀란 것도 잠시, 나는 웃었다.
에키온과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어쩐 일로 문 앞에 서 있었어? 아, 아니다. 늘 기다리고 있었지?”
“응.”
“아빠는 어디 가고?”
“몰라.”
에키온이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딴에는 열심히 고민한 것인지 곧 입을 열었다.
“나갔어. 10분 전이었어.”
지난 5년간 에키온의 언어 능력은 놀랍도록 발전했다.
정확히는 한 1년도 안 돼서 단어를 비롯한 기초 회화를 다 떼 버리더라.
아직 어른처럼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재능과 지능은 따라 주는데, 이건 또 이렇게 된 이유가 있지…….
‘나랑 아빠와 말고는 대화를 하지 않으니.’
제아무리 언어를 가르친다고 한들 언어는 결국 실전이다.
게다가 말을 하는 상대가 나를 제외하면 남들과 대화를 거의 안 하는 아빠라면야.
똑같은 인간들끼리 만난 셈이다.
그래도 지구에서 언어 능력자들이 듣는다면 깜짝 놀랄 속도였다.
그렇기에 에키온이 다음으로 배웠던 건, ‘감정’들이었다.
“자, 이것 봐 봐. 에키온. 나는 지금 제일 좋아하는 플랑크톤 사탕을 들고 있어.”
“나도 들고 있어.”
“맞아. 너도 들고 있어. 자, 문제. 사탕을 들고 있는 내 기분이 어떨까?”
“…….”
이미 아빠를 통해서 에키온이 나 외엔 다른 ‘선생’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역사라거나, 기초 상식을 위해 라일라를 통해서 믿을 수 있는 학자를 데려와 봤는데.
“으으, 으악, 으아아악!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못 하겠습니다……!”
……음, 작은 ‘사고’가 있었다.
이 작은 사고가 여러 번 겹치니, 더는 선생을 부를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선생 역할을 도맡아 하게 됐다.
어쩌겠는가?
“구한 것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여동생님, 뭐라고?”
“아니야.”
내가 5년의 시간을 가진 데엔 에키온이 차지한 이유도 꽤 컸다.
길에서 길고양이를 구조하게 되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잔뜩 있는데, 하물며 사람, 게다가 이 용용이 공작님은 또 어떻겠는가.
책임지겠답시고 발 벗고 나선 지 5년째였다.
‘물론 지난 5년의 공백 이유가…… 전적으로 에키온의 교육 문제만은 아니었지만.’
큰 부분을 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가주가 되어서 복수하는 게 최종 목표지만, 우선 당면한 목표는 여기 이 공작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잘 가르치는 것.
‘투스랑 약속했으니까.’
아무튼 간에 육아…… 이걸 육아라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생각지 못한 점들이 있더라.
예를 들어, 에키온에게 다시 ‘감정’을 가르칠 때로 돌아가자면.
“모르겠어? 좋아하는 사탕을 들고 있는 난 기뻐.”
“…….”
“자, 따라 해 봐. 나는 기쁘다.”
“자, 따라 해 봐. 나는 기쁘다.”
“……앞의 말은 안 따라 해도 돼.”
사실 감정은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랑 지내다 보면 에키온 또한 그러리라 여겼는데 아니더라.
자연스럽게 알라고 뒀더니 애가 자기 표현을 거의 안 하더라고.
심지어 실수로 뜨거운 물을 손에 엎었는데,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순둥하게 쳐다만 보고 있길래.
“왜 말을 안 해!”
“……안 해?”
식겁해서 하나씩 가르치게 됐다.
얘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 하더라!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알겠더라.
「용은 가장 먼저 유대감을 가진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낸다.」
투스가 준 수첩에 적혀 있던 이 한마디.
그렇다는 건 결국.
‘에키온은 나를 흉내 내고 있단 소리.’
……확실히 나는 고통에 무뎠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아니, 우리 용용이가 회귀자의 단점을 닮아 버리다니!
그렇게 졸지에 나는 용용 공작님을 키우면서 앞에선 내 스스로도 뜯어고쳐야 했다.
애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더니, 딱 그 짝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키잡이라니.’
물론 키잡은 잡아먹는다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잡아먹는 주체는 에키온이 될 것이다.
난 저 애에게 ‘복수’의 의미도 알려 줄 생각이니까.
게다가 아까 이야기한 투스의 수첩에도 비슷한 말이 적혀 있더라.
「용 공작님은 선생님이 알려 주지 않으면 흉내만 낼 뿐 자신이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도 없어.
좋은 선생님이 필요해!」
“칼립소, 안 들어가?”
결국 아방한 표정으로 물어 주시는 이 용 공작님께서 나랑 똑같은 사람, 일명 ‘칼립소 2호’가 되지 않게 무진장 노력했다는 소리다.
“응. 들어가야지.”
“여동생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아아.”
내가 과연 괜찮은 선생인가 싶은 고민?
사실 지난 5년간 해 온 고민이기도 했다.
과연 세 번이나 회귀한 내 감정 상태가 정상인과 같을까.
내가 아는 대로 가르치는 게 맞나 싶은데.
에키온이 내 가르침 말고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어떡하겠나.
‘이것 봐. 아게노르랑은 말도 안 한다니까.’
그랬다.
앞서 말했듯 에키온은 나와 아빠가 아니면 대화를 하지 않았다.
싫어한다거나, 미워한다거나, 낯설어한다거나 이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아게노르가 에키온에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저기 있는 기둥이나 아게노르나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달까.’
이것도 투스의 수첩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용 공작은 울타리 안에 두는 범위가 좁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든 사람 중에서 특히 아끼는 사람에게 애착을 가지는데.
그게 바로 내가 된 모양이었다.
‘오리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본 사람을 어미로 보는 것과 비슷한 효과인가.’
각인 효과이려니 하고 있다.
처음에 이를 기분 나빠하던 아게노르는 내게만 얌전한 물개처럼 굴었다는 듯 범고래답게 호승심을 드러냈고.
-키에에에에엑!
“악, 항복, 항복 항보옥! 여, 여동생님, 쟤 뭐야?!!”
덤비다가 큰코다칠 뻔한 후로는 얌전히 있더라.
가끔 몸이 근질근질한 눈치긴 하던데, 참는 느낌이랄까.
‘범고래가 깡패긴 한데 사람 봐 가면서 덤비는 깡패긴 하지…….’
괜히 고래, 돌고래와 더불어 머리 좋은 동물이 아니다.
“에키온도 밖에 나갈 수 있으면 좋은데.”
나는 에키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