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80)
흑막 범고래 아기님 (80)화(80/275)
제80화
설마, 용 공작의 폭주가 이미 이 시기에도 진행된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몸을 옮겼다.
문이 있는 곳을 향해서였다.
발소리는 여전히 들려 오고 있었다.
-투스, 하나만 물어볼게. 꼭 대답해 줘. 용 공작님, ‘폭주’ 상태인 거야?
-아니야!
투스가 소리쳤다.
-공작님, 멀쩡해. 아프지 않아! 이상 없어! 그저……!
끼이익. 투스의 말을 방해하듯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본능적으로 벽에 딱 달라붙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면, 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먼저 보였다.
저렇게 커다란 그림자라니…… 대체 용 공작은 얼마나 큰 거야?!
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나타난 인영이 깨진 접시에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움직이면 달빛 아래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마침내, 달빛 아래로 용 공작이 등장했을 때 나는 입을 벌렸다.
‘어린애?’
거대한 그림자는 대체 무슨 영문이었던 것인지.
그림자 크기가 무색하도록 조그마한 아이였다.
내겐 아이의 뒷모습만 보였지만, 아이는 멍하니 바닥에 엎어진 음식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무섭다지만 시중이 엉망진창이잖아.’
음식이 엎어져서 분노한 걸까?
이제 난동을 부리나?
그러나 다음 순간 용 공작이 보인 모습은 너무나 의외였다.
‘자, 잠깐만!’
의식했을 땐 이미 달려 나가서 조그만 손을 잡아챈 뒤였다.
“잠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이를 응시했다.
“그 음식 주워 먹으려 했던 거야?”
“…….”
내가 잡은 손에는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떨어져 뭉개진 토마토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달빛 아래 보이는 토마토의 모습은…….
상했잖아?
처참하게 상해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한때 나도 이렇게 상한 음식을 억지로 먹어 본 적 있기 때문이었다.
……흑표범 가문에 팔려 갔을 때 말이다.
용 공작의 위장이 얼마나 튼튼한지 몰라도 애한테 이런 거나 먹으라고 주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용 공작이 감시를 받는다거나 이런 낡은 건물에 있는 거라거나.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용 공작이었다.
이 제국의 상징, 그리고 모든 수인이 우러러보는 자.
그런 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거다.
적어도 인간 대우는 해 줘야 하잖아…….
“이거 놔, 상했잖아.”
뱉고 나서야 존댓말을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새하얀 얼굴이 보였다.
‘내가 알던 나이 대는 아니지만, 얼굴은 전혀 다르지 않네.’
내가 좋아하는 새파란 머리카락이었다.
그 아래로는 핏줄이 비칠 것 같은 새하얗고 뽀얀 피부, 그리고 황금색 눈이 인상 깊게 뇌리에 박혔다.
‘……근데 상태가 왜 이래?’
내가 익히 보았던 미쳐 눈 돌아간 폭주 상태의 눈이 아닌, 어딘가 멍하고 몽롱한 눈동자였다.
아니, 무심해 보이기도 했고 텅 비어 보이기도 했다.
……영양실조인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었던 건, 홀쭉한 뺨이나 가느다란 목.
내게 잡힌 앙상한 팔목이었다.
‘마치 억지로 상한 걸 줘서 굶기거나 서서히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흠칫했다.
“하, 조금만 고생해라. 이것도 걔가 죽고 새로 태어나면 좀 나아지겠지.”
어째 투스에게 한마디도 듣지 못했지만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일단 진정하자. 아직 제대로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어.
‘곧 하녀가 돌아올지도 몰라.’
나는 복도를 한 번 보았다. 다시 돌아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체해서 좋을 건 없었다.
“용 공작, 맞지?”
“…….”
“나는 적이 아니야. 안심해. 대화를 좀 하고 싶어.”
“…….”
“음, 저기?”
……아빠만큼이나 과묵한 인간은 또 처음이네.
아니, 한술 더 뜨는 것 같다. 대답할 의사조차 없어 보였으니까.
그저 나를 한 번, 제 손에 들린 토마토를 한 번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이거 아직도 쥐고 있어? 놓으라니까? 놓, 아.”
“…….”
내가 다른 손으로 억지로 손가락을 펴자, 놈은 힘을 주는 대신 그대로 스르륵 토마토를 떨어트렸다.
그러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갸웃 흔든다.
“저기, 투스? 투스, 이제 그만 울고 어떻게 좀 해 봐…….”
우리 사이를 중재…… 아니, 소통을 해 줄 투스는 내가 용 공작의 손목을 잡아챈 순간부터 엉엉 우느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투스.”
내가 아기 뱀의 이름을 입에 담자 그제야 용 공작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여태 몰랐다가 내 어깨에 올라탄 투스를 이제야 막 본 것 같았다.
“그래, 여기 보이지? 당신의 권속을 데려왔어요. 그러니까 우리 잠깐 대화 좀 하지 않을래요?”
“……대화, 대화?”
“그래. 대화.”
나는 열린 문을 가리켰다.
“일단 누가 올지 모르니까 들어가자고요.”
문제는 내게 시간이 없단 사실이다.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가야 했다.
잠시 뒤, 용 공작의 방으로 발을 들인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와, 식겁했네.’
용 공작에게 들어가자고 했더니, 내 말을 무시하고는 갑자기 다시 쪼그려 앉아서 음식을 주워 먹으려 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봐도 상한 음식이 분명해서 뜯어말리고 억지로 끌고 들어오느라 애먹었다.
다행히 부아가 치밀어서 멱살을 쥐고 끌고 와 버렸는데, 끌고 오는 동안에 반항 한 번 안 하더라?
-공작님, 공작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리고 투스는 용 공작의 품에 안겨서 울기 바빴다.
이상한 점은 용 공작은 그저 투스를 들고 있을 뿐 안아 주지도 눈물을 닦아 주지도 않았다는 거였다.
그저 빤히 투스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저기요, 공작님. 아, 몰라. 그냥 편히 말할게. 저기, 네 권속 눈물 좀 닦아 주지 그래? 서럽게 울잖아. 저래 봬도 너 보고 싶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
진짜 과묵하네.
아까 투스를 부르지 않았다면 말을 못 하는 줄 알았을 거다.
‘원작에선 이런 인물이 아니었는데?’
어째 용 공작은 저 모습도 그렇고. 폭주한 모습도 그렇고.
참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만 보여 주는 것 같다.
‘이래서야 대화가 되기나 할까?’
그때, 투스가 비로소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훌쩍훌쩍하는 모습이었지만 말은 문제없이 내뱉었다.
-칼립소 미안해. 투스 너무 기뻐서 눈물 났어.
“괜찮아. 펑펑 울어도 되는데, 일단 설명 좀 하고 울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정리해서 질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한숨과 함께 치밀어 오르던 질문을 제일 먼저 입에 담았다. 차근차근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왜 용 공작씩이나 되는 분이 썩은 음식이나 처먹, 아니 먹고 있는 건데? 아니, 음식이야 그렇다 치고. 왜 저분은 바닥에 있는 걸 주워 먹어?”
입을 열자 질문이 우다다다 쏟아진 건 불가항력이었다.
현재 용 공작은 나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외관상으로는 여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
이 정도면 기본 교육을 받지 않았을 리 없었다.
-공작님은…… 투스 없이는 식사를 할 수 없어.
“그 말은 마차에서도 했어. 근데 그게 이 의미였니?”
귀하게 자라서 권속이 곁에서 챙겨 주지 않으면 안 먹는다는 소린 줄 알았지.
너 없으면 바닥에 있는 걸 주워 먹는단 얘기였다면, 너무 의미가 다르지 않니……?
투스는 용 공작의 손에서 망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칼립소, 용 공작님은 생식을 하지 않아도 죽으면 다음 용 공작님이 태어나.
“그건 알고 있어.”
그래서 책 속에서 용 공작은 여주와 썸씽이 있는 남주 후보에서 제외되었던 거니까.
용 공작이 죽으면 다음 대의 용 공작이 태어난다.
-투스는 용 공작님의 권속으로서 기본적인 것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채 태어났어. 공작님을 모시는 법, 힘을 사용하는 법, 충성하는 법. 공작님에 대해 모든 걸 알아.
그리고 그 아이는 용 공작이 된다.
-용 공작님은 태어나자마자 배워야 해. 배우지 않으면 그대로 몸만 자라 버려.
“……지금 용 공작님의 상태가 그러니까, 음.”
나는 말을 골랐다.
“백치라는 거야?”
투스는 백치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간단하게 뜻을 풀어주자 그렇다고 끄덕였다.
-공작님은 투스 없이 식사를 못 해. 인간들은 공작님에게 수저를 쥐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 투스는 권속이라서 공작님께 배움을 드릴 수 없어.
그 말을 듣고 나니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가 달리 보였다.
내 말을 무시한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거였어.’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