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38)
블랙 라벨-237화(238/299)
블랙 라벨 237화
238. Trophy Collecting (3)
이번 2015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이 진행될 호텔 앞은,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포토 존 인근에서는 연신 플래시가 번쩍였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따금씩 오늘 행사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디자이너들, 혹은 시상식을 지켜보기 위해 걸음한 유명인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그 소리가 더욱 증폭되기 일쑤였고 말이다.
이윽고.
호텔 정문 앞에 멈춰 선 고급 세단 차량의 뒷좌석에서 말끔한 턱시도 차림의 동양인 남성이 내려섰고, 연이어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백인 여성 한 명이 그 뒤를 따라 내려섰다.
연일 화제를 낳고 있는 천재 디자이너 ‘리(Lee)’와, 그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는 탑 모델 ‘애슐린’이었다.
두 사람의 등장은 장내에 큰 파란을 불러오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듯 보였다.
“리, 현재 여덟 개 부문의 수상 후보로 등재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계신지 여쭤 봐도 괜찮을까요?”
곳곳에서 비슷한 내용의 질문이 쇄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내 가드(Guard)들의 에스코트에 따라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던 재승이, 호텔 정문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걸음을 멈추었다.
기자들이 숨을 죽인 채 재승을 바라보고 있던 찰나, 재승이 짤막하게 묵례를 한 번 해 보이고는 다시금 호텔 내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내 기자 몇몇이 아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 입맛을 다셔보였으나, 그것도 잠시뿐.
연이어 차량 한 대가 들어서자, 기자들의 손이 다시금 마냥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따름이었다.
* * *
호텔 로비에 들어선 뒤, 재승과 애슐린은 연회장으로 향하기에 앞서 로비 중앙부에 마련된 포토 존에 올라서야 했다.
포토 존에 올라선 재승이 제 옷맵시를 한 번 가다듬고, 미소를 지어보이기 무섭게 곳곳에서 플래시 불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한창 촬영이 이어지고 있던 그때, 애슐린이 재승의 귓가에 대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리, 만약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 알았더라면 지난주부터 금식을 했을 거야.”
짧은 포토타임을 끝마친 뒤, 두 사람은 다시금 가드들의 뒤를 따라 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장신의 가드 한 명이 손수 연회장의 문을 열어주기 시작하던 찰나.
끼이익-.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문 틈 사이로 연회장 내부의 광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널찍한 연회장 안, 원형 테이블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다닥다닥 배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물론 테이블을 꿰차고 앉아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한 이들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장내에 있는 이들 중 태반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혹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얼굴 몇 번은 봤을 법한 인물들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 한 명이 다가와서는, 재승과 애슐린에게 배정된 자리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배정받은 원형 테이블에는, 재승과 친분이 꽤나 두터운 편에 속하는 몇몇 인사들이 앉아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드디어 주인공께서 등장하셨군.”
아르도 회장이 포문을 열자, 그의 곁을 지키고 앉아 있던 베르타이머 회장이 반가움이 잔뜩 서린 투로 인사를 건네왔다.
“리, 오랜만이군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내 재승이 한 자리를 꿰차고 앉으며 의아하다는 듯 물음을 건넸다.
“두 분 다 잘 지내셨나요? 그나저나, 자리는 운에 의해 배치된 건가요? 아니면 두 분의 능력에 의해 배치된 건가요?”
재승의 물음에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아르도 회장이, 어깨를 들썩여 가며 답했다.
“크큭, 그냥 자네 근처에 앉을 수 있게끔 해주면 좋겠다고 의견을 표출하긴 했네. 그래야 스크린을 한 번이라도 더 탈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재승이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내저어대고 있던 찰나, 베르타이머 회장이 턱짓으로 천장부를 가리켜 보이고는 덧붙였다.
“리, 바로 위를 한 번 올려다보시겠습니까?”
한차례 “예?” 하고 되물어 보인 재승이 곧장 천장부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 확인해 보았으나, 글쎄? 딱히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재승이 마냥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자, 베르타이머 회장이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곧장 말을 이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자리는 ‘롱핀(Long-pin)’ 조명이 설치된 바텐의 바로 밑이지 않습니까? 혹시 리에게 롱핀 조명을 많이 쏴줘야 하니, 주최 측에서 영리하게 자리 배치를 한 것은 아닐지….”
여러 시상식들이 으레 그렇듯, 수상자가 호명되는 순간 장내의 모든 조명들이 암전된다.
그러고는 곧장 수상자에게 한 줄기 롱핀 조명을 쏴준다.
수상자를 더욱 돋보이게끔 만들어주기 위한 기본적인 연출인 것이다.
이내 아르도 회장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되물었다.
“흠, 내 생각에는 꽤나 그럴싸한 분석인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재승이 무어라 제 의견을 꺼내놓으려던 찰나, 돌연 장내에 ‘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장내의 모든 조명이 암전되었다.
갑작스레 내려앉은 어둠 속, 한차례 큰 술렁임이 일었다.
다들 이제 곧 2015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이 시작되리란 사실을 예감한 탓이었다.
이윽고, 무대 바로 앞 열에 설치된 조명 몇 개가 연회장의 연단을 비춰주기 시작했다.
연단 위에는 말끔하기 그지없는 차림의 진행자가, 큐시트 한 장을 손에 꼭 쥔 채 올라서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해 먼 걸음 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본래 이와 같은 행사들이 그러하듯, 한참 동안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진행자는 우선 협회의 연혁이나 설립 취지 등을 소개했고, 또 후원사 및 후원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으며, 마지막으로 이번 시상식의 규모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 사전에 안내해 드린 대로 본 시상식은 각국 몇 개 방송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될 예정이며….
재승이 연단 쪽에 제 시선을 고정해 둔 채, 진행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찰나.
손에서 돌연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애슐린이 재승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덕이었다.
그 온기는 최고의 진정제였다. 연신 두근거리던 가슴이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차례 숨을 걸러 보인 진행자가 손에 쥔 큐시트를 내려다보며, 전보다 사뭇 진중함이 느껴지는 투로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그럼 시상식의 막을 열게 될, 첫 번째 부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올 한 해 있었던 컬렉션 무대 및 패션위크 무대에서 가장 화려하고, 예술적인 무대를 선보인 디자이너 및 브랜드에게 주어지는 ‘뷰티풀 퍼포먼스 부문’입니다. 수상 후보로 등재된 디자이너 및 브랜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수상 후보는 크리스찬 디옴의….
이내 연단 뒤편으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수상 후보자들의 이름 및 소속 브랜드 리스트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목록에는 재승과, 재승의 브랜드인 월 플라워 역시 포함되어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 3. Wall flower – ‘Lee’ ]이제 겨우 첫 번째 부문의 수상 후보자 발표가 시작되었을 뿐인데, 시간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던 가슴이 다시금 두근대기 시작한다.
이내 재승이 애꿎은 제 허벅지를 꽉 쥐어 보였다.
사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고, 진행자는 정해진 사실을 순차적으로 알려주는 것뿐이지 않은가?
조바심을 내봐야, 욕심을 부려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즐기자. 그냥 평범한 행사에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즐겨 보자.
그렇게 두 눈을 꼭 감은 채, 애써 자기 최면을 걸고 있던 찰나.
“…리? 괜찮아?”
애슐린의 부름에 재승이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장내가 마냥 어두컴컴해져 있는 상태였다.
오직 딱 한 곳, 자신이 앉아 있는 원형 테이블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제야 재승이 자신이 앉은 자리에 롱핀 조명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라? 그러면…?’
그때, 진행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2015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협회 시상식, ‘뷰티풀 퍼포먼스 부문’ 수상자입니다. 월 플라워의 리, 앞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상황을 인지한 재승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연단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등 뒤편에서 아르도 회장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리, 일단 트로피 한 개는 지켜내는데 성공했군그래.
재승이 자리에서 일어섬과 동시에 웅장한 느낌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스크린을 통해 월 플라워의 파리 패션위크 장면 일부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 리의 월 플라워는 이번 2015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패션쇼 무대에, 최초로 ‘마술’ 퍼포먼스를 도입시키며 많은 이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최 측은 이를….
연단 위에 첫 발을 내딛은 재승이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패와 트로피를 건네받은 뒤, 곧장 스탠딩 마이크 앞에 얼굴을 슬쩍 가져다 댄 채 말했다.
– 우선 월 플라워의 VMD팀 직원분들, 또 팀을 이끌고 있는 광민 씨. 이번 쇼를 기획하는데 있어 가장 크게 기여해 주신 카이 그린께 영광을 돌립니다.
말을 마친 재승이 묵례를 한 번 해보인 뒤, 무대 아래를 향해 내려서려던 찰나.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금 스탠딩 마이크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재차 한마디를 덧붙였다.
– 그런데, 혹시 앞으로 일곱 번이나 더 올라와야 하는 건 아니겠죠?
이내 장내에 한차례 은은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한 사람쯤은 눈살을 찌푸릴 법한 자극적인 멘트였으나, 글쎄? 본래 실력이 보증된 자의 거만함은, 자신감으로 포장되게 마련이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건네 보인 재승이 연단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한편, 그 시각. 서울은 이제 막 새벽 네 시 무렵에 들어선 상태였다.
늦었다고 보면 늦은, 또 이르다고 보면 이른 시각.
재승의 가족들은 모두 하나같이 TV 앞에 모여 앉아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 대열에는 송 이사까지 섞여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송 이사가 대동한 통역사가 화면 속 재승이 트로피와 상패를 끌어안은 채 꺼낸 말을 통역해 주자, 송 이사가 “푸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려 보인 뒤 덧붙여 말했다.
“재승이 녀석, 혓바닥 미끌미끌해진 것 보니 이제 긴장 좀 풀렸나 본데요?”
이내 재승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차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생 승희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괜히 이죽거리는 투로 물음을 건넬 따름이었다.
“이사님. 우리 오빠 저렇게 재수 없이 구는데, 안티 팬 엄청 많지 않아요?”
“일단 내가 두 눈 뜨고 살아 있으니까, 한 명은 있는 셈이지.”
익살스레 답해 보인 송 이사가 한차례 키득거려 보이고는 다시금 TV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써 덤덤한 척하고 있었으나, 손안은 이미 땀으로 흥건해진 상태였다.
재승이 부디 8관왕을 석권하며 경이로운 기록을 수립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매출 증진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냐? 아니다. 이제 매출 따위야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실은 오히려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재승이 더욱 많은 것을 이뤄내는 장면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램스킨 원단을 구입하고 싶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꼬맹이가, 파리 패션계의 전설이 되는 장면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후….”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인 송 이사가, 애써 덤덤한 표정을 한 채 재승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오늘 아침 밝는 대로, 거실 진열장 한 개 놔드리겠습니다. 재승이 녀석, 트로피에 상패에 잔뜩 들고 올 텐데 이 정도로는 턱도 없겠네요.”
송 이사가 긴장감만 가득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건넨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화면 속 진행자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그럼 다음 부문입니다. 다음은 ‘프랑스 패션 발전 공헌 부문’ 수상입니다. 수상 후보로 등재된 브랜드 및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