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40)
블랙 라벨-39화(40/299)
블랙 라벨 39화
40. 제가 아는, 그 사람은….
“재승아. 안 먹어?”
“아, 먹어야지.”
사무실 상가 건물 1층에 자리한 분식집. 참치김밥과 라면, 라볶이까지. 간단한 음식들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는 상태였다.
이내 재승이 젓가락을 집어 들려던 찰나, 영국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려 보이며 물었다.
“요즘은 어때? 나 없이도 사무실 잘 돌아가?”
“응. 너 없으니까 더 잘 돌아가네.”
재승이 퉁명스레 답해 보이자, 영국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뭐?” 하고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이내 재승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영국이 너는 요즘 좀 어때?”
“나야 정신없지, 뭐.”
짤막하게 답해 보인 영국이, 덤덤한 투로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루가 원래 이렇게 짧았던 건가 싶다. 학원 끝나고 집에서 미디(Midi) 프로그램 조금 만지다 보면, 새벽 네다섯 시라니까?”
지극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영국의 말처럼 열정적으로 보낸 하루는, 늘 짧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보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괜히 대견스레 느껴지는 듯했다.
이네 재승이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물었다.
“짜식, 열심이네. 올해 목표는 뭐야?”
“별건 아니고….”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인 영국이, 멋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제대로 된 곡 하나 내는 게 목표야.”
“제대로 된 곡?”
“응. 비트, 가사, 랩, 전부 다 직접 한 제대로 된 곡.”
“음원 등록이라도 해보려고?”
“아니.”
짤막하게 답해 보인 영국이, 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려대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몰랐는데, ‘힙합 플레이어(Hiphop Player)’라는 사이트가 있더라고. 거기에 내가 만든 곡을 한 번 올려보려고.”
“그냥 올려보는 게 끝이야?”
“응. 사이트에서 반응이 좋으면, 가끔 대형 기획사나 유명 크루에서 컨택이 들어오기도 하나 봐. 그걸 노리고 있는 거지, 뭐.”
재승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려 보이던 찰나, 영국이 무덤덤한 투로 재차 말을 이었다.
“음원 등록도 하고 싶기는 한데, 현실의 장벽이 조금 높은 것 같더라고.”
“응? 왜?”
만약 비용 문제라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내려다가, 일단은 도로 삼켜냈다.
때가 되었을 때 꺼내더라도 늦지 않을 말이니까.
“비용도 문제인데, 개인이 음원 등록해 봤자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
씁쓸한 투로 말해 보인 영국이, 곧장 물음을 건네 왔다.
“그나저나 누구랑 통화한 거야? 꽤나 심각한 내용인 것 같던데.”
“쿠바쿠바 스토어 담당자분이랑 통화했어. 심각한 내용까지는 아니었는데, 왜?”
“통화 마친 다음부터, 계속 멍 때리고 있었잖아.”
“내가 그랬었나?”
고개를 끄덕이며, “응, 그랬어” 하고 답해 보인 영국이 재차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데? 이 형님한테 한 번 의논해 봐.”
“영국아, 너 혹시 ‘힙스 보드’라는 브랜드 알아?”
“알지, 왜?”
“다름 아니라, 거기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작업 제의가 들어왔거든.”
그 말에, 영국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떠 보이며 되물었다.
“진짜로….”
“그럼 거짓말이겠냐.”
“좋은 일 아냐? 근데 왜 울상을 하고 있어?”
“일단 수락하긴 했는데, 걱정이 앞서네.”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스케이트보드 브랜드와의 콜라보 작업이, 어떤 의미를 띄고 있는지 정말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기회를 잘 살리기만 한다면, 스트릿 의류 브랜드로서의 입지가 더욱 굳건해지기는 하겠지….’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일단 다음 신상품 출시 때부터는, 여타 브랜드들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최소 열 벌 이상, 최대 서른 벌 정도의 옷을 제작하고 ‘룩 북(Look Book)’까지 만들어 배포할 생각이었다.
제품 출시에 앞서 이번 신상품의 종류와, 모델 컷 사진을 사전 공개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흠, 3월 중순까지 제품을 모두 완성시키려면 시간이 상당히 촉박한데….’
전에 제품을 출시하던 방식과 달리,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몹시 큰 편이다.
좋은 반응을 얻어낸다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과 인지도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반응이 영 별로라면?
브랜드 운영 자체에 타격을 입을 정도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거사를 앞둔 와중에, 괜히 심력 소모할 일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은 염려가 들었던 것이다.
“모르겠다, 부딪혀 봐야지. 일단 밥부터 먹자.”
“그래. 너야 항상 알아서 잘하니까….”
밥을 먹는 내내, 이런저런 사담이 잔뜩 오갔다.
실용음악학원에서는 정확히 무얼 배우고 있는지, 요즘엔 어떤 노래를 감명 깊게 들었는지, 어떤 노래를 만들고 싶은지, 후에는 어떤 ‘크루(Crew)’에 소속되고 싶은지 등.
영국은 말하고, 재승은 듣는 상황이 거듭 반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재승은 연신 맞장구를 쳐주며, 영국의 두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영국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던 탓이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찾아볼 수 없던 눈빛이기도 했다.
본래 꿈꾸는 사람의 눈은 아름다운 빛을 머금고 있게 마련이다. 특히나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더더욱.
정말 다행스럽게도, 지금 영국의 눈이 딱 그랬다.
“넌 잘될 거야.”
재승이 대뜸 건네 보인 진심 어린 말에, 영국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다음 날, 퇴근 시간에 임박했을 무렵. 재승은 ‘외근’을 명목으로, 먼저 사무실을 나설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아무 메뉴나 드시고 싶으신 걸로 마음껏 드세요.”
재승이 제 체크카드와 함께 건넨 말에, 사무실 안으로 한차례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직원들 중 가장 맏형인, ‘남광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사장님, 비싼 거 먹어도 돼요?”
“그럼요. 당연하죠.”
짤막하게 답해 보인 재승이, 한차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겨 보이고는 덧붙였다.
“요 앞에 한우집 가셔서 소고기 드세요. 저번에 가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재승의 말에, 직원들이 재차 환호성을 내질러 대기 시작했다. 나라를 구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열렬한 반응은 얻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나이스!”
“우리 사장님, 만세!”
한 무리의 좀비 떼를 연상시키는 직원들을 뒤로한 채, 재승이 제 코트를 챙겨 들며 말했다.
“이번 ‘힙스 보드’ 콜라보 오퍼 따낸 기념 회식이라고 생각하시고, 양껏들 드세요.”
내일 점심 중으로, 힙스 보드 측 담당자가 사무실에 방문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비록 아직은 구두계약 상태라지만, 내일이 되면 본격적으로 콜라보 작업에 착수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내 재승이 재차 덧붙여 말했다.
“어쨌든, 금액은 절대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들 드세요. 저는 미팅 때문에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재승이 사무실을 나서려던 찰나. 이강준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이 말했다.
“사장님, 미팅 늦게 끝나세요?”
사실상 ‘미팅’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호했고, 강형록 교수와 저녁 식사 약속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유학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야 하고, 신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도 구해 볼 생각이었다.
이야기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터라, 확답을 줄 수는 없었다.
“글쎄요, 일단 가봐야 알 것 같은데 왜요?”
“기다릴 테니까, 꼭 오세요.”
이강준의 말을 시작으로, 다른 직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어대기 시작했다. “맞아요! 늦더라도 꼭 오세요”부터 시작하여, “해 뜰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까지.
“알겠습니다. 늦게라도 꼭 갈 테니까, 맛있게들 드시고 계세요.”
사무실을 나서기 전, 이강준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꽤나 자상한 양반이다. 사회생활도 꽤나 요령 있게 잘하는 편인 것 같고. 아무래도 계속 정이 간다.
사무실을 나선 뒤,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울을 보며 옷맵시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상가 건물 밖으로 첫걸음을 내딛던 순간.
비상등을 켜놓은 채 정차 중인 검은색 세단 차량 한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옆에 선 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강형록 교수도 함께.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잘 지냈나?”
간단한 사담이 오가기를 잠시. 이내 강형록 교수가, 손에 쥐고 있던 담배꽁초를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 넣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것 좀 보겠나? 내가 오늘 꽤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말이야.”
말을 마친 강형록 교수가, 곧장 제 차량 트렁크를 열어젖혔다. 널찍한 트렁크 안으로, 옷 몇 벌이 담겨 있는 박스 한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태였다.
“한 번 살펴보게.”
박스 안에 담겨 있는 옷들은, 모두 ‘페인트 진’이었다. 참고로, 월 플라워의 제품들은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조잡하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으니까.
이내 재승이 제 두 눈을 휘둥그레 떠 보이며 되물었다.
“교수님, 이 옷들 설마….”
“하핫! 동대문의 선구 주자가 된 걸 축하하네.”
노브랜드(Nobrand) 의류 업체에서 카피한 듯 보이는, 카피 의류들이었다.
감회가 상당히 새로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한평생 남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 누군가가 자신의 디자인을 카피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동대문 의류 타운에 입점해 있는 소점포 중, 페인트 진이 없는 곳이 없더군.”
“유행이 참 빠른 곳이니까요.”
무던한 투로 답해 보인 재승이, 박스 안에 담겨 있는 옷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전에 들었던 말들 중, 정말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유행이 빠른 곳이, ‘동대문’일지도 모른다는 말.
마냥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정 브랜드에서 ‘룩 북’을 공개하면, 채 30분도 되지 않아 카피를 시작하는 곳이 바로 동대문이다. 한때는, 그게 제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재승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카피 페인트 진’들을 바라보고 있던 찰나. 강형록 교수가, 미간을 살짝 좁혀 보이며 입을 뗐다.
“흠, 이거 실망인데?”
“네?”
재승이 놀라 되묻자, 강형록 교수가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단조로운 반응이라서 말이야. 보통 자기가 고안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그대로 카피 돼서 떠돌고 있는 걸 보면, 상당히 기분 나빠하던데 말이야.”
말을 마친 강형록 교수가 ‘물론, 처음에는 말이지’ 하고 덧붙여 말했다.
이내 재승이 한차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의류들을 카피하는 것. 전생의 자신이 업으로 삼았던 행위가 아니던가?
라벨이나, 브랜드 로고 자체를 카피하는 등, 정도가 과해진다면 당연히 법적인 조치까지도 취하겠지만….
이 정도라면 얼마든 애교로 눈감아 줄 수 있었다.
“글쎄요, 그래도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잘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크하하. 그래, 그래. 좋은 마음가짐이야. 저녁 식사는?”
“아직 못 먹었습니다. 교수님은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혹시 일식 어떤가?”
* * *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일식집. 단골집인 것인지, 강형록 교수는 가게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오마카세(*お任せ: 맡기다, 메뉴 선정을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를 주문했다.
주방장이 엄선한 메뉴들이 하나씩, 하나씩 상 위로 올라왔다. 두 사람은 식사를 이어나가는 와중,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부분이 ‘월 플라워’의 향후 계획 및 일정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일단 시즌 단위로 옷을 출시하겠다고 결심했으니, 이번 S/S시즌 신상품은 최소 열 벌. 많게는 서른 벌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그럼 ‘룩 북’도 제작해야겠군.”
“네. 맞습니다. 룩 북 제작은 처음인지라, 이래저래 걱정이 앞서네요.”
이내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려 보인 강형록 교수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괜찮다면 룩 북 제작은 내가 조금 도와주고 싶군.”
“정말이십니까?”
“그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말이야.”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적게는 열 벌에서, 많게는 서른 벌이라….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나?”
출시까지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건넨 물음인 듯했다.
잠시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재승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답했다.
“혼자서도 진행할 자신이 있긴 합니다만, 아마 혼자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응? 무슨 뜻이지?”
“이번에 채용한 디자인 팀 직원들의 공모를 받을 생각입니다. 괜찮은 디자인이 있다면, 발탁해서 신상품 대열에 합류시킬 예정이고요.”
재승의 답에, 강형록 교수가 재미있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되물었다.
“그래? 직원들 실력이 꽤 준수한 편인가 보군.”
“실력은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열정은 대단합니다.”
짤막하게 답해 보인 재승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득 매일 야근을 자처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탓이었다.
“이번에 디자인이 발탁된 직원은, ‘정식 디자이너’로 진급시켜 줄 생각입니다. 아직은 상여금에 관한 이야기랑, 룩 북에 이름이 수록될 거라는 이야기만 해둔 상태지만요.”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인 강형록 교수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려 보이고는 되물었다.
“혹시 기반을 다져놓으려는 건가?”
“예?”
“내가 보기엔, 유학 중에도 원활히 운영될 수 있게끔 기반을 다지려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야.”
“아, 예. 맞습니다. 그런 의도도 있긴 합니다.”
사실 자신과 함께 과거로 돌아온 ‘월 플라워 연필’을 활용한다면, 유학 중에도 원활히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다만 될 수 있으면 연필의 힘에 의지하지 않으려 마음먹은 상태였기에, 유능한 직원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내가 컨셉을 잡아주면, 그럴싸한 디자인을 뽑아내 줄 수 있는 직원들이 필요해….’
일단 현재 디자인 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의 능력을 발전시켜주는 동시에, 유학길에 오르기 전 자금이 허락하는 선에서, 실력이 검증된 디자이너 몇 명을 추가로 영입해 둘 계획이었다.
정적이 오가기를 잠시. 이내 강형록 교수가, 사뭇 진중한 투로 입을 뗐다.
“흠, 사실 조금은 걱정되는군.”
“네?”
강형록 교수가 걱정하고 있는 대목은, 다른 부분이 아니었다.
상승하고 있는 일평균 매출만 놓고 보더라도, 또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측에서 먼저 건네온 콜라보레이션 제의만 놓고 보더라도, 브랜드의 규모가 나날이 커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듯했다.
‘아마 재승 군이 유학을 가기 직전에는, 규모가 훨씬 더 커져 있겠지….’
그런 와중에 최고 경영자 겸, 수석 디자이너인 재승이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많은 부분이 흔들릴 수밖에 없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승 군. 디자인 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유학 중 브랜드 ‘경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이내 재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사실 생각해 놓은 사람이 한 명 있긴 합니다.”
“응?”
“운영권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딱 한 명. 생각해 둔 사람이 있습니다.”
송 사장.
송 사장을 영입할 생각이었다. 송 사장이 이미테이션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이전에, 그를 먼저 영입하고 월 플라워의 ‘최고 경영자’ 직에 올려둘 생각이었다.
재승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 있는 경영자가 아니었다. 믿을 만한 경영자가 절실했다.
비록 능률적인 면에서만큼은 ‘전문 경영인’만 못할지 모르나, 그와 함께 양지에 서는 것이야말로 재승이 품고 있는 묵은 꿈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이내 강형록 교수가, 미심쩍다는 듯 제 턱을 살살 어루만져 가며 물었다.
“혹시 누군지 물어봐도 괜찮은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고 있는 샘플 공장 사장님입니다.”
“흠….”
그가 품고 있는 불안이 면밀히 느껴지는 침음이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강형록 교수가, 두 눈을 또렷하게 떠 보이며 재차 물었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
송 사장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
당시 함께 협업을 진행하던 이들 중, 유일하게 재승의 ‘현재’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사람이다.
그 죄책감 때문에, 퇴물 취급을 받던 자신에게 없는 일거리를 만들어서, 물어다주던 사람이다.
실명을 앞두고 있던 자신에게, 자금을 대줄 테니 짝퉁이 아닌 제대로 된 옷 한 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던 사람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냐고?
그렇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송 사장은 그런 사람이다.
이내, 재승이 무던하기 그지없는 투로, 진심을 말했다.
“네. 적어도 돈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버릴 사람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