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70)
흑막 범고래 아기님 (70)화(70/275)
제70화
이 뱀은 분명 호수를 말했다.
이거 비유법이지? 호수만큼이나 많은 물이 필요하다는 거지.
설마 진짜 호수에 들어찬 물만큼이겠…….
뱀의 눈이 가물가물 감기는 것을 보고 다급해졌다.
“스승님! 혹시 호수를 만들 수 있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빠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가주일 땐 분명…… 바다를 가른 적 있어.’
호수만큼의 물은 만들어 본 적 없지만 물의 힘이 어떤 잠재력이 있는 힘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호수라, 어디에 얼마만 한 크기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정말 된다고? 아니, 이게 아니라. 최소한이라도 좋아.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나는 아빠에게서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도 어쩐지 초조해져서 아득해짐을 느꼈다.
“여긴 바다 근처가 아니지. 그러니 시간이 좀 걸릴 거다. 물로 흙을 적셔 구덩이부터 만들어야 할 테니.”
“그럼 폭포처럼 쏟아내는 건?”
“그것도 물을 생성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릴 듯한데, 저 뱀이 견디겠나?”
그것도 그래. 나 또한 호수만큼은 아니어도 가뭄에 비를 내린다거나 대량의 물을 만들어 본 적 있지만. 그건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이었다.
‘아빠가 안 되는 일인데 벨루스 그놈이 가능할 리 없고.’
그럼 어떡해야 하지?
그러던 중에 우연히 마차에 시선이 닿았다.
“……스승님, 이 근처엔 숲이 있잖아. 그럼 호수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
“있겠지만, 날아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빠르게 찾긴 어려울 거다.”
“아니, 빠르게 찾을 방법이 있어.”
곧이어 마차에서 하녀들과 미사가 불려왔다.
잠자리를 준비 중이었던 것인지 에이야와 미사의 손에는 내 잠옷과 담요가 들려 있었다.
나는 미사에게 성큼 다가갔다.
“미사, 너 수원지 찾을 수 있어? 아니, 찾을 수 있지? 지금 급해.”
“네? 공녀님 갑작스럽게 무슨 말씀이신지…….”
“부탁이야. 한 번 부탁할게.”
미사가 처음 내가 사는 곳에 나타났던 날 떠올랐던 기억.
수하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아. 대장, 저희 부대에 유달리 수원지를 잘 찾는 애가 있어요. ‘미사’라는 앤데, 불완전한 수인이지만 기가 막히게 찾아요.”
가주의 ‘가’ 자도 생각 없는 지금 삶에선 내게 필요하지 않은 재능이라 생각했지만.
“미사, 버들치 수인이지?”
“네? 네……!”
불완전한 수인이란, 특기가 아예 없거나 특기가 엄청나게 뛰어난 수인을 말한다.
특기란 결국 동물일 적 특징이 인간 모습에도 남아 발현되는 능력.
그런데 동물의 본능이 더욱 크게 남으면 특기 또한 극대화되곤 했다.
“근데 미사라는 애 특이하게도 상어 혼혈이더라고요? 조그만 물고기랑 상어의 결합이라니…… 잘 없는 조합이잖아요. 그래서 숨기고 다녔던 모양이던데요?”
그리고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는 인간이 되며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바이얀같이 전투에 특화된 범고래나 일부 수중 맹수과들은 작은 물고기 수인들을 대놓고 무시했지만.
전쟁에서 그들을 살린 건 아까 본 망둥어의 은신이라거나 미사의 수원지 찾는 특기같이 조그만 물고기 수인의 능력이었다.
‘의도치 않게 미사의 비밀까지 알게 되었지만.’
아까 말한 불완전한 수인은 보통, 종을 넘나드는 혼혈 사이에서 태어나곤 했다.
여기 미사처럼 말이야.
“오늘 만나서 나를 도와준 애가 죽어 가고 있거든. 도와줘.”
“……저 공녀님.”
하얗게 질려서는 망설이던 미사가 곧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불완전한 수인이에요. 그래도 도움을 드려도 괜찮은 걸까요?”
불완전한 수인은 결국 이 세계에서 돌연변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돌연변이는 대체로 외면받거나 따돌려지기 마련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도와주기만 한다면 나는 뭐든 간에 상관없어. 게다가 불완전한 수인이라고 해서 내가 아는 미사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
미사가 입술을 꾹 다물더니 이내 끄덕였다.
“찾아보겠습니다.”
울먹이는 두 눈.
눈을 감는 미사를 보며 왜인지 머릿속으로 앞선 회차의 돌고래 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주님은 가주님 또한 밑바닥에서 올라온 언더독이라 그러신지, 가끔 별거 아닌 말인데 사람의 심금을 울려요. 밑바닥 출신이라 그런 걸까요?”
“시비 거냐?”
“아뇨, 그 한마디에 코 꿰인 제 얘길 하는 거죠.”
친구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아마 장담하건대, 가주님은 어딜 가시든 꼭 따르는 놈이 생길걸요.”
역시 그놈 얼굴은 보고 출발할 걸 그랬나.
잠깐의 후회가 스치는 순간, 미사가 눈을 떴다.
“저쪽, 저쪽이에요!”
아빠는 곧장 램프를 드는 동시에 한 팔로 나를 안아 들었다.
내 품에는 이제 색색 숨을 몰아쉬는 뱀이 안겨 있었다.
뱀은 더는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놀라운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움직이고 있잖아?
수원지를 찾는 특기를 가진 수인이라면, 앞선 회차에서 나도 꽤 여럿 봤다.
그러나 그건 갯과 동물이 예민한 후각으로, 땅의 냄새를 킁킁 맡으며 더듬어 추격하듯이.
더듬거리며 추격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사는 긴 미로의 출구를 아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달렸다.
“네 하녀는 재능이 출중한 모양이군.”
“……그러게.”
“몰랐던 건가? 다 알고 시키는 걸로 보였는데.”
“아, 음. 그게.”
이 정도로 훌륭한 줄은 몰랐지.
대답할 새는 없었다. 속도가 더욱 올라간 탓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갔을까, 미사가 색색 숨을 몰아쉬었다.
“고, 공녀님…… 여기예요.”
나무가 끊어진 길.
미사가 옆으로 비켜선 순간, 그녀의 어깨 너머로, 머리 너머로,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가 나타났다.
‘우와아아…….’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호수였다.
게다가 크기 또한 커다랬다.
“감상할 때가 아니지 않나?”
“핫, 맞다.”
아빠는 호수로 성큼 다가가 나를 내려주었다.
나는 서둘러 물에 조심스럽게 뱀을 담갔다.
‘그러고 보니 얜 물뱀인가? 아니면 괜히 익사하는 것 아니야?’
걱정과는 다르게 물이 닿기 무섭게 뿔 달린 푸른 뱀이 반짝 눈을 떴다.
어라, 지금 뿔이 잠깐 빛난 것 같은데.
착각이 아니었다.
우르르릉!
호수 전체가 진동하더니, 물이…… 조금씩 뱀에게 빨려들고 있었다.
워낙에 커다란 호수이다 보니 물이 빨려들어 가는 양으로는 티도 나지 않았지만.
이것이 10분, 15분, 그리고 30분쯤 되었을 때, 함께 왔던 미사가 파르르 떨며 내게 다가왔다.
“고, 공녀님…… 저건 대체 뭔가요?”
“……그러게.”
나도 궁금해.
‘이렇게 물을 돼지처럼 마시는 뱀이라니. 들어 본 적 없는걸.’
달려온 사람 중에서 당황하지 않은 건 아빠뿐이었다.
아빠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다.
“스승님, 스승님은 저게 뭔지 알겠어?”
“모른다. 동물도감은 내 특기가 아니야.”
아빠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혹시 이런 걸 잘 아는 것도…… 아빠의 덕목인가?”
“엥, 웬 덕목……?”
“생각해 보도록. 도움이 되는 건가?”
“아니, 뭐. 안다면 도움이야 되겠지만…….”
“그렇군. 잘 안다면 도움이 되는 건가.”
“아니, 잠깐만.”
모르면 사전이나 책을 보면 되지. 뭘 또 아빠한테 묻는다고…….
애초에 난 잘 묻지도 않는-.
“우리 딸, 오쪼쪼,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러엄, 아빠는 우리 딸이 묻는 거 다~ 대답할 수 있어.”
“아빠가 최고지?”
괜한 게 생각나 버렸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호수의 물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 있었다.
내 안에서 그 사이 조그만 뱀은 뱀새끼로 격하되었다.
‘뱀인지 돼지인지. 저건 언제까지 처마시는 거야?’
이러다 정말 호수의 물을 다 마시기라도 한다면.
호수에 살던 수많은 물고기에게 미안해지는 거다.
걔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거 아닌가.
수인은 아니라지만 물고기의 일이 어디 남 일이겠나.
‘역시 안 되겠다.’
이 정도면 배 터지게 마셨겠지. 아니라고 해도 멀쩡한 생태계를 망쳐 놓을 생각은 없다고.
뱀을 건져낼 생각으로 쪼그려 앉았을 때였다.
물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뿅 무언가 솟아올랐다.
톡톡 튄 물방울이 뺨에 달라붙었다.
-고마워!
달이 동동 뜬 하늘 아래, 푸르른 뱀이 두둥실 떠 있었다.
삐죽 솟은 뿔은 달빛을 담은 은색으로 빛났다.
마찬가지로 달빛을 받은 푸른 비늘이 조금 전과 다르게 윤기가 넘쳤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우면 그만 처먹어 이 돼지 XX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