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267)
블랙 라벨-266화(267/299)
블랙 라벨 266화
블랙 라벨 외전 18화
데빌 백(Devil bag)
전 세계 전역에 생중계됐던 리(Lee)의 파리 포그 인터뷰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자마자 대중의 이목을 끈 제품이었다.
조나단 제이.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리’(Lee)에 대한 악평과 독설을 쏟아내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평론가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독한 마케팅이군.”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외형을 지닌 제품이기에, 또한 어찌나 황홀하고 탐미적이며 아름다운 외형을 지니고 있는 제품이기에….
악마가 귓가에 대고 욕망을 마구 부추기는 것만 같다는 의미를 담아, 감히 데빌 백이란 이름을 지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 한낱 마케팅이야.”
조나단 제이는 그렇게 속단했다.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다만….
그는 유능한 디자이너이기 앞서.
“그는 유능한 사업가니까.”
리는 ‘대중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애초에 스스로에 대한 집단 숭배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단 점만 봐도 그랬다.
감각적이지만 멍청해서 늘 고생인 디자이너들과 달리 그는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았다.
심지어 데빌 백이라는 품명을 붙인 직원에게 오만 달러가량의 보너스를 지급했다던가?
“영리하군….”
그는 별거 아닌 일을 공론화시켜 이슈를 만드는 법에 도가 트다시피 한 인물이었고….
자신이 만든 상품의 가치를 몇 배, 몇십 배가량 부풀리는 일에 한없이 능숙했다.
그래서 그렇게 속단했다.
실상은 별거 없으리라고.
이름만 거창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
그는….
현실을 직면했다.
“말도 안 돼….”
널찍한 공장 안에 짙고 또 짙은 어둠이 잔뜩 내리앉아 있는 와중, 유일하게 밝고 화려한 롱핀 조명을 받고 있는 가방.
‘데빌 백’이었다.
한눈에 보더라도 최고급 가죽을 바탕으로 제작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뜨문뜨문 보이는 마감의 흔적이나 스티치만 놓고 보더라도 수공예로 제작했단 사실이 느껴졌다.
장식은 또 어떤가?
조명 빛을 유감없이 머금은 금색 패치가 부착된 건 물론이고, 패치의 테두리를 따라 VVS등급 다이아가 둘러져 있었다.
아름답다.
저도 모르게 “꼴깍” 하고 마른침을 삼켜낸 평론가가, 무의식중에 멀리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있는 백을 향해 손을 뻗어봤다.
닿을 리 없었다.
멀리 있었다.
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흠잡고 깎아내려 버는 푼돈으로는 영영 손에 쥘 수 없는 가방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저 가방은 얼마일까?
저걸 손에 넣기 위해….
대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이름 그대로.
악마가 자신의 귓가에 대고 욕망을 마구 부추기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완패로군….”
패배를 시인한 평론가가 씁쓸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온 세상이 귀 뒤로 밀려나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널찍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라고 하면 좋을까?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것만 같은 대중의 환호성 역시 멀어진다.
어둠 속에 가방과 자신 단둘만이 놓인 것 같은 착각이 일었으니까.
“제기랄.”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엄청난 걸 준비하고 있었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어찌나 가소로워 보였을까….”
어마어마한 쇼와 더불어 저 정도로 엄청난 가방을 준비해 두기까지 한 상황이었으니….
제 악평이나 독설 따위에는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달려왔을 게 분명했다.
데빌 백에 사로잡힌 건 그간 리를 적대시했던 ‘평론가’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 보였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어느 유명 투자 기업의 사모님이 월스트리트를 쥐락펴락하는 남편의 소매를 붙잡았다.
“여보, 정말 갖고 싶어요….”
이내 그녀의 남편 역시 욕망으로 반들거리는 눈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잘 어울리겠군….”
그러고는 덧붙였다.
“내 아내라면 저 정도 되는 가방은 들고 다녀야 면이 설 테니까….”
“사 주실 거죠?”
“얼마를 지불하고서라도 사 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기다려 보게….”
저 멀리 놓여 있는 데빌백을 마냥 뚫어지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 건 단연 그들 부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당초 극비리에 진행된 월플라워의 쇼에 초대받은 이들은, 매년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해 온 우량 고객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부호라든지, 어마어마한 개런티를 받는 배우나 모델 내지는 빌보드급 가수에 이르기까지.
“얼마든 좋으니 어떻게든….”
모두가 얼마를 지불해서라도 데빌 백을 구매하고야 말겠노라는 열망에 사로잡힌 채였다.
그때였다.
돌연 장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진행자의 설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경매를 시작하기에 앞서 데빌 백에 대한 세부사항을 먼저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데빌 백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로 진행자의 설명을 경청했다.
– 최고급 앱송 가죽을 텍스처 삼아 제작했으며, 패치는 순금으로, 또한 장식은 모두 최고 등급의 다이아로 마감했고….
– 후에 제작될 데빌 백은 텍스처 및 장식 재질을 구매자가 희망하는 대로 전부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 매뉴얼을….
– 본래는 월플라워 아뜰리에 내의 마이스터들이 공을 들여 손바느질로 제작하며 사후 처리 역시 생산자가 담당하며….
무수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으나 다들 집중력을 잃지 않고, 데빌 백의 특징을 귀담아 듣고 있기를 잠시.
– 해당 제품은 최초의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일순 지독한 정적이 널찍한 공장 안에 드리우기를 잠시….
– 월플라워의 오너 디자이너이신 리가 직접 수제작으로 완성시켰음을 알립니다.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당장에라도 장내가 떠내려 갈 것만 같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 해당 제품의 경매 시작 금액은 만 달러입니다.
경매 시작가는 자그마치 천만 원.
타 브랜드 제품 판매가와 맞먹는.
시작 금액치고는 높은 금액이었다.
– 그럼 지금부터 최초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거머쥔, 데빌 백의 경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 더블입니다!
– 더블입니다!
– 다시, 더블!
경매가 시작됨과 동시에 입찰 희망 금액이 천정부지로 솟구쳐댔다.
불과 수초.
수초 만에 만 달러에서 시작해 무려 팔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 구만 달러 나왔습니다!
– 십만!
– 십일만까지 나왔군요!
모두가 이미 계산을 마친 양 보일 따름이었다.
지극히 간단하기 그지없는 계산에 불과했다.
저 가방은 얼마에 낙찰받든 득을 볼 수 있다.
프리미엄.
최초라는 프리미엄에 ‘리’가 직접 제작했으니….
리셀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자랑할 터!
– 십오만 달러 나왔습니다.
– 십칠만 달러 나왔습니다.
– 이십만 달러 나왔습니다.
물론 가방을 낙찰받은 이는 영영 팔지 않고, 소유하고 있을 확률이 농후했다.
‘월플라워’라는 브랜드가 앞으로 쌓아갈 역사와 전통의 가치를 고려해본다면….
좋은 술처럼 흐른 세월에 비례해 가격이 끝을 모르고 솟구치게 될 게 분명했으니까.
– 아, 더블!
진행자가 탄식했다.
– 순식간에 사십만 달러 돌입!
경매가 시작된 지 불과 삼십 초.
고작 삼십 초만에….
가격이 한화 4억을 넘어섰다.
– 사십오만!
– 오십만!
– 오십오만!
– 육십만!
금액은 끝을 모르고 솟구쳤고….
– 더블입니다!
– 백오십만!
– 다시, 더블!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진정 광기에 사로잡힌 양, 뭉텅뭉텅 큰 금액을 불러 가격을 상승시켰다.
자금이 부족한 이들이 포기를 하자 재력이 뒷받침되는 이들만이 입찰을 이어나가기에 이르렀고….
– 삼백삼십만 달러입니다!
진행자가 열기를 더욱 과열시켰다.
– 여러분께서는 혹시 해당 제품의 가격이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핸드백의 가격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현존하는 핸드백 중 가장 비싼 핸드백은 뮤어와드사에서 열 명의 장인이 8,800시간에 걸쳐 만든 1001 모델로 삼백팔십만 달러에 낙찰….
경매를 잠시 중단하고서 설명을 쭉 이어나가던 그가 목에 핏대를 잔뜩 세워가며 쩌렁쩌렁하게 소리쳐 댔다.
– 이 핸드백을 낙찰받게 되는 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핸드백의 주인이 되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길 위에다가 기름을 잔뜩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 삼백삽십오만!
– 삼백사십만!
– 삼백사십오만!
다시금 가격이 마구 솟구쳐 댔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재승은 부호들의 심리를 읽었다.
세계의 부는 한 곳에 쏠린다.
많은 부를 거머쥔 이들은 더욱더 대단한 사치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굴어대기 일쑤였다.
스위스의 고급 가구 회사들은 이런 부호들의 심리를 겨냥해 요트 내장재를 판매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월가의 투자 사무실에는, 수억에서 수십억 대의 고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비싼 밥이나 비싼 술과 같이 그 가치가 순간에 지나지 않은 것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길 즐겼다.
뱅크시처럼 이런 부호들의 소비를 꼬집는 예술가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더 비싼 값에 거래되기 일쑤였다.
데빌 백 역시 마찬가지.
바다로도 메울 수 없다는 인간의 욕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악마의 핸드백이었고….
그들은 여러 이유로 이 천문학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점점 높은 금액을 불렀다.
그들에게 이 가방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양 보일 뿐이었다.
탐욕.
그저 무슨 수를 써서든 이 가방을 제 소유물로 만들겠노라는 열망에 집어삼켜진 채였으니까.
데빌 백.
가히 욕망을 부추기는 악마의 핸드백이라 표현하기에 일절 손색이 없는 제품이란 점이 입증되고 있었다.
– 삼백오십만!
– 삼백육십!
– 삼백팔십만!
이윽고.
– 사백만입니다!
입찰 희망 금액이 한화로 환산할 시 약 사십육억 원에 달하는 금액까지 솟구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소더비와 같은 전문 경매 회사에서 진행한 경매가 아닌, 브랜드 쇼에서 이만한 금액이 오간 사례는 없다.
다시금 리(Lee)가….
길이 남을 새로운 역사를 써내리고 있는 순간이라 해도 무방할 터였다.
스윽-.
그때, 어느 노인이 손을 들었다.
– 아아….
검지와 중지를 곧게 편 손 모양.
그 의미인 즉….
두 배, 더블을 의미하는 수신호.
– 파, 팔백만….
마치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눈빛을 한 백발의 노인이, 어벙한 얼굴을 하고 있던 진행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음 지었다.
“졸부들아, 덤벼봐라….”
아르도 회장이었다.
“더블을 몇 번이고 더 불러줄 테니.”
명백한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