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59)
블랙 라벨-258화(259/299)
블랙 라벨 258화
블랙 라벨 외전 10화
머지않아 다가올 파리 패션위크의 무대에서 선보일 F/W시즌 준비는 순풍을 만난 배처럼 순항 중이었다.
“신규 핸드백 제품 도식입니다.”
재승이 건네준 도식화를 확인해 본 직원들이, 하나같이 “맙소사” 하고 탄성을 흘렸다.
“정말 엄청나네요….”
재승이 이미 일정 수준의 매출이 유지되고 있는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 신상품을 이번 시즌에 기필코 선보이겠노라는 발표를 했던 때.
“이대로도 충분한데 굳이 왜….”
분명 모두가 반대했었다.
반면.
재승의 뜻은 완고했다.
“제가 책임집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다들 믿지 않았고.
리는 그 말을 실천해 냈다.
“우선 첫 번째 제품은 오직 최고급 가죽만을 사용해 제작한 도트백에, 월플라워만의 로고 패턴을 각인한 제품입니다.”
말을 마친 재승이 덧붙였다.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의 경우에는 기존 제품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게 관건이지 않겠습니까?”
월플라워의 핸드백 제품들은 여타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품군보다도, 몇 배는 더 비싼 가격으로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던가?
만약 이번 시즌 핸드백 제품군에 큰 변화를 준다면, 충성도가 높은 기존 고객들이 반발감을 느끼거나 이탈할 염려가 있었고.
그 점을 고려해 기존의 도트백과 비교했을 때, 더 나아졌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아예 ‘다른 시리즈’라는 인상을 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로 ‘루이비톤즈’를 시작으로 ‘쟈넬’이나 ‘헤르메스’ 같은 브랜드들 역시 고유의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신상품을 내놓는 식이고요.”
그 말에 디자인 팀 직원들이 모두 동감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고….
“기존 도트백 모델과 마찬가지로 월플라워의 핸드백에 막 입문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만든 시그니처 제품군입니다.”
이내 직원들이 도식화를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한마디씩 거들었다.
“네, 단순함 속에서 짙은 정교함이 느껴지네요.”
“기존 도트백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입니다….”
“더 나은 제품처럼 느껴지지 않아 마음에 듭니다.”
이내 재승이 손에 쥔 서류를 곧장 한 장 뒤로 넘겨가며 말을 이었다.
“자, 다음 제품입니다.”
다음 도식은 체인백이었다.
“다음 제품은 ‘앱송’ 가죽을 메인 텍스처로 삼아 제작하게 될 자그마한 사이즈의 체인백입니다.”
“흠, 앱송이라면 제작 공정에서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만….”
“네, 월플라워 브랜드 하우스의 *아뜰리에(*공방)의 마이스터분들이 수제작으로 제작해야 할 겁니다.”
말을 마친 재승이 재차 덧붙였다.
“실용성보다는 탐미성에 초점을 둔 채로 도식을 설계했고, 또 편의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앱송 가죽을 메인 텍스처로 선정하게 됐습니다.”
이내 디자인 팀 직원이 되물었다.
“리, 혹시 체인백의 각이 무너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인 건가요?”
한차례 “네, 정답입니다” 하고서 답한 재승이 곧장 설명을 이었다.
“체인백은 작고 아름다운 제품이 될 겁니다. 또 실용성은 뒤처져도, 나름대로 편의적인 제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순적이네요.”
“비상식적인 가격으로 판매 중인 자사의 프리미엄 핸드백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심리야말로 모순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재승이 재차 덧붙였다.
“단 월플라워의 체인백을 어깨에 멘 순간만큼은,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됐단 느낌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어떻게요?”
“애초에 월플라워 브랜드 하우스의 마이스터들이 수제작으로 제작하는 상품이므로 제작에 기여한 장인의 이름을 새길 겁니다.”
디자인 바깥에 존재하는 마케팅의 영역이었다.
“또 해당 상품군의 중고가 방어를 위해 제작 물량을 조절하고, 어떤 이유로도 제품을 할인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재고가 쌓인다면….”
“차라리 모두 불태워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출시가격보다 낮은 금액에 해당 제품이 판매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재승이 곧장 덧붙였다.
“비단 이 제품뿐만 아니라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제품은 물론이고 상위 트림의 제품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앞으로 월플라워의 제품을 구매하시는 고객분들은, 모두 제 가격을 치르거나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보죠.”
말을 마친 재승이 마케팅 부서의 팀장을 바라보며 명을 하달했다.
“월플라워의 새로운 *엠버서더(*Ambassador)가 되어줄 셀럽을 몇 명 점찍어 뒀습니다만.”
“네?”
“새롭게 출시된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을 홍보해 줄 전 세계 각국의 스타들 말입니다.”
그 말에 마케팅 부서 팀장이 곧장 되물었다.
“새로운 엠버서더는 대부분 여성 셀럽이겠군요?”
프리미엄 핸드백 홍보를 목적으로 선별한 엠버서더라면, 주요 고객인 여성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해 건넨 물음이었으나….
“빌보드 힙합 차트에 이름을 올린 힙합 아티스트 몇 명과, 근래 들어 주가를 올리고 있는 K-POP 보이 그룹의 멤버 몇 명입니다.”
“예?”
“자사의 프리미엄 핸드백을 오로지 여성만이 착용한다는 편견을 없애야 크나큰 매출 증진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내 마케팅 팀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댔다.
“그야 그렇지만….”
과연 빌보드 힙합 차트에 이름을 올린 래퍼들이나, K-POP 열풍에 힘입어 주가를 올린 보이 그룹 소속 멤버들이 체인백을 어깨에 들쳐 멘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는 않았다.
“집단 숭배에 가까운 인기를 끌고 있는 남성 셀럽을 토대로, 남성도 아기자기한 ‘체인백’을 멜 수 있단 사실을 알려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반면, 재승은 확신에 차 있었다.
“젠더 이슈가 세계적 화제인 만큼 패션계 역시, 젠더리스(Genderless)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마케팅 팀장이 반문했다.
“사실상 유니섹스 마케팅(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마케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염려됩니다만….”
한차례 “아뇨” 하고 짤막하게 답한 재승이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유니섹스 마케팅이 평범한 제품을 다뤄 고객층을 늘리는 방식이라면, 젠더리스 마케팅은 성별을 뛰어넘어 브랜드 특성에 집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의무나 책임감에서 기인한 발상이라기보다는, 극히 사업가적인 의문에서 출발해 도출하는 데 성공한 발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더 막대한 매출을 기록할 수 있을까?
상품을 소비하는 대상을 늘린다면 매출은 덩달아 상승할 테니, 마침 사회적 이슈와 맞물린 ‘젠더리스’란 마케팅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신규 엠버서더의 경우 정리해서 넘겨주신다면, 곧장 접촉 및 계약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재승이 다시금 도식화가 겹겹이 꽂힌 서류를 뒤로 한 장 넘기며 덧붙였다.
“다음은 핸드백 제품군 중에서도 ‘블랙 라벨’ 제품군으로 분류하려는 모델입니다.”
이윽고 직원들이 탄식했다.
“맙소사….”
단순히 제품의 도식만 놓고 보더라도 상상 이상의 거액을 호가하리라는 사실을 능히 유추해 낼 수 있던 까닭이었다.
“비브라토 원단이로군요?”
여러 겹의 가죽과 스웨이드를 힘껏 압축해 제작한 비브라토(Vibrato) 가죽의 경우 화려한 패턴과 독특한 무늬가 일품이었으나….
“관리가 어려울 텐데요?”
일반인이 제품의 ‘질적 컨디션’을 장기간에 걸쳐 관리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보유한 가죽이기도 했다.
“해당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영구적인 무상 A/S을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간단한 유지 보수에 쓰일 펜을 함께 제공할 예정입니다.”
“혁신적이네요. 구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브랜드에 대한 ‘유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서비스일 겁니다….”
“맞습니다.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한 유대감 확립은 물론이고, 대우를 받는 느낌을 노골적으로 주기 위해 제작한 제품입니다.”
재승이 재차 말을 이었다.
“비브라토 가죽 제작 단계에서의 압축에 쓰일 원자재 역시 당연히 최고급 송아지 가죽과 고가의 악어나 타조 가죽만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런, 단순히 원자재 가격만 놓고 보더라도 수십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게 될 제품이 분명해 보이네요.”
“또한 아뜰리에의 마이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경력이 뛰어난 이들이 수제작으로 제작하리란 점을 내세워 마케팅을 진행해 볼 예정이며….”
재승이 도식을 들여다보면서 거듭 설명했다.
“전면부 장식을 시작으로 보안을 위한 자물쇠와 열쇠에도 다이아와 백금 소재를 사용해 제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물론 부자재 역시도 최상등급일 겁니다.”
“맙소사….”
“당장 생각하고 있는 해당 제품의 정식 판매 가격은 대략 오백만 달러 정도입니다.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옵션을 추가한다면 더 상승하게 될 여지가 있겠군요.”
쉽게 말해 오로지 최상류층만을 위한 진정한 프리미엄 백을 출시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랄 수 있었다.
“이런 제품을 패션위크 기간 내에 제작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재승은 자신만만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이번 패션위크에서 선보이게 될 최초의 비브라토 백은 제가 직접, 제작을 진행해 염두에 둔 금액보다 더 비싼 값에 판매할 생각입니다.”
“리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브랜드 하우스 내 아뜰리에에서 일하고 계신 마이스터들의 연륜과 경험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저도 재봉에는 꽤나 자신이 있어서요.”
기한이 촉박하면 촉박할수록 직접 도맡아 처리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놓이는 성향이었다.
전생에서 프리미엄 핸드백의 재봉 및 가봉 작업에 한 평생을 다 바친 경험이 있지 않던가?
제아무리 비브라토 가죽이라고 하더라도 며칠 주기로 하나씩 찍어낼 자신이 있었다.
“분명 성공적일 겁니다.”
이내 모든 직원들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대기 시작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리’(Lee)가 직접 나선다면….
땅을 하늘이라 부르는 세상을 만든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은 PVC 재질의 투명 비닐 백입니다.”
“예?”
“월플라워의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백이고요.”
앞서 소개된 프리미엄 핸드백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던지라 모두가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였다.
“해당 제품은 1만 달러 정도에 판매할 예정입니다.”
“PVC 재질의 투명 비닐 핸드백을 ‘1만’ 달러예요?”
한화로 환산한다면 백만 원을 살짝 넘어서는 금액이었다.
투명 비닐 백을 대체 누가 그 값에 구매하겠는가?
“다음 제품군을 구매하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은 고객들이 구매하리라 확신합니다.”
“비닐을….”
“아마 1만 달러가 아니라 몇만 달러에 판매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재승이 재차 덧붙였다.
“제 스승인 쟈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말을 마친 재승이 낮게 말했다.
“비싸면 예술이고 싸면 낙서다.”
그러고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성공한 사업가 특유의.
그러니까.
자본주의로 점철된 미소였다.
“이상으로 신규 프리미엄 핸드백 라인 제품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났고.
“기대되는데….”
모든 직원들이 이번 F/W 시즌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낸 양, 매출이 얼마나 상승하게 될 지에 대해서만 기대하기 시작했다.
“모쪼록 고생하셨습니다.”
재승의 리더십과 톡톡 튀고 빛이 나는 아이디어들이 불러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그렇게.
기대감 속에서 패션 위크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다시 하루 줄어들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