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49)
흑막 범고래 아기님 (49)화(49/275)
제49화
가주 오큘라 아콰시아델은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허어? 이것 봐라.’
수없이 스쳐 가는 시선 앞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드물었다.
그러나 눈앞의 조그맣다 못해 바로 어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그만 꼬맹이는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마치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누리기까지 하는 듯했다.
칼립소의 그런 모습을 오큘라는 쉽게 알아차렸다.
‘시선을 즐겨?’
고작해야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치어(稚魚) 아니었던가.
게다가 태어나 한 일이라곤 건물에 처박혀 있던 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상황을 주도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제 어깨까지 기어오르면서도 완급조절을 할 줄 아는 처세까지.
한마디로, 난놈이었다.
“공녀님께서는 아직 물의 힘을 각성하지 못하셨습니다.”
오큘라라고 교육 기관에서 일어난 패싸움을 모르지 않았다.
이 거대한 영지에서 주인이 모르는 일은 없었다.
“다만, 물의 힘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은 이미…… 수준급, 아니 성인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보통 범고래가 물의 힘을 각성하면 가장 먼저 물줄기부터 만들기 마련이었다.
그다음에는 상대를 위협하는 피어(fear)를 쓸 수 있게 되며.
이 다음 순서가 신체를 물의 힘으로 강화하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저 꼬맹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순서가 엉망진창이었다.
가장 기본인 물줄기는커녕 물방울 하나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신체 강화는 수준급, 싸움은 타고난 수준이라 했던가.
“저어, 외람되지만 가주님, 그 싸움은 솔직히 압도적이었습니다…….”
보고를 올린 자마저 얼떨떨하고도 떨떠름하게 보고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던 표정이 인상 깊었더랬다.
역시 피에르 그놈의 딸이라는 걸까.
이미 앞서 위의 세 아들 또한 범상치 않은 이력을 뽐냈다.
막내라고 다를 거라곤 생각지 않았으나, 이건…….
오큘라가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할머니! 증명해!”
“나, 증명해!”
“할머니, 나 잘해! 말!”
‘저것’은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정도로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하지 못한 것인가.
하지 않은 것인가.
이어서 칼립소가 교육 기관에서 행한 모든 일은 당연히 가주의 귀에도 들려 왔다.
제 세 오빠가 저지른 사고에 비하면 양호한 축이었기에 오히려 눈에 띄진 않았다.
아니, 사고랄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단숨에 고래 최고 반인 알파반으로 올라간 것만은 퍽 관심을 줄 만했다.
고작 같은 반 방계 범고래를 한 대 팬 걸로는 부족하지.
알아두었을 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벌인 일이 바로 이 패싸움.
게다가 장장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칩거하던 제 셋째 아들 피에르가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러고서 한 일이 제 딸이랍시고 옹호하는 일.
오큘라는 참으로 오랜만에 잔악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 그래서 과연 네놈이 처음으로 싸고도는 딸은 어떤 것이냐.
일부러 무시하고 상황을 방관했다.
바이얀 저 괘씸한 놈이 엄중한 규칙을 어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해 주었다.
오큘라는 자신의 규칙 이전에 이 상황이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러다 여기서 누명을 쓰고 칼립소가 패망한다 한들 상관없었다.
그럼 흥미는 여기까지겠지.
그런데.
저 조끄만 조랭이 떡 같은 것이, 오랜 세월 살아온 자신마저 놀랄만한 ‘반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갑작스러운 가주의 폭소에 모두 화들짝 놀라 오큘라를 응시했다.
오큘라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회의는 잠시 휴정한다.”
바이얀은 덜덜 떨면서 모든 것을 목격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된다.
자신이 누구던가. 할머니의 장손, 그리고 제 아버지의 장자!
할머니 또한 장녀였고 그 위의 가주 또한 장녀였던 것을 생각하면, 대대로 첫째 자식 혹은 첫째 손자가 가주가 될 확률은 너무나 유력했다.
‘내가 왜? 왜!!’
이는 나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고.
바이얀은 자신이 나이만 먹었을 뿐 실질적인 능력은 나이를 뒷받침할 정도는 아니란 사실을 몰랐다.
알지 못했다.
자신의 재능은 평범보다 조금 나은 축이라는 것을.
첫째 아들을 극도로 아끼는 부친이 극도로 숨겼고 모친이 방관했기에.
‘내가, 이 내가 퇴소에 근신이라고? 웃기지 마!’
바이얀은 거의 증오에 가까운 눈으로 맞은편을 노려보았다.
책상에 올라간 칼립소는 여전히 뻔뻔하고도 태연한 표정으로 시선을 누리고 있었다.
감히, 자신조차도 이 정도로 소개받지 못했다.
안건이 겨우 하나 끝났을 뿐인데 새로운 직계를 소개하다니.
이건 이전에도 없던 일이었다!
보통 범고래 직계 아이가 정식으로 소개받는 일은, 이 가문 회의에서 어느 시점에 소개를 받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영향력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가장 빠른 순서로 소개를 받은 이는 바이얀.
그다음은 거의 비슷하게 피에르의 첫째 아들 벨루스가 차지했으며.
다음이 비오르의 첫째 아들 소르테였다.
그러나 이 순간 이후부터는 칼립소가 먼저 소개받은 직계손이었다.
기록을 갱신했을 뿐만 아니라 더없이 화려한 시작이었다.
기존의 후계와 관계자들이 심기가 불편하거나 질시할 만큼.
휴정을 선언한 탓에 회의실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자리에서 편안히 일어난 가신들, 그리고 서성거리는 범고래 방계들.
자리를 떠나지 못한 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명백히 오늘의 주인공이 서 있는 쪽이었다.
칼립소, 그리고 피에르.
파르르 떠는 바이얀의 어깨 위로 아비인 로데센의 손이 올라왔다.
“바이얀, 참거라. ……당장은 억울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
“기다리기만 하면 이 아비가, 어떻게든 해 주마.”
이리 말하는 로데센 또한 분노와 모욕으로 목이 새빨개져 있었다.
‘피에르, 네가 사사건건 재능으로 내 앞길을 압살하더니.’
이제는 저놈의 딸이 제 자랑스러운 아들의 앞날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로데센은 성인이었다.
더는 열등감으로만 살던 시절은 지났다.
대신 로데센은 제 새까만 눈을 더욱 까맣게 가라앉혔다.
저건, 위험하다.
제 조카는 성장할수록 더욱 위험한 조커였다.
‘때를 보아서 치워 버려야겠군.’
언더독은 새파란 싹일 때 없애 버려야 한다……!
평정을 가장했으나, 로데센의 눈은 마치 낭떠러지의 끝을 바라보듯 어둡고 더욱 음침해졌다.
한편 바이얀의 눈은 제 할머니가 걸어가는 곳을 향했다.
오큘라가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벨루스가 있는 곳이었다.
“아가.”
다정하지는 않지만 정감 가는 호칭에 벨루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건 물론이었다.
“예, 존경하는 할머님.”
오큘라는 감히 가주인 어미를 앞두고도 뻣뻣하기 짝이 없는 피에르와 전혀 다르게 유들유들하면서도 고고하게 구는 벨루스의 태도를 퍽 마음에 들어 했다.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과 별개로, 오큘라의 성정은 지독했다.
그녀는 타고난 싸움꾼이자 폭군.
포악함을 인간으로 형상화한 범고래의 표본 그 자체였다.
아낄수록 애정과 동시에 집착과 잔악함을 느끼는 생명이 바로 자신들. 범고래 수인.
“네 여동생이 네 기록을 뛰어넘어 정식으로 인정받았지 않느냐.”
오큘라의 눈에는 인간이 개미를 재미 삼아 밟아 죽이는 류의 포악한 흥미가 어려 있었다.
“할머님께서 정하신 결정입니다. 일개 손자인 제가 감히 어찌 의견을 달 수 있겠습니까.”
“내 한 번은 시건방진 소리도 봐줄 테니 말해 보거라.”
“…….”
“어디 바다의 이름으로 약조해 주랴?”
벨루스가 잠자코 있자, 오큘라가 이렇게 말했고 그제야 벨루스의 푸른 눈으로 빛이 어렸다.
마치 잠들어 있던 맹수가 깨어나듯 명료한 빛이었다.
“사실 할머님께서 인정하셨는데 제가 감히 어느 위치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만은. 미천한 의견을 드려도 괜찮으시다면 일단 이 사건의 처벌은 매우 합당하다 여겨집니다. 그 어떤 합리적인 사유도 할머님께서 정한 엄중한 규칙을 어기는 것을 정당화할 순 없으니까요.”
벨루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옳다는 것에 기준을 둔다면 과연 칼립소 아콰시아델 또한 잘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능력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반의 급우를 다치지 않게 했어야지, 다치고서야 나섰다면 사후약방문밖에 더 될까 싶으니 말입니다.”
교묘하게 바이얀을 전적으로 비난하면서.
그럼에도 ‘쟤도 잘한 건 없잖아.’ 하는, 두 사람 모두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벨루스와 그리 멀지 않던 곳에 있던 칼립소 또한 들었다.
‘저, 저…… 저 새끼 또 저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