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41)
블랙 라벨-240화(241/299)
블랙 라벨 240화
241.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2)
“것참, 대진운이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인 거야? 저번에는 맨 첫 번째 순서더니, 이번엔 맨 마지막이라고…?”
괜히 퉁명스레 말해보인 송 이사였으나, 글쎄?
연신 웃음이 새어 나오려 하고 있는 것인지, 광대뼈가 연신 들썩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컬렉션 일자를 시작으로, 시간대, 심지어 무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사장, 그나저나 우리 바로 앞 순번이 ‘*다이아몬드 룩(*Diamond Look)’이네?”
“네. 맞아요. 이 정도면 강준 씨도 대진운이 꽤 많이 따라준 편인 것 같네요.”
“본래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잖아? 데뷔 무대부터 고역을 치러서야 쓰나.”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재승이 카페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시간대의 카페는 생각 외로 북적일 따름이었다.
두 사람 사이로 침묵만 흐르기를 잠시.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조금씩 들이켜 대던 송 이사가, “아. 맞다.” 하고 중얼거려 보이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 번 확인해 봐.”
말을 마친 송 이사가 손에 쥐고 있던 제 스마트폰을 재승에게 건네주었고, 재승은 곧장 건네받은 휴대폰 화면 위로 나타나 있는 인터넷 페이지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송 이사의 휴대폰 액정 위로 나타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모 브랜드의 ‘룩북(Lookbook)’ 일부였다.
한데, 어떤 이유 탓이었을까? 타 브랜드의 룩북 사진을 훑어보고 있는 재승의 표정이, 차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어둡게 물들어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꽤 괜찮지?”
송 이사의 물음에, 재승이 “아뇨.” 하고 답해 보이고는 덧붙였다.
“끝내주는데요?”
지금 자신이 살펴보고 있는 디자인들은, ‘꽤 괜찮다’는 정도의 말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유행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모두 꾹꾹 눌러 담아낸 트렌디한 디자인들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유행과 상업적 요소만을 좇아 제작한 느낌은 또 아니었다.
놀라운 수준의 재치를 발휘하여 클리셰를 비꼬고 있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왜일까?
분명 처음 보는 생소한 브랜드의 디자인들이다. 몇몇 제품들에 기입되어 있는 브랜드 로고조차 마냥 낯설기만 할 따름이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재승이, 제 눈썹을 한 번 튕겨 보이고는 되물었다.
“다이아몬드 룩?”
재승의 물음에 송 이사가 제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끔 튕겨 보이고는 답했다.
“빙고.”
이내 재승이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려보이고야 말았다.
설마 이강준이 이토록 견고한 디자인 라인업을 준비해 두었으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던 탓이었다.
물론, 이강준이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서, 죽을 쑬 것이라고 예상치는 않았다.
그의 기량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더러,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이강준은 국내 탑5 안에 꼽힐 만큼 탄탄한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자신이 목도한 디자인들은 ‘반성’을 느끼게끔 만들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언가가 심장을 살짝 옥죄고 있는 것처럼, 전신에 긴장감이 깃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몇 번 이와 흡사한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그래. 떠올랐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은 자신이 회귀라는 기현상을 맞이하기 이전의 삶 속에서, 탑급 디자이너들이 출시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았을 때나 느꼈던 감정이다.
재승이 애꿎은 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던 찰나, 송 이사가 “쯧.” 하고 혀를 차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강준 말이야. 허무하게 생 로란 측 서브 디렉터 영입 건을 놓치게 된 뒤로 독기를 품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는데….”
“칼을 정말 제대로 갈고 있었네요.”
“그러고 보면 원래 재능이 충만하던 녀석이었잖아? 내 짧은 식견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마 이강준도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적지 않은 유명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네.”
이내 재승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덧붙였다.
“네. 제 생각에도 그래요. 이번 파리 패션위크를 기점으로 아예 인생 자체가 바뀌실 것 같은데요?”
“사장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괜찮은 수준이긴 한가 보네.”
잠시간 허공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신중히 골라내던 재승이, 테이블 위에 내려둔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검지로 휙휙 빠르게 내려대며 답했다.
“해봐야 룩북 일부일 뿐이잖아요? 저희가 늘 그랬던 것처럼, 주력 디자인 라인업은 꽁꽁 숨겨둔 상태이지 않겠어요?”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손에 쥐고 있는 모든 패를 꺼내 들고 무력을 과시하는 브랜드가 어디 있겠는가?
한차례 “하긴….” 하고 중얼거려 보인 송 이사가, 눈을 게슴츠레 떠 보인 채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흠, 솔직한 평가가 궁금한데? 자기가 보기에는 어때? 이번 시즌 이강준의 다이아몬드 룩이, 우리 월 플라워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수준인 거야?”
다시 한번,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하고 말해 보인 재승이, 잠시 뜸을 들인 뒤 재차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파리 패션위크에 참가한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경쟁 브랜드가 아닐까 싶은데요?”
명백한 진심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예정되어 있던 많은 이들이 순차적으로 해결되기 시작했다.
일단 LVMH 그룹 휘하의 백화점 브랜드 측에서 진행했던, ‘월 플라워 시계 사전 예약 판매 행사’ 역시 성공적으로 끝맺어졌다.
행사가 진행되었던 하루,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작 아홉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무려 12,000개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 크하하! 리(Lee), 이 정도 매출이라면 ‘의류 사업’ 쪽에서 살짝 힘을 빼도 되겠는데?
행사 당일 저녁 무렵, 아르도 회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기 무섭게 들었던 말이었다.
수백 년 이상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프리미엄 시계 브랜드들 중, 가장 또렷한 대중성을 띠고 있는 ‘R사’의 한 해 총 생산량이 50만 개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번 사전 예약 판매 행사의 결과는, 신생 브랜드나 마찬가지인 월 플라워에게 있어 대단한 쾌거라 단언할 수 있는 수준임이 분명했다.
덕분에 송 이사만 잔뜩 바빠진 상황이랄 수 있었다.
브랜드 하우스와 관련된 업무들을 처리하는 와중에, 시계 제품들의 원활한 생산·유통을 위한 시설 증진을 위해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잡고 있어야 할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뿐 아니라, ‘브랜드 하우스’ 리모델링과 관련된 사항들 역시 일사천리로 해결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때? 라인업 한 번 끝내주지 않아?”
송 이사로부터 건네받은 서류를 들여다보던 재승이, 저도 모르게 “허….” 하고 탄식을 흘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다름 아니라 이번 리모델링 작업을 위해 초빙한, 각계 유명 아티스트들의 이름과 계약 조건이 잔뜩 적혀 있던 탓이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스토어 건축가인 ‘필립 핏’을 시작으로, 설치예술가 ‘리우 콰테’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마이스터들에 이르기까지….
예산을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좋다고 말했더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써대고 있는 중인 듯했다.
재승이 한 손을 들어 올려서는 지끈거리는 이마 위에 얹어보이자, 송 이사가 브랜드 하우스 1층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의자 한 개를 꿰차고 앉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결과만 잘 나오게끔 할 수 있으면 얼마를 써도 좋다더니, 설마 아까워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닌데, 예상했던 것보다 지출이 클 것 같기는 하네요. 시공비용은 별도잖아요?”
한차례 “그야 당연하지.” 하고 답해 보인 송 이사가, 제 어깨를 한 번 들썩거려 보이고는 덧붙였다.
“일단 라인업이 탄탄하니까 결과물이야 보증된 셈 아니겠어? 그리고 아까워할 것 없어. 페이로 지급되는 금액들이, 사실 잘 따져보면 마케팅 비용의 일환일 테니까 말이야.”
“마케팅 비용의 일환이요?”
“그래. 완공되고 나서 쏟아져 나올 브랜드 하우스 관련 기사 및 칼럼들을 상상해 봐. 엮기 좋아하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국내 매스컴에서 몇 번 회자되고 나면 파리 필수 관광명소로 꼽힐지도 모를걸?”
이내 재승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지출이라지만, 확실히 송 이사의 말대로 아까워할 만한 지출은 아닌 듯했다.
고용한 아티스트들의 페이 속에는 브랜드 하우스의 ‘스토리’와 ‘분위기’, 또 이런저런 ‘이슈거리’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 역시 포함되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브랜드 하우스 1층은 개방하는 게 어떨까 해. 월 플라워 제품을 착용하고 있거나, 전 세계 어느 매장의 영수증이든 상관없이 구매 영수증을 소지하고 있는 고객에게는 무료로 커피를 비롯한 다과와 공간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물론 건물 2층부터는 직원들의 업무 공간이니 철저히 출입을 통제하고.”
말을 마친 송 이사가 “자기 생각은 어때?” 하고 물음을 건네왔다.
“나쁘지 않은데요? 폐쇄적인 느낌의 신비주의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덤덤한 투로 답해 보인 재승이 널찍한 브랜드 하우스의 1층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본래 타 브랜드의 브랜드 하우스 1층은 지키고 있는 가드 몇 명이나, 인포메이션 데스크의 직원 몇 명이 전부인지라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송 이사의 아이디어대로 진행하게 된다면 어떨까?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지니고 있는 고객들로 북적이는 로비.
문이 열려 있는 시간만큼은 끊임없이 풍기는 원두 향 등.
모르긴 모르더라도 마냥 휑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듯했다.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던 재승이 “아.” 하고 작게 중얼거려 보인 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맞다. 리허설 장면 촬영한 녹화파일 챙겨왔어요.”
“그래? 얼른 보여줘 봐.”
송 이사의 재촉에 재승이 제 맥북을 꺼내 들어서는,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현재 송 이사는 이번 파리 패션위크 관련 업무에는 아예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무대 진행 과정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이윽고, 재승이 바탕화면에 놓여 있던 동영상 파일을 실행시킨 뒤 곧장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송 이사는 영상이 시작됨과 동시에 송 이사가 반들거리는 눈을 한 채,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고 말이다.
이윽고, 수십 분 남짓한 런타임(Runtime)이 모두 끝나고 영상이 끝맺어지던 찰나.
송 이사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엷게 떨리는 투로 되물었다.
“이 정도면 올해에도 1등 타이틀 지켜낼 수 있겠는데…?”
이내 재승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려 보이고는 답했다.
“전 원래 1등 아니면 안 하는 편이에요.”
한차례 “뭐야?” 하고 되물어 보인 송 이사가, 미간을 팍 좁힌 채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는 이강준 다이아몬드 룩 때문에 잔뜩 움츠리고 있더니, 이제 결과 좀 나오니까 기 좀 살았나 보네.”
“저희 쪽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꼽아보자면 다이아몬드 룩이겠지만, 이번 파리 패션위크 참가 브랜드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꼽아보자면….”
잠시 말끝을 흐려 보인 재승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당연히 우리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