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58)
흑막 범고래 아기님 (58)화(58/275)
제58화
던질 거면 좀 살살 던져 주던지.
아니다. 그래, 처음 만났을 때 막 들어 올리던 모습부터 알아봤지.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날은 책상 위에 서서 진행해서 그런가 봐요.”
지금은 참자. 아직은 덤벼도 못 이긴다.
게다가 ‘용의 축제’란 인질이 걸려 있는 상황이니 더욱 얌전한 아기 범고래가 되기로 했다.
‘그나저나 나는 왜 부른 거지?’
궁금함이 고개를 들 때쯤, 할머니가 다리를 꼬았다.
“그래. 내 궁금하고 흥미를 가진 것이 있어 너를 불렀다.”
주름진 손으로 자기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문 회의 전부터 꽤 재미난 이력을 보인 꼬맹이였지. 넌.”
곧 할머니가 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우수수 살짝 흩어진 건 다름 아닌 서류였다.
“그래, 넌 너를 괴롭힌 하녀를 신고하고 싶다고 했나?”
소파와 테이블 사이가 멀지 않아 글자가 얼추 보였다.
게다가 서류 사이에서 툭 삐져나온 사람을 정밀하게 표현한 그림이 있었는데, 그 얼굴은 모를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미사로 교체되기 전에 내가 있던 건물을 담당하던 유모 겸 하녀였으니까.
‘딱히 유모라 부르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나는 속으로 찡그렸다.
“앞선 전임자에 대한 조사를 깊이 진행해 보겠습니다.”
“아하. 그래? 근데…… 조사는 증인도 필요한 거지? 마침 그건 나밖에 못 하겠네. 이 건물은 꽤 오랫동안 나 혼자만 썼잖아.”
분명히 나는 청어 하녀 자매가 내 건물에 올 때쯤, 미사 이전에 있던 전임자의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었다.
그때 조사에 얼마든지 증인으로 가겠다고 했는데.
‘내게 들려 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지.’
속으로 퍽 황당했다. 이렇게 또 은근슬쩍 넘어가나 싶어서.
솔직히 이렇게 조치가 없다 해도 당장은 어떻게 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우선순위 제일 끝으로 밀어 두긴 했다.
‘대체 이걸 말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얘기가 나온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한편 머리 한쪽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것도 내가 결국 가문 회의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움직인 거겠지.’
돌아가는 상황이야 빤했다.
‘본성에서 부랴부랴 할머니에게 보고한 모양이네. 아니면 이미 보고되었지만 나태하게 진행했거나, 묵살되고 있었거나.’
어쨌거나 내가 조사를 요청한 건 사실이었기에 얌전히 자세를 바로 했다.
“네, 맞아요. 할머니. 제가 할머니께 이름을 받고, 본성에서 하녀들을 보내 주었을 때, 그때 찾아온 가주의 직속 시종에게 직접 말했었어요.”
나는 또박또박 그때의 정황을 이야기했다.
시종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빠짐없이 이야기를 한 건 물론이었다.
“전임자가 있을 때 제대로 식사를 해 본 적이 없고, 해를 보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먹더라도 걸레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고 견디든 약 없이 배탈을 견디는 것도 일상이었고요.”
늘 두꺼운 커튼을 쳐 두었기에, 한낮에도 음침함이 돌던 방이었다.
전임자 뤼미는 그 방에 들어오면서 만족스럽게 미소하곤 했지.
“제가 있던 때에 아이는 거의 저 혼자뿐이었어요.”
한 명이 더 있긴 했지만 오자마자 거의 금방 부모가 몰래 데려갔기에 나 혼자 있던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몰라 제일 심하게 당했던 일을 살짝 감춰 둔 채로 모든 보고를 마쳤다.
뭔가 묘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할머니의 말이 들려 왔다.
“그렇다면 너는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아 역시나.
나는 대답하기 전에 아주 잠깐 멈칫했다.
심드렁한 목소리, 관심 없는 태도다.
‘예상했지.’
나는 일부러 할머니가 역정을 내기 딱 직전까지 침묵을 유지한 끝에 말을 시작했다.
“아뇨, 저라서 살아남은 거죠.”
가문 회의에서처럼 마냥 해맑은 모습이 아니라 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서.
차분하게 말하려 했다.
“다행히 제가 있는 동안에 다른 아이들은 없었지만…….”
“…….”
“과연 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할머니.”
다만, 할머니가 정말로 빈정 상하거나 역정을 내는 건 나도 바라는 일이 아니라 조심조심 눈치를 보는 척 말했다.
“약한 개체를 골라내고 강한 아이만을 남기기 위해 진행되는 전통에 대해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저 또한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이기에 할머니께 이렇게 우수함을 증명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인걸요. 다만, 할머니께서는 이 경쟁에 먹이고 재우고, 씻고 입는 것만큼은 공평하게 주셨어요. 이유가 있으셨으니까요.”
모든 조건을 똑같이 줄 테니 살아남기만 해라.
고래들은 대개 세 살을 넘기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이것을 억지로 주지 않고, 오히려 빼앗고 괴롭히고 기본적인 것들을 주지 않아서 끝내 아이가 죽었다면. 이건 살해예요, 할머니.”
그래, 이건 괴롭힘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영아 살해다.
나는 천천히 할머니의 얼굴을 향했다.
“그 하녀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그곳에서 일했어요. 그렇다면 과연…… 그 하녀가 저 이전에 들어왔던 아이 중에서 죽인 아이가 없을까요?”
가주의 얼굴은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가문 회의에서 보았던 비웃음이나 짤막한 웃음도 없는 얼굴.
“그 안에는 살아남기만 했다면 더 대단한 인재가 됐을지도 모르는 방계 아이나 고래 아이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범고래 직계라거나.”
내 앞에 직계가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었다고 한들 버티기 쉬운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
“그럼에도 약한 놈은 도태되기 마련이지. 꼬맹아,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알겠다만 그렇게 말할 일인지는 모르겠구나.”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돌아오는 무심한 대답을 듣고 나는 속으로 비소를 머금었다.
그래, 관심 없을 줄 알았다. 할망구야.
“할머니…… 그건 이상해요.”
나는 무구한 표정을 가장하며 할머니를 응시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그대로 던져 버리는데, 버티는 아기가 어딨어요?”
물론 이건 과장이 섞인 말이긴 했다.
하지만 아예 없던 일은 아니었다.
“근데, 그럼 뜨거운 물로 화상 입는 목욕도 견디고 걸레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고 견디든 약 없이 배탈을 견디는 것도 정해진 시련이야?”
시종에게도 분명 전했던 사항이니까.
할머니의 표정에 그제야 금이 갔다.
“제가 있는 건물에선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어요. 거기에 죽은 아이들을 묻잖아요? 사실, 이런 이유로 죽은 아이들을 앞서 평범하게 병으로 죽은 다른 아이들처럼 ‘약해서 죽었다’ 하고 보고하면 어떻게 구분하겠어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곳인데.”
사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첫 번째 삶에서, 두 번째 삶에서 그리고 세 번째 삶에서 서러웠던 시절.
누군가 알아주면,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했다.
‘끝내 날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될지도 모르는, 나와 같은 아이를, 내가 구원하기로 했다.
정과 도덕에 호소하는 건 통하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오히려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
“할머니…… 이건 심각한 일이에요. 이 가문의 모든 인재는 할머니의 백성이자 재산이나 다름없는데. 그 하녀는 감히, 가주님의 재산을 건드린 거예요.”
나는 말을 마치고 침묵했다.
잠시간 유지되는 정적.
무표정이 깨어진 것으로 모자라, 할머니의 얼굴로 주름이 졌다.
그 찡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불쾌해하고 있지? 됐다, 됐어.
‘한마디만 더.’
여기서 쐐기를 박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리면 그대로 입이 딱 벌어질 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실례합니다, 어머니.”
아빠가 성큼 들어왔으니까.
나는 그저 눈만 끔뻑였다.
‘……애비야 네가 왜 거기서 들어오니?’
가만, 나 요즘 이 생각을 자주 하는 거 같지 않나?
자꾸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서 어쩔 수 없다.
가문 회의 이후로 나와 아빠의 일상이 바뀌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사는 건물 앞에 수없이 많은 선물이 쌓였고.
아빠의 집 앞에도 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물이 쌓이기는 했지만.
아빠가 선물이 쌓인 첫날에 위협 한번 하니까 기겁하면서 다시 들고 갔지.
아무튼 간에 이외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나마 찾자면 가끔 아빠의 거처로 낯선 이들이 찾아왔다는 것?
선물을 들고 온 이들이 그러하듯 아빠에게 쫓겨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의외로 라일라는 오지 않았지.’
분명 아빠를 따른다고 한 걸 봐서는 한 번쯤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문 회의 다음 날에 교육 기관에서 잠깐 본 것 외엔 보질 못했다.
“실례인 줄 알면서 쳐들어오는 행태는 어디서 배워먹은 예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