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165)
블랙 라벨-164화(165/299)
블랙 라벨 164화
165. 데뷔 준비 (2)
남광민의 의견은 가히 모든 이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중이랄 수 있었다.
단연 월 플라워 내 마케팅 부서 직원들뿐 아니라 투자자들조차도 아이디어를 칭찬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문제가 한 가지 생겼어.”
“어떤 문제요?”
재승이 제 미간을 찡그린 채 되묻자, 송 이사가 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답했다.
“조금 더 세부적인 계획안을 짜 봤는데, 아무래도 처음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큰 지출을 해야 할 것 같아.”
나직이 “얼마나…….” 하고 말문을 연 재승이, 고개를 한 번 가로저어 보이고는 정정했다.
“아니, 일단 이유부터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한차례 제 아랫입술을 핥아내 보인 송 이사가 괜히 몇 번 헛기침을 해 보이고는,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무중력 비행 패키지의 제한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고, 그 안에서 실제로 항공기 내부가 무중력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시간은 비행 시간의 절반인 한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눠봤는데 촬영을 아무리 타이트하게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두 시간 안에는 절대 끝낼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야. 만약 현장에서 딜레이가 생기기라도 하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갈지도 모를 노릇이고…….”
송 이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 재승이 만류하듯 손바닥을 들어 올려 보이는 것으로 말을 끊었다.
“그럼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못해도 배는 들 거야.”
처음 계획에 대해 논의하던 때, 간략하게 책정했던 예산은 한화 오억 원 상당이었다.
룩북 모델과 포토그래퍼 몫의 개런티, 스태프들 몫의 페이, 항공권 티켓값과 기타 부대 비용, 무중력 공간이라는 생소하고 특별한 스튜디오 렌탈 비용 등…….
룩북 촬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지출을 간략히 도출하고 합산한 금액이었다.
두 배로 계산하면 약 십억 원 상당.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디려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오직 룩북 촬영에만 쏟아붓기엔 꽤나 큰 금액임이 분명했다.
사장실 안으로 침묵이 흐르기를 잠시. 재승이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고는 사뭇 흔쾌한 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몇 배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좋은 퀄리티의 화보가 나올 수 있도록만 해주세요.”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아직 돈 나갈 구멍이 수두룩한 거, 알고 있는 거 맞지?”
“그럼 설마 제가 룩북만 만들고 끝낼 생각이겠어요? 당연히 알고 있죠. 부족한 금액은 제가 쥐고 있는 현금으로 메꾸면서 진행하면 되니까 걱정 않으셔도 돼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현금? 얼마나 가지고 있길래?”
기대감과 의구심이 반반씩 섞여 있는 듯한 어투였다.
“그냥 꽤 많이 쥐고 있어요. 수입은 꾸준히 발생하는데, 개인적으로 지출할 만한 곳이 없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돈이 모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내 송 이사가 제 머릿속 계산기를 부지런히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문득 재승의 수중에 얼마의 현금이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던 탓이었다.
일단 분기마다 묵직한 로열티를 지급해 주고 있을 ‘든든한 지급처’만 하더라도 서너 곳은 너끈히 넘을 것이다.
그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던 프리미엄 브랜드만 하더라도 두 곳이고,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한 횟수만 하더라도 몇 번은 되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부가적으로 다큐멘터리 방영권으로 인한 수익이라든지, DVD판매 수익, 또 월 플라워에서 매달 월급 명목으로 지급되고 있는 현금에 이르기까지…….
더군다나 재승이 말했던 대로 근 몇 년간 개인적인 지출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계약을 체결한 브랜드 측에서, 의식주는 물론이고 차량을 비롯한 기타 사치품까지 모두 제공해 주곤 했었으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계산을 마친 송 이사가, 제 얼굴을 바짝 들이밀어 보이며 물었다.
“어라? 잠깐만. 대강 견적 내봐도 장난 아닌데?”
“뭐가요?”
“대체 얼마나 손에 쥐고 있는 건데?”
“노코멘트 할게요.”
“어쭈? 나한테까지 숨길 거야?”
이내 재승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간단히 힌트만 드리자면 반년 동안 수억 원을 썼는데도 세무사한테 혼났을 정도예요.”
“LVMH 쪽에서 소개시켜 줬다는 그 사람? 왜?”
“이 정도 지출로는 어림도 없대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닌데, 어쩌면 타국 땅에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을 건립하게 될지도 몰라요. 세금 감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송 이사가 멍한 얼굴로 재승을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 재승이 재차 덧붙였다.
“그러니까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마시고, 룩북의 퀄리티에만 신경 써주세요. 이번 시즌 월 플라워의 얼굴이 되어줄 화보들이잖아요?”
“이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또 몰랐지. 그런 고민이 있었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내가 돈 버는 데에는 어떨지 몰라도, 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이내 재승이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였다.
설령 자신의 수중에 들려 있는 현금이 아니었더라도, ‘무중력’이라는 테마는 어떻게든 지켜낼 생각이었다.
촬영 과정에서의 지출이 어떻든, 마케팅 쪽에서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만한 소스라고 확신했다.
굳이 자발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더라도 온갖 매체가 앞다퉈 가며 취재를 요청해 올 것이라 관망했던 탓이었다.
한차례 “어쨌든, 무슨 뜻인지 알겠어. 역시 우리 사장 시원해서 좋다니까?” 하고 이죽대 보인 송 이사가, 계속해서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참고로 말해주자면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야. 우리 쪽에서 먼저 룩북 테마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절대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촬영 팀을 꾸리고 있는 중이거든? 그런데도 반응이 상당히 폭발적이야.”
“음? 어떤 의미로 폭발적이란 거예요?”
“글로벌 원을 비롯한 명문 에이전시에 소속된 포토그래퍼들이 개런티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까,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오고 있거든.”
이내 재승이 곧장 격양된 투로 “상당히 희망적인 징조인 것 같은데요?” 하고 답했다.
개런티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꼭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을 포토그래퍼들 중 태반이 지나치게 높은 몸값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적어도 ‘패션화보 촬영’ 분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지 못할 인물들이었더라면, 아예 공고 소식 자체를 전해 듣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애써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 생각해 보자면, 탑급 포토그래퍼들이 물욕을 잊고 초연해질 정도로 매력적인 작업이란 뜻이지 않은가?
“어쨌든 오늘 오후 내로 지원 포토그래퍼들 이력사항이랑 포트폴리오 정리해서 메일로 첨부할게. 천천히 검토해 보고 세 명 정도로 추려서 전달해 주면 될 것 같네.”
재승이 고개를 끄덕여 보임과 동시에 “알겠어요” 하고 답하자, 송 이사가 제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오케이. 다시 달려보자고.”
* * *
다시 며칠이 더 흘렀다. 누군가가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끌고 다니는 것처럼,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일이 줄어들 법도 한데, 글쎄……?
집무용 탁상 위로는 아직도 온갖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 있는 상태였다.
이토록 수북하게 쌓여 있는 서류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숨이 절로 턱턱 막혀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양도 양이라지만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디자인 팀 소속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제출한 디자인의 도식들, 이번 룩북 촬영 스태프 직에 지원한 이들의 이력사항 및 필모그래피, 세계 각국의 모델 에이전시 측에 요청하여 받아낸 유명 모델들의 프로필에 이르기까지…….
한차례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인 재승이 타이레놀 두 알을 물과 함께 삼켜냈다.
일에 파묻혀 지내다시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도가 보이질 않는 느낌이었다.
하루가 24시간 밖에 되지 않는 사실이 이토록 애석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던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재승이 그렇게 한창 서류를 검토해보고 있던 찰나, 내선전화기가 요란하게 벨소리를 내보였다.
이내 재승이 제 시선을 손에 쥔 서류 위에 고정해 둔 채, 반대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마냥 무덤덤한 투로 “네, 말씀하세요” 하고 말해기 무섭게, 곧장 수화기 너머에서 답이 돌아왔다.
-사장님. 여섯 시 정각입니다. 늦지 않게 도착하시려면 슬슬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님은요?”
-방금 건물 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네. 바로 나갈게요.”
이내 재승이 검토하고 있던 서류를 도로 탁상 위에 내려놓은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무섭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 여기!”
다름 아닌 송 이사의 목소리였다. 송 이사는 비상등을 켜 둔 채 정차 중인 카니발 차량의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제 얼굴을 빼꼼 내민 채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이내 재승이 조수석 문을 열고 차량에 오르며 이죽거리는 투로 되물었다.
“요즘 얼마나 바쁜지 아시잖아요?”
“알지.”
“이런 일감은 사양이라니까요?”
“그래도 다들 해명받고 싶어서 미치겠다는데 어쩌겠어?”
이내 송 이사가 앞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 다독이듯 나긋한 투로 첨언했다.
“다들 난리도 아니라니까? 사장 일과도 중요하지만, 나 비롯해서 직원들 생각도 좀 해줘야지. 만약 오늘 회견 안 잡았으면 사무실 전화기에 불나는 건 시간문제였을 거라고. 차라리 오늘 기자회견에서 궁금증 좀 덜어주고 나면 당분간 잠잠할 거야. 하루를. 아니지, 몇 시간을 포기하고 몇 주간의 안식을 얻는 건데 이게 훨씬 남는 장사 아니겠어?”
한창 업무에 열중하고 있던 도중 급하게 지하주창으로 내려온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골든팰리스 호텔’에서 있을 기자회견 일정 탓이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쟈넬 그룹 측에서 ‘리’(Lee)가, 메인 디렉터인 칼 라거벨트의 서브 디렉터로 고용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시즌 준비를 시작하기 앞서 라인업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랄 수 있었으나, 발표로 인해 발생한 여파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월 플라워의 새 시즌 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거 아냐? 프리미엄 브랜드화를 노릴 거라고 했었는데…….] [뭐야? 한마디 말도 없이 번복? 월 플라워 이번 시즌 기대하고 있던 팬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쟈넬 정도 브랜드면 혹할 만한 곳인 것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두 마리 다 놓칠 수밖에 없을 듯.]위와 같은 부정적 내용의 게시물이 주를 이루는가 하면, 반대로 재승을 옹호하는 게시물들 역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려는 거라잖아. 능력이라면 이미 입증됐는데 무슨 상관?]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어차피 결과가 다 말해줄 거임.]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랑, 이재승 걱정 아닙니까?]단연 일반인들뿐 아니라 평론가들의 반응 역시 엇갈리고 있는 중이었다.
무모한 선택이라고 헐뜯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재승의 선택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고 두둔해 주는 이들 역시 더러 존재했던 것이다.
심지어 경쟁이 과열된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몇몇 유명 평론가들이 자신들끼리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예전에 자기가 알렉산더 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할 때, 집요하게 물어뜯었던 여자 평론가 기억하지? 결국엔 그 해에 발매된 전 상품을 일괄구매 했던 여자 평론가 말이야.”
한차례 “흠…….” 하고 침음을 흘려가며 기억을 복기해 보던 재승이, 끝내 손가락을 튕겨 보이고는 답했다.
“아아, 기억났어요. ‘에디 다나’를 말씀하시는 거 맞죠? 그런데 그 여자는 왜요?”
“그 여자 말이야, 지금은 자기의 열렬한 추종자가 됐던데?”
“무슨 뜻이에요?”
“자기한테 독설을 날린 모든 평론가들하고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다시피 하고 있는 중이거든.”
이내 재승이 피식 미소를 흘려 보이고는 답했다.
“실은 해프닝이 좋게 마무리된 뒤에도, 쭉 밥맛없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젠 아니에요.”
“그래?”
“네. 저한테 그럴 수 있는 권한만 있었다면 아마 올해 최고의 평론가상 후보로 지지했을 거예요.”
어쨌든 기자회견은 영 내키지 않는 일정이었다. 결과물을 내놓고 나면, 아니. 하다못해 단초만 제공해도 순식간에 바뀔 반응에 연연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뭐, 이미 잡힌 일정을 철회할 수도 없으니 굳이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던 카니발 차량이 호텔 앞에 도착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경호 인력이 투입되었다.
회견이 진행될 연회장 뒤편의 공실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약속된 시간에 맞춰 연회장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셀 수 없이 많은 카메라들, 그 옆면에 부착되어 있는 소속 매체를 알리는 스티커들, 웅성이는 소리, 연신 터지는 플래시 불빛.
연단 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재승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카메라 플래시 탓에 눈을 제대로 뜨고 있을 수가 없던 탓이었다.
이내 이런저런 질문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모두 예상 범주 내에 있던 질문들이었다.
현재 커뮤니티·웹진·평론가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는지, 어쩌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 신경전을 벌이던 칼 라거벨트의 서브 디렉터 직을 도맡게 된 것인지, 두 브랜드의 시즌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별 탈 없이 마무리할 자신이 있는지 등…….
재승은 조금이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 속전속결로 답을 뱉어낼 뿐이었다.
“물론 다 살펴보고 있습니다. 별다른 사건이 없을 때에도 종종 짬을 내서 저와 관련된 내용의 글들을 살펴보는 편이거든요.”
“칼이 제안했고, 저는 수락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애초에 저와 칼 라거벨트는 그저 서로의 ‘현재’를 위해 신경전을 벌였던 것뿐입니다. 이런 류의 악감정은 오래 존속될 수 없다는 성질을 띠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현재는 한 걸음만 지나쳐도 과거가 되어 버리니까요.”
“자신이 있었으니 두 브랜드의 시즌을 동시에 준비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겠죠?”
회견은 속도감 가득하게 진행되었고, 어느덧 서서히 막바지로 치달았다.
개중에는 신경을 건드리려는 의도로 준비한 듯 보이는 자극적인 질문도 있었으나, 재승은 재치 있는 답변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마지막 질문만을 남겨놓게 되었을 무렵. 재승에게 지목당한 기자가 쾌재를 부르고는, 곧장 조심스레 물었다.
“진부한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번 시즌, 월 플라워가 프리미엄 브랜드화에 성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내 재승이 재미있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제 턱을 살살 어루만져 가며 답했다.
“글쎄요? 결과는 아마 패션의 신만 알고 있겠죠?”
재승의 답이 끝맺어지던 찰나, 장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내 질문을 건넸던 기자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려 보이고는 되물었다.
“패션의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 보군요.”
짤막하게 “예.” 하고 답해 보인 재승이, 곧장 뒷말을 덧붙였다.
“지금 기자님께서, 패션의 신과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중이잖아요?”
말을 마친 재승이 윙크를 한 번 해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회장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재승의 뒷자리에 선 채로 회견 과정을 낱낱이 지켜 본 송 이사가, 이죽거리는 투로 중얼거려 보이고는 재승의 뒤를 따라나섰다.
“뭐? 회견 같은 불필요한 일정이 싫어?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는 것 같고만…….”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듯 보이는 스타성과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