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05)
흑막 범고래 아기님 (105)화(105/275)
제105화
아틀란의 커다란 덩치는 같은 나이 대 범고래 애들과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보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문 근처이긴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필수적으로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길이 이토록 더럽게 넓은데…… 굳이 내 앞에서?’
이건 누가 봐도 시비였다.
슬쩍 시선을 돌리면, 아니나 다를까.
아게노르가 집착적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과하게.
‘조져 버려! 조져 버려!’
……아아, 저놈 마음의 소리가 들려 오는 것만 같다.
조지고 나발이고 간에 여기가 장례식장이란 걸 잊은 건가.
아까 아빠랑은 아니꼽게 날 보는 방계 놈들과 싸울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
나도 기본적인 예의란 건 안다고. 물론 필요하면 싸울 거지만.
‘예를 들면…… 저놈이 선빵이라도 치면?’
그럼 나중에 할머니가 나타나더라도 저 새끼나 날 먼저 쳤어요! 하고 깽판의 원인을 돌릴 것 아닌가.
‘만약 직전 회차에서 이런 시선을 마주했다면 예의고 나발이고 저 인성을 주먹으로 뜯어고쳤겠지만.’
환경의 변화 때문일까?
지금의 나는 3회차보다 관대하다.
나는 뚱한 시선으로 아틀란을 마주했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그리고 있는 내 청사진에는 굳이 이 아틀란이 필요 없다.’
둘째 오빠에겐 참 미안한 소리지만 말이다.
아니, 미안한 소린 아닌가?
“비키긴 뭘 비켜.”
아, 물론 시비에 대응하는 건 다른 문제다.
지난 회차에서는 필요했기 때문에 굳이 저놈을 꺾었지만.
“내가 네 성질머리 죽이라고 했냐, 안 했냐. 둘째야.”
수하로 두면서 비싼 인성교육까지 시켜 줬지만.
“네가 길 전세 냈냐? 알아서 잘들 가는데 왜 혼자 난리야. 이 넓은 길 하나 못 걸을 다리면 기어가든가.”
이번 삶에서는 그럴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다.
보자…….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걸 어떡해? 저놈들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럼 그냥 돌을 쳐.”
“돌을 왜 쳐?!”
“그럼 나한테 처맞을래?”
“……몇 번 쳐?”
생각해 보면 이렇게 애틋한 추억도 있지만.
우리 용용 공작님 책임지기도 바쁘고 흩어진 수하놈들도 모아야 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놈은 후순위?
“인지 능력이 달리면 이 자리에 오질 말든가.”
“…….”
아틀란의 눈이 더욱 사나워졌다.
분노를 참는 얼굴.
나는 아틀란이 주먹을 쥐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덤벼.
“참고로 그걸 날리는 건 네 마음이겠지만.”
들어올 땐 네 마음대로일지라도.
“뻗는 순간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마라?”
나갈 땐 절대 아닐 테니까.
투기가 피어오른 순간, 나는 형편없이 빗나간 주먹을 보았다.
‘뭐지?’
나를 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올까 봐 싸움을 피한 건가?’
아니, 저놈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일을 벌이던 놈이었던가.
절대 아니지.
그러나 고개를 돌렸을 땐 아틀란의 뒷모습만 보였다.
놈이 싸움을 하지 않고 가 버렸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뭐야, 대체?
나만 이상함을 느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여동생님,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냐?”
아게노르는 얼떨떨하다 못해 사자라도 본 듯한 얼굴을 했다.
‘극혐’하는 걸 보는 동시에 뒤통수를 별안간 얻어맞으면 이런 얼굴일까.
“나도 보고 있어. 아니…… 아틀란, 쟤 약 먹었냐? 왜 안 덤벼?”
“그러게……. 때와 상황을 보는 놈이 아닌데?”
“공녀님, 괜찮아요?”
“어어. 응. 당연히 괜찮지.”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곧 할머니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 * *
아틀란은…… 삼국지로 치면 ‘여포’ 같은 인물이다.
이야기 속 대단한 무장이었지만 다혈질, 겁나 세지만 응용 능력과 머리가 부족함.
타고난 힘, 특히나 신체 능력만큼은 범고래 직계 중에서도 최상위에 들던 오빠였다.
‘맷집도 더럽게 좋아서, 처음으로 때리다가 손이 아픈 경험을 해 봤지.’
손을 쥐었다가 펴며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역시 아틀란의 그 태도가 신경 쓰이는데…….’
커다란 일들을 바꿔 버렸으니, 당연히 삶이 3회차에서처럼 흐르지 않을 거다.
하지만 세상엔 어떤 일이 있어도 일어나는 사건이 있고, 세상의 기준점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게 둘째의 성질머리였단 말이지?’
싸움을 피하다니.
차라리 벨루스가 초식을 시작했다고 선언했어도 이 정도로 놀라진 않았을 거다.
“엄숙하게 선언하겠다.”
들려 오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슨 생각에 그리 빠져 있지?”
“아아. 좀 이상한 일이 있었어.”
계속 딴생각을 하는 게 의아했는지 옆에 앉아 있던 아빠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고.
나는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한가.”
“아니. 괜찮아. 지금은.”
현재 우리는 긴 의자에 아게노르까지 해서 단 셋만 앉아 있었다.
왼쪽의 긴 의자엔 바이얀의 가족들이 자리했다.
리리벨 또한 저기 있다.
그리고 가장 앞, 관이 있는 곳엔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의 저 말이 끝나면 관을 묻을 것이다.
‘그래 일단 아틀란 저놈의 일은 잠시만 잊자고.’
나는 할머니를 응시했다.
수중 동물 수인들에게는 특별하게 믿는 신이 없다.
그들이 믿는 것이 있다면 바로 생명의 원천인 ‘바다’.
하여 장례에서는 바다의 이름이 들어간 장송문을 읊는다.
바로 저 할머니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평범한 죽음, 그러니까 결투로 죽었을 때나 이런 장례가 치러지는데 말이지.’
나는 팔짱을 낀 채 검지로 팔을 톡톡 두드렸다.
“……하여 이 자리에 영원히 물속에 묻힐 범고래 바이얀 아콰시아델을 축언한다.”
할머니의 말이 끝나고, 옆에 있던 수인이 노래를 불렀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더없이 잘 어울렸다.
‘혹등고래인가?’
머리에 보이는 점박이 무늬를 봐서는 맞는 듯했다.
노래 부르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고래답게 아름다운 장송곡이었다.
이 노래가 끝나면 장례는 정식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나는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경하는 할머니.”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는 듯한 얼굴.
5년 전의 나였다면 가문 회의에서라면 모를까 이런 엄숙한 자리에서 난입을 불쾌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내게로 수많은 시선이 몰린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시선 사이엔 분명 죽일 듯 노려보는 바이얀 세력의 시선도 있겠지만.
“거기 돌멩아, 내 기분을 보아 말은 들어 주겠다만. 쓸데없는 소리라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게다.”
“물론이에요, 할머니. 엄숙한 자리에 갑작스런 난입을 하게 된 꼴이나 마찬가지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는 이어진 내 말에 피식 웃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을 찾자면, 이전엔 웃더라도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단 점이지만.
하지만 이제는 저 검푸른 눈에 정말 웃음기가 약간이나마 어려 있다는 부분이랄까.
“흡사 5년 전 네가 처음 가문 회의에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구나, 돌멩아.”
“…….”
“말했듯 헛소리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물론이에요, 할머니.”
설마 내가 할망구 당신을 실망시킬까.
오히려 갈수록 내가 좋아질걸?
달콤한 의미의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 할망구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결국.
강하면서도 힘을 추구하는, 자신의 방식과 같은 사고관의 후계자일 테니까.
기대해.
당신을 이길 때까지 난, 당신의 입맛에 걸맞은 후계자가 되어 줄 심산이니.
“할머니 오늘과 같은 정숙하고 장엄한 장례는 보통 범고래 수인이 제 수명을 다했을 때,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이 두 가지로 알고 있어요.”
나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말했다.
“여기서 명예로운 죽음이란, 전쟁에서 항쟁하다 적에게 죽은 것부터 시작해 정당하고 정의로운 전투에서 패배하여 죽는 것. 마지막으로 여기에 패배를 인정하고 자결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바이얀의 사인은 자살이다.
쉬쉬하지만 이곳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아는 사실이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니 말이다.
소문을 퍼트린 것은 리리벨과 백모 헤일라일 터.
“하지만 만약 바이얀이 자살한 게 아니라면, 이 장례의 의미는 퇴색된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