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31)
블랙 라벨-230화(231/299)
블랙 라벨 230화
231. 초대장 폭탄
월 플라워의 사옥 내부에 자리한 직원 휴게실 안은 마냥 왁자지껄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족히 서른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함께 휴게실에 걸음한 일행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규정된 점심시간 이후 한 시간은 ‘낮잠 시간’이란 명칭의 자율 휴식 시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내에 자리한 이들 모두, 낮잠 시간을 활용하여 휴게실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휴게실은 정말 대박인 것 같아요.”
한 디자인 팀 직원의 말에, 곁에 앉아 있던 디자이너들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대고는 답했다.
“들어보니까 휴게실 내에 비치되어 있는 가구들만 족히 수억 원은 된다던데요?”
“아, 저도 그 게시물 봤어요.”
얼마 전 월 플라워와 관련된 게시물 한 개가 웹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바 있다.
스스로를 월 플라워의 직원이라 밝힌 인물 한 명이 사옥 내부 시설이나 복지에 대한 내용을, 사진까지 일일이 첨부해 가며 상세히 작성하여 게시했던 것이다.
1. 직원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마련한 휴게실 내부 비품들은 모두 최고급이며, 커피를 비롯한 음료 및 간식들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2. 직원들에게는 제휴를 맺은 심부름센터의 무료 이용권이 지급된다.
월 플라워의 직원들은 제휴 업체에 와이셔츠를 다리거나, 구입한 가구를 조립해 달라거나, 저녁 식사를 준비해 달라는 등의 자질구레한 업무를 모두 위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사소한 배려였다.
3. 휴게실과 같은 층에 마련된 ‘직원 헬스장’을 업무시간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시간에 쫓겨가며 건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또 업무가 막혔을 때 운동을 하며 잠시 환기시킬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배려였다.
4. 월 플라워의 택(Tag)이 부착된 제품이라면 종류를 막론하고 할인이 적용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5. 월 플라워 직원이 사망하게 될시, 향후 10년간 가족들에게 사망 직원의 연봉 절반이 해마다 지급된다.
그밖에도 영화감상실, 샤워실, 업무 관련 용품 구매 금액 전액 지원 등의 파격적인 복지 혜택이 수두룩했던 터라 웹 커뮤니티는 난리가 날 수밖에 없던 것이다.
– 와, 월 플라워. 하긴, 잊을 만하면 들려오던 이름이지. 직원들한테 저렇게 퍼주는 거 보면 돈 많이 벌기는 했나 보네.
– 경영 잘하네. 웬만한 국내 대기업들보다 훨씬 나은 듯.
– 딱 보면 모르냐? 해외 위탁 경영이겠지. 복지 내용이 딱 외국 대기업 느낌이잖아?
– 뭐가 됐든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대단한 거 아니겠냐? 너는 왜 그렇게 사상이 꼬여 있냐.
– 진짜 꿈의 직장 아니냐? 다시 태어나면 스펙 열심히 쌓아서 꼭 월 플라워 취직한다….
– 내가 월 플라워 직원이었으면 월급 받는 족족 옷 사는 데 다 쏟아붓느라, 저축 절대 못 할 것 같다.
– 월 플라워 다니는 친구 이야기 들어보니까, 사무실 자리 꾸미는 데에만 800만 원 넘게 썼다고 함. 전부 다 최신 장비로 맞추고, 영수증 처리….
디자인 팀 소속 디자이너들이 그렇게 한참 동안 특별하기 그지없는, 사내 복지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찰나.
원년 멤버나 마찬가지인 ‘추지훈’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려 보이고는 진중한 투로 말했다.
“열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스트릿 제품 만들어 팔던 때부터 지켜보고 나니 드는 생각이, 그러고 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정말 성공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작업속도 부터가 차원이 다르잖아요?”
이내 다른 디자이너들이 마냥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주일 만에 도식 수십 장을 그려낼 수가 있는 걸까요? 심지어 저희처럼 하루 종일 도식만 그리고 있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실 텐데….”
“더군다나 도식 ‘*퀄(*퀄리티)’도 완벽하던데요? 이런 거 보면 정말 재능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나 봐요.”
“브랜드 초창기 때부터 계셨던 분들 말씀 들어보면 원래 늘 이런 식이었다던데요? 시즌 우드보드 작성되면 사장님 혼자서 도식의 7·8할을 뚝딱뚝딱 그려내셨다고….”
이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재승의 업무 속도와 관련된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이유?
간단했다.
시즌 우드보드 작성이 완료되고, 컨셉이 정해진 지 딱 이 주일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한데, 오늘 디자인 팀 주간회의가 끝맺어지기 직전. 재승이 자신이 그려낸 도식 수십 장을 디자인 팀 직원들에게 투척했다.
웃는 얼굴로 ‘제가 그린 도식들인데, 제품으로 출시해도 무방할까요?’하고 물어가며 말이다.
평범한 디자인 팀 소속 디자이너들은 매일같이 출근하여, 하루 종일 골몰해도 한 시즌에 두세 벌. 많게는 열 벌가량의 도식을 그려내는 게 고작이다.
한데, 재승은 고작 이 주 만에. 그것도 심지어 혼자서, 이번 시즌에 출시될 제품 라인업의 절반 이상을 완성시켜 버린 것이다.
다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 * *
“시계 라인 룩북(Lookbook) 초안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이내 재승이 송 이사가 건네 준 서류들을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출시 및 판매가 임박해 있는 시계 제품들을 대표하게 될 이미지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잔뜩 집중한 채, 세세한 부분들까지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네, 괜찮은데요? 이대로 쭉 진행해보면 될 것 같아요.”
“
모든 연령층을 공략하고자 20대, 30대, 40대, 50대 모델을 남·여 두 명씩 고용하여 따로 촬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50대 독일 모델들이 촬영에 사진이었다.
커스텀 테일러를 차려입은 채, 웅장한 느낌의 고동색 원목 의자에 앉아 중후한 멋을 한껏 뽐내고 있었는데 시계 제품들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느껴졌던 탓이었다.
재승이 룩북 사진들을 살펴보는 데 여념이 없던 찰나.
송 이사가 “쯧.” 하고 혀를 차 보인 뒤,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벌써 이번 S/S시즌 도식 거의 다 끝냈다며?”
“아, 예. 오늘 저녁부터 샘플 생산 시작될 거예요.”
“하여튼 진짜 대단하다니까….”
“이번 시즌은 유독 일이 잘되던데요?”
“이번 시즌은 유독? 무슨 소리야? 매 시즌마다 이랬다고.”
송 이사의 말에 재승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화답해 보였다.
재승이 이번 시즌은 유독 일이 잘 되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지난 시즌들과 달리, 이번 시즌은 월 플라워 연필의 힘을 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실까지 구구절절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어쨌든 이제 S/S시즌 준비는 얼추 끝냈으니, 샘플 제작 완료되는 대로 시계 라인 런칭에만 집중해 볼 예정이에요.”
“그래, 잘 생각했어. 아무래도 기틀을 잘 잡아두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인 송 이사가, 제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끔 튕겨 보이고는 덧붙였다.
“아, 맞다. 파리 패션위크 측 관계자 통해서 전해 들은 소식이 하나 있거든.”
“뭔데요?”
“자기가 아주 좋아할 만한 소식이야. 다름 아니라, 이강준이 런칭한 ‘다이아몬드 룩(Diamond Look)’이 파리 패션위크 참가 자격을 획득했대.”
“예? 정말요…?”
“그래. 나도 처음엔 엄청 놀랐는데, 다시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딱히 크게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더라고.”
말을 마친 송 이사가 협탁을 손가락으로 “톡, 톡.” 두드려 가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선례가 있잖아? 프랑스 태생 브랜드 몇 개가 런칭 첫해에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올랐으니까.”
“하지만 다이아몬드 룩의 오너 디자이너는 강준 씨잖아요?”
“기업의 국적은 프랑스야. 애초에 투자 자본 중 70% 이상이 프랑스 쪽 자본이고.”
나머지 투자금 30%는 재승이 차명으로 투자한 금액이었다.
재승 역시 브랜드 ‘다이아몬드 룩’의 소유권을 지니고 있는 대주주 중 한 명인 셈.
재승이 이제야 알았다는 듯,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고 있던 찰나.
송 이사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딱히 외적인 요인에 의해 파리 패션위크 한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건 아니고, 공정한 심사 끝에 합격점을 얻어 냈다고 하더라고. 물론 이강준이 커리어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크큭.”
“강준 씨 커리어요?”
“그래. 사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우리도 자기 커리어 덕분에 쉽게 파리 패션위크에 끼어들 수 있었던 거잖아? 잘 생각해 보면 이강준 커리어도 만만치 않아. 월 플라워에 있을 때 제작한 히트상품만 몇 개인데? 조금만 뒤져보면 이강준이가 제작한 제품이 뭔지 다 나오잖아? 더군다나 자기 서브 디자이너로 딱 달라붙어 있었던 이력도 있고.”
“흠,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과연 그런 요인들이 정말 조금이라도 가산점이 됐을까요?”
말을 마친 송 이사가 의미심장한 투로 덧붙였다.
“사장이 최고들 중 한 명이 됐잖아. 그럼 사장 곁에 있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최고에 근접한 사람들로 인정받게 되는 거야. 당연한 이치잖아?”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상당히 낯 뜨겁고 기분 좋은 말이었다.
내가 최고가 되면, 내 주변 사람들 역시 최고의 근접해 있는 사람들로 인정받게 된다.
본래 명확하던 목표의식이 더욱 또렷해지게끔 만들어주는 말이었다.
이내 송 이사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이죽거리는 투로 덧붙이듯 말했다.
“어쨌든 이번 시즌은 정말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걸? 잘 따져본다면 이강준이는 사실 자기가 키운 디자이너나 마찬가지잖아?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서 밀리기라도 해 봐. 그만한 수치가 어디 있겠어? 크큭. 난 이만 간다. 고생 좀 더 해.”
“예, 예.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조언도 새겨들을게요.”
똑같이 이죽대는 투로 맞받아친 재승이, 다시금 제 집무용 탁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창 틈 사이를 아득바득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찬바람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문득 수년 전의 가을이 떠올랐다.
이젠 파리 패션위크급 디자이너로 성장하게 된 이강준과, 열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던 수년 전의 가을이.
기분 탓일까?
올 가을은 유독 반가웠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 * *
공장 라인의 체계가 잡히고, 유능한 마이스터들을 잔뜩 영입하는 데 성공한 탓일까?
도식을 넘겨준 시점으로부터, 샘플 제작이 완료되기까지의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고작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완성된 샘플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샘플이 도착하기 무섭게 디자인 팀 소속 디자이너 전원이, 사옥 내에 위치해 있는 ‘샘플 룸(Sample Room)’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착한 샘플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한데, 뭐랄까?
마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유명 브랜드의 매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고 해야 할까?
수십 명의 직원들이 기다란 진열대에 품번별로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 그 모습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던 탓이었다.
장내에는 술렁이는 소리가 연신 끊길 생각을 않았다.
직원들이 샘플 제품을 살펴보며, 저들끼리 이런저런 품평을 주고받고 있던 탓이었다.
이윽고.
직원들 틈바구니에 섞인 채, 샘플을 살펴보고 있던 재승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문을 열었다.
“전부 합격, 이대로 생산하면 될 것 같네요.”
직원들 역시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인지, 저마다 한마디씩 이런저런 긍정적 의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역시 무조건 터질 것이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정립되는 역사적인 시즌이 될 것이다. 이제 샘플이 나온 게 고작이라지만 벌써부터 파리 패션위크가 기대된다.
그밖에도 기타 등등….
가장 가까운 곳에 놓여 있던 큰 숙제, S/S시즌에 대한 고민을 한 시름 덜어놓을 수 있는 순간의 일이었다.
이내 재승이 시계 라인 런칭 관련 업무를 위해 샘플 룸을 벗어나, 제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샘플 룸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상기된 얼굴의 송 이사가 들어섰다.
“마침 다들 모여 있네. 자! 일동, 다들 위대하신 우리 사장을 향해 박수!”
“다짜고짜 웬 박수예요? 그리고 위대하긴 뭐가 위대해요? 북한도 아니고….”
직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박수 세례를 보내고 있던 찰나, 송 이사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만류해 보이고는 재차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직원 여러분, 방금 전 사장 앞으로 해외 디자인 협회 시상식 초대장이 무려 네 장이나 도착했습니다. 하나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 초대장, 또 하나는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 초대장, 또 하나는 스페인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 초대장, 마지막은 영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 초대장!”
송 이사의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장내에 큰 술렁임과 환호성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 초대장을 받았다는 뜻인 즉, 어느 부문이든 수상 후보로 등재되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재승이 마냥 멍한 얼굴을 한 채,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찰나.
“사장, 조심히 잘 다녀오고! 올 때 메로나, 가 아니라….”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인 송 이사가, 재승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트로피랑 상패! 최대한 많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