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110)
블랙 라벨-109화(110/299)
블랙 라벨 109화
110. Start up
오늘 2013 ‘파슨스·F.I.T 대항전’이 치러지는 HQ센터 앞은, 흡사 세계 4대 패션위크를 비롯한 명문 컬렉션을 방불케 할 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유명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사회 측 인물들을 시작으로, 유명 에디터, 평론가, 모델 및 배우들, 심지어 현역으로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에 이르기까지.
이번 대항전의 규모가 유래 없이 커지며 관심이 증폭된 만큼, 무수히 많은 *셀럽(*Celeb: 유명인사)들이 쇼를 참관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한 탓이었다.
그런 지금, 프리미엄 커스텀 테일러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백발의 노인이 대여섯 명가량의 경호원을 대동한 채 로비 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로비 층에 마련된 포토존 앞에 주둔하고 있던 기자들이,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을 한 채 막 들어선 노인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LVMH 그룹’(*Louis Vittonz Moët Hennessy)의 수장이랄 수 있는 ‘베르나도 아르도’ 회장이었다.
어느덧 6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루이비톤즈’를 시작으로, ‘크리스찬 디옴’, ‘세랑느’, ‘겐지’, ‘겔라’, ‘로에브’, ‘펜디’, ‘태그 오이어’, ‘지반시’, ‘브샥’ 등… 무려 60개가 넘어서는 브랜드를 휘하에 두고 있는 LVMH 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의 시간이 금과 같다지만, 그의 시간은 평범한 이들의 시간보다 족히 수십 배는 특별하다.
수십 개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
‘패션계의 황제’ 내지는, ‘패션계의 절대 권력자’라 불리는 그의 시간을, 어찌 감히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그런 그가 이번 대항전을 직접 관람하고자, 친히 HQ센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가 등장함과 동시에, 로비 층 내부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은 듯 보였다.
베르나르 아르도 회장은 앞서 모습을 드러냈던 여타 셀럽들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위압감을 뿜어대며 천천히 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이윽고, 그가 로비 층 한편에 마련된 포토존을 등진 채 서보이던 찰나.
곳곳에서 “찰칵, 찰칵-.” 하는 셔터 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내 아르도 회장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제 손목에 채워진 ‘바쉐론 콘스탄틴(Bacheron Constantin)’사의 시계를 한 번 들여다보고는,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딱 1분간,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포토존 앞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려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어딜 가든 이슈를 만들어내는 인물이었으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던 격식과 질서를 강제로 만들어 보이는 인물이었다.
이내 아르도 회장이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올린 기자를 손끝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씀하시죠” 하고 말해 보임과 동시에 간소한 회견이 시작되었다.
“아르도 회장님께서, 이번 대항전에 직접 참관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간단합니다. 우리 ‘LVMH 그룹’의 휘하 브랜드에서 디렉터 및 총괄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현역 디자이너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그 누구도 아르도 회장이 직접 참관하리란 사실을 예측치는 못했으나, 마냥 말이 안 되는 상황은 또 아니었다.
이번 파슨스·F.I.T 대항전에 도움을 주게 된 졸업생(현역 디자이너)들 중 태반이, 현재 LVMH 그룹의 휘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말을 마친 아르도 회장이, “다음” 하고 말해보이자 기자들이 다시금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럼 혹시 이번 대항전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자 하려는 목적도 있으신 겁니까?”
이내 한차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아르도 회장이, “좋은 질문이군요” 하고 짤막하게 말해 보인 뒤 유려하게 답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입니다. 저를 비롯한 LVMH 그룹 휘하 브랜드의 이사회가 욕심을 낼 정도로, 뚜렷한 재능을 보이는 재학생이 있다면 당연히 영입을 고려해 볼 수밖에 없겠죠.”
말을 마친 그가 다시금 “다음.” 하고 짤막하게 말해보이자,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려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간 신중한 표정으로 기자들을 둘러보던 아르도 회장이 가장 젊은 기자를 손끝으로 가리켜 보였고, 이내 그의 선택을 받은 기자가 괜히 한두 번 헛기침을 해보인 뒤 날카롭기 그지없는 질문을 건넸다.
“아르도 회장께서는, 어느 팀이 이번 대항전의 우승을 거머쥘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십니까?”
아르도 회장이 미간을 찡그린 채, 침묵을 유지하기를 잠시. 모든 기자들의 표정 위로, 은근한 호기심이 서렸다.
과연 패션계의 절대 권력자는, 어느 팀의 우승을 점치고 있을까?
이윽고, “흠….”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는 것으로 말문을 연 아르도 회장이 조곤조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동시에, 어려운 질문이로군요. 아무래도 실력이 출중하기로 유명한 현역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한 덕에 예측이 쉽지 않겠습니다만….”
잠시 말끝을 흐려 보였던 그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팀 파슨스의 ‘리 & 마크’ 듀오가,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가 답을 마쳐 보이기 무섭게, 장내의 분위기가 훨씬 더 뜨거워졌다.
잠시 멎어들었던 셔터 소리가 다시금 맹렬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으며, 회견 석상에 갖춰졌던 질서가 무너졌다.
장내에 포진해 있던 모든 기자들이, 암묵적으로 정해두었던 룰을 무시한 채 일제히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한 탓이었다.
뭐랄까? 마치 활활 타오르고 있던 불 위로, 기름을 잔뜩 쏟아부은 것만 같았다고 해야 할까?
이내 한차례 만류하듯 손바닥을 들어 올려 보이는 것으로, 장내의 분위기를 살짝 가라앉혀 보인 아르도 회장이 다시금 입을 뗐다.
“이런, 공교롭게도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군요.”
앞서 약속했던 1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한데 애석하게도 1분간의 회견은 기자들의 호기심을 해소시켜 주기는커녕, 오히려 호기심을 배가시켜 놓은 상황이었다.
기자들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유를 물어대고 있는 중이었으나, 아르도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그 어떤 말도 꺼내놓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대동한 경호원들과 함께, 곧장 대항전이 진행될 쇼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만 할 따름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재승은 최종 리허설을 마친 뒤, 막 대기실로 복귀한 상태였다.
고된 일과 탓일까? 대항전은 아직 시작조차 못했는데, 재승의 얼굴 위로는 피로가 가득 서려 있는 상태였다.
재승이 대기실 의자에 몸을 뉘인 채, 짤막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찰나.
“제기랄, 리(Lee)! 특종이야!”
마크 제이콥이 대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며, 다급하기 그지없는 투로 말을 건네왔다.
이내 재승이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의아하다는 듯 물음을 건넸다.
“무슨 일이에요?”
한차례 “잘 들어….” 하고 뜸을 들여 보인 그가, 엷게 떨리는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LVMH 그룹의 아르도 회장이 이곳에 와 있다는군.”
“예? 저, 정말요…?”
아예 긴장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중압감에 짓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한데, ‘아르도’라는 이름을 듣기 무섭게 잠잠하던 가슴이 터질 듯 뛰어대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아르도.
루이비톤즈를 비롯하여, 수십 여개 프리미엄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패션계의 절대 권력자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재승에게 있어 꿈의 브랜드나 마찬가지인, 크리스찬 디옴(Chrischan Diom) 역시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 중 하나였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재승이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디옴행 열차’의 직행 티켓을 쥐고 있는 인물이랄 수 있는 것이다.
꿀꺽-.
한차례 묵은 숨을 토해내듯 뱉어내 보인 재승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한 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내 마크 제이콥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장난기 가득 서린 투로 물음을 건네 왔다.
“리, 더 흥미로운 사실 하나 알려줄까?”
“이것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남아 있어요?”
“그럼.”
짤막하게 답해 보인 마크 제이콥이, 이내 제 스마트폰을 재승에게 던져주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스마트폰을 가까스로 받아 든 재승이, 마크 제이콥의 스마트폰 액정 위로 나타나 있는 웹 뉴스 기사를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 파슨스·F.I.T 대항전을 관람하기 위해 걸음한 아르도 회장, “유력한 우승후보는 팀 파슨스의 리 & 마크 듀오라고 생각.” ]멍하니 기사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재승이, 이내 “잠깐, 잠깐만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 보였다.
뭐랄까? 부담감이 자신의 발목을 꽉 부여잡은 채, 지하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겨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하면 적합할까?
“아직 그 어느 팀의 디자인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인데, 우승후보를 점쳐보기엔 시기상조이지 않을까요?”
“리, 다른 사람이 아니야. LVMH 그룹의 맨 꼭대기 층에 앉아 있는 늙은이라고. 아르도 회장이 과연 그 어느 팀의 디자인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딴 소리를 지껄여 댔을 것 같아?”
말을 마친 마크 제이콥이 사뭇 스산한 투로, “패션계 어디든, 그가 마음먹었을 때 엿보지 못할 만큼 보안이 철저한 곳은 없어.” 하고 덧붙여 말했다.
대기실 안으로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마크 제이콥이 재승의 어깨 위에 팔을 둘러보이고는,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리, 새겨들어. LVMH 그룹의 회장이 대학생들의 학예회를 보러 올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그룹 휘하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현역 디자이너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그만, 그만. 자꾸 멍청한 소리 할 거야? 그 여우 같은 늙은이가, 직접 응원 차 방문한다? 겪어봐서 아는데, 아르도 회장은 ‘돈’보다 ‘시간’을 훨씬 더 아끼는 사람이야. 그야말로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
말을 마친 마크 제이콥이, 재승의 두 눈을 뚫어지라 들여다보며 한없이 진중한 투로 말을 이었다.
“확신컨대, 이건 기회야. 일단 유출 루트는 이번 대항전 준비 과정을 낱낱이 녹화한 CNN STYLE 측이겠군. 대항전에 참가하게 된 재학생들 중 누군가의 디자인이 이미 노출되었고, 그 ‘늙은 여우’의 정신을 완전히 쏙 빼놓은 걸 거다.”
“그 대단한 재학생이 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군요.”
“뭐, 그렇다고 확신할 순 없겠지만 반대로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사실 심증은 충분해. 물증이 없을 뿐이지.”
그때, 시종일관 진중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던 재승이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흘려보였다.
이내 마크 제이콥이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의아하다는 듯 물음을 건넸다.
“뭐야? 기분 나쁘게 갑자기 왜 웃는 거야?”
“그냥, 마크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가?”
이내 재승이 제 어깨를 한차례 들썩여 보이고는, 조곤조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감히 아르도 회장을 ‘늙은 여우’라고 부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글쎄? 꽤 많을걸? 뒤에서는 무슨 말을 못 하겠어?”
한차례 킬킬거려 보인 마크 제이콥이, “그리고 네가 아르도 회장을 아직 잘 몰라서 그래. 디자이너를 갈아 넣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사람이라고” 하고 덧붙여 말해 보였다.
이내 재승이 “아….” 하고 짤막한 탄성을 뱉어 보였다.
잠시 잊고 있었다지만, 마크 제이콥은 이미 LVMH 그룹을 대표하는 ‘루이비톤즈(Rouis Vittonz)’에서 수차례 지휘권을 잡았던 인물이었다.
1990년도 초반 심각한 침체기를 맞이했던 루이비톤즈를 소생시켰던 것도, 루이비톤즈 최초의 남성복 라인을 만들어냈던 것도, 심지어 신설된 남성복 라인을 성공으로 이끌어냈던 것도, 모두 오롯이 이십 대 중반의 마크 제이콥이 일궈냈던 성과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마크는 이미 LVMH 그룹 휘하 브랜드에서 몇 번이고 일했던 이력이 있죠?”
“당연하지. 만약 날 그냥 ‘엿 같은 욕쟁이’ 정도로만 생각했었다면, 아주 큰 오산이라고.”
이내 재승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득 마크 제이콥과 이렇게 친근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신의 삶이, 실감이 나지 않았던 탓이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라지만, 그는 전생에서부터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가 만든 플라워 에코 백을 중고거래로 구입했었으며, 그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는 시계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이와 수개월이란 시간동안 동고동락해 가며 함께 옷을 만들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단 한 번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던가?
없었다. 상상의 땔감으로 쓰이기엔, 너무도 높은 곳에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재승이 한창 우수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 마크 제이콥이 재승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툭’ 하고 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리(Lee), 어쨌든 걱정 마.”
“걱정 안 해요.”
“음, 그러니까….”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인 마크 제이콥이, 얼굴을 살짝 붉혀가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만약 아르도 회장이 점찍어둔 재학생이 네가 아니더라도, 또 설령 이번 대항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너는 빌어먹을 디옴으로 향하게 될 거야.”
“예? 어떻게요?”
“내가 어떻게든 책임지고, 네가 디옴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할 거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넌 디옴에 갈 자격이 충분하니까.”
말을 마친 마크 제이콥이 어깨를 한 번 들썩거려 보이고는, “정말, 어떻게든” 하고 덧붙여 말해 보였다.
이내 재승이 한차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을 마친 그의 얼굴이, 가을철 만개한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어 있던 탓이었다.
그러고 보면, 참 표현이 서툰 사람이다. 어쩌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일지 모른다.
“고마워요, 마크.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이번 대항전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둔다더라도 후회는 없어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마크라는 좋은 친구를 얻었잖아요.”
이내 마크 제이콥이 괜히 이죽거리는 투로, “제기랄, 역겨워서 못 들어주겠군….” 하고 중얼거려 보였다.
재승은 그의 말에 무어라 답하는 대신, 대기실 한쪽 벽면에 거치된 벽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항전 개막까지, 불과 몇 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준비는 끝났고, 평가의 시간은 목전에 당도해 있다. 가뜩이나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게 된 상황이었는데, 아르도 회장의 인터뷰가 그 관심을 더욱 배가시켜 주었다.
자고로 확정된 승리를 지켜볼 군중은, 무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않겠는가?
우리는 기필코 승리할 것이며, 그 승리는 경쟁자들에겐 다소 가혹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분명히.
* * *
이번 대항전이 진행될 쇼장의 객석은 일말의 빈틈조차 없이 빽빽이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파슨스와 F.I.T 측의 재학생들부터 시작하여, 에디터, 평론가, 유명 디자이너 및 현역 모델들, 심지어 각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사회 및 각국의 바이어에 이르기까지….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더러 섞여 있는 상태였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재승의 작업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맥스’라든지, 파리 포그의 에디터 ‘제랄딘 사글리오’라든지, 재승이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인 ‘알렉스’라든지 말이다.
그때.
돌연 장내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암전되며, 장내에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런웨이 무대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 위로 ‘2013 파슨스·F.I.T 대항전’이라는 글귀가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일부 재학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토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제아무리 규모가 커졌다고 한들, 재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축제’와 비슷한 성질의 행사일 뿐이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멎어들 줄을 모르고 울려 퍼지고 있는 지금, 스크린 위로 이번 대항전의 인트로(Intro)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대망의 대항전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