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274)
흑막 범고래 아기님-274화 (에필로그 1)(274/275)
에필로그
제1화
결과적으로 칼립소 일행은 수도에서 바로 떠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칼립소를 비롯한 일행이 입은 부상이 상당했던 탓이었다.
무엇보다 치료 능력이 있는 웨일이 부상자이다보니 치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릴리가 웨일의 부상을 모두 치료하자니…….
까딱하면 치료한 릴리가 일주일을 앓아누울 수 있다는 게 알려지고, 적당한 선에서 치료하기로 합의를 본 탓이었다.
아무튼 그런 탓에 치료가 천천히 진행되어 수도에서 임시로 머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칼립소는 어느 정도 서서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심한 동상만 치료한 탓에 아직 여기저기 부상이 남아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에키온, 여기야?”
부상은 에키온이 훨씬 덜했는데, 분명 칼립소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동상을 반으로 나눠 가졌는데 먼저 멀쩡해진 걸 보면…….
‘확실히 용의 몸이 튼튼하긴 한 모양이네.’
처음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사라지고 에키온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는데, 칼립소에게 손을 잡힌 에키온은 난생처음 이성의 손을 잡아 본 남자아이처럼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풋풋하네.’
그러는 칼립소도 경험이 풍부한 건 아니지만. 역시 자신이 연상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일까.
조금 여유로운 편이었다.
“응, 여기야.”
에키온이 그녀를 부른 장소는 다름 아닌, 일주일 전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연회 홀이었다.
칼립소의 능력으로 천장이 뻥 뚫린 이곳은, 그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사실 보전이라기보다는 방치였다.
더는 황실에 사는 이도, 신경 쓰는 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황제는 방계 가문에서 되려나?’
황족 외에도 사자 수인은 있으니, 그들끼리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지만, 칼립소가 알 바는 아니었다.
아콰시아델은 더는 제국에 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긴 왜?”
“저길 봐.”
눈을 뜬 뒤에 바쁠 줄로만 알았는데, 다들 하나같이 칼립소가 일을 하는 걸 말렸다.
그래서 칼립소는 일주일 내내 백수로 살았다.
상황을 듣자 하니,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데바나 판테리온은 이미 죽어 있었다고 한다.
아스엘 판테리온이 흑표범 가문을 이었지만, 한 팔을 잃은 채로는 가문을 이어 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황실 실험에 협력한 가문은 이달 말, 모든 가문이 모인 자리에서 재판 뒤 형벌을 내릴 예정이었다.
지금은 감옥에 갇힌 채, 아콰시아델 측에서 감시 중이었다.
‘뒷수습이 한창이란 말이지.’
지금이야 손을 놓고 있지만, 칼립소가 복귀하면 이 일을 맡아야 할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에키온이 몰래 나타나 꼭 봐야 할 게 있다고 알려서였다.
심각한 표정이기에 수락하고는 함께 왔는데…….
“이게, 그, 시공간의 균열이라고?”
“응.”
눈앞에는 3회차, 죽기 전에 보았던 검은 블랙홀 같은 것이 있었다.
“이거 언제 발견한 거야?”
“칼립소 네게 가기 직전에.”
“아직 아무도 몰라?”
“응.”
칼립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3회차에서 마지막 순간에 이런 게 생겼던 걸 보면, 용의 폭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이번에 황태자가 짝퉁 용이 되어서 비슷한 힘을 내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용의 사체를 여럿 모아 중첩된 힘을 사용했기에 힘 자체는 더욱 컸을 터다.
“이거 없앨 수 있어?”
“응.”
에키온은 칼립소의 죽음을 막으며 힘을 많이 잃었다.
“힘 많이 들어?”
“음…….”
그 힘은 시간이 지나며 차차 돌아온다지만, 칼립소에게는 작은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칼립소가 도와줘.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보여 주고 싶은 거?”
“응. 칼립소 소원.”
소원이라니, 뭘 말하는 거지?
이미 칼립소의 소원은 이루어진 지 오래였다.
첫 번째로 이번 생은 제발 오래 살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이건 황실이 끝장나며 이루어졌고.
다음으로는 회귀 좀 그만하고 싶다고 소원했는데, 놀랍게도 이번 싸움 이후로 이것도 해결된 것 같았다.
처음엔 그냥 느낌이려니 했지만, 에키온에게 물어보니 정말로 회귀하게 만드는 고리가 끊어졌다고 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추측하자면 칼립소가 매번 비슷한 나이에 죽었으니, 이 시간을 넘기면 더는 회귀하지 않는 건가 싶긴 했다.
아무튼 간에 칼립소에게 더는 소원은 없었다.
“아니야, 있어. 소원.”
그렇지만 에키온이 이리 우기니 그저 끄덕여 주었다.
뭐, 그럼 있다고 치자. 소원.
“있긴 해. 소원. 생각해 보니까 있네.”
“응.”
“너랑 뽀뽀하는 거.”
“……어, 어어?”
칼립소가 씩 웃었다.
“이거 끝나면 해 줘.”
에키온은 얼굴을 화르륵 불태우면서도 열심히 끄덕였다.
역시 귀여우면서도 자기 이득은 놓치지 않는 모습, 마음에 들었다.
에키온은 곧 블랙홀을 가리키며 들어가자고 했고, 칼립소는 별 경계를 가지지 않고 에키온의 손을 잡았다.
어차피 시공간은 에키온의 능력이니만큼 위험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탓이다.
“곧 이동할 거야.”
“음, 어디로? 예전에 네 성장 때문에 있던 장소로 가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그럼 어디로 간다는 거지? 칼립소는 묻지 않고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새하얀 빛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칼립소가 눈을 꾹 감았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낯설고도 낯익은 공간에 서 있었다.
“여긴…….”
칼립소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쿵쿵쿵.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익숙한 책장, 익숙한 소파. 그리고 익숙한 식탁과 액자까지…….
벽에 걸린 액자를 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익숙한 가구들 사이에 낯선 액자가 놓여 있었으므로.
아기 사진이었다. 칼립소는 저 아기가 누구인지 알았다.
“엄마, 아빠…….”
이곳은 지구, 칼립소가 ‘시은’으로 살았던 집이었다.
칼립소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에키온은? 에키온은 어디로 갔지?
돌아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얼른 떠나야…….
똑같은 상처를 두 번씩이나 받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겨우 잊었는데. 또 한 번 헤집어지고 싶지 않았다!
칼립소가 황급히 걸음을 움직일 때였다.
“누구떼여!”
방에서 누군가 쏙 고개를 내밀었다.
익숙한 얼굴. 사진에서 보았던 아기 모습에서 몇 살이 더 먹은 듯한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왔다.
“엉니, 누구떼여!”
똑부러진 모습으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의 눈은 칼립소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장식장으로 향했다.
“아! 엉니!”
아이가 도도도 달려와 칼립소의 다리에 착 달라붙었다.
칼립소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엉니! 엉니! 지은이 엉니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수히 떠올린 말은 언어가 되지 못했다.
“왜…… 내가 네 언니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날 선 음성이 튀어 나가리라 생각했으나 칼립소는 연약한 어린아이에게 날카로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뻗었다.
“엉니 맞는데…….”
칼립소가 고개를 돌렸다가 움찔했다. 그곳에는 칼립소, 아니 시은이 가득했다.
부모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그리고 시은이 입양된 나이부터 차곡차곡 쌓인 사진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본 순간, 칼립소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뭐야. 왜.
나를, 잊은 거 아니었어?
이제 필요 없다고, 잊을 거라고 했잖아. 진짜 딸이 있으니까.
그 딸 때문에 잊는다고!
하지만 얼마나 관리가 잘된 것인지 깨끗한 장식장 안.
그 안에 나란히 놓인 상장과 메달들을 보며 칼립소는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가가자, 유리 너머로 제 모습이 보였다.
‘시은’의 모습이었다.
에키온, 너는 내게 이런 선물을 주고 싶었던 거니?
칼립소가 입을 꾹 다물었다.
칼립소는 끝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럴 거면 왜 나를 잊겠다고 했어?
이럴 거면서. 이럴 거면서…….
“엉니이…….”
아장아장 걸어온 아이가 울먹였다. 칼립소는 작은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아 보았다.
“응, 내가, 네 언니야……. 지은이지?”
“응!”
“보고, 싶었어.”
내게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었거든. 사실 원망이 끝을 맺을 즈음에, 너만은 잘살기를 바랐어.
내가 부모님을 원망한 건 네 탓이 아니니까. 너는.
“부모님 곁을 떠나면 안 돼…….”
너는 우리 엄마 아빠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
아이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그냥 서러웠다. 난생처음 본 언니가 너무 서럽게 울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현관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니, 그렇다고 애를 혼자 두면 어떡해.”
“1분이었다니까. 잠깐만 떡 좀 가져다준 거야.”
“내가 못 살아 정말.”
저벅저벅 두 사람이 들어왔다.
기억하는 것보다 나이가 좀 들었지만 부모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