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5)
흑막 범고래 아기님 (15)화(15/275)
제15화
“저어, 라일라 님…….”
얼떨떨한 표정으로 라일라를 부른 사람은 알파반의 교사 카밀이었다.
라일라의 먼 친척이기도 한 카밀은 대체로 평정을 잃는 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라일라는 카밀의 표정을 십분 이해했다.
“이게, 물의 힘을 각성하지 않고도…… 이런 힘을 내는 게 가능한 거예요?”
라일라 자신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니까.
“라일라 님은 물의 힘을 각성했잖아요. 말 좀 해 주세요.”
“맞아요, 라일라 님. 이게 대체…….”
알파반 보조 교사인 아이카도 유령을 본 것처럼 해쓱한 얼굴로 동조했다.
특히나 아이카의 얼굴에는 경악과 동시에 특종을 찾은 기자 같은 표정이 함께였다!
“정말, 대단하네요…….”
아이카의 외조부가 날치 수인이었던가…….
라일라는 보조 교사의 가족을 슬쩍 떠올리며 오늘 일 또한 단 하루 만에 퍼져 나가고야 말겠구나 싶었다.
아니, 이번에야말로 모든 방계들이 알 정도로 퍼지지 않을까.
적어도 입학하자마자 이 정도 사고를 친 범고래는 그녀가 장으로 있는 30년간 없었다.
천하의 양아치, 깡패, 또라이. 각각이 타이틀을 하나씩 거머쥔 그녀의 오빠들도 이룩하지 못한 기록이었다.
‘이쯤 되면 농처럼 이야기했지만…….’
라일라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정말 또 하나의 강력한 후계 후보가 생겼는데.’
그러나 곧 그녀의 입 끝에는 숨기지 못한 자그마한 미소가 어렸다.
라일라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번엔 하루가 아니었다.
단 반나절 만에 모든 소문이 퍼졌으니까.
* * *
“머싯써요!”
“우리 엄마보다 멋져여!”
카론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이들이 퍽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계속 반복되니 질려 버리고 말았다.
“공뇨님 저도 가르쳐 주세요!”
……감탄도 좋고 칭찬도 좋은데. 한 시간이면 오래 하지 않았니, 얘들아?
범고래는 서열 동물, 단 한 방으로 서열을 깨달은 카론은 알아서 기었다.
나는 놈을 저 끝자리로 내몰았다.
그래서 카론은 현재 끝자리에서 불쌍하게 앉아 있는 참이었다.
의자 하나를 내어주고 ‘생각하는 의자’라고 이름 붙였더니, 애들이 꺄르를 웃고 좋아하더라.
들어 보니 이 반에서 범고래 몇몇을 제외하고는 저놈에게 얻어맞아 본 애들이었다.
아니, 애들 때릴 때가 어딨다고 때려?
나는 범고래가 아닌 고래들에겐 관대했다.
‘얘네처럼 평화를 좋아하는 애들이 어딨다고.’
싸움은 싸움 좋아하는 애들끼리 붙어야지.
내가 오빠놈들을 인정하고 좋아했던 유일한 부분이 있다면 패쌈질을 꼭 범고래랑만 했다는 거다.
‘아니다, 덤비는 놈이랑 했던가?’
아무튼 간에 가만히 있던 놈을 쥐어박는 놈은…….
이런 내 기억 왜곡 좀 보게.
‘셋째 놈은 그런 것도 없는 또라이였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의 박수는 끊이질 않았다.
‘저기 얘들아, 너희 오늘 과제 안 하니?’
심지어 저기 있는 교사들마저 초롱초롱하게 쳐다보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이길래.
내가 체념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다들 조용히하렴.”
나는 손을 탈탈 털며, 입가로 쉿하고 검지를 올렸다.
한 시간 만에 얘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방법을 막 터득한 참이었다.
아가들이 기다렸다는 듯 꺄르륵 웃던 입을 멈췄다.
합하고 자신의 입을 가리는 아이도 있었다.
아휴, 착하기도 하지.
게다가 섞여 있는 범고래 아이들은 이미 서열이 나뉘었다는 것을 알고 알아서 기는 모습이었다.
아휴, 편하기도 하지.
“다들 착석하거라. 훌륭한 고래는 교육을 열심히 받아야 해.”
“녜!”
“네에!”
방년 3세. 알파반 첫 등교.
반을 접수하다.
‘하, 이게 바로 짱의 권력. 짱에게 주어지는 관심.’
이게 바로 오늘 이룩한 쾌거였다.
……비록 밤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침대에 누워 이불킥을 할지라도 말이다.
* * *
그날의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후, 보람찬 하루였어.’
나는 한 손에 아침에 차고 온 가방을 그대로 멘 채로 마차를 찾아서 걸어갔다.
생각해 보면 아침에 열심히 올라온 계단을 이제는 내려가야 했다. 아주 잠시 으윽,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어쩌겠어.
나는 오늘 짱을 먹은 범고래니 이 정도 시련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는 내 교실이 저기다 보니 매일 아침 낑낑댈 고생길이 훤하다는 점인데.
‘뭐, 최상위 반으로 간 대가라 생각해야지.’
참고로 오늘 까불다 서열 정리당한 카론 같은 경우엔 하루 종일 ‘생각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교사들이 한 번은 뭐라 하든 주의를 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최상위 반 교사들은 교사나 보조 교사나 모두 범고래 방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열 싸움을 모두 목격한 뒤로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이는 암묵적인 인정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 반의 보조 교사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나를 보곤 했다.
교사가 주의를 주니 무어라 말을 걸진 않더라.
“더는 반을 옮길 일은 없으시겠군요. 어쩌면 이 초급 기관에서 오래 뵙지 못하리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만.”
라일라의 경우 수업이 끝나고 내게 한 마디를 남긴 채로 돌아갔다.
“앞으로 기관 생활이 재밌어질 것 같습니다.”
그럼. 내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아주 오래 있을 생각은 없긴 하지.
무엇보다 나는 10살까지만 이곳에 머물 생각이니까.
바꿔 말하면 10살 이전에 아주 대단한 업적을 보여 주고 떠나야 한다는 소리긴 한데.
‘자신 있지.’
나는 손을 오므렸다 펴며 눈앞의 계단을 바라봤다.
잠시 미래 생각은 접어 두고 이제 현실의 작은 시련을 마주할 때다.
‘후, 이 또한 할머니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필요한 시련이라 생각하자.’
젠장, 대체 계단은 누가 이렇게 높게 만들어 둔 거야.
작게 한숨을 쉬며 계단을 낑낑대며 내려가려던 순간이었다.
“공뇨님!”
“공뇨님!!”
고개를 드니 아주 옅은 백색 머리칼을 가진 아이 둘이 나를 보고 있었다.
반질반질한 머리 색, 게다가 유독 동공이 큰 이 애들은 돌고래 아이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흰돌고래 애들인가?’
흰돌고래. 다른 말로는 ‘벨루가’라 불리는 이들이다.
본체가 귀엽고 반질반질하게 생긴 탓인지, 이 아이들 또한 아주 똘망똘망해 보였다.
참고로 여담이지만 흰돌고래는 돌고래의 일종이 아니다.
‘얘네는 고래 중에서도 체구가 작긴 하지?’
그래도 일단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만큼 내가 올려다봐야 했다.
“왜 불렀지?”
“인사하고 싶어서요!”
“인사!! 인사요!!”
오늘 하루 함께 수업을 해 본 결과, 이놈들은 반 안에서도 꽤 아니, 가장 똑똑한 축에 속했다.
하기야 흰돌고래들은 본래가 고래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편이다.
내가 있던 세상에서도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동물 아니었던가.
게다가 장난기는 많지만 평화를 사랑한 탓에 범고래들과 유달리 성향이 맞지 않는 수인들이기도 했다.
‘아마 얘네가 제일 많은 괴롭힘을 당했을 것 같은데.’
이전 회차에서도 그랬지만, 얘네나 돌고래들만큼 입바른 말을 잘하는 애들이 또 없다.
머리는 똑똑하지, 대체로 정의롭지, 자기 뜻에 안 맞는 행동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지.
대체로 폭군이고 제멋대로인 범고래들과는 안 맞을 수밖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합니다. 저는 똑똑하니까 그래도 돼요.”
이건 지금 앞에 보이는 흰돌고래들이던, 전회차에서 나를 끔찍이도 따르던 내 책사였던 참돌고래 그놈이던 똑같았다.
“무슨 인사?”
새삼스럽게 이전에 아끼던 수하를 떠올리니, 어쩐지 이 조그마한 쌍둥이들을 쫓아 보낼 수가 없었다.
집에 얼른 갔다가 피에르 집에 가야 하는데 말이지.
“우리 반 구해 줘써욥!”
“구해 줬어!”
“영웅!”
“영웅!!”
“그래그래, 그런 인사라면 10번은 더 하렴.”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함을 칭송하는 거라면야, 오늘 하루는 100번도 더 받아 줄 수 있다.
“나도 범고래다 보니 나 잘났다는 소리 듣는 거 좋아하거든.”
“조아해요?”
“조아해!”
“공뇨님 최고!”
“멋져써요!”
“그래그래. 내가 멋지단다.”
나는 조금 더 인정을 베풀어 이 흰돌고래 쌍둥이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기로 했다.
사실 계단을 낑낑대며 내려가는 꼴은 보여 주고 싶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카론이 엄총 때려써요! 내 이마 움푹 들어가써.”
“나는 머리 들어가써.”
“걔가 잘못했네. 근데 너네 머리는 원래 몰랑몰랑한 편 아니니?”
“헉, 그거 어떻게 알아요?”
“알아요?”
“너네 10살까지는 피부가 연하잖아. 모든 흰돌고래가 그렇지 않나…….”
가물가물한 이전 회차 지식을 떠올리는데, 어느새 흰돌고래 쌍둥이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뇨님 흰돌고래 잘 아라요?”
“모르진 않는데.”
무심한 대답이었건만, 아까 보조 교사보다도 더욱 빛나는 시선이다.
“이론 관심 처음이야!”
“처음이야!”
“엄마가 처음인 사람한테 잘해야 한 대요! 그래서 아빠한테도 잘해써!”
“마자! 잘해써!”
“……그 처음이 이 처음을 말한 건 아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