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131)
블랙 라벨-130화(131/299)
블랙 라벨 130화
131. Award Acceptance Speech
“리(Lee), 축하드립니다. 연단 위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톰 카터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장내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멀찍이 떨어진 원탁에 앉아 있던 알렉산더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기립박수를 보내오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멍하니 앉아 있기를 잠시, 떠밀리다시피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연단 위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한데,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몽롱한 기분에 젖어들어 있을 뿐이었다.
혹시 구름 위를 걷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이윽고, 연단 위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짝짝짝짝짝짝-!
가뜩이나 웅장하기 그지없던 박수 소리가, 훨씬 더 거세졌다.
마치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 위로, 기름을 잔뜩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격렬한 반응이었다.
이내 톰 카터가 한마디 축하의 말과 함께, 큼지막한 트로피와 상패를 건네주었다.
–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 상을 수상한 리의, 수상 소감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톰 카터가, 스탠딩 마이크를 손짓으로 가리켜 보이고는 재차 덧붙였다.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 보인 뒤, 곧장 허리를 살짝 숙여서는 입을 마이크 앞으로 바짝 가져다 댔다.
한차례 “음….”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기 무섭게, 장내를 가득 메우고 있던 소음이 멎어들었다.
말문을 열기 앞서, 우선 객석에 앉아 있는 좌중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다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은 채, 이채를 머금고 있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심호흡을 해 보이기를 잠시.
– 우선 수상 소감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먼저 유리관 안에 앉아 계신 스티븐 코브 협회장님께 사과의 말씀을 올려야 할 것 같군요. 정말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수상 소감이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객석 곳곳에서 높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우선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시고, 도와 주셨던 분들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많이 부족했던 제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중책을 맡겨 주셨던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인 알렉산더 킹. 그리고 브랜드 알렉산더 킹의 이사회분들, 또 고집불통인 저를 도와 한 시즌 내내 수고해주신 아뜰리에의 식구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말을 마친 뒤, 시선을 옮겨서는 저 멀리 앉아 있는 알렉산더를 바라보았다.
한없이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던 알렉산더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능청스레 제 눈썹을 한 번 튕겨보였다.
– 실은 시상식 이전에, CFDA 측과 사소한 마찰이 있었습니다. 사실 마찰이라고 표현하기도 무색한 상황인 것 같군요. 엄연히 따져보자면, 제가 일방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했던 셈이니까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 다름 아니라, 제가 이끌고 있는 브랜드. ‘월 플라워’에 소속되어 있는 디자이너 분들께도 이번 패션 어워드에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결국 스티븐 코브 협회장님을 비롯한, 주최 측의 아량 덕분에 이토록 영광스러운 순간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다음, 이번에는 월 플라워의 직원들이 앉아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만약 여러분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된 월 플라워의 동료 디자이너들을 잠깐 무대 위로 모셔보고 싶군요.
이내 객석에 앉아 있던 좌중들이, 박수갈채를 쏟아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명백한 긍정의 의사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서 곁에 서 있던 진행자 톰 카터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그럼요, 얼마든지요” 하고 답해주었다.
수상 소감을 영어로 발표하고 있던 까닭일까?
디자인 팀 소속 직원들 중 몇몇은, 마냥 어리둥절하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려 가며 현재 상황을 전달받는 데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얼떨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표정을 한 채 하나둘씩 연단을 향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디자인 팀 전원이 연단 위에 오르던 찰나, 다시금 장내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함성과 환호 소리, 또 높은 음의 휘파람 소리에 이르기까지.
만류하듯 손바닥을 들어 올려 보이는 것으로, 분위기를 살짝 가라앉혀 보인 뒤 다시금 말을 이었다.
– 현재 제가 운영 중인 브랜드 ‘월 플라워’는,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쯤 시작된 브랜드입니다. 사실 초창기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블로그 시스템을 이용해, 리폼 의류를 판매하는 게 고작이었죠. 그렇게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첫 자체제작 상품들을 제작·판매하기 시작했고….
말끝을 흐려 보이기를 잠시.
– 권위 높은 CFDA 패션 어워드의 시상대에 올라, 없는 말주변으로 수상소감을 늘어놓고 있는 이 순간이 저희들의 지난 시간을 오롯이 대변해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다시금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다.
본래 ‘성공’이란 한없이 흥미롭고, 자극적인 주제이지 않던가?
그런 주제가 더욱 담백하고 깔끔해질 수 있도록, 이런저런 고행의 순간을 적절히 도려내고 다듬어낸 뒤 결과만을 콕 집어 말했으니 더더욱 매력적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 사실 감히 무리한 요구를 해가면서까지 제 브랜드 월 플라워에 소속되어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이곳에 서고자 결심했던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이곳 패션 어워드가 진행되는 연회장에서, 꼭 해주고 싶던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어쩌면, 조금은 심오한 주제일 수도 있겠군요. 우선은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등 뒤에 나란히 서 있는 직원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다들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경직된 자세로 선 채, 세차게 떨리는 눈으로 객석을 내려다보는 데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다.
다시금 얼굴을 스탠딩 마이크 앞으로 바짝 가져다 댄 채,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우리 모두가 앞으로도 쭉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서로 원치 않는 이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여러분 스스로가 새로운 꿈을 좇기 위해 이별을 결심하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죠. 언젠가 여러분께서 스스로의 새로운 꿈을 위해, 월 플라워와의 이별을, 또 저와의 이별을 결심하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앞날을 축복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의 관계에 미련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여러분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한들, 품게 된 꿈을 대신 이뤄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이강준’을 비롯한 몇몇 직원들을 겨냥하여 꺼낸 말이랄 수 있었다.
지난 몇 시즌, 월 플라워 디자인 팀 직원들이 고안해 낸 디자인을 자신이 수정·보완하는 형태로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던가?
한데 차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딱히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사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자신의 해외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빈자리를 대체하고자, 밤잠을 줄여가며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던 직원들의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승의 입장에서는, 그런 직원들의 발전이 머지않아 찾아 올 이별을 암시처럼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셰프가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음식을 맛보고, 도전해 봐야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디자이너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여러 브랜드를 거치며, 새로운 장르와 프레임에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아예 이직을 하는 것도 도전의 방식 중 하나이며, 타 브랜드와 시즌 단위의 크리에이티브 계약을 채결하여 잠정적 휴직상태에 접어드는 것도 도전의 방식 중 하나이다.
또 아예 독립하여, 자신만의 브랜드를 설립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도전의 방식 중 한 가지이고 말이다.
결국 기량이 뛰어난 직원과의 이별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이나 마찬가지인 셈.
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직원들이 소속감과 정 따위의 감정에 의해, 새로운 꿈을 꾸는 법을 망각하지 않도록 해줄 필요가 있었다.
앞서 열거한 감정들에 의해,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해줄 필요가 있었다.
또 언젠가 그들이 이별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 스스로의 밝은 미래를 확신하고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자존감을 확립해 줄 필요가 있었다.
– 자랑스러운, 월 플라워의 어벤저스 멤버들. 다들 고개를 들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유심히 살펴봐 주셨으면 좋겠군요. 우리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이후로, 여태껏 쭉 동경과 선망의 시선으로 엿보던 유명 디자이너들이 여러분의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이곳 CFDA 패션 어워드의 시상대에 서 있는,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어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 우리가 열 몇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처음만난 뒤로, 매일같이 느껴왔던 창작의 고뇌가 맺은 첫 번째 결실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비록 처음은 어려울지 모르나, 두 번째부터는 쉽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미 한 번 이곳 시상대 위에 올라서는 경험을 해보셨으니, 다음번에는 비교적 쉽게 올라설 수 있을 겁니다. 설령 그게 여러분이 오랜 시간동안 머물렀던, 둥지를 떠나게 된 뒤라고 하더라도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재차 말을 이었다.
– 언젠가 여러분이 월 플라워를 떠나게 되셨을 때, 월 플라워 출신이라는 커리어가 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겠습니다.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함께하는 기간 동안에는 여러분 역시 최선을 다해주셨으면 합니다. 여태껏 쭉 그래왔던 것처럼요.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도 수고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한차례 “이상입니다” 하고 말해 보이는 것을 끝으로, 스탠딩 마이크에서 물러선 채 품에 안고 있던 트로피와 상패를 송 이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곧장 직원들을 한 명씩, 차례로 꽉 끌어안아 주기 시작했다.
이내 수상 소감이 끝맺어졌음을 깨달은 좌중들이, 다시금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하를 건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내오고 있는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 연단 앞쪽에 주둔하고 있던 기자 및 에디터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에 이르기까지.
가슴을 두근거리게끔 만들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소리들이 모여, 한없이 듣기 좋은 화음을 이뤄내고 있는 지금.
영원히 잊지 못할, 재승과 월 플라워 디자인 팀 직원들의 ‘2013 CFDA 패션 어워드’가 막을 내렸다.
* * *
그 뒤로 곧장, 대망의 마지막 부문 시상이 이어졌다.
대미를 장식하게 된 마지막 부문은, 올 한 해 뉴욕 패션계에서 활동한 디자이너들 중 가장 큰 성과를 기록한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디자이너 상.’
CFDA 패션 어워드의 모든 부문을 통틀어 가장 영예로운 상이라 단언하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게 된 영광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마크 제이콥이었다.
시상식 행사가 무사히 막을 내리게 된 뒤, 장내에 자리해 있던 유명 디자이너들 및 패션계 인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안면이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일면식이 아예 없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먼저 다가와서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축하의 말을 건네 오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이와 같은 공식 석상의 묘미를 꼽아보자면, 새로운 인연을 쌓아나가는 데 있지 않겠는가?
마크 제이콥과, 알렉산더가 성실히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고 재승 역시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이들과 안면을 터 두고자 부지런히 움직였다.
또, 단연 재승뿐 아니라 디자인 팀 직원들에게도 무수히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그렇게 한창 디자이너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
“리, 바쁜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혹시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다소 왜소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조곤조곤한 투로 조심스레 건네온 물음이었다.
재승이 그 물음에 답하기 앞서, 물음을 건네 온 중년 남성을 발견한 마크 제이콥이 한없이 반가운 투로 인사를 건넸다.
“맙소사, 레오!”
이내 ‘레오’라 불린 중년 남성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이 답했다.
“마크, 올해의 디자이너 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올해로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가물가물하군요. 어쨌든, 에디터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니 정말 난리도 아니더군요. 파슨스의 ‘올드 & 영’(Old & Young) 듀오가, 이번 시상식의 최고 영예를 모두 가져갔다면서 말입니다.”
레오가 말을 이어나가는 사이, 재승은 그의 행색을 유심히 한 번 살폈다.
그는 왜소한 체격에 걸맞지 않는,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단순히 CFDA 패션 어워드가 진행된 이곳 연회장 안에서 마주쳤다는 점과, 마크 제이콥과 두터운 친분이 있는 듯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만 놓고 보더라도, 절대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디자이너는 아닌 것 같고….’
만약 디자이너였더라면, 얼굴은 모르더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패션 매거진 에디터인가? 평론가? 바이어? 투자사 측 거물? 아니면, 에이전시 쪽 사람인가?’
재승이 그렇게 연신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한창 마크 제이콥과 대화를 주고받던 레오가, 한차례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고는 곧장 말을 건네왔다.
“리,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이내 레오가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제 명함을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제 소개부터 드려야겠군요.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타임지의 에디터, ‘레오’라고 합니다.”
재승이 저도 모르게 “예…?” 하고 되묻던 찰나, 레오가 한없이 진중한 투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실은 리의 수상 소감이 정말 감명 깊었던 터라,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사실 저 역시 ‘프랜드십(FriendShip)’의 가치를, 상당히 높이 사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각설하고 말씀드리자면, 다음 발행호에 리와 관련된 내용의 칼럼을 수록시킬 수 있을지를 여쭤보고자 찾아왔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무어라 답할, 짤막한 틈도 주지 않고 곧장 덧붙여 말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리의 브랜드 ‘월 플라워’와 관련된 내용의 칼럼을요. 리의 수상 소감을 듣고 나니, 월 플라워라는 브랜드의 설립 과정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낱낱이 담아낸 칼럼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