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85)
흑막 범고래 아기님 (85)화(85/275)
제85화
‘세상에, 이번에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10살이 되었을 때 만났을 용 공작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미래가 그려지진 않는다.
성에 머물던 손님들은 떠날 채비를 했다. 용의 도시와 가까운 거리에 사는 이들은 이미 떠났다.
우리 아콰시아델 또한 채비가 끝나는 대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른 새벽 혹은 날이 밝기 무섭게 이동할 예정이었다.
용 공작 성 측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인 일이었다.
오히려 시종을 비롯하여 집사까지 우리가 떠나는 걸 반기는 눈치였다.
‘이게 다 용 공작을 데려오자마자 바로 튀려는 밑밥이지. 밑밥.’
그렇게 밤이 되기 전까지 나도 청어 하녀들과 미사를 도와 열심히 짐을 챙기려 했는데.
웬걸? 하녀들이 ‘감히 우리 귀여운 공녀님, 조막만 한 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쫓아내 버렸다.
‘내가 너희보다 힘이 더 셀 텐데…….’
조금 황당했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시간 때울 것마저 사라져 할 일 없는 백수인 양 응접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벨루스가 다가와서는 대뜸 물은 것이다.
무슨 꿍꿍이냐고.
“꿍꿍이라니.”
저놈은 갈 채비도 안 하나? 아니다. 알아서 해 주겠구나.
나는 태연하게 놈을 응시하며 대꾸했다.
‘쓸데없이 감이 좋기는.’
그렇게 물어도 나오는 건 없을 거란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앉아. 그렇지 않아도 나 너한테 할 얘기가 있었어.”
“할 얘기?”
앉으라니까 앉지는 않고 빤히 노려보길래, 나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아무래도 네게 했던 말 중에 하나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분명 너한테 돌아가는 길에 나는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그러자 벨루스의 눈빛이 변했다.
나도 모르게 흠칫할 만큼 날카로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마음이 바뀌어서 돌아가기로 했다고.”
“함께?”
“……그렇지? 왜, 함께 마차 타는 게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내가 한 질문은 그쪽이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벨루스의 주변으로 물의 힘이 일렁거렸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 물이 떠오른 형태가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는 거다.
마치 비눗방울처럼 동그랗게 뭉친 물들이 포근한 모양새로 탱글탱글 움직였다.
‘……감응력이 강한 사람은 시전자의 감정에 물의 힘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이를테면 시전자의 분노에는 원하지 않아도 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거나 뾰족한 모양새를 만들었다. 심하면 알아서 폭발을 하기도 한단 소리다.
‘하지만 저건, 분노에 대한 반응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데……?’
비눗방울처럼 예쁜 모양인 데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물방울들은 석양빛을 받아 오묘한 색을 띠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미모의 미소년이란.
솔직히 아군이고 적이고를 떠나서 감탄할 풍경이었다.
‘……뭐야 저 XX 왜 기뻐하는 건데?’
설마, 내가 돌아가면 저택에서 나를 묵사발을 내고 싶다 이거야? 뭐야.
내가 무엇을 빤히 보는지 몰랐던 듯 의아한 얼굴을 하던 벨루스는 곧 제 힘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물의 힘이 사라졌다.
당황할 줄 알았는데, 태연하다 못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뻔뻔한 표정이다.
‘이놈의 무표정에 포커페이스는 아빠를 닮은 건가.’
어째, 아빠가 자기랑 똑같다고 한 말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럼 가주는? 돌아가는 건 함께 돌아간다며. 이따위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따위 곳이라니……. 마음에 드는 호칭이긴 한데.”
여긴 정말 이따위로 마음에 안 드는 곳이긴 해.
“그건 네게 말한 것과 같아. 난 가주 안 해.”
그러니까 안심하고 너 해라, 응? 난 진짜 안 할 거라고.
만약 무사히 용 공작을 데리고 집에 도착하면 그대로 용 공작과 콕 박혀서 지낼 용의도 있다.
벨루스가 원한다면 더 후진 곳에 살아도 상관없었다.
그게 어디야, 용 공작이 무사히만 크면 날 집으로 데려다줄 텐데.
“……그래, 그건 두고 볼 일일 테니.”
어쩐 일인지 벨루스는 더 말하는 대신 등을 돌렸다.
그러자마자 막 생각났다는 듯 고개만 돌려 이렇게 말했다.
“뭘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정 중에 말해 준다면 한 번쯤은 눈감아 줄 생각 있어.”
“……어?”
“너 이상한 버릇이 있던데.”
버릇? 무슨 버릇?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말았지만, 들킬까 걱정할 필요도 없이 말을 끝낸 벨루스는 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렸다.
‘말하기만 한다면 눈감아 준다고?’
뭐야, 이게 웬 떡이지?
무슨 변덕인지 몰라도 나야 땡큐지.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앞선 회차에서부터 저놈은 가끔 이런 변덕을 부리곤 했던 놈이었으니까.
밤이 되었다.
오늘도 자지 않고 기다렸다는 점은 똑같았지만, 내 방에 홀로 있는 게 아니란 점이 달랐다.
“갈 시간인가.”
“응! 지금이야.”
내가 투스를 데리고 나간 때와 거의 비슷한 시간, 아빠가 나를 안아 들었다.
“음, 나 혼자서도 뛰어내릴 수 있는데?”
“옆에 좋은 도구가 있는데 뭐하러 고생하지?”
“그건 그래.”
왜 본인이 도구화되시는지 모르겠지만, 댁이 도구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도구 아닐까.
누워 본 적은 없지만 흔들리지 않는 침대급 편안함이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바닥에 착지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물의 힘 응용 능력은 정말 죽여주는 수준이네.’
똑같은 물의 힘을 가졌더라도 범고래마다 특기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각성했을 때 가진 힘의 총량…… 즉, 다룰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엄청난 쪽이었고, 벨루스는 감응 능력이 뛰어난 쪽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빠는 응용 능력이 뛰어난 편인 것 같다.
아니다, 아직 아빠의 진짜 힘을. 힘의 총량을 본 적은 없나.
내가 달려갔을 땐 20분 넘게 걸렸던 거리였건만, 아빠에게 안겨서 오니 10분도 안 되어서 도착해 버렸다.
‘이 택시…… 쓸만한걸!’
본인이 도구라고 말한 탓에 나도 모르게 총알택시를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아무튼 간에 투스와 왔던 장소에 도착했을 즈음, 아빠가 기척을 죽였다.
“과연, 육지놈들 중에서도 상위 맹수가 근처에 있군.”
“누군데? 아니, 그보다 이렇게 말을 해도 되는 거야? 당연히 소리 차단 한 거겠지?”
아빠가 그럼 안 했겠냐, 하는 얼굴로 쳐다보길래 나는 뻔뻔하게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우리 스승님 멋지다. 밤공기를 찢어 놓으셨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온다.”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스르륵 나타나는 인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투덜거리며 발을 구르는 인영도 보였다.
어라, 같은 수인이네?
‘같은 사람이 이틀씩 근무하는 건가? 다음은 교대하고?’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빠를 믿곤 있지만 흑표범 같은 놈들이 나와 버리면, 싸움이 너무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시선을 끌수록 용 공작을 데려와야 하는 우리가 불리하다!
그러니 그나마 상위 종 중에서도 아주 강하지는 않은 하이에나인 쪽이 편했다.
“스승님, 싸움은 안 돼. 최대한 조용히 들어갔다가 빠져나와야 해.”
“알고 있다.”
싸움이 일어나면 분명 용 공작을 이용하는 이들은 가장 먼저 용 공작의 안위부터 확인할 터.
그렇게 되면 애써 몰래 데려오는 보람이 없다.
이들은 최대한 늦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려면 들키지 않고 데려오는 게 최고고.
조용히 기다리자, 어제처럼 하이에나와 카멜레온 수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좋아, 그럼 개구멍으로…….’
어제와 같은 곳으로 다가간 나는 금세 낭패감을 맛봤다.
이런, 구멍이 막혀 있다!
‘왜, 어째서? 고작 하루 만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오늘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빠가 다가와 등 뒤에 서자 나는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언제 다시 하이에나 수인이나 카멜레온 수인이 돌아올지 모르기에, 내 설명은 다급했다.
“용 공작의 방은 기억하고 있나.”
“기억해!”
설사 길을 잃더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투스를 부를 수 있다!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그럼 저곳이 좋겠군.”
아빠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2층에 깨져 있는 창문이 하나 보였다.
크기를 보아서는 나 정도 체구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아빠는 로브를 벗더니 나를 둘둘 감았다.
“내키지는 않지만…….”
“으응?”
“뾰족한 것에 다치긴 싫을 거 아닌가.”
“난 별로 안 싫은데, 아니……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야…….”
“내가 싫다.”
아빠는 기어이 자기 로브로 꽁꽁 싸맨 나를 둥실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