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45)
흑막 범고래 아기님 (45)화(45/275)
제45화
하긴 최고위 징계위는 재판과 비슷하게 이어지는지라, 아마 그곳에서 이용하려 했던 증인임에 틀림없었다.
곧이어 준비된 자리에 들어온 이들의 정체란 이러했다.
첫 번째로 저놈과 한 패거리이자 이 일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바이얀 무리가 차례로 나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다.
‘저희는 바이얀 님을 쫓아갔다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거 생각할수록 우스운 놈들이네?
야, 니네는 지금 세 살 난 애한테 얻어터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거라고.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그 피에르 님의 따님 아닙니까?’
하지만 놈들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피에르의 딸’이라는 한마디는 거의 이 상황의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느끼는 자들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저자는 그날 함께 있던 제 친우의 시종입니다.”
바로 그날 근처에 있던 저 패거리들의 시종이었다.
싸움에 휘말리지는 않았으나 모든 것을 목격한 자.
시종은 새파랗게 얼어붙은 눈치였지만 더듬더듬 말하기 바빴다.
내용은 바이얀의 주장과 다를 바 없었다.
“에…… 모든 건 그, 바이얀 님의 말, 처럼 공녀님께서 심한 모욕을 하셨고…… 저는, 모든 것을 본대로만 증언하여……. 네. 바이얀 님의 말이 옳았습니다. 정말…… 눈을 뜨고 들을 수 없는 심한 욕설이었, 습니다.”
바들바들 떨며 더듬더듬 말하는 모습은 의심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중대한 자리에 증인으로 참여한다는 압박과 긴장감 때문이라고 하면 넘어갈 만했다.
모든 것이 저놈이 준비한 대로였다.
‘아마 징계위에서 저런 소리를 했다면 100퍼센트 다 먹히진 않았을 테지만…….’
말을 믿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권력에서 나온다.
최고위 징계위에서는 적어도 아빠가 가장 윗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름 균형이 맞아 공정하게 진행됐겠지만.
‘분위기가 넘어가는데.’
마지막 시종의 증언까지 끝나자 회의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가신들이 극도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내게도 느껴졌다.
‘좋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이 침묵 속에서 줄곧 청자였던 이 공간의 지배자.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짤막한 말이 허공을 갈랐다.
“너는 죄가 없다?”
“네, 그렇습니다! 할머님.”
물 흐르듯 연이어 이어지는 통일된 주장, 쭈뼛거리긴 했으나 빈틈없는 목격자의 증언.
바이얀은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자신 있게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내가 굳이, 이 일을 내 회의로 가져올 필요는 없었구나?”
“그렇죠!”
“…….”
저 멍청한 새끼.
‘역시 저놈은 지 복도 발로 찰 놈이야. 그릇이 글렀어.’
할머니가 저렇게 물은 건 ‘그래서 내가 죄도 없는 일을 괜히 이 회의에 가져왔단 얘기냐, 이 아기 생선 씨밤바야?’ 하는 소리다.
바이얀은 우렁차게 대답해 놓고서 무언가 이상함을 빠르게 알아차린 것 같았다.
“아, 아닙니다. 제가 긴장하여 답을 잘못했습니다……! 굳이라니요. 어찌 이 회의에 안건을 가져오신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위 징계위가 열릴 만큼 대단히 불미스러운 일이었으니까요. 당연히 심각하게 고려하실 수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나 바이얀은 우둔한 동시에 괜히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란 듯 매끄럽게 혀를 할짝 놀렸다.
서둘러 말을 바꾸는 솜씨는 홀로 A급이구만.
“할머님께서 뜻이 있으셨을 테니 말입니다.”
흘끗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곧 눈동자에 잔악한 빛이 스쳤다.
“오히려 할머님께서는 저 사촌 여동생의 실체를 모르셨을 테니, 이 자리에서 직접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애석한 한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 대단한 피에르 님의 딸이면 뭐할까요, 품격이 따라주질 않는데.”
오, 이쯤 되니 저놈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겠다.
은근슬쩍 욕하는 솜씨도 수준급이네, 이 생선 대가리가?
“아, 혹시 교육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애비야! 들었냐? 쟤가 니 욕도 한다!
기대를 하고 아빠를 보았지만.
‘……그래, 기대 취소. 아니, 기대도 안 했다.’
아빠는 어느 바다 고래가 우나, 하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아니, 좀 가소롭게 보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업신여김인가?
“그렇군. 결국 교육이라곤 쥐뿔도 받지 못한 조그마한 미꾸라지 따위가 내 가문의 기강을 어지럽혔다. 이것이로구나. 게다가 쬐끄마한 것이 벌써부터 부모 욕설엔 도가 튼 모양이고.”
“예, 바로 그것입니다!”
할머니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다스리는 이곳에, 인정받지도 못한 것이…… 후계자 중 하나에게 대들었다.”
할머니의 검푸른 시선이 느릿하게 굴러 날 향했다.
“서열도 모르고 겁 없는 물범처럼 날뛰었다는 거구나. ……건방진 것이.”
쿵!
‘아, 젠장.’
이게 바로 현 가주의 힘인가?
할머니가 가진 물의 힘이 뱀처럼 조여들었다.
‘수, 숨 막혀.’
어깨를 타고 올라오는 압박에 본능적으로 손이 떨렸다.
이대로 주눅 들어선 안 된다.
이건 기세 싸움이야!
이를 악물고 참는 순간이었다.
어깨로 툭, 무언가 무심하게 올라온 무게를 느꼈다.
그와 동시에…….
‘숨쉬기 편해졌어……!’
어깨로 올라온 건 아빠의 손이었다.
손의 온도는 서늘했다. 아니, 조금 차가웠다.
“대체 애를 어떻게 키운 게냐. 이 범고래 사회의 근간이 되는 것조차 가르치지 않고서.”
“…….”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게 두다니.”
우습게도 할머니는 내게 말조차 걸지 않았다.
말을 걸 가치가 없다는 듯이.
의도된 철저한 무시였다.
“약한 것을 풀어놓는 것도 유분수지.”
대신 아빠에게만 들으라는 듯 이어지는 말들.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여기서 아빠가 나를 키우지 않았다고 하면 낭패다.’
그럼 지금까지의 내 거짓말이 모두 탄로나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이제 그 무엇을 해도 이 자리에서 찍힌 낙인을 벗어나긴 어렵겠지.
제아무리 내가 강해져도 만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건…… 아빠가 진정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만약 아빠가 내 연극을 괘씸하게 느꼈다면, 지금만큼 절호의 기회는 없다.’
한마디면 내 처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치마를 꾸욱 쥐었다.
“…….”
청어 자매들이 밤을 새워 가며 정성껏 만들어 준 옷.
만약 내가 여기서 나락으로 떨어지면 그 아이들은 어떡하지?
이제야 정이 든 사람들. 분명 영향이 없진 않을 텐데.
“제 규칙대로 키웠을 뿐입니다.”
그 순간.
느릿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 눈앞에 야윈 듯 날카로운 턱선이 보였다.
“규칙?”
“네. 싸우면 무조건 이기라고 했습니다.”
조금 까만 다크서클과 대조되듯 명료한 시선.
오늘도 피로하고 퇴폐적인 느낌마저 드는 내 아빠는, 평소와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툭 말을 뱉었다.
“상처 없이.”
마지막 말은 마치 나를 질책하는 것처럼 들렸다.
싸울 거면 이기지, 이길 것이면 상처 없이 이길 것이지.
그런데 왜 그저 질책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건지.
‘아빠,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왜 여기서 내 편을 들어?
당신에게 하나도 득 될 게 없잖아.
“상처는 났지만, 그건 제 딸이 아니라 다른 놈에게 따져 물을 일일 테고 말입니다.”
“흐음? 재밌구나.”
“어머니께는 재밌는 일이겠지요.”
“…….”
웃고 있던 할머니의 표정이 약간 굳고,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래, 확실히 너는 내가 알던 내 아들놈은 아니로구나. 내 살아생전,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네가 다른 존재를 변호하는 꼴을 보다니.”
“보신 김에 더 보십시오.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쪽의 차례는 언제입니까?”
“차례?”
“예, 저쪽의 개소리가 끝났으니.”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이쪽의 말 또한 들으시는 것이 어머니께서 자청하신 이 징계위의 의장 역할 아니었습니까.”
“…….”
할머니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 줄 만한 소리구나. 좋다. 한번 말해 보거라.”
“네, 들으십시오.”
“네가 직접,”
“제 딸에게.”
나는 눈을 반짝였다.
“……!!”
뭐야, 이렇게 기회가 온다고? 정말?
바이얀에게 그러했듯 할머니는 또 한 번 침묵했다.
이것은 말해 보란 소리였다!
흘끗 반대편을 쳐다보면 바이얀은 뭐 씹은 얼굴이었다.
이도 잠시 피식 웃는 표정.
제까짓 게 뭘 하겠느냐는 득의양양한 표정이다.
‘오냐, 단 5분이면 돼.’
네가 후회할 시간은 말이지.
“할머니.”
내 또박또박한 발음이 울려 퍼지자 몇 사람이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내가 입장할 때 보았으면서 다시 놀라운 모양이었다.
“한 가지만 묻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