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117)
블랙 라벨-116화(117/299)
블랙 라벨 116화
117. Collaboration
그날 저녁, 재승은 월 플라워 디자인 팀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 인근에 자리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치이이이익-.
불판 위에 놓인 두툼한 삼겹살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 보이며 서서히 익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군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오기를 잠시, 한껏 집중한 채 고기를 굽던 추지훈이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다 익었네요.”
그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테이블 앞에 둥글게 모여 앉아 있던 직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잘 먹겠습니다!” 하고 크게 외쳐보였다.
이내 불판 위로 십수 개의 젓가락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다들 분주히 젓가락을 놀려대고 있는 지금, 재승은 두 눈을 빛내가며 손에 꼭 쥐고 있던 상추의 물기를 한 번 털어냈다.
그 위로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 한 점, 김치, 마늘, 마지막으로 쌈장까지 살짝 바른 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한입에 우겨 넣었다.
재승이 근 일 년 만의 회식 장소를 고깃집으로 선정한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삼겹살부터 시작하여, 푹 익은 김치와,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를 내 보이며 끓어오르고 있는 얼큰한 된장찌개에 이르기까지.
해외에서 몇 번이고 그리워했던 맛들을, 단 번에 느껴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 맛이야….’
재승이 황홀함이 잔뜩 서린 표정을 해 보이자,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송 이사가 한차례 “쯧….” 하고 혀를 차 보이고는 이죽거리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어이, 추지훈이. 뭐 하냐? 얼른 삼겹살 더 시켜줘라. 너희 사장 저러다가 접시까지 다 쌈 싸 먹겠다.”
한차례 “옙!” 하고 우렁차게 답해 보인 추지훈이, 곧장 삼겹살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내 송 이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소주병을 살살 흔들어가며 재차 입을 뗐다.
“어이, 사장. 누가 보면 굶고 다니는 줄 알겠어? 너는 돈도 많이 버는 애가, 대체 그 돈 다 어디다 쓰냐? 밥도 좀 잘 챙겨 먹고 그래라. 아무리 그래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미국에 있을 때, 제일 많이 생각났던 한국 음식이 뭔지 아세요? 삼겹살이에요, 삼겹살.”
말을 마친 재승이 입가에 묻은 기름을 엄지로 대충 슥 문질러 닦고는, “제가 한 잔 올릴게요” 하고 덧붙여 말했다.
한차례 ‘쪼르르-.’ 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짐과 동시에, 송 이사 몫의 술잔 안에 술이 가득 차올랐다.
이내 송 이사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되물었다.
“사장도 한잔할 거지?”
“그럼요, 당연하죠.”
이번에는 송 이사가 재승 몫의 잔을 따라주었다. 멍하니 술잔 안으로 차오르기 시작한 술을 바라보고 있던 재승이,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흘려보였다.
비록 거창하진 않다지만,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송 이사와의 술자리다.
전생에서는 하루 끝에 이르렀을 무렵마다, 송 이사와 단둘이 마주 앉은 채 술잔을 기울여 대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서로의 하루를 위로하고,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하곤 했었다.
지금은?
인원이 훨씬 늘어났다. 모두 함께 성공의 뒤를 좇는 아군이고, 동료들이다.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전생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물론 전생보다 훨씬 바빠진 덕에 아쉽게도 이와 같은 자리를 매일 도모할 수는 없게 되었다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자주 가질 수 없는 자리이기에, 순간의 각별함이 더욱 배가되는 느낌이었으니까.
재승이 그렇게 깊은 상념에 흠뻑 젖어들어 있던 사이.
송 이사는 “오늘 하루도 다들 수고 많았다” 하는 덕담과 함께, 디자인 팀 직원들 몫의 잔을 차례로 채워주는 데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다.
쨍-!
이윽고, 허공에서 잔 몇 개가 부딪힘과 동시에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이내 재승이 잔 안에서 넘실대고 있는 술을, 곧장 제 입안에 털어 넣어 버렸다.
후끈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속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그 기분 좋은 후끈함을 만끽하고 있던 찰나.
“사장님, 드세요.”
재승의 바로 곁에 앉아 있던 이강준이, 정성스레 싼 삼을 재승의 입가에 가져다 대 보였다.
이내 재승이, “고마워요” 하고 답해 보인 뒤 아기 새처럼 이강준의 쌈을 냉큼 받아먹었다.
잠자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송 이사가, 다시금 상추 한 장을 집어 들며 말문을 열었다.
“어쭈? 야, 야. 이강준이.”
“네?”
“너 인마, 나한테나 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해봐라.”
한차례 “쌈도 좀 싸서 입에 넣어주고, 애정 어린 시선도 좀 보내주고….” 하고 말해 보인 송 이사가, 제 고개를 몇 번 가로저어 보인 뒤 곧장 덧붙여 말했다.
“어차피 너희 사장은 올해 연말이면 다시 프랑스로 떠날 사람이고, 나는 니들 곁에 진득하게 붙어 있을 사람인데 말이야. 응? 그래? 안 그래?”
“이사님께서 누누이 하셨던 말씀 있잖아요? 자고로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항상 남들이 보고 있는 곳보다 더 먼 미래를 봐야 한다고….”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였던 이강준이,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재차 뒷말을 이었다.
“이사님 말씀대로 남들보다 더 멀리 봤을 때에는, 확실히 사장님 쪽에 줄 서는 게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요…?”
이내 재승을 비롯한 디자인 팀 직원들이 한차례, 키득키득 웃음을 흘려보였다.
송 이사 역시 마찬가지. 벌써부터 살짝 불콰해진 얼굴로 한차례 박장대소를 해 보인 송 이사가, 잔뜩 들뜬 투로 말을 이었다.
“가만 보면 우리 사장이, 직원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 뽑아뒀다니까? 보이지? 다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는 영리한 친구들이란 말이야.”
이곳에서 오가고 있는 몇 마디 대화들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사무실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듯했다.
이와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된 데에는, 분명 송 이사의 부단한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다. 비록 평범하다 못해 조촐하기까지 한 느낌의 술자리라지만, 재승이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했던 것은 딱 이 정도의 술자리였다.
마치 어제도, 그제에도 유사한 자리가 있었던 것처럼 일상적인 느낌이 가득한 술자리 말이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고, 중간마다 잔 부딪히는 소리가 효과음처럼 삽입되었다.
어느덧 장내에 자리한 모두의 얼굴이, 가을철 단풍잎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붉게 물들었을 무렵.
“분위기에 찬물 끼얹어서 정말 죄송한데, 이제 슬슬 일 이야기 좀 꺼내봐도 괜찮을까요?”
재승이 사뭇 차분하게 가라앉은 투로 꺼내 보인 말이었다.
이내 직원들이 다소곳한 자세로 앉은 채, 묵묵히 재승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으며 떠들었으니, 이제 중대발표를 해야 할 시간이다. 괜히 “큼, 흠….”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해 보인 재승이 조심스레 본론을 꺼내 들었다.
“실은 오늘, 오랜 고민 끝에 한 가지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무래도 올해 안에, 월 플라워의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하게 될 것 같네요.”
재승이 말이 끝맺어진 직후, 장내에 마냥 무거운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상황을 인지한 직원들이, 한차례 뜨거운 함성을 내뱉어대기 시작했다.
취기가 잔뜩 오른 듯 보이는 남광민과 이강준은 서로를 꽉 부둥켜안은 채 연신 기쁨의 포효를 내질러 댔으며, 추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채 우스꽝스러운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얼마 전 새로이 입사했다는 인턴 직원들만이, 점잖게 박수를 쳐대고 있을 뿐이었고 말이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런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던 송 이사가 “아서라….” 하고 말해 보인 뒤, 곧장 덧붙여 말했다.
“너희들 벌써부터 그렇게 기뻐하면 곤란하다?”
단번에 확 끓어올랐던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기 무섭게, 송 이사가 재승에게 작게 턱짓을 해 보였다.
이내 한차례 숨을 걸러 보인 재승이 나긋한 투로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송 이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직 기뻐하기엔 이른 것 같네요. 사실 이번에 오프라인 매장이 들어서게 될 곳이, 한 군데가 아니거든요.”
말을 마친 재승이 직원들의 얼굴을 한 번씩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대감을 한없이 고조시키는 침묵이었다. 이윽고, 재승이 다시금 입을 뗐다.
“명동, 이태원, 강남, 홍대, 마지막으로 연남동까지. 이렇게 도합 다섯 군데 장소에, 월 플라워의 오프라인 매장이 들어서게 될 것 예정입니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사안이었기 때문일까?
직원들이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멍하니 재승을 바라보고만 있던 것이다.
이내 재승이 진중하기 그지없는 투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열 평짜리 사무실에 입주해서, 처음 채용공고를 올렸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 같은데…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월 플라워가 벌써 여기까지 왔네요. 모두 여러분의 노고가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 속내를 꽤 덤덤하게 털어내 보인 재승이, 한차례 “정말로요” 하고 덧붙여 말했다. 진심이었다. 직원들에게는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휴무는커녕, 식사 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와중에도 불평 한마디조차 늘어놓지 않고 묵묵히 일해주었던 이들이 아니던가?
단언컨대, 이들이 없었더라면 월 플라워가 이토록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직원들의 표정을 언뜻 살펴보니, 다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날을 회고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일 따름이었다. 하기야, 직원들 역시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지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디자인 팀 직원들 중 태반이, 월 플라워가 쿠바쿠바 웹 스토어에 막 입점하여 달랑 몇 종류의 옷을 팔던 때부터. 즉, ‘시작점’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번 오프라인 매장 오픈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더 높은 곳을 노려볼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이내 추지훈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려 보이며, “더 높은 곳이요?” 하고 나직이 되물었다. 한차례 고개를 주억거려 보인 재승이, 유려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내년 여름 크리스찬 디옴의 오뜨 꾸뛰르 건을 마치고 난 다음부터는, 한국에 정박해서 월 플라워의 규모를 키워 나가는 데에만 집중할 겁니다. 그때부터는 지금의 스트릿 라인을 유지하며, ‘프리미엄 라인(Premium Line)’을 신설할 예정이고요.”
몇몇 직원들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여 대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라인을 신설하겠다는 말인 즉, 월 플라워를 프리미엄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확실히 미리 구색을 갖춰놓고 기반을 다져둘 필요가 있었다.
만약 월 플라워가 정말 프리미엄 브랜드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면?
현재 월 플라워의 정식 디자이너 직을 꿰차고 있는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브랜드의 정식 디자이너라는 황금 같은 커리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달콤한 향이 솔솔 풍기는,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계획인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늦어지더라도 내후년 안에는 국내 유명 백화점 브랜드 명품관마다 월 플라워의 매장이 똬리를 틀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방법에 대한 고민은 저와 송 이사님이 부지런히 할 테니, 여러분께서는 하시던 대로 매 시즌마다 최선을 다해주시기만 하면 될 것 같네요.”
직원들의 두 눈 위로 이채가 서렸다. 재승의 말이, 가뜩이나 타오르고 있던 그들의 열정 위로 쏟아진 기름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 덕이었다.
“일단 첫 단추를 잘 끼워 넣는 게 우선이겠죠? 첫 단추나 마찬가지인 이번 S/S 시즌의 성공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해 두기는 했는데….”
한창 말을 이어나가던 재승이 말끝을 흐려 보임과 동시에 고깃집의 출입문을 향해 시선을 옮기자, 직원들 역시 재승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출입문 인근에는, 일행을 찾는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려 대고 있는 장발의 남성이 서 있는 상태였다.
한데, 뭐랄까? 푹 눌러 쓴 모자며, 큼지막한 선글라스며, 온갖 인상착의가 꼭 ‘저는 일반인이 아닙니다’ 하고, 토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내 재승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잠시 삼켜냈던 뒷말을 이었다.
“마침 첫 번째 방안의 주인공께서 도착하셨네요.”
막 가게 안에 발을 들인 사내의 정체는, 재승과 친분이 두터운 연예인 ‘류승호’였다.
이내 막 재승을 발견한 류승호가,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며 입을 뗐다.
“와, 재승 씨!”
“오셨어요?”
이번 시즌의 성공을 굳히기 위해 마련한 첫 번째 방안은 일전에 한 번 협업을 가친 바 있는 자타공인 패셔니스타, ‘류승호’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