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57)
블랙 라벨-56화(57/299)
블랙 라벨 56화
57. 변화의 이유
프랑스 파리.
생 마르생 운하 인근에 자리한, ‘홀리벨리’(HolyBelly)라는 이름의 카페.
포그의 에디터 ‘제랄딘’과, 주니어 에디터 ‘멜라니’가 마주 앉은 채 간만에 여유로운 브런치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제랄딘.”
“네?”
“갑자기 한국에 가시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뭐예요?”
“쇼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아니, 그러니까….”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였던 멜라니가, 한숨을 푹 내쉬어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그 브랜드 이름이 뭐였죠?”
“월 플라워.”
“그래요, 월 플라워.”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려 보인 멜라니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브랜드잖아요.”
“그렇죠.”
“자국 컬렉션에도 입성하지도 못한 브랜드고요.”
“네, 맞아요.”
“그런데 대체 왜….”
다소 격정적인 투로 말을 쏟아내 보인 멜라니가, 곧장 뒷말을 삼켜냈다. 감정을 조금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금이겠지만, 제랄딘의 시간은 유독 더 그렇잖아요.”
“네.”
“어떤 잠재성을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제가 제랄딘이었더라면 차라리 입증된 브랜드의 쇼를 관람했을 거예요.”
“그런가요?”
“제랄딘, 대체 왜 그 브랜드를 고집하시는 거예요? 단순히 잠재성이 있는 브랜드라면, 프랑스 내에도 수두룩하잖아요?”
파리 포그의 에디터들 중에서도, 단연 명성이 드높은 이가 바로 제랄딘이다.
특유의 지성적이면서도 차분한 기사와 칼럼들, 가히 빛난다고 할 수 있는 커리어, 또 ‘걸 크러쉬’(Girl Crush)라는 단어를 절로 연상시키는 패션 센스까지.
그녀는 단연 포그의 에디터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셀럽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제랄딘이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의 쇼를 보기 위해, 머나먼 이국땅으로 향한다는 것만 하더라도 가히 충격적인 일이랄 수 있었다.
한데 여기에 한 가지 요인이 추가된다.
‘월 플라워’라는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가 쇼를 올리는 주간이, 몇몇 유명 브랜드가 F/W시즌 쇼를 올리는 기간과 겹치는 것이다.
“멜라니. ‘알렉산더 킹(Alexander King)’부터 시작해서, ‘발렌티오(Valentio)’에, 제랄딘이 평소에 즐겨 입는 ‘발뭉(Balmung)하’고도 F/W시즌 쇼 기간이 겹치잖아요. 그건 알고 계시죠?”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죠.”
짤막하게 답해 보인 무심한 얼굴로, 입안에 머금고 있던 스크램블 에그를 우물우물 씹어대던 찰나. 한차례 “아!” 하고 탄성을 내질러 보인 멜라니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재차 말을 이었다.
“제랄딘. 그러고 보니까, 발뭉의 수석 디자이너하고도 친하지 않아요?”
“데카르넹?”
“그래요. 데카르넹도 분명 섭섭해할 거라고요.”
잠시 고민하던 제랄딘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나직이 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 브랜드의 오너 디자이너를 꼭 만나 봐야 할 이유가 생겼거든요.”
“꼭 만나 봐야 할 이유요?”
“네.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호기심이.”
짤막하게 답해 보인 제랄딘이 한껏 느긋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게 앞 자전거 진열대에 세워져 있는, ‘픽시드 기어(Fixed Gear)’ 자전거들. 여유롭게 길을 거닐고 있는 행인들과, 이따금씩 지나쳐 가고 있는 자동차들.
월요일 오전의 거리는 정말이지 차분하고, 한산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멜라닌 역시 고개를 떨군 채, 아직 접시 위에 가득 쌓여 있는 브런치를 먹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관련된 물음을 건네 봐야, 어차피 별 의미 없는 물음으로 전락해 버릴 뿐이란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본래 제랄딘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 한 가지에 꽂혀 버리면, 그 누구도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사람.
이내 멜라니가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음, 부디 그 브랜드가 제랄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건넨 말이었다. 아니, 차라리 이번 쇼가 엄청난 브랜드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길 소망하고 있었다.
‘발뭉’을 비롯한 프리미엄 브랜드의 쇼는 내년에도, 아니, 반 년 뒤에도 열릴 테지만,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은 브랜드의 일생을 통틀어 오직 한 번뿐이니 말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그녀의 발걸음이. 그리고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포그’라는 이름의 파급효과가,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 제랄딘이 발뭉의 쇼까지 포기하고 가는 건데, 그 정도는 돼야지.’
하지만, 그런 이변은 절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쭉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 *
파리 포그의 에디터, 제랄딘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자그마한 사건 때문이었다.
데드라인(Deadline) 주간 탓에, 바쁜 일과에 허덕이고 있던 그때.
자신의 기사에 수록될 화보 촬영 현장을 감독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았고, 그곳에서 세계적인 모델 에이전시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모델즈’(MetroPolitan Models)에 소속되어 있는 톱 모델과 조우했었다.
“아서, 오랜만이에요.”
“오, 제랄딘! 정말 오랜만이에요!”
‘아서’라 불린 젊은 남자 모델이, 제랄딘을 한 번 꼭 끌어안아 주었다.
‘아서 고스(Atter Gosse)’.
앞서 제랄딘과 몇 번이고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는 그는,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모델이었다.
이미 그의 소속이, 실력을 보증해 주고 있기도 했고.
스물 초반, 상당히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커리어로 무장한 그의 주가는 여전히 상승세였다.
스튜디오 입구에 선 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기를 잠시. 아서가 차려입고 있는 옷들이, 제랄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서, 오늘 패션 굉장한데요?”
“제랄딘이 보기에도 괜찮아요?”
“네. 정말 잘 어울려요.”
나직이 답해 보인 제랄딘이 다시금 아서가 차려입고 있는 옷들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되물었다.
“모두 처음 보는 옷이라는 게 정말 신기하네요.”
곳곳에 페인트를 흩뿌려 포인트를 준 청바지부터 시작하여, 상당히 세련된 실루엣의 유광 재질 가죽재킷, 마지막으로 안에 받쳐 입은 맨투맨 티셔츠까지.
모두 하나같이 과하지 않은 느낌의, 아니, 상당히 절제된 느낌의 스트릿 의류들이랄 수 있었다.
뭐랄까?
일반적인 대중들이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적정선을 잘 알고 있는 디자이너가 만든 느낌이랄까?
이는 스트릿 브랜드의 디자이너라면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감각이자, 평생을 연구해야 할 감각이다.
이내 제랄딘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물음을 건넸다.
“아서,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브랜드의 옷인지 알 수 있을까요?”
비록 스트릿 스타일의 의류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지만, 꽤 이름 있는 스트릿 브랜드에서 발행하는 ‘룩북(Lookbook)’은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었다.
한데 올해에도, 작년에도, 스트릿 브랜드의 룩북에서 이런 옷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이전의 옷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세련된 감성이 느껴졌고.
이내 아서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아마 모르실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제랄딘이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자, 아서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선물해 준 친구가 그랬는데, 동양의 무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들이라고 했었거든요.”
“동양의 무명 디자이너요?”
“네.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패션 블로거 친구가 선물해 준 옷이거든요. 그 디자이너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을 더듬듯, “리, 리….” 하고 수차례 중얼거리던 아서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디자이너의 이름까지는 기억나질 않네요.”
“그럼 브랜드 이름은요?”
“음, 잠시만요. 아무래도 재킷을 벗어서 택(Tag)을 한 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아서가 재킷을 벗어내기 무섭게, 밑으로 받쳐 입고 있던 맨투맨 티셔츠가 제랄딘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아니, 정확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맨투맨 티셔츠 위로 프린팅되어 있는 ‘문구’가 제랄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이리라.
– Different or Die
차별화되거나, 죽거나.
‘멋진 말이네.’
적어도 디자이너가 슬로건으로 삼기엔, 일절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제랄딘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프린팅된 문구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찰나.
“월 플라워예요.”
이내 제랄딘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직이 되물었다.
“월 플라워?”
“네. 왜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브랜드 네임이라….”
말끝을 흐려 보인 제랄딘이, 한참 동안 “월 플라워, 월 플라워….” 하고 작게 되뇌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 메일!”
“네? 메일이요?”
한차례, “아니에요.” 하고 답해 보인 제랄딘이 이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재차 덧붙여 말했다.
“고마워요, 아서. 저는 검토해 볼 사항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 네. 미팅 때 봬요.”
제랄딘이 급히 스튜디오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아서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읊조리듯 작게 중얼댔다.
“제랄딘은 항상 바빠 보인다니까….”
* * *
아서를 뒤로한 채 스튜디오 안에 들어선 제랄딘이 가장 먼저 확인해 본 것은, 신생 브랜드 ‘월 플라워’에 관한 정보를 물색해 보는 것이었다.
스튜디오 내에 비치된 노트북을 이용해, 구글에 ‘월 플라워’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대부분이 같은 이름의 영화나, 소설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종종 월 플라워라는 브랜드에서 출시했던 제품의 사진이 눈에 띄곤 했다.
‘흠, 분명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한 쇼를 올릴 예정이라고 했었는데….’
미니멀리즘.
자신이 이번 시즌 및, 다음 시즌의 트렌드로 짐작하고 있는 핵심 키워드였다.
그렇기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보내온 메일에 기재된 사항에 따르면, 분명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한 쇼를 올릴 예정이라고 했었다.
한데, 원래 스트릿 브랜드였다고?
만약 그렇다면, 이번 F/W시즌의 주제를 갑작스레 ‘미니멀리즘’으로 변경한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
‘아니, 우연의 일치라기엔….’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디자이너들이 종종 눈에 띄지만, 그건 일정 반열 이상에 오른 이들에게나 주어지는 선택지다.
이제 막 시작한 신생 브랜드가 행하기엔, 잃을 게 너무도 많은 도전인 것이다.
시류의 흐름에 따르기 위해, 급하게 컨셉을 변경시킨 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 그건 말도 안 되지….’
자신을 제외하고도, 몇몇 평론가와 칼럼리스트, 매거진의 에디터들이 곧 불어올 ‘미니멀리즘’ 바람에 대해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누구도 위 사실을 공표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가려 해도, 따라갈 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음, 제랄딘? 이제 시간이 거의….”
“미안해요, 잠시만요.”
포토그래퍼의 말에, 단호하게 끊어 보인 제랄딘이 계속해서 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역시….”
나직이 중얼거려 보인 제랄딘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태껏 월 플라워에서 출시한 옷들은, 모두 스트릿 브랜드의 옷들이었다. 특정 주제와 컨셉이 제 각각이긴 했으나, 어쨌든 ‘스트릿’이란 본질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즌의 컨셉을 ‘미니멀리즘’으로 채택했다는 것은?
월 플라워의 오너 디자이너 역시, 자신과 같은 예측을 한 것임이 분명했다.
또 단순히 예측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계획을 변경하기까지 한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발전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야심가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를 실현시키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안목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방금 품은 결심을 굳히듯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제랄딘이,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한국으로 가야겠어.’
“왜 그래요, 제랄딘. 무슨 일 있는 거예요?”
포토그래퍼가 걱정스럽게 물어 보인 말에, 제랄딘이 고개를 한 번 내저어보이고는 답했다.
“아뇨, 아무 일도 아니에요. 우선 미팅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노트북을 닫아 보인 제랄딘이, 잠시 내려두었던 제 클러치 백을 집어 들었다.
그런 그녀의 입가 위로 은근한 기대감이 서려 있는 미소가 자리해 있었다.
* * *
재승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먼저 출근한 직원들이 재승을 반겨주었다.
밝은 목소리로, “좋은 아침!” 하고 답해 보인 재승이 이내 손에 쥔 종이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초대장 샘플 나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그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음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초대장이요?”
“벌써요?”
이내 재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네. 이번에는 그냥 혼자 진행·제작해 봤어요.”
한창 제품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혼자 처리한 것이었다.
금세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 결과물도 나름 만족스러운 편이랄 수 있었다.
그때 종이봉투를 막 건네받은 이강준이, 내용물을 꺼내 들어서는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와, 대박…!”
“왜요? 어떤데요? 저도 볼래요.”
“어, 형! 저도요!”
이번 2011 F/W시즌 쇼의 초대장은 ‘종이’를 이용해 만든 것이 아닌, ‘원단’을 이용해 만든 초대장이었다.
비록 단가는 잔뜩 상승하겠지만, 적어도 쇼에 방문한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일절 부족함이 없으리라 판단하여 채택한 방법이었다.
“어때요? 괜찮은 것 같아요?”
초대장을 확인한 직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감탄사를 흘려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 보였다.
이내 재승이 손뼉을 한 번 마주쳐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만족스러워하시는 것 같으니, 일단 초대장은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두 번째 전달사항.”
직원들이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을 한 채, 재승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던 찰나.
“오늘 대관까지 마쳤습니다. 이제 다들 걱정 마시고, 제품 디자인에만 집중하시면 될 것 같네요.”
재승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직원들이 열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 사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벌써요?! 위치는요?”
“아니지, 사장님! 갤러리 이름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찾아볼게요.”
질문이 쇄도하기 시작하자, 재승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답했다.
“음, 사실 대관한 곳이 갤러리(Gallery)가 아니에요. 장소는 사무실 근처고, 그냥 평범한 상가 건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네? 상가 건물이요…?”
이강준이 의아하다는 듯 되묻자, 재승이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사뭇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우리가 쇼를 올리기에, 굉장히 적합한 곳이죠.”
‘남광민’을 제외한 모두가 의아해하는 눈치였으나, 굳이 해명해 주지는 않았다.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작게 주억거려 보인 재승이 남광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광민 씨, 오늘 오후에는 저랑 여기저기 좀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아, 네!”
이내 재승이 직원들을 한 번 둘러본 뒤, 그 이유를 짧게 설명해 주었다.
“다름 아니라, 상가에서 쇼를 진행하는 아이디어. 사실은 광민 씨 아이디어였거든요.”
‘갤러리 티티’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던 날 저녁, 남광민이 조심스레 꺼내 들었던 안건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어쩌면 그의 재능은 디자이너보다, ‘*VMD(*Visual Merchandiser: 리테일 스토어나 트레이드 쇼 등의 디자인을 총망라하는 직책)’ 쪽으로 더 발달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늘어놓는 내내, 재승은 감탄을 금치 못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제 2011 F/W시즌 쇼의 준비가 막바지 단계에 이른 듯 보였다.
제품 생산을 시작하고, 모델을 선발하고, 쇼를 올릴 장소의 디스플레이를 구상하는 것.
남아 있는 일들 중, 큼직한 일은 이게 전부다.
‘좋아….’
2011 F/W시즌 쇼.
처음에는 마냥 무모해 보이기만 했던 도전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어 가고 있으며, 최고의 관객들이 대기 중이다.
이번 쇼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자신과 직원들의 입지가 달라질 것이며, 대중들이 월 플라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본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인’보다는, 유명한 사람이 그 디자인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훨씬 더 중요시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