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iller Whale Baby RAW novel - Chapter (92)
흑막 범고래 아기님 (92)화(92/275)
제92화
“……왔어?”
습격은 대실패였다.
습격한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나름의 정예를 보냈을 첫째 형 로데센에게는 뼈아픈 실책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급해도 너무나 급한 피습이었다.
차라리 칼립소를 숲으로 홀로 이동시켰을 때처럼 계략이라도 짰다면 승률이 올랐을지도 모르나.
상대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피에르였다.
암살자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들이 제대로 준비했다고 한들 승률은 0.1퍼센트가 0.2퍼센트 되는 미미한 수준의 차이였을 것이다.
시체 밭이 된 곳은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서서 뒷정리를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교전이 일어났기에, 모두 모아다 숲에 묻어 버릴 요량이었다.
“지난번 놈들보다 확실히 강하지만, 오합지졸입니다.”
“…….”
“협력이 전혀 되지 않았던 걸 봐서는 숙부님의 세력도 함께 있었나 싶네요.”
피에르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로데센과 소르테는 이런 쪽으로는 비슷한 놈들이었으니 제 딸을 견제하겠답시고 두 형이 힘을 합쳤을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결국 이겼으니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렇게 피에르는 싸움이 끝난 그대로 마차 문을 열었다가 힘이 빠진 듯한 칼립소와 마주했던 것이다.
‘왔냐’고 묻는 칼립소의 얼굴이 이상했다.
피에르는 주춤하다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지난 습격으로 인한 분노가 남아 있던 터라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물의 힘을 이용해서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직접 움직였다.
피에르는 뺨에 묻은 피를 닦아 내다 멈칫했다.
……칼립소가 고작 피를 보고 시무룩해하거나 무서워할 아이던가?
‘아니지.’
피에르는 피에 젖은 그대로 딸을 응시했다.
‘역시나, 뭔가 다르다.’
칼립소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게다가 무슨 영문인지 마차를 나설 때만 해도 눈을 뜨고 있던 용 공작이 칼립소에게 기대어 푹 잠들어 있었다.
며칠간의 이동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낮잠을 자지 않던 용 공작이었다.
밤에도 오래 자지 않는 듯 기척이 느껴지곤 했다.
“이곳까지 암살자가 왔나?”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스승님이 지켜 주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겠어?”
지극히 칼립소다운 말이었으나 역시나 위화감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어딜 보더라도 마차 안은 그가 나가던 순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지?”
“음, 무슨 일이라니?”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훌쩍 지났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 다시 출발할 즈음, 마차로 칼립소와 용 공작이 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
그 자리엔 한눈에 봐도 엉망인 얼굴의 아이만 있었다.
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지만 심상치 않은 건 분명했다.
‘……운다?’
피에르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칼립소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세 살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든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이건 정상적인 일인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순식간에 뒤집어진 순간.
피에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차에 탄 네 명 중 두 명이 심각하니, 벨루스는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관찰에 가까웠다.
에키온은 뜻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루 종일 칼립소만 응시했다.
이따금 칼립소의 손을 꼬옥 잡기도 했는데, 칼립소는 거절하는 대신 쓰게 웃으며 마주 잡아 주곤 했다.
칼립소가 보이는 유일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잠식하고 있었으나, 인물들이야 어찌 됐든 마차는 잘만 달렸다.
그 후로 이틀이 더 흘렀다.
“오늘 밤, 혹은 내일. 아콰시아델 저택에 도착할 거다.”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던 칼립소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들은 또 다른 습격을 대비해 빠르게 돌아가기로 했고, 이런 이유로 마지막 밤은 야영을 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피에르는 용의 도시로 향한 여정에서 투스와 함께 신나게 발을 흔들던 칼립소를 떠올렸다.
똑같은 밤, 모닥불 앞이었지만 판이한 모습.
피에르는 거슬리는 감정을 느꼈다.
그때였다.
“스승님.”
칼립소가 주변을 돌아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약속대로 에키온은 스승님 거처에서 보호해 줘.”
“……그러지.”
“응. 내가 매일매일 갈게.”
칼립소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방긋 미소하는 순간, 피에르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왜 그러는 거지?”
“어?”
칼립소가 흠칫했다.
역시 이상했다. 자신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움찔하던 딸이 아니었다.
“네가 얼마나 이상한지 지금 스스로 알고 있나?”
“내가 이상하다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 줬으면 하는데.”
“안 아파.”
칼립소가 눈을 깜빡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피에르는 칼립소의 이마를 짚어 보고서 진실이라고 판단했다. 적어도 열은 없다.
하지만 아픈 게 아니라면 무슨 일인가?
생각할수록 피에르는 자신이 새삼 칼립소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없다는 것에 놀라고.
한편으로 불쾌해졌다.
“스승님, 나는 이 도시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 혹시…… 돌아갈 때는 혼자 돌아가는 건 어때?”
자신의 딸은 멋대로 울타리 안에 들어오더니, 필요할 땐 나가려 들었고.
이젠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 속이려 들었다.
화를 내고 외면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지만.
더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미 울타리에 든 이상 눈앞의 작은 범고래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품어야 할 제 딸이었으니까.
“뭐야, 스승님. 난 똑같은데? 별일…….”
“제대로 거짓말을 하고 싶은 거라면 먼저 거울을 보고 오든가.”
“…….”
“정말 날 속이고 싶다면 차라리 처음 만날 때처럼 굴든지.”
그제야 칼립소의 얼굴에서 웃음이 차차 사라졌다.
희게 질린 아이의 얼굴은, 그제야 피에르가 칼립소의 나이를 알 수 있게 만들었다.
평범한 세 살 아이의 얼굴이었다.
“그냥…… 기분이 안 좋아.”
칼립소는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그런 칼립소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에키온이 손을 덥석 잡았다.
칼립소는 마차에서처럼 웃어 주지도 마주 잡아 주지도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에키온의 손을 놓더니 토닥토닥 두드려 줄 뿐이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승님, 나…… 잠깐만 산책 다녀와도 돼? 멀리 가진 않을 거야.”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자그마한 숲이었다.
이 숲을 지나 반나절에서 하루만 더 간다면 아콰시아델의 영지였다.
“안 된다. 암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이지? 암살자 기척은 스승님이 제일 잘 알 거잖아.”
“…….”
“그러니 있으면 있을 거다, 하는 대신 있다고 말했겠지.”
“…….”
평소와 같은 상태가 아니면서 머리 돌아가는 일만은 평소처럼 구니.
피에르가 미간을 구겼다.
“답답해서 그래. 응? 잠시만 다녀올게.”
그러나 결국 칼립소는 피에르에게서 허락을 받았다.
칼립소의 뒷모습이 조그마한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피에르의 감각에는 멀어지다가 멈추는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칼립소의 하녀들과 유모인 미사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저들도 칼립소가 이상하단 사실은 깨달았지만 이유까지는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따라가야겠군.’
산책을 보내 준다고 했지, 추격이 없을 거라곤 하지 않았다.
교묘한 말과 고집은 칼립소만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피에르가 눈을 찌푸리며 발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에키온이 길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에키온의 손이 처음으로 타인에게 내밀어졌다.
“칼립소. 여기.”
놀랍게도 말을 한 마디도 못한다던 에키온은 짧은 여정 동안 단어를 뱉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칼립소를 제외하면 원활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칼립소조차도 고개를 갸웃하는 일이 잦았으니.
피에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칼립소 여기, 까매.”
“…….”
“찌릿해?”
에키온이 한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잠자코 아이의 말을 듣던 피에르가 툭 내뱉었다.
“아프다는 거군.”
에키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몽롱한 듯 말간 눈으로 피에르를 응시할 뿐.
피에르는 깨달았다.
“……그렇군. 넌 칼립소의 감정을 느끼나?”
“칼립소. 배워.”
칼립소는 용 공작 에키온에게 ‘배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아콰시아델로 돌아가면 선생이 붙었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이렇게 보니 그 선생은 이미 용 공작에 의해 정해진 성싶었다.
“알겠다.”
피에르는 허리를 숙여 용 공작의 어깨를 툭 짚었다.
“고맙군, 용 공작.”
피에르가 칼립소가 사라졌던 풀숲 사이로 향했다.
* * *
“아…….”
이런, 멍하게 있다가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응시했다.
사방이 까맸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빨간 불이 보였다. 아마, 모닥불의 빛일 거다.
뭐, 이 정도면 그렇게 멀리도 아니지.
‘어차피 스승님의 광범위한 경계 범위 안일 테니까.’
어디 그 스승님의 감지 범위가 평범한 범고래와 같기나 할까.
나는 피식 웃으며 근처에 있던 나무를 짚었다.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의식적으로 생각으로조차 ‘아빠’라는 단어를 피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괜찮을까?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바닥으로 뚝,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