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43)
흑막 범고래 아기님 (43)화(43/275)
제43화
“세상에, 저분이 바로…… 그 소문의 공녀님인 거죠? 아니, 저렇게 조그맣다고는 안 했잖아요?”
“피에르 님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볼 줄이야. 그나저나 피에르 님은 전혀 닮지 않았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정말 예쁘지 않아요?”
이미 세력이 나뉜 방계는 대체로 콧방귀를 뀌거나 억지로 관심을 떼려는 쪽이었고, 가신들은 호기심 어린 눈이거나 순수하게 칼립소의 미모에 감탄했다.
범고래 직계가 이토록 동글동글한 인상인 것은 처음 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글동글한데 바다에 비친 달의 요정처럼 오밀조밀 예쁘기까지 하니.
“정말 감탄스러운 미모네요……. 크면 어떻게 되실까.”
피에르는 신기하고 새로운 한편 오묘한 기분이었다.
본디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올 생각이 없었다.
“최고위 징계 위원회는 오후 1시에 열립니다, 피에르 님.”
자신을 따르던 라일라가 이렇게 보고할 때조차도.
반드시 학부모가 동반되어야 하는 자리라고 들었을 때에도 말이다.
과연 제 딸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궁금했으나, 자신이 나서는 것과는 다른 얘기였다.
그런데 기어이 오고 만 것은…….
“가주님, 아뢰옵기 황송하나 회의를 속행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낮고 희미한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
겨우겨우 그 불만을 삼켰으나 끄트머리에서 숨기지 못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피에르의 큰형 로데센이었다.
“물론 저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막냇동생의 얼굴이 반갑지만, 이 지엄한 회의를 오래 멈춰 둘 만한 얼굴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형제 중에서도 유달리 삐죽 올라간 눈매를 가진 로데센은 아주 잠시 씹어먹을 듯 제 막냇동생을 향했다가 사람 좋게 웃었다.
“이 자리는 가주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신 자리니 말입니다.”
우둔하며 난폭하고 시야가 좁은 제 아들 바이얀과 다르게 로데센은 좀 더 머리를 쓸 줄 아는 약은 인간이었다.
“흐음.”
오큘라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는 주름진 손으로 턱을 문지르더니 이내 웃음과 함께 쾅! 발을 굴렀다.
“로데센, 나는 인사할 시간을 주지 않을 정도로 인색한 가주가 아니다.”
그녀의 얼굴에선 어느새 웃음이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저는 그저,”
“내 말에 끼어들지 마라.”
“……죄송합니다, 어머니.”
로데센은 벌떡 일어나 언제 당당했냐는 듯 마치 공벌레가 될 것 같은 비굴한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오큘라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한심한 눈으로 보다가, 쯧 혀를 차며 턱을 괬다.
그 사이 가주의 눈짓을 받은 직속 시종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새로운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기 바빴다.
칼립소 또한 피에르에게 안긴 채로 자리로 향했다.
이미 아게노르는 가주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으로 안내되어 앉은 지 오래였다.
‘흐음, 지금 내 자리는 어떻게 되려나?’
그렇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종의 안내를 받은 칼립소는 잠시 멈칫했다.
이 회의장 구조상 가주의 자리가 위치한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중앙에 가까운 세력이나 다름없다.
‘허어?’
한데, 칼립소와 피에르가 안내받은 자리는 다름 아닌 뒤에서 세 번째 단이었다.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자리.
바이얀은 가주의 자리 바로 앞에 위치한 제 아비 옆에 쏙 앉은 게 보였다.
이뿐 아니라 바이얀의 패거리들 또한 속속들이 중앙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허어, 이것 참.’
칼립소가 혀를 차는 사이 피에르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앉기 무섭게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 표정이 죄다 왜 님이 여기 계세요, 하는 얼굴이네.’
이건 제 할머니의 경고이자 조롱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네 위치는 여기라고 말이다.
칼립소가 황급히 피에르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이럴 때가 아니야, 우리 잣댔어. 아빠……!’
피에르는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자그마한 손을 빤히 응시했다.
“아빠, 우리 개무시당했는데 어떡해?”
“…….”
칼립소가 생각한 가문 회의 입성은 이런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빠. 무시할 때가 아니야. 우리 지금 가주님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기서 말이 들리겠어? 우리 심각해.”
“…….”
슬슬 심각해지는 칼립소와 다르게 피에르는 언제나처럼 말이 없었다.
아니, 이 애비가 지금 또 사람 말 무시하네?
“아빠, 아빠.”
칼립소가 입을 딱 멈췄다.
커다란 손이 툭 이마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뻐끔거리는 게 붕어가 따로 없군.”
“……지금 농담할 때야?”
“잉어가 좋은가?”
“허어?”
피에르가 잠시 생각했다.
붕어도 잉어도 아니다. 오히려 검은 꼬리를 가진 열대어가 떠올랐다.
“자리를 말하는 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없다니?”
“없어질 순간이 올 테니까.”
무슨 말인가 싶어 고민하던 칼립소가 곧 피에르의 말을 깨닫고 아! 하고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피에르는 평온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칼립소 얼굴을 향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계속 궁금했던 부분인데.
“대체 그 뺨의 상처는 왜 난 거지? 그것도 패싸움 때문인가?”
“으응? 뺨?”
칼립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뺨을 만졌다.
“아, 이건 아마 카론 그놈이 칼로 그어서 난 걸걸? 이건 잘 안 낫더라고.”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상처는 꽤 빨리 나았지만, 뺨에 남은 생채기만큼은 쉽게 낫지 않았다.
하녀들이 매일같이 약을 바르며 울상을 짓곤 했다.
“우리 예쁜 공녀님 얼굴에 흉이 지면 어떡해요!”
“그것만은 안 돼!!”
정작 당사자인 칼립소는 얼굴에 상처가 나든 흉이 지든 하등 상관없는 상태였지만.
칼립소는 대충 대꾸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흠칫했다.
‘뭐야, 표정 왜 저래?’
마주한 피에르의 얼굴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목 뒤로 솜털이 삐죽 설 정도로.
“패싸움으로 모자라 칼까지 맞고 다니는 건가?”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부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가신들이 움찔했다.
지금까진 칼립소와 피에르 모두 목소리를 낮춘 데다 자리마다 간격이 있던 탓에 가신들은 부녀의 대화를 듣지 못했으나.
“패싸움? 그 소문의 싸움? 오늘 회의에서도 얘기 나온다던……??”
“칼 얘기는 뭐야?”
지금은 피에르가 소리를 낮추지 않았기에 고스란히 들렸다.
뒷자리에 앉은 탓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대체로 힘없는 가신들로, 생태계에서 피식자에 해당했다. 육지 동물로 치면 초식동물들이다.
“교육 기관에서 칼을 맞았다고?”
그들은 순박하고 겁먹은 눈동자로 서로를 응시했다.
‘칼이래, 칼.’
‘요즘은 애들 교육 기관에서 칼도 쓸 수 있게 해?’
‘허어, 공녀님이 먼저 칼을 든 거 아니야?’
‘가능성 있구먼.’
사실 여기에 앉은 이들 중, 조금이라도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알고 있었다.
칼립소의 소문이 과소평가되기는커녕 대체로 신뢰성 있게 퍼진 이유.
그건 바로 저기 있는 피에르가 어린 시절에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겼나?”
세상에, 저 공녀님은 과연 피에르 님의 따님이 맞나 봐……!
칼립소는 눈을 끔뻑였다.
“당연히 이겼지.”
이렇게 말하면 아빠의 표정이 당연히 누그러질 줄 알았는데…….
어째 똑같았다.
“누가 그런 거지?”
칼립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학급 급우?”
“……요즘 교육 기관에선 진검도 가르치나?”
“그럴 리가 있겠어. 걔가 멋대로 휘두른 거지. 그래서 반에 안 나와. 징계받았거든.”
칼립소는 어느새 지나치게 몰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걱정하지 마. 아빠, 내가 그 범고래 새끼 다시 등교만 하면 아주 그냥 조져 버릴게!”
“……걱정?”
칼립소는 피에르의 질문에 답변하는 대신 씨익 웃었다.
이에 피에르가 찡그리며 무어라 하려는 순간이었다.
“할머님.”
청아한 음성.
분명 저 아래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임에도 칼립소의 귀를 잡아끌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만 것은, 저 목소리 하나로 일시에 모든 이들이 고요해졌기 때문이었다.
“할머님께서 특별히 이 회의에 새롭게 안건을 제의하신 깊은 연유가 있으신 걸로 사료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 칼립소가 기억하는 것과 다른 목소리지만.
칼립소는 대번에 알아보았다.
“이 자리는 할머님께서 할머님을 깊이 존경하고 따르는 수많은 가신을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혹 할머님의 심기를 감히 거스르는 말이 아니라면 오늘 할머님께서 모으신 안건이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아래를 바라보면 서 있는 소년이 보였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 할머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모였으니 말입니다.”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머리, 직계를 상징하는 검은 머리칼 위의 하얀 반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유독 더욱 새하얀 은발 머리까지.
마치 소녀와 같은 머리를 하고서 뚜렷한 미모를 가진 소년은 분명.
첫째 오빠 ‘벨루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