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130)
블랙 라벨-129화(130/299)
블랙 라벨 129화
130. 2013 CFDA Fashion Awards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상.
미처 염두에 두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만약 이번 기회에 수상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바닥에서 구른다 한들 받아보지 못하게 될 상이 아니던가?
꿀꺽.
어쩌면 가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기자, 욕심의 색이 더욱 짙어진다.
이래서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는 말이 있는 것일까?
적어도 ‘천재’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등장한 디자이너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는 상이다.
가지고 싶다. 이 생각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생각도 들지 않는 듯했다.
“어때? 흥미가 생겨?”
마크 제이콥이 나직이 건네 온 물음에,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다른 상이라면 모를까,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상’은 정말 탐나는 것 같네요.”
“그럼 같이 기도해 줘야겠군.”
말을 마친 마크 제이콥이, 한차례 키득거려 보이던 찰나.
이번 시상식의 진행을 도맡게 된 진행자가, 연회장의 맨 앞에 자리한 연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 2013 CFDA 패션 어워드에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이제 곧 시상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귀빈 여러분께서는, 지정된 좌석에 착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곧….
곧 시상식이 진행되리란 사실이 담긴, 안내방송을 경청하기를 잠시.
심호흡을 한 번 해보인 뒤, 같은 원탁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식구’들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송 이사는 마냥 덤덤한 척,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으나, 아무래도 긴장감을 오롯이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인 듯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라도 하는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연신 제 아랫입술을 핥아대는 중이었던 것이다.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곁눈질로 주변에 포진해 있는 유명 디자이너들을 훔쳐보며, 저들끼리 연신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회귀라는 기현상을 맞이한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꽤 긴 시간이라지만….
체감상으로는 정말, 눈 한 번 깜짝할 새 지나간 듯 느껴졌다.
시작점은 어머니께 받은 용돈 몇만 원을 주고 구입했던, 낡은 중고 재봉틀.
심혈을 기울여 출시했던 첫 자체 제작 상품들과, 들뜬 마음으로 입주했던 첫 사무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던, 현재의 디자인 팀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잠시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사이, 그간 있었던 무수히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던 자그마한 스트릿 브랜드가, 이젠 제법 덩치가 커졌다.
긴 터널과도 같은 시간을 거쳐 온 끝에, 이제는 다함께 이곳 CFDA 패션 어워드의 원탁 한 개를 오롯이 꿰차고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창 기분 좋은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
“재승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송 이사가, 나긋한 투로 건네 온 말이었다.
‘사장’이라는 호칭이 아닌, 이름을 호명한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싶어 얼굴을 바라보니, 이내 송 이사가 손을 꽉 맞잡아주며 재차 말을 이었다.
“걱정 마. 잘될 거야.”
한차례 “고마워요” 하고 짤막하게 답해 보인 뒤, 장내를 한 번 둘러보았다.
연회장 내부에는 지난 2013 파슨스·F.I.T 대항전을 통해 안면을 튼 바 있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한가득 자리해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뉴욕 패션계에서 맹활약 중인 디자이너들 중 태반이, 파슨스 내지는 F.I.T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당연한 상황이랄 수 있었다.
당장에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시상식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 터라 앉은 자리에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또 연단 바로 앞쪽에 비치된 원탁에는, 소위 말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상태였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파슨스 디자인 스쿨 내 최고 권위자랄 수 있는 에딘 토마스 교수라든지, 그의 영원한 라이벌인 F.I.T 학부 소속의 크리스토퍼 조 교수라든지….
그때.
장내를 밝혀주고 있던 조명들이 서서히 ‘페이드아웃(Fade Out)’되기 시작하며, 진행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상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이번 2013 CFDA 패션 어워드에 방문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롱핀 조명이 연단 위를 환히 밝혀주기 시작했다.
연단 위.
푸른색 턱시도 차림의 중년 백인 남성이 여유로운 표정을 한 채, 큐시트(Que Sheet)가 들려 있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꽤나 유명한 인물인 것인지, 그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와 더불어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의아함을 어쩌지 못한 채 마크 제이콥을 바라보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설명해 주었다.
“톰 카터. 꽤 유명한 스탠딩 코미디언이야.”
“스탠딩 코미디언이요?”
한차례 고개를 주억거려 보인 마크 제이콥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CFDA 패션 어워드’는, 지루하기로 유명한 행사였거든. 그런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던 건지, 작년 시상식부터는 이런저런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고 말이야.”
“음, 그렇군요.”
“스티븐 코브 협회장이 직접 말하기로는, 올해 시상식 퍼포먼스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호언장담을 하던데?”
말을 마친 마크 제이콥이, 어깨를 가볍게 들썩여 보이고는 비관적인 투로 덧붙였다.
“물론, 끝까지 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사실 작년 시상식 퍼포먼스는 형편없었거든.”
잠시간 지루한 일정이 이어졌다. 시상식의 연혁과, 취지를 소개하는 인트로 영상 재생을 끝으로 스티븐 코브 협회장이 연단에 올랐다.
아무래도 시상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연설을 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던 찰나.
진행자 톰 카터가 돌연 앞으로 튀어나와서는, 마이크를 뻇어 들기에 이르렀다.
– 잠깐, 잠깐.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CFDA 패션 어워드가 재미있는 행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지루한 과정은 생략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내 스티븐 코브 회장이, 미리 짜인 각본대로 어리둥절하다는 시늉을 해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톰 카터가 계속해서 유려하게 진행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CFDA 측으로부터 섭외 제안을 받은 뒤, 이 시상식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시상식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봤습니다. 우선 너무 길어요. 모든 과정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더군요.
말을 마친 톰 카터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겨 보이던 순간.
스태프 몇 명이 큼지막한, 밀폐 유리관을 질질 끌며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관은 딱 사람 한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내 톰 카터가, 스티븐 코브 협회장을 가볍게 다독이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 협회장님,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 채, 연단 위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던 찰나.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처리되기 시작했다.
스티븐 코브 협회장은 스태프들에게 연행되듯 유리관 안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고, 그가 유리관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출입문에 자물쇠를 채워 버렸다.
이윽고.
– 시상식을 간소화시키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스티븐 코브 협회장께서 막 들어선 유리관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입니다. 놀랍게도 딱 한 시간 반 정도 분량의 산소가 투입되어 있는 상태죠.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연단 뒤쪽에 설치된 빔 프로젝트 위로 ‘타이머’가 표시되었다.
[ 01 : 30 : 00 ] [ 01 : 29 : 59 ] [ 01 : 29 : 58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머가 나타내고 있는 시간의 의미를 깨달은 관객들이 한차례 박장대소를 해 보였다.
중간중간에는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또 휘파람 소리까지 섞여 있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이내 톰 카터가, 덤덤하기 그지없는 투로 다시금 진행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그럼 곧장, 이번 2013 CFDA 패션 어워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게 되실지도 모를 수상 후보자분들께서는 속으로나마 ‘짧은 수상 소감’을 연습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말을 마친 그가, 능청스레 윙크를 해보이고는 덧붙였다.
–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스티븐 코브 협회장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한없이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CFDA 패션 어워드의 막이 올랐고, 도합 12개 부문의 시상이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연단 뒤쪽에 비치된 널찍한 스크린 위로 각 부문별 수상 후보자를 소개하는 짤막한 영상이 재생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시상을 진행하는 간단한 형식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거의 모든 분야의 시상이 끝을 맺었다.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부문에서는 ‘톰 브라우니’가, 또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부문에서는 ‘애쉬 골드’가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액세서리 디자이너 부문에서는 ‘필립 웨인’이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으며, 국제 부문(International Awards)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지방시의 디렉터 ‘리카르도 티쏘’가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이윽고, 오뜨 꾸뛰르 부문 시상식의 수상 후보자를 소개하는 영상이 재생되던 찰나.
마크 제이콥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음을 건네왔다.
“다시 봐도 끝내주는군.”
“동감하는 바예요.”
애써 무미건조한 투로 답해 보인 뒤, 다시금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큼지막한 스크린 위로, 지난 2013 파슨스·F.I.T 대항전 당시의 쇼 영상이 한창 재생되고 있는 중이었다.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가며 런웨이 워킹을 진행 중인 모델들과, 막대한 노력이 담겨 있는 오뜨 꾸뛰르 의상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뭐랄까?
다시금 그때의 감동이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듯했다고 해야 할까?
재생되던 영상이 아예 끝맺어지던 때에는, 객석 곳곳에서 높고 낮은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 올해의 오뜨 꾸뛰르 디자인 부문 수상자는….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였던 진행자 톰 카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렁차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수상자를 발표했다.
– 몽환적인 느낌의 오뜨 꾸뛰르로, 찬사를 받았던 바 있는 ‘비비앙 론다’입니다-!
이내 자신이 디자인한 오뜨 꾸뛰르 드레스 차림의 ‘비비앙 론다’가, 제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채 수상 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연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뜨 꾸뛰르 부문에서의 수상이 어려울 것이란 사실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던 바라지만, 아쉬운 마음이 치솟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 듯했다.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던 찰나.
마크 제이콥이 어깨에 팔을 둘러 보이며, 나긋한 투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리. 아쉬워할 필요 없어. 내년 크리스찬 디옴의 오뜨 꾸뛰르로, 온갖 어워드의 트로피를 휩쓸어 버리면 되잖아? 우리가 선보였던 오뜨 꾸뛰르도, 론다의 오뜨 꾸뛰르 못지않게 훌륭했다고.”
“고마워요.”
“그래. 내년 크리스찬 디옴의 오뜨 꾸뛰르로, 온갖 어워드의 트로피를 휩쓸어 버리라고. 그리고 아직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부문이 남아 있기도 하고 말이야.”
말을 마친 마크 제이콥이 한차례 “안 그래?” 하고, 재차 물음을 건네왔다.
이윽고, 오뜨 꾸뛰르 부문 수상자 비비앙 론다의 수상 소감이 끝맺어진 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CFDA 패션 어워드의 꽃이랄 수 있는, 두 개 부문의 시상만을 남겨놓게 되었군요. 시상을 진행하기에 앞서, 스티븐 코브 협회장님의 안위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톰 카터의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스태프들이 다시금 스티븐 코브 협회장이 들어가 있는 유리관을 연단 위로 끌고 올라왔다.
그 안에서 한껏 집중한 채 매거진을 읽고 있는 시늉을 해 보이던 스티븐 코브 협회장은, 유리관이 연단 정중앙부에 도착한 다음에야 고개를 들어서는 객석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인 톰 카터가, 재차 입을 뗐다.
–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산소가 떨어지지 않은 모양인 것 같군요.
아직까지는 이라는 대목에 유독 힘을 주어 말해 보인 그가, 계속해서 진행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우선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상 후보로 채택된 디자이너 분들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2013 CFDA 패션 어워드,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부문 후보로 채택된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내 수상 후보자를 소개하는 영상이 재생됨과 동시에, 톰 카터의 설명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 지금 귀빈 여러분께서 지켜보고 계신 영상은, 올해 뉴욕 패션위크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신예 디자이너 ‘베라 왕’이 지난 2013 뉴욕 패션위크 당시 선보였던 쇼의 일부를 발췌한 영상입니다. 수상 후보 ‘베라 왕’은 올해 뉴욕 패션위크를 통해 데뷔한 디자이너들 중, 유일한 여성 디자이너로 특유의 섬세한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한차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잠시. 곧장, 다음 수상 후보자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 마찬가지로, 2013 뉴욕 패션위크를 통해 데뷔한 신예 디자이너 ‘슛 파인더’의 쇼 장면 중 일부를 발췌해 낸 영상입니다. 슛 파인더는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한, 그런지 룩을 선보였으며 수많은 이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는데….
그리고, 마지막.
– 마지막 수상 후보자, ‘리(Lee)’는 앞서 소개된 수상 후보자들과 달리 뉴욕 패션위크가 아닌 특정 프리미엄 브랜드의 새 시즌을 통해 뉴욕 패션계에 등장한 신예 디자이너입니다.
톰 카터의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디자인 팀 직원들 중 몇몇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저마다 한마디씩 기쁨 어린 괴성을 내질렀다. “예!”, “나이스!”, “좋아!” 등등….
이내 스크린 위로 지난 알렉산더 킹의 F/W시즌 쇼 당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아무런 커리어도 없이 프리미엄 브랜드 알렉산더 킹의 2013 F/W시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던 리는, 무수히 많은 이들이 품었던 의심과 걱정이 무색해질 정도로 견고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던 바 있습니다. 심지어 시즌 쇼 당시 ‘알렉산더 스트릿’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으로, 퍼포먼스의 침체를 겪고 있던 뉴욕 패션계에 큰 충격을 선사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수많은 평론가 및 에디터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것은 물론, 가장 확실한 지표인 브랜드의 매출을 잔뜩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바 있으며….
톰 카터가 한창 유려하게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던 그때. 송 이사가 아무런 말없이, 다시금 손을 꽉 맞잡아주었다.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마다 한마디씩, 응원의 말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수상 소감은 생각해 두셨죠?”
“저희 이름도 꼭 말씀해 주세요.”
애써 덤덤한 척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화답해 주었으나, 속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전부인데도 괜히 머리가 어질어질했으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누군가가 땅속에서, 발목을 잡아끄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신인 디자이너 상을 받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디자인에 임해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욕심이 난다.
CFDA 패션 어워드의 트로피와 상패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보상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어두컴컴한 삶 속에서도 연신 재봉틀 페달을 밟아댔던 것에 대한 보상이자, 시력을 잃어가던 와중에도 연신 새로운 디자인을 창안하고자 머리를 쥐어짜내던 비루한 삶에 대한 보상.
이미 전생과는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감사한 현실 속에서, 차원이 다른 생활을 누리고, 동경하던 이들과 안부 전화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협업까지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고작 이걸로 만족할 수는 없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더 큰 성공과 행복을, 더 많은 돈과 명예를, 더욱 뚜렷한 확신과, 더욱 실감나지 않는 삶을 원한다.
이윽고.
설명을 마친 톰 카터가, 손에 쥐고 있던 큐시트를 한 장 넘겨 보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 그럼 곧장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부문,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2013 CFDA 패션 어워드,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부문 수상자는….
그 찰나의 순간. 널찍한 연회장 내로, 무겁기 그지없는 정적이 내리앉았다.
1초가, 1분, 아니,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기를 잠시.
톰 카터가 나긋한 투로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리(Lee), 축하드립니다. 연단 위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