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66)
흑막 범고래 아기님-166화(166/275)
제166화
“괜찮아. 에키온.”
나는 우선 놀란 것 같은 에키온을 달랬다.
아마 이 애는 내가 오기 전까진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토로하지 못한 채 나만 기다렸을 것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투스는 지금…… 너무 아파서 잠깐 잠이 든 거야.”
“아파서?”
“그래. 너도 길게 잠이 든 적 있지?”
“…….”
나는 살짝 끄덕이는 에키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의 몸은 너무 힘들면 잠을 자서 회복하려 그래.”
이걸 기절 혹은 혼절이라고도 하지만 영 의미가 좋지 않으니 슬쩍 바꿔 말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치료할 방법이 있으니까.”
에키온의 표정이 미세하지만 밝아졌다. 나를 본 순간부터 빛이 어린 것 같았다.
“투스, 살아야 해.”
“그럼, 앞으로도 살아야지. 투스는 힘들었던 만큼 더 행복해져야 해.”
“…….”
“너처럼 말이야, 에키온.”
나는 에키온을 한 번 더 달래고는 고개를 돌렸다.
치유 능력이 있는 웨일과 릴리를 보기 전, 레바이부터 응시했다. 다급한 기분이었다.
“레바이, 투스 말인데 네가 따로 진찰은 했어?”
레바이는 잠시 당황하더니 대답했다.
“……의원이 아니라 진료는 어렵지만 관찰이라면.”
“뭐든 좋으니까, 대답.”
“빠른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레바이도 이런 이야기만 하려 한 것은 아닐 터.
“우선 뼈가 몇 군데 부러진 듯해 부목을 대어 두었습니다. 다만, 아이에게 골절과 내출혈은 아주 위험한지라 급한 대로 가지고 있던 재료로 만든 약을 먹이긴 했습니다.”
“웨일의 치료는?”
“그게…… 일단 진단은 했습니다만, 재료 하나가 모자라더군요.”
“구할 수 있어?”
“이미 있습니다.”
“있다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피에르 님을 치료할 재료 말입니다.”
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멀쩡하게 잘 살아 있다만. 내 걱정을 하는 거라면 당연히 써도 상관없다.”
“……응.”
나는 끄덕이고는 다시 레바이를 응시했다.
레바이도 끄덕였다.
웨일은 눈치 빠르게 자기 다리에서 잠들어 있던 릴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가왔다.
레바이는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하면서도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잠시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공녀님. 이상한 일이랄지…… 보고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뭔데?”
레바이는 말하면서도 손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릴리가 저 투스라는 존재를 보더니 깜짝 놀라선 자신이 치료하겠다고 엉엉 울었습니다.”
“…….”
물론 내용은 지나가듯 말하기엔 영 가볍지 않았다.
“……결국 치료했어?”
“예. 다급한 상황이었던지라 거절하고 말고가 없었습니다.”
“그럼 치료하는 걸 다 봤다는 거지?”
“예, 맞습니다. 대체 무슨 영문입니까, 이건?”
나는 뺨을 긁적이다가 툭 뱉었다.
“무슨 영문이겠어. 쟤 특기도 ‘치유 능력’인 거지.”
나는 푹 잠든 릴리를 보았다.
“아마, 웨일의 치유 능력보다는 좀 더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고.”
“그렇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해 보이던데요.”
나는 쓰게 웃었다.
“맞아. 대가 없는 능력은 아니지.”
책 속에서 여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치유 능력. 이건 실로 대단했지만.
동시에 그녀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은 특기이기도 했다.
“치료하다가 아파한 것도 봤겠네.”
“예.”
저 아기 다람쥐가 아파했다니.
원, 이 방에 아픈 애가 몇 명이었던 거야. 작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웨일의 능력이 등가교환이라면, 릴리의 능력의 대가는 그거야. 자신도 비슷한 고통을 느끼거나, 상처 일부가 몸으로 옮겨 오는 거지.”
이로 인해 흑표범들과 남자주인공은 더욱 여주를 아끼고 싸고돌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치료해 주다가 아프고 상처 입는 가냘픈 존재라니.
지켜지기 위해 태어난 것 같지 않은가.
나는 릴리를 가만히 보다가 눈을 떼어 냈다.
“치료하다 잠든 거였구나.”
“예. 덕분에 외상과 심한 내출혈은 나았을 겁니다.”
“……많이 아팠겠네.”
다행스럽게도 릴리가 치료 능력을 발휘한 지 오래되지 않아, 아파하는 것 같기에 레바이가 빠르게 떼어 냈단다.
세 살이 견디기엔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참, 이 세계는 애가 애답게 자라지 못하게 한다니까.”
“일부 동의합니다.”
레바이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웨일이 자신의 차례임을 알고 있다는 듯 반듯하게 누워 있는 투스 앞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고통이 있는지 투스의 숨은 불규칙했다.
치료를 위해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 에키온이 움찔했다.
나는 살짝 에키온의 손을 잡고는 힘을 주었다.
“괜찮아, 치료하려는 거야.”
“…….”
에키온의 손이 머뭇거리더니 마주 잡아 왔다.
그 사이 웨일에게서 빛이 흘러나왔다.
‘문 앞은 아틀란과 드렉스가 지키고 있으니 문제없겠지.’
게다가 이제 아빠도 있었다.
훼방꾼은 절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눈앞의 치료 과정을 빤히 응시했다.
투스 치료에 필요한 재료가 차차 사라진다.
‘진단은 몇 번 봤지만 치료는 레바이의 작은 상처를 치료한 것 이후로는 처음이네.’
곧이어 웨일의 몸에서 흘러나온 은색 빛이 온 방을 차지해 버렸다.
반사적으로 질끈, 눈을 감았는데 신기하게도 다시 눈을 뜨자 온 곳곳에 바다 그림자가 져 있었다.
“바다로군.”
아빠의 짤막한 감상처럼 바닷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느낌이다.
파도 그림자가 아름다웠다.
“상처가 심각할 때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레바이가 처음 본 풍경이 아니라며 침착하게 설명했기에 금방 이해했다.
참으로 신비로운 힘이었다.
“치료란 건 참 좋네…….”
나는 점차 편안해지는 투스의 표정을 보며 안심하는 동시에 조금 씁쓸해졌다.
앞선 회차에도 웨일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적어도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이들의 일부라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스쳐 가는 몇몇 죽은 수하들 얼굴에 가만히 표정을 굳히고 있자, 에키온이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칼립소?”
“응?”
“저거, 유용해?”
“응? 아아, 치료의 힘? 그렇지.”
나는 에키온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어 말했다. 에키온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를 알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에키온. 매번 나한테 필요하냐고 묻지 않아도 돼.”
“……왜?”
“나는 네가 필요 없더라도 곁에 둘 거니까. 불안해서 묻는 거라면 묻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
“오, 투스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그치?”
나는 에키온의 손을 흔들었다.
모든 빛이 사라진다. 웨일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동시에 새하얘진 얼굴로 말했다.
“끝났어.”
휘청, 웨일이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레바이가 익숙한 듯이 웨일을 얼른 부축했다.
나는 웨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얼른 투스에게 다가갔다.
‘투스.’
내가 다가가기 무섭게 투스의 얼굴 위로 미약한 주름이 지더니, 이내 투스가 스르륵 눈을 떴다.
반짝 뜬 금색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순간이지만 긴장했다.
곧 새하얀 얼굴로 봄꽃 같은 미소가 사르르 피어올랐다.
“……칼립소!”
“투스.”
투스가 벌떡 일어나려다가 끄응, 하는 신음을 흘렸다.
놀라 투스를 잡으려는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공작님!”
푸르른 아기 뱀이 에키온을 향해 뛰어올랐다.
“으아, 에키온, 손! 손 뻗어!”
에키온이 손을 뻗기 무섭게 투스가 그 손에 감겼다.
아기 뱀의 금색 눈동자에서 콩알 같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공작님! 용 공작님! 투스, 보고 싶었어요! 공작님……!”
“…….”
“투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아무도 몰라요, 투스 용 공작님처럼 지냈어요!”
아기 뱀이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하는 말에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주인을 위했다는 걸 알기에.
에키온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오묘한 감정이 담긴 눈동자.
나는 그것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란 걸 알아차리고 살짝 웃었다.
입 모양으로 속삭였다.
‘투스에게 말해 줘.’
투스가 듣고 싶은 말은 하나일 거야.
‘잘했어.’
에키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은 손으로 투스의 머리를 살짝 매만지면서.
“잘했어.”
그러더니 머뭇거리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이젠, 아프지 마.”
* * *
용의 성은 발칵 뒤집어졌다.
용 공작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필 페세움에서 대부분의 영주민들이 관중으로서 사건을 모두 보고 들은 뒤라 숨길 수도 없었다.
페세움에서 깽판을 친 날 저녁, 사건을 수습한답시고 육지 맹수 수인들 측에서 ‘용 공작’을 찾았다고 밝혔지만.
당장 모습을 보여 달라는 성난 가신들과 영주민들의 성화에 답하지 못해 거짓으로 밝혀지고 말았다.
흑표범들은 다른 맹수가 성급히 발표한 것이라고 얼버무리고는 마무리 지었다.
‘다른 맹수는 무슨, 늘 하듯이 조용히 덮으려다가 걸린 거지.’
아무리 애써 봐라, 이 일을 쉽게 덮을 수 있는가.
나는 옆에 앉은 에키온과 투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애틋한 주종 상봉 이후, 투스는 에키온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끔은 에키온이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는 열심히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하던데. 신기하기만 했다.
‘벌써 이틀이 흘렀네.’
돌아가는 상황에는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모두를 불러 모았다.
“우리, 이젠 돌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