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56)
블랙 라벨-255화(256/299)
블랙 라벨 255화
블랙 라벨 외전 7화
재승이 출연한 프랑스의 토크 쇼인 르 그랑 주르날이 방영된 이후….
[ 복귀 이후 르 그랑 주그날에서 처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리(Lee), 칼럼니스트를 향한 파격적인 도발에 장안의 화제. ] [ 리 曰 “제 실패를 확신하고 계신 여러분께서는 뭘 거시겠습니까?”, 반면 칼럼니스트들은 아직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 중…. ]온 세상이 토크 쇼에서의 발언과 관련된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스르륵-.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도 인터넷 뉴스 페이지는 온통 그 이야기로만 꽉 채워지다시피 한 채였다.
“좋아….”
집무실에서 관련 기사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서 훑어보던 재승이 만족스럽다는 양 제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댔다.
역시 돈만 한 땔감이 없다.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 지켜보는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한화로 110억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하겠단 약속했다.
제 실패를 점치던 칼럼니스트들과 평론가들은 하루아침 만에 모조리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양 침묵을 이어나갔고….
[ 리가 돌아오니까 마냥 조용하던 패션계가 떠들썩해지는 거 같군. ]└> [ 동감이야, 역시 어느 업계든 스타 플레이가 한 명씩은 필요해. ] [ 트래쉬 토크라고 손가락질하는 놈들도 있던데, 나는 흥미진진해서 좋기만 하더라. ]
└> [ 동감이야, 더군다나 트래쉬 토크를 먼저 시작했던 건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들이잖아? ]
└> [ 막상 리가 토크 쇼에 출연해 천만 달러를 베팅해 버리니까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거지? ]
└> [ 아무 근거도 없이 리(Lee)의 실패를 점치다가, 일이 커지고 나니 부담스러워진 거 아닐까? ]
└> [ 아마 머리 아플걸? 내기가 성립되려면 꼭 상응하는 무언가를 걸어야 할 거 아냐? ]
└> [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도 펀딩이라도 진행해서 이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걸어야 하는 거 아냐? ] [ 리가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니까 다들 겁먹은 거야. ]
└> [ 상대방이 저렇게까지 승리를 확신하면 나 같아도 불안하겠어. ]
└> [ 비겁하고 말만 많은 평론가, 칼럼니스트 놈들 말 좀 해보라고! ]
대중은 그런 그들을 꼬집어댔다.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인터뷰는 세계 각국에 송출됐고….
“순식간에 판이 커졌네.”
모든 관심과 이목이 아직 성립되지 않은 재승과 평론가들 사이의 내기로 집중된 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패션 위크와 월플라워의 흥망성쇠에 집중되었다 볼 수 있었다.
“리.”
그때 비서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너무 극단적인 전략 아닐까요?”
“어떤 점이요?”
“당장의 관심과 이목은 좋지만….”
그녀는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경우를 꽤나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대중을 실망시킨다면 내기로 지출한 비용은 둘째 치고, 브랜드의 이미지도 심각하게 훼손될 여지가 있다고 보이므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슈가 됐다.
덩달아 기대도 커졌겠지.
만약….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와중에 내가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모두가 기다린 월플라워의 제품이 형편없다면?
모든 일이 그녀가 우려하고 있는 대로 진행될 터였다.
내기의 승패와는 별도로 브랜드의 이미지는 추락하겠지.
한 번 추락한 브랜드의 이미지는 회복이 어렵다.
“만약 내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기부를 약속한 천만 달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 수백 배의 손해를 입을 수도….”
그 말에 재승이 답했다.
“하지만 모두 제가 패배했을 때의 일이겠죠.”
“예….”
“참고로 저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이번 역시 마찬가지라 확신했다.
* * *
매거진 ‘패션 레볼루션’은 전 세계 각국에서 상당한 매출을 기록 중인 잡지사였다.
한편.
그런 패션 레볼루션의 편집부 소속 일원들은, 얼마 전 방영된 TV쇼로 인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어쩌죠?”
근래 여러 매거진 사이에서는 리의 흥망성쇠를 점치는 칼럼을 적는 게 유행이었다.
뭐랄까.
너도나도 ‘리’라는 이름이 지닌 가치를 이용해서 쉽게 이목을 끌어왔다고 해야 할까?
‘그래, 분명 그랬지….’
본래 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포그 매거진을 비롯한 몇 군데를 제외하면 전부 악평을 쏟아냈다.
한데, 일이 단단히 틀어졌다.
여타 자존심 센 패션 디자이너처럼 패션 위크까지 침묵하리라 생각한 리가 공격적인 대응을 펼쳤고.
“여론이 뒤집혔습니다.”
모든 대중이 리(Lee)를 광적으로 응원하고, 칼럼니스트 및 매거진에 돌을 던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요….”
당장 사과문이라도 띄우지 않으면 매출 하락으로 직결될 만큼 격렬한 비난이 쏟아지고만 있던 것이다.
특히.
리에 대한 칼럼을 주야장천 써낸 패션 레볼루션의 칼럼니스트의 경우 더욱 큰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불안하단 증거겠죠.”
그때 회의실 책상 한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짙은 눈썹에 앙다문 입만 놓고 보더라도 고집이 상당히 세 보이고 성미가 사나워 보이는 인물이었다.
“정말 이번 시즌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토크 쇼에 출연해 이렇게 이목을 끌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적절한 수준의 대응을 하더라도 무방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대로 주도권을 빼앗길 순 없으니까요.”
그는 무수한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중에서도, 리에 대한 악평을 가장 많이 쏟아 냈던 조나단 제이였다.
“이런 진흙탕 싸움이라면 넌더리가 날 정도로 해왔으므로 잘 압니다.”
본래 신랄한 비평가로 정평이 난 그가 확신에 가득 찬 투로 말하자, 편집장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되물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방식의 대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내 제이가 답했다.
“패션계는 유행과 동향에 상당히 민감한 곳이지 않습니까?”
“예, 아무래도….”
“리는 그런 패션계에서 무려 수년간 도태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이번 쇼의 흥망성쇠는 보나마나 처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그가 덧붙였다.
“어차피 승리가 확실한 싸움이니 어떤 조건을 걸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말에 회의에 참석한 매거진 측 편집부 직원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여러분께서 정 겁이 나신다면야 이번 일에 대한 모든 리스크는 제가 짊어지더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럼….”
“만약 월플라워가 이번 패션 위크에서 형편없는 결과를 선보인다면 천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더군요.”
그가 덧붙였다.
“아쉽지만 제게는 그 만한 액수의 ‘현금’을 기부할 재력이 없으므로, 노동력을 섞어야 수평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 말에 편집장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베팅?’
비록 당장은 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으레 패션계라는 곳은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곳이 아니던가?
그런 리가 베풀고 있는 선한 영향력 자체를 두고, 베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게임으로 치부하는 게 꽤나 아니꼬운 까닭이었다.
“노동력을 섞겠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내 조나단이 거들먹대며 답했다.
“일단 제가 패배한다면 각각 십만 달러씩 도합 열 곳에, 총 백만 달러가량의 현금을 기부하도록 하죠.”
한화로 11억가량의 현금을 기부하겠다는 뜻이었다.
패션 칼럼니스트인 그로서는 꽤나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 재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또, 기부처마다 각각 3개월씩. 총 30개월간 사회봉사를 진행하겠다는 공약을 거는 게 어떨까 싶군요.”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천만 달러는 물론.
2년 6개월의 시간을 건 셈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내 그가 답했다.
“물론입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어차피 이길 싸움인 걸요.”
그가 미소를 지어가며 꺼낸 말에 모두가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매거진은 잃을 게 없다.
모든 리스크는 본인이 짊어진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그럼 이번 칼럼을 통해 이에 대한 의중을 밝혀주시겠습니까?”
편집장이 되묻자 그가 답했다.
“매거진 표지에 실어보죠.”
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불안하지는 않았다.
조나단 제이는 확신했다.
‘어차피 이기는 싸움이다.’
몇 년이나 업계를 떠나있던 이가 혁신적인 작업물을 연달아 선보일 확률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만약 리가 미래에서 온 사람인지라 미래의 동향과 유행을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감각적으로도 앞서 있다면 또 모를까.
그 정도 공백을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자, 해봅시다.”
* * *
주사위가 던져졌다.
[ 악평으로 유명한 칼럼니스트 조나단 제이 曰 “리가 제안한 내기를 수락하겠다. 백만 달러 기부 및 3년 기부 약속.” ]조나단 제이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기부 의사를 밝히자, 여러 칼럼니스트들이 동참하기 시작했으며….
[ 매거진 퓨처 패션 역시 뒤늦게 내기에 합류, 패배 시 소외계층 천만 달러 기부 약속. ]덕분에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 문화평론가 피터슨 曰 “리(Lee)의 복귀로 인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잠자코 쏟아지는 기사를 살피던 재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불과 며칠 새에 판이 완성됐다.
“이 정도면….”
수십, 수백억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얻지 못할 마케팅 효과라 확신했다.
남은 일은 딱 한 가지.
이번 파리 패션위크 무대를 통해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쇼를 선보이는 것뿐이었다.
“이번 시즌 최종 라인업으로 선발된 도식을 잘 정리해 봤습니다.”
디자인 팀장의 말에 재승이 도식을 쭉 훑어봤다.
“좋네요.”
그러고는 꼼꼼히 살펴 본 서류를 잘 갈무리하며 덧붙였다.
“이긴 것 같네요.”
샘플을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도식만으로도 훌륭한 옷이 탄생하리라 확신했다.
만약 패션 위크 무대만 잘 구성한다면야, 이번 내기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리라.
“리!”
그때 마케팅 부서 직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고….
“다름 아니라 속보 때문에요….”
그 말에 재승이 되물었다.
“속보라니요?”
그 말에 마케팅 직원이 답했다.
“아르도 회장님께서 공식 발표를 하셨습니다.”
아르도 회장이라면 은퇴 이전에 재승에게 무수한 도움을 준 LVMH 그룹의 수장 격인 인물이 아니던가?
“회장님이 어떤 발표를….”
이내 마케팅 직원이 제 아이패드를 건네주었고.
“허.”
화면 위에 뜬 기사를 본 재승이 헛웃음을 흘렸다.
[ LVMH 그룹 아르도 회장 曰 “저울의 수평이 맞지 않는 베팅이라 생각된다. 원한다면 평론가들에게 돈을 빌려주겠다.” 발언 화제. ]아르도 회장이 가뜩이나 활활 타오르고 있던 불 위에 기름을 한바탕 끼얹은 채였다.
그때.
재승의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이, 돌연 “지이이잉-!” 하고 울려댔고….
“여보세요?”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 이런 고얀!
아르도 회장이었다.
“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 내 자네가 대체 언제쯤 내게 연락을 줄지 지켜보고 있었네.
“죄송합니다.”
– 됐네, 시즌 준비 때문에 바쁜 것 같아 기다렸네만….
그가 재차 덧붙였다.
– 오늘 저녁식사를 함께해 준다면 기분이 풀리지 않을까 싶군그래.
갑작스레 저녁 약속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