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21)
흑막 범고래 아기님 (121)화(121/275)
제121화
에키온과 내 시선이 허공에서 톡 부딪쳤다.
왜일까. 에키온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 파도 같은 것이 일렁거린 듯했다.
착각인가?
사람 눈 속에 파도라니.
수중동물 수인에게도 없는 것이 우리 용용이에게 있을 리가.
내가 잠깐 고민에 잠긴 사이 에키온의 말이 이어졌다.
“잡고, 싶었어.”
또박또박한 발음이었다.
“아주아주 많이.”
“…….”
“나만.”
함축된 뜻을 꾹꾹 눌러 담은 거 같아 흠칫 놀라 에키온을 따라서 나도 함께 눈을 깜빡였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보호자에 대한 애착인가?’
아빠랑도 한번 이야기 나눴지만, 이 애가 내게 가진 감정은 오리가 태어나 가장 먼저 본 사람을 따르는, 각인 효과에 가깝다.
나를 좋아하고 애틋하게 여겨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장차 이 애의 역할과 작위, 앞으로의 목표를 생각하면 우리 용용이의 사회성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으음, 하지만 아직은 어리니까 그대로 둬도 괜찮지 않을까?’
잘은 모르겠다.
키운다고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키우는 건 나도 처음이다보니.
게다가 사랑받은 기억은 양부모님이 그저 쏟아지도록 준 사랑밖에 알지 못해서.
나도 네게 쏟아 주면 너도 무럭무럭 자랄까?
“그렇구나. 그럼 지금도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해?”
“응. 항상.”
“오, 다행이다. 그럼 나랑 얼른 잡고 실험해보자.”
항상 잡고 싶었다니 좋은데?
이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도해서 실패한다면 다른 변인을 찾아보자.
“자, 이렇게 손을 잡고…….”
나는 에키온과 깍지를 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 그래. 앞선 회차에서 내가 쓰던 힘을 아쉬워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다른 생각인가?
하지만, 역시 힘이 더 강해지면 좋겠다. 지금도 내 힘은 모자람이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애들이나 평범한 어른 수준에서의 얘기다.
‘……이런 걸로는 안 돼.’
눈매를 지그시 찌푸렸다.
할머니의 힘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만약, 내 힘이 앞선 회차로 돌아간다면…….
나는 당신을 바닥에 눕힐 수 있을까. 나의 정당한 복수가 그렇게 끝을 맺었을까.
“칼립소, 소원.”
“……응?”
“바라, 간절하게.”
“아, 간절하게 바라냐고?”
나는 맞잡은 손을 잠시 보았다.
“응. 조금은 그래.”
내가 더 강하면 좋겠어.
앞으로 찾아갈 수하놈들이. 아틀란이. 아게노르가.
그리고 네가.
죽지 않고, 아픈 미래를 맞이하지 않으면 좋겠어.
그렇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내가 다시 강해지면 좋겠어.
“지금도 강한데, 자꾸 욕심이 난다?”
“…….”
심각한 표정을 짓던 나는 이내 표정을 풀고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역시 이렇게는 아닌 모양이야. 뭔가 그때 물이 나왔던 건 다른 이유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멋쩍게 내뱉던 말을 멈추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눈앞으로 둥실 떠오른 투명한 물을 보았으니까.
‘물…… 물방울?’
분명 물의 힘이었다.
나는 손을 뻗으려 했지만 아직 에키온과 깍지를 낀 상태인 걸 알고서는 얼른 멈췄다.
“에키온, 세상에. 네가 한 거야?”
“응.”
“너 물의 힘도 쓸 수 있어?”
“칼립소 힘.”
“…….”
“시간, 시간의 힘. 칼립소와 난 유일해.”
……이거,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겠지?
에키온이 대화를 하는 건 오직 나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에키온의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이 애는 모든 문장에서 핵심 단어만 말하는 버릇이 있다.
원래 용들이 그러한 건지, 아니면 에키온이 아직 어리거나 길게 말할 필요성을 못 느껴선지는 모른다.
“에키온.”
나는 숨을 삼켰다.
“너, 혹시…… 나의.”
과거나 미래에서 힘을 가져온 거니?
현재의 나는 물의 힘을 각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차를 거슬러 올라가 앞선 회차의 나는? 그리고 미래로 가서 미래의 나는?
그때의 내가 물의 힘을 사용할 수 있고, 에키온이 그 힘을 내게 줄 수 있다면.
미친, 이거, 지상 최강의 서포터 아닌가?
‘세상에, 신이시여. 제가 정말 착하게 살았나 봅니다.’
아니면 내 삶이 드디어 불쌍해지셨나요?
이런…… 복덩이 같은 용용이를 내려주시다니!
“내 미래나 혹은 과거에서 힘을 빌려온 거야?”
“응. 빌려? 가져와.”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내가 사용했던, 혹은 미래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물의 힘이 있다고 가정하자.
에키온의 힘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힘이다. 이러한 힘을 광범위하게 쓸 수 있다면.
내게 3회차의 힘을 빌려줄 수 있다는 소리 아닐까?
‘내가 이 모습으로 3회차 전성기 시절의 힘을 쓸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해.’
……황실이 어째서 에키온을 완전히 손에 넣으려 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도 무참하게 짓밟을 계획까지 세우면서 말이다.
이건, 권력자들의 침이 절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놈들이 에키온에 대해 잘 알긴 하던가?’
그들은 이전 회차에 대해서 모를 테니, 그저 용이란 것에 집중해 거대한 힘을 손에 넣으려 한 건 아닐까.
“에키온, 혹시 그러면 내가 원하는 시기의 힘을 꼭 집어서 빌려 올 수도 있어?”
에키온이 열심히 끄덕였다.
“……있어. 칼립소, 원한다면.”
“……그럼 내가 가장 강했을 때의 힘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해?”
평범한 사람이 들었다면 고개를 갸웃했을 소리에도 에키온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나온 소리는 쿵, 하는 충격을 주었다.
“나, 죽어도 돼?”
“뭐?”
“칼립소 소원, 들어줘.”
“뭐? 아니, 아니……! 야! 아니아니! 하지 마! 아냐, 괜찮아!”
지금 당장 죽을 테지만 그 대가로 내게 그 힘을 빌려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협박이 아니란 게 더 무서워!’
진짜로 실행할 것 같아서 무서웠다.
“잠깐만, 잠깐만.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진정하자. 우리.”
“응.”
누가 네 목숨을 담보로 갖고 싶대!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목숨은 주는 거 아니야. 알겠지? 네게 딸린 토끼, 아니 송사리 같은 투스를 생각해야지!”
“……응.”
“아휴, 깜짝이야. 다신 그런 얘기 하지 마.”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에키온은 그때마다 열심히 고개를 움직였다.
그제야 안심하고 숨을 내쉬었다.
와, 식겁했네.
“칼립소. 그럼.”
“응?”
“칼립소가 옆에, 있어 줘?”
투스를 만나기 전까지 있어 주냐는 이야기일까?
“계속?”
투스를 만나기 전은 물론 만난 후에도 계속 함께할 의향도 있다.
“당연하지.”
나는 에키온을 꾹 끌어안고는 등을 괜스레 토닥였다.
“곁에 있을게. 걱정 마. 무서웠겠다.”
“…….”
“물론 넌 무섭다는 감정도 모를 때일지도 모르겠지만. 아, 아마 앞으로도 모를지도 모르겠네.”
에키온은 내게서 감정을 배운다. 나는 씩 웃었다.
“난 무서운 게 없거든. 내가 지켜 줄 테니까 안심해.”
조금 전 서슴없이 날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다고는 안 하겠다.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말이다.
“넌 절대로 다른 데 넘기면 안 되겠다. 황실 그놈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문득 내가 만나러 가기 전에 아이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각조각 접한 짓만으로도 충분히 쳐 죽일 놈들인데…….’
나는 에키온을 놓아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적이 같아.”
황실, 그리고 육지놈들.
다만, 1차로 해치워야 할 일이 가주가 되는 일일 뿐이다.
“우리 오늘 네가 했던 이야기는 다 잊는 걸로 하자. 나, 물의 힘은 내가 알아서 깨우칠게. 최악의 경우엔…… 없더라도 괜찮을 거야. 난 네가 죽는 거 싫어.”
“……응.”
나는 에키온과 잡았던 손을 쥐었다가 폈다.
물의 힘을 썼던 감각이 생생했지만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이번 생에선 그 어떤 목숨도 빚지고 싶지 않다.
괜찮아. 나는 이미 강하니까.
“자, 그럼 이 이야기는 됐고. 우리 아게노르 그놈 훈련이나 구경하러 갈까?”
이렇게 생각하며 깔끔히 미련을 털어 버리는데, 에키온이 살포시 내 옷자락을 잡았다.
“칼립소.”
“응?”
“……보고 싶지 않아?”
“으응? 뭐를?”
에키온이 자신의 이마를 톡 두드렸다.
“칼립소, 보고 싶다고 했어. 간절해.”
에키온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 딱딱하게 굳었다.
“……혹시 내 부모님을 한번 보게 해 주면 안 될까?”
5년 전, 용의 도시에서 아콰시아델로 돌아가는 길. 이 아이에게 간절히 바랐던 소원.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이 뚝 꺾인 날.
나는 에키온을 물끄러미 보다가 싱긋 웃었다.
“아니, 괜찮아.”
“…….”
“더는, 보고 싶지 않아.”
* * *
“기분 좋아 보이시는군요.”
“아.”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있었고, 일리아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아, 요즘 키우는 애들이 다들 열심히거든.”
특히나 우리 용용이가 세상 열심히 책을 보고 있다.
대체 왜일까.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칼립소. 전에 네가 요리를 잘하는 놈이 좋다고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