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58)
블랙 라벨-257화(258/299)
블랙 라벨 257화
블랙 라벨 외전 9화
아르도 회장과의 만남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재승은 모처럼 깊은 상념에 흠뻑 젖어들었다.
‘LVMH 그룹이라….’
대표적인 브랜드인 루이비톤즈를 시작으로, 로아베, 세리느, 펜시, 아밀리아, 푸지, 겐지, 도나 카렌스, 마크 제이콥, 토마스 블랙 등….
LVMH 그룹은 온갖 프리미엄 브랜드를 휘하에 두고 있는, 세계 최고 규모의 어마어마한 패션 그룹이랄 수 있었다.
단연 패션뿐 아니라 가죽 브랜드나 보석, 시계, 향수, 화장품, 주류, 심지어 자체적인 유통 라인마저 겸비한 그룹이었다.
현재 시가 총액만 하더라도 한화로 347조에 육박하며, 그룹 총 자본은 자그마치 4500조를 뛰어넘는 거대 기업인 셈.
‘그런 LVMH 그룹의 경영권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될 수도 있단 건가.’
전생의 재승이 동대문의 지하 작업실에서 만들었던 제품들 중 태반은 LVMH 그룹에서 출시한 제품의 ‘모작(模作)’이었다.
심지어 월플라워 역시 아르도 회장으로부터, LVMH 그룹으로의 인수를 한 차례 제안받은 이력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 LVMH 그룹의 4할 이상의 지분과 경영권이 정말 제 손에 들어온다면 디자이너로서 거둘 수 있는 최선의 성공일 터.
“돌아보면 칼도 자네를 선택했지.”
쟈넬을 이끌어온 명망 높은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역시 임종 직전에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칼….”
덕분에 쟈넬 그룹의 대주주 신분에 올랐고.
경영에 관여를 하지 않고서도 매년 막대한 수익을 기록해 왔다.
만약 LVMH 그룹마저 제 손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땐 쟈넬 그룹의 경영에도 박차를 가해 볼 생각이었다.
‘두 브랜드의 장점을 서로 나누되 아이덴티티는 지키는 방식의 경영이 가능할 테니….’
또한 제 브랜드인 월플라워 역시 막대한 수혜를 입게 될 터였다.
이를 테면….
LVMH 휘하 프리미엄 가죽 브랜드라든지 브랜드 쟈넬 특유의 원단을 원가에 구매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다음 세대 아이들 중 최고니까.”
아르도 회장의 말이 귓가에 나직이 울려댔다.
칼과 아르도 회장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중이다.
그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한편으로 박차를 가해야 했다.
리.
자신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리고 이끌어갈 준비를.
* * *
월플라워의 브랜드 하우스 로비에 무수히 많은 디자인 팀 직원들이 모였다.
“샘플이 나왔습니다.”
제작 발주를 넣은 이번 시즌 제품 샘플이 완성됐다.
재승은 꼼꼼히 마네킹에 입혀진 제품들을 쭉 살폈고.
“모두 합격입니다.”
전 제품에 합격점을 부여했다.
“이번 시즌 라인업에 합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F/W시즌의 아우터나 티셔츠, 팬츠와 슈즈 라인이 모조리 완성된 셈이었다.
메인 테마는 대자연.
기하학적인 문양과 추상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자연적인 모티브를 월플라워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이를 테면….
묵직한 색채로 그려낸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남성복 라인을 통해 곧 다가올 가을 겨울의 서늘함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고.
겨울 바다의 색감을 담아 역동적인 느낌과 더불어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 한껏 심혈을 기울인 제품 역시 구성된 채였다.
또 프랑스 알프스산맥과 케이프코드 해변을 모티브로 제작한 여성복 라인은 굴곡을 통해 지형과 고도를 표현해 냈다.
“시 에디션(Sea edition)라인 제품의 경우에는 모델들의 머리카락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연출을 가미하는 게 좋겠습니다.”
재승의 지시에 모든 디자이너들이 분주하게 하달받은 사항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발상인데요….”
몇몇은 재승이 즉흥적으로 떠올린 지시 사항에, 진심 어린 감탄을 거듭 연발할 뿐이었다.
“좋습니다….”
이로써 의류는 모두 완성된 셈.
“데드라인이 얼마나 남았죠?”
재승의 물음에 마케팅부서 직원이 손에 쥔 서류를 쭉 훑어보고는 낮게 말을 이었다.
“예정보다 보름 정도 빠르게 의류 제품의 라인업이 확보됐으니, 남은 기간 동안에는 무대 연출에 집중하는 게 어떨지….”
그 말에 재승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러고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월플라워의 *오뜨꾸뛰르(*고급 여성복) 제품 라인업과, 시계, 한정판 핸드백 출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좋겠습니다.”
이내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대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월플라워의 오뜨꾸뛰르 제품 같은 경우에는, 이미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실제로 칸을 비롯한 유명 영화제나 시상식 석상의 여배우들 중 태반이 월플라워의 오뜨꾸뛰르 제품을 착용한 채 등장했다.
고작 하루, 몇 시간 동안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수천만 원가량을 선뜻 지불해 주는 코어 구매층을 확보한 라인이었다.
가뜩이나 기한이 촉박한 이번 시즌 준비 기간에, 굳이 무리해서 변화를 주거나 새로운 제품을 선보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뜨꾸뛰르 라인도, 시계도, 심지어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가치를 입증받은 클래식 디자인 제품을 몇 개씩 확보했는데….”
그 말에 재승이 답했다.
“제가 은퇴한 이후 오뜨꾸뛰르와 시계,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 말인 즉 수년간 같은 제품을 선보이며 매출의 현상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군요.”
말을 마친 재승이 덧붙였다.
“이제 제가 돌아왔습니다.”
“예….”
“변화할 때가 됐단 뜻이죠.”
아르도 회장은 매출을 지표로 삼아 성공의 척도를 가늠할 것을 분명히 약속했으나….
‘고작 전년도 매출과 비교했을 때 미세한 성장세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그는 자신의 다음 세대로 혈육도, 다른 신진 디자이너들도 아닌 자신을 간택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LVMH를 이끌어 갈 자질을 갖춘 인재라는 사실을 더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 이렇게 촉박한 기한 사이에 선보인 코어 라인 제품들이 모두 성공을 거둔다면.
‘분명 마음 편히 이 비정한 업계를 떠나실 수 있으실 테니까.’
그때 한 디자이너가 말했다.
“기한이 촉박합니다….”
반면, 재승은 단호했다.
“제가 책임집니다.”
그러고는 다시금 로비에 모여 있는 모든 브랜드하우스 직원의 면면을 쭉 둘러본 뒤에 다시금 되물었다.
“명시한 오뜨꾸뛰르 라인 제품과, 시계,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은 전부 제가 직접 디자인을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덤덤히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은 해산입니다.”
* * *
한편.
“그게 무슨 소리야?”
한국 지사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송 사장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꾸준히 수입이 발생하고 있는 오뜨꾸뛰르, 시계, 핸드백은 또 왜 건드리겠다는 건데?”
이내 송 사장의 개인 비서가 어깨를 들썩이고는 나지막한 투로 답했다.
“저도 거기까지만 전달받은 터라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차례 “하긴….” 하고 중얼거린 송 사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는 우리 대표 속을 대체 누가 알겠냐만….”
곧장 집무실 탁상 앞에 앉아 꺼진 모니터의 전원을 켜자 뉴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 리 曰 “월플라워는 올해를 기점으로 삼아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날 것.” ]한 번 상의조차 거치지 않은 내용의 인터뷰가, 외신에 파다하게 퍼진 건 물론이고 이미 국내에까지 유입된 채였다.
“미치겠네….”
재승이 돌연 변화를 주겠노라고 선언해 버린 3개의 제품군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제품들이었다.
이미 천문학적인 액수의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는 제품군이므로, 매출 하락 신호가 보이기 전까지는 건드리지 않는 게 나을 터….
‘그때 가서 부랴부랴 신제품 출시를 고민해도 나쁘지 않을 텐데, 대체 뭐가 급해서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하려는 건지….’
평론가들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그런 것이리라 짐작했다.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다지만….
‘내심 부담됐겠지.’
이미 외신에 파다하게 보도되어 버린 사항을 뒤엎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송 사장이 재승의 의중을 묻고자 곧장 수화기를 들고는, 월플라워 브랜드 하우스로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의 통화를 걸친 후에야 우여곡절 끝에 재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반면, 재승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 마침 전화 잘 주셨어요.
“그게 무슨….”
– 메일 한 번 확인해 볼래요?
“무슨 메일?”
이내 송 사장이 마우스를 한 손에 움켜쥔 채, 연신 딸깍딸깍 버튼을 눌러댔고.
– 핸드백 신규 라인업 5종.
재승으로부터 도착한 메일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설마…?”
이윽고 수화기 너머의 재승이 낮게 말을 이었다.
– 네, 핸드백 라인은 일찌감치 끝내뒀습니다.
“벌써?”
– 이제 오뜨꾸뛰르 신제품 디자인 중이고요.
그 말에 송 사장이 탄식을 흘렸다.
“이런, 상대가 누구인지를 완전히 잊고 있었군.”
매년 파격적인 도식을 마치 기계로 찍어내듯 뽑아내던 대표였다.
이내 송 사장이 재승에게 받은 메일에 담긴 파일을 열람했고….
“미쳤군.”
아니나 다를까, 한눈에 보더라도 엄청난 매출을 안겨다 줄 디자인이 담긴 채였다.
– 어때요?
이내 송 사장이 답했다.
“대표, 나 이 핸드백 도식화가 왜 숫자로 보이지?”
극찬이었다.
* * *
“모쪼록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
말을 마친 재승이 다시금 탁상에 내려놓았던 연필을 집어 들었다.
– Wallflower.
은퇴 이후 다시는 사용하지 않고자 금고에 넣어두었던 연필이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금고에서 도로 꺼내 쥘 수밖에 없던 것이다.
연필이 재승의 손을 이끌었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은 빠르게 제품의 형상을 갖추어갈 따름이었다.
그렇게….
브랜드 월플라워의 코어 제품군 신상들이 거듭 새로 탄생 중이었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