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181)
흑막 범고래 아기님-181화(181/275)
제181화
‘아아. 언제인지 알겠네.’
나는 저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빠르게 언제인지 알아차렸다.
수중 동물 수인들에겐 절대적인 영역이나 다름없는 이 아콰시아델의 거대한 성.
이 성이 무너진 모습은 누가 보아도 놀랄 만한 것이었고, 잊지 못할 터였다.
나 또한 그러했다.
이건 내가 막 아콰시아델로 돌아왔을 때이다.
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택 모습을 보면서 가볍게 말했다.
“당신이 죽은 뒤의 가문 모습 같은데?”
그러자 할머니가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상황을 알려 주듯 중얼거렸다.
“이야. 이게 다 뭐냐.”
부서진 저택의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는 한 여자의 모습.
3회차의 ‘나’였다.
“와, 가주가 죽었다더니, 엉망이네? 꼴좋다.”
내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멀리서 누군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성인 모습의 리리벨과 아틀란이었다.
그들 옆에도 무수히 많은 범고래 수인들이 죽어 쓰러진 게 보였다.
지들끼리 싸우다 망한 꼴이었다.
‘저 때 가문 꼴 진짜 엉망이었는데.’
예정된 결과였다.
가주는 죽으면서 끝까지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고.
그 후로는 무한한 후계 싸움의 시작이었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그냥 다 같이 뒤졌겠던데.’
실제로 벨루스, 아틀란, 아게노르가 형제라고 힘을 합치기는커녕 찢어져서 싸운 데다가.
리리벨의 세력도 비등비등하니.
결국 다 같이 자멸했을 거다.
“할망구, 내가 돌아오기 전에 뒤져 버리다니.”
3회차의 ‘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실제로 아쉬움을 느꼈다. 한번 꼭 싸워 보고 싶었으니까.
이리 말하면서도 3회차의 ‘나’는 흥미진진하게 풍경을 구경했다.
나는 눈을 떼어 내며 가주에게 말했다.
“뭘 그리 충격인 것처럼 봐?”
가주의 눈이 흔들거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허세에 불과한 모습이었다.
나는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대로 우리가 돌아가지 못하면 이런 꼴 나겠네.”
“허?”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쳐다보는 것인지 우스웠다.
“이건 당신이 만든 결과야. 아니, 당신이 죽으면 일어날 꼴이겠네.”
“헛소릴 할 거라면 그 입을…….”
나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되 느릿하게 이어 말했다.
“약육강식을 외친 건 당신이고.”
“…….”
“가장 강한 놈이 죽었으니 남은 놈들은 새롭게 제일 강한 놈을 찾기 위해 싸울 거고. 여기서 애매하게 강한 놈들은 저보다 약한 놈을 괴롭히고.”
나는 엉망이 된 저택을 흥미롭게 곁눈질했다.
“약자는 약자의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은 리더의 패착이지.”
실제로 내가 내린 결론이기도 했다.
나는 방긋 웃었다.
“아, 저거 봐.”
쿠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싸움을 이겨 내지 못한 저택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장면이 사라져 버렸다.
어둠이 내리깔렸다.
정말로 이대로 멸망해 버렸음을 암시하듯이.
엉망이 되고 폐허가 되어 가던 아콰시아델을 마지막으로 말이다.
마치 에키온이 지켜보고 있나?
이렇게 생각될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사색이 된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유쾌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비웃었다.
이런 결과를 몰랐다는 것이 그저 우스워서.
“그 뒤로는 진짜 가문이 멸망하겠다. 당신 때문에. 그치?”
내 웃음 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낭랑하게 울렸다.
사실 저 가주가 내 말을 믿든 말든 상관없지만.
믿어서 절망을 안겨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나는 안다.
저 이기적이고 난폭한 인간이 유일하게 제 보물처럼 쥐고 집착하던 게.
‘아콰시아델’ 그 자체임을.
자신이 마지막 가주가 되었다는 상상만으로 끔찍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 속에서 하얀빛이 반짝거렸고 그 빛에 비친 가주의 모습이 창백했다.
수초 만에 더 늙어 버린 사람처럼.
“……그럴 리 없다.”
단호하고도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알리지 않기 위한 허세임을.
“네 말대로 이것이 있었을지도 모를 ‘시간’이라면.”
나는 방글방글 웃었다.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 아니더냐?”
“그렇지.”
나는 재밌다는 듯 손으로 살짝 입술을 가렸다. 내 손끝이 한쪽을 가리킨다.
“그런데 당신 얼굴은 왜 그래?”
“…….”
움찔하는 어깨가 웃겼다.
한때는 태산 같아서 나를 버리던, 나를 쓰레기라 말하던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줄 알았건만.
“아무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얼굴 해야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내 웃음소리가 유쾌했다.
그 순간 한곳에서 푸르른 빛으로 된 나비가 날아다니더니 파스스 흩어졌다.
‘문?’
우리가 이곳에 들어올 때 봤던 문이다.
나는 서둘러 문으로 향했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냐?”
아니, 향하려 했다. 들려 오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터다.
“네 죽음을 두 번, 아니 세 번이나 보고서 말이다.”
아무래도 3회차에서 휙 꺼져 버린 장면을 아콰시아델의 멸망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때 나도 죽었을 거라 생각하는 거다.
“무슨 상관이겠어? 진짜로 세 번 죽은 것도 아닌데?”
“…….”
돌아서려 했지만, 나를 노려보듯 응시하는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 무슨 말을 하려나.
“그럼 너는 저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나는 멈칫했다.
“이 아콰시아델이 싫어지겠군?”
어째 말투가 아빠랑 비슷하다.
부모 자식이니 당연한 일인가?
가벼운 불쾌감을 느끼며 그저 쳐다보았다. 질문을 들어 줄 생각이었지 대답할 의무는 없었다.
“아콰시아델이 싫어질 이유가 있나? 저 시간을 보면 가해자는 정해져 있던데.”
“…….”
우리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가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가해자를 용서할 것이냐?”
이기적인 말은 덤덤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다가 참을 수 없는 유쾌함에 웃음을 눌러 참았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차라리 사자의 손에 죽었지.”
그 가해자는 당신을 말한 걸까.
아니면 나를 비웃고 짓밟던 흑표범과 육지놈들?
아니지. 당신을 말한 거니까 그런 애매한 얼굴을 하는 거지.
나라는 후계자를 놓치고 싶진 않을 테니까.
바라는 것은 이루어졌다.
가주는 후계자에게 미련을 가졌다. 이제는 놓치기 싫어질 정도로.
“왜요? 새삼 어릴 때 나를 방치한 게 후회되나요, 할머니?”
나는 손녀인 척하던 때처럼 낭랑하게 물었다.
할머니의 얼굴로 긍정의 의미가 어렸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개그 쇼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럼 나도 물어볼까요? 당신은 저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
“후회할 거야?”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살짝 사라졌다.
똑같이 긍정을 표하는 얼굴.
“답은 나왔네.”
“…….”
“당신 참 멍청해. 질문이 잘못됐잖아.”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용서할 거냐가 아니지. 사과를 해야지. 가해자가.”
당연히 받아 줄 생각은 없지만.
“그 대가리에 사과라는 단어가 없지, 참?”
나는 중얼거렸다.
“내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거면서, 뭘 그리 뻔뻔하게 물어요?”
말이 중얼거렸다지, 다 들리는 소리였다.
“남들 보기 쪽팔려서 날 학대하는 하녀를 처벌했지. 당신이 이끄는 아콰시아델은 평생 육지 동물을 이기지 못할 거야.”
부웅, 물의 힘이 내 뺨을 스쳤다. 나는 따가운 감촉을 느끼며 뺨을 닦았다.
“어느 약자가 만들어 낸 무기는 거대한 강자를 무너트리기도 하지. 그걸 모르는 당신은 여기가 끝이란 소리야.”
그렇게 살아왔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이기적임과 이타적인 행동 사이에서 선택권을 갖는다.
저 사람은 끝까지 이기적으로 사는 것을 택했을 뿐이다.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사자 같은 소리에 기분 더럽게.”
나는 성큼 걸어가 문고리를 붙잡았다.
덜컹덜컹.
‘뭐야, 안 열리잖아?’
인상을 팍 썼다. 아니, 열리지도 않는 문은 왜 만들어진 거야?
차라리 주먹을 휘둘러 부숴 볼까. 이리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가 있던 공간이 다시 변했다.
멈췄던 3회차의 시간이 다시 보여지기 시작한 거였다.
‘뭐야, 영화의 화장실 타임이라도 되냐? 웃기네.’
짜증스럽게 보는데, 곧 내 얼굴에서 찌푸림이 사라졌다.
“그러게, 다치는 것도 좀 작작하시면 안 됩니까?”
반가운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0대 청년의 모습.
싱그러움과 풋풋함, 동시에 약간의 피로함이 어린 미청년이었다.
커다란 안경 아래로 유순한 듯 끝이 묘하게 올라간 눈매가 보였다.
돌고래 주제에 퍽 퇴폐적인 인상을 가진 저놈은 레바이였다.
성인 레바이.
시기를 보아하니 거대한 전투 뒤인 것 같았다.
“그러게. 네가 걱정해 주는 게 좋아서 자꾸 다치나?”
“좀! 좀! 그런 소리 마십시오, 진짜!”
‘나’는 붕대를 둘둘 감은 채로 씨익 웃었다.
“이러니까 자꾸 다른 놈들이 오해하고, 벨루스 님이며 아틀란 님이 저만 보면 쥐어 패려고 드는 거 아닙니까!”
“뭘 또 난리야. 첫째랑 둘째 놈들 그 혀로 쌈 싸 먹는 주제에.”
“자꾸 그런 수작 부리면 확 그만두는 수가 있으니 자중하십시오!”
“그건 곤란한데. 아니면 확 청혼할까?”
“……예?”
나는 오랜만에 극혐하는 표정의 레바이를 보았다.
“정말입니까?”
“……응?”
“확 받아주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3회차의 ‘나’는 레바이의 도발에 당황하기는커녕 싱글 웃었다.
“아아.”
장난을 치면 늘 반응이 새로웠다 보니 끊지 못하고 매번 반복했다.
그래, 숨 쉬듯 장난을 걸며 낄낄대던 기억은 있다. 그런데…….
“어차피 나 육지놈들 이겨도 평생 혼자 살 건데. 같이 살아갈까?”
다만, 한편으로는 얼떨떨했다.
“……내가 저런 말도 했었어?”
왜일까. 못 할 짓 한 것 같은 기분은.
……레바이만은 3회차를 기억하지 않길 바라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