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abel RAW novel - Chapter (81)
블랙 라벨-80화(81/299)
블랙 라벨 80화
81. 어른들의 세계
두 번의 생을 통틀어, 방송사 건물에 발을 들여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감회가 상당히 새로울 수밖에 없는, 특별한 경험인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디자이너 이재승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BN 방송사 건물 내에 자리한 스튜디오 안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스태프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최대한 성심성의껏.
심지어 방송국 건물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사온, 테이크아웃 커피까지 한 잔씩 돌려가며 말이다.
말만 가지고는 성의 표현이 영 힘들 수도 있다는, 송 이사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첫인상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다.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야,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마치고 나니, 리허설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스튜디오 외곽에 선 채로, 부지런히 촬영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송 이사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설마 긴장한 거 아니지?”
“긴장한 거 맞아요. 방송 촬영은 생에 처음이란 말이에요….”
“청심환이라도 사다 줄까?”
장난기 서린 투로 물어 보인 송 이사가, 한차례 키득거려 보이고는 별 영양가 없는 조언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방송이라고 뭐 별거 있겠냐? 인터뷰랑 똑같다고 생각해라. 긴장할 필요 없다. 그밖에도 기타 등등….
문득 본인이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었더라도, 저렇게 천하태평한 태도를 고수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 맞다. 그리고 오늘 같이 촬영하게 됐다는 그 ‘이사’라는 사람 있잖아?”
“네, 그 사람 왜요?”
“아까 스태프들한테 인사 돌릴 때, 내가 조금 알아봤거든.”
말을 마친 송 이사가 주변을 한 번 살펴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뭐 하는 사람인지도 조금 알아보고, 배경도 조금 알아보고….” 하고 작게 덧붙여 말했다.
이내 재승이 고개를 작게 주억거려 보이고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런데요? 뭐 좀 알아냈어요?”
“응. ‘더블 에잇(Double Eight)’이라는 브랜드 알지?”
“대기업 스파 브랜드잖아요?”
“응. 일단 이사라는 양반은, 거기 디자인실 출신이야.”
이내 송 이사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기업 산하 스파(Spa) 브랜드인 더블 에잇 디자인실에 ‘해결사’로 투입되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그래도 능력은 있는 사람인가 보네….’
경영 부진 문제를 해결하고, 일선에서 물러서며 한국 디자이너협회의 이사직을 도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둘 다 소문이 영 별로더라고. 그 이사라는 사람도 그렇고, 협회도 그렇고.”
이내 송 이사가 재차 커피를 홀짝여 보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깊게 엮이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던데? 듣기로는 젊은 디자이너들한테 압력을 넣어서, 디자인을 강탈하는 경우가 있나 보더라고.”
“예? 판매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뺏는단 거예요?”
“응. 나도 자세한 정황까지는 모르겠는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던 송 이사가, 사레라도 들린 것처럼 돌연 “켁! 크헥!” 하고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재승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드세요” 하고 말해 보이던 그때.
“이재승 디자이너 맞으시죠?”
등 뒤편에서, 중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재승이 곧장 뒤돌아서서는, 목소리의 주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선한 인상의 남성이, 환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넥타이핀, 광이 서려 있는 구두에 이르기까지….
뭐랄까? 먹물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만 같은 인상이라고 하면 좋을까?
어쨌든, 확실한 사실은 자신과는 조금 다른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 업계 종사자라는 느낌보다는, 노련한 상사맨의 느낌이 더욱 강렬했으니 말이다.
“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이내 중년 남성이 곧장 제 정장 외투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어서는 건네주었다.
– 한국 패션디자이너협회 (KFDV)
– 이사: 김근태
EBN 교양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게 됐다는, 한국 패션디자이너협회 측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재승이 막 받아 든 명함에 쓰여 있는 소속과 직함, 이름을 확인하고는 한차례 화색을 해 보이며 답했다.
“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재승이라고 합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야말로 신예 디자이너분과 함께 촬영에 임하게 되어 영광일 따름입니다.”
혓바닥에 기름이라도 칠해둔 것일까? 영업용 멘트가, 막힘없이 유려하게 줄줄 흘러나온다.
한차례 악수를 나누며, 김근태 이사의 외형을 다시금 훑어보았다.
글쎄? 일단은 겉모습은 흠잡을 데 없어 보였다. 딱히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회귀 전의 삶을 통해 면밀히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소위 말하는 사기꾼들은, 대부분 말끔한 인상을 하고 있게 마련이다.
오히려 송 이사처럼 ‘찐 감자’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외형의 사람들이, 겪어보고 나면 훨씬 진국인 경우가 빈번했던 것이다.
‘일단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내 김근태 이사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하, 어쨌든 어디 계신가 하고 한참 찾아다녔습니다. 대기실에 계실 줄 알았거든요.”
“예? 저를요?”
“네. 촬영 전에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김근태 이사가 재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입견 때문일까? 그런 그의 미소에서, 괜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내 재승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조심스레 답했다.
“긴히 나눌 이야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시간이 허락해 줄지 모르겠네요. 리허설까지 20분 정도밖에 안 남은 것 같은데….”
이내 김근태 이사가 제 왼쪽 손목 위에 자리한, 명품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나직이 답했다.
“그 부분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네요. 양해를 구하고 리허설 시작 시간을 조금 미뤘거든요.”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재승의 미간 위로 짙은 그림자가 졌다.
리허설 시간을 미뤘다는 말인 즉, 퇴근 시간이 미뤄졌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내 재승이 차가운 눈을 한 채, 김근태 이사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 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주무른다고?
우선 한차례 심호흡을 해 보인 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실까요? 출연자 대기실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예, 좋습니다.”
짤막하게 답해 보인 김근태 이사가 재승의 눈치를 살피고는,“아!” 하고 탄성을 뱉어보이고는 곧장 덧붙여 말했다.
“혹시 임의로 촬영 일정을 조절한 게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도 어떤 용건이신지 궁금하긴 하네요.”
재승이 사뭇 스산한 투로 건네 보인 말에 김근태 이사가 잠시 흠칫해 보이고는, “네…?” 하고 물어보이던 찰나. 재승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곧장 되물었다.
“한마디 협의도 없이 촬영 시간을 늦추는 게, 상식적인 경우는 아니잖아요?”
“아, 그게….”
“물론 그만큼 중요한 용건이 있어서, 그런 조치를 취하신 거겠지만요.”
말을 마친 재승이 “그렇죠?” 하고 물음을 건네 보이자, 김근태 이사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 보였다.
재승이 앞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바짝 붙어 따라오던 송 이사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승 씨. 보니까, 어르신 상당히 당황하신 것 같은데? 일단 이야기라도 한번 들어보는 게 낫지 않겠어?”
“네, 일단 들어보기는 해야죠. 그래서 이 정도에서 그친 거예요.”
촬영 일정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만약 정말 득이 될 것 같은 제안을 해온다면? 얼마든 전략적 제휴를 체결할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빨대를 꽂아 넣겠다는 흑심을 품고 접근한 것이라면?
원하는 바는 아니라지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고,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단체이니 말이다.
* * *
일단 김근태 이사와 함께 출연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협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뒤에야, 다시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재승 디자이너의 활약이라면,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남모르게 응원하기도 했었고요.”
“아, 예. 감사합니다.”
“매거진 인터뷰를 쭉 훑어보니까, 직원들에게 받는 신임이 정말 두텁더군요? 대단하십니다.”
말을 마친 김근태 이사가 제 상체를 젖혀 보이며, “저도 디자인 팀에 있어봐서, 아랫사람 다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거든요” 하고 덧붙여 말했다.
교섭 전의, 형식적인 ‘립 서비스’ 타임인 것이다.
이내 재승이 한차례 고개를 주억거려 보이고는, 나긋한 투로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딱히 한 게 없어요. 어쨌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직원들 덕분에, 정말 ‘인복(人福)’을 타고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하하! 혹시 요령이 있으신 거라면 좀 알려주시죠?”
“요령이라, 글쎄요….”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인 재승이, 김근태 이사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되물었다.
“이사님, 죄송합니다만 혹시 용건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예.”
이내 김근태 이사가 두어 번 정도 헛기침을 해보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이번에, 이재승 디자이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어떻겠냐는 안건이 나왔어요.”
“저한테요? 어떤 지원이요?”
정확히 말하자면, ‘투자’를 하고 싶다는 뜻인 듯했다. 아무래도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다들 김칫국을 거하게 들이켜신 듯 보였다.
이내 김근태 이사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비용적인 부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테면 학비라든지, 유학 생활에 필요한 생활비, 창작 활동에 필요한 경비 등을 전액 지원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미 협회 측으로부터, 이와 같은 지원을 받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수두룩하고요.”
글쎄? 지금 당장은 그리 혹할 만한 조건이 아니었다.
유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비를 조성해 두는 데 성공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재승이 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려 보이며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
“대가라….”
“무상으로 지원을 해주시려는 건 아닐 테니까요.”
이내 김근태 이사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도록 하죠. 협회와의 ‘파트너십(Partnership)’을 유지해 주시면 됩니다.”
“파트너십이요?”
“네. 우호적인 태도를 고수해 주시면서 협회 측의 요구에 잘 따라주시기만 한다면, 훨씬 더 안정적인 성공가도를 달려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금전적인 지원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이내 김근태 이사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패션위크에 진출할 때 이런저런 혜택을 주겠다는 게 시작이었다.
원한다면 경력이 조금 쌓인 뒤, 대기업 스파 브랜드 디자인실에 간부급 직책으로 넣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 현역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 중 꽤나 영향력이 있는 이들 몇몇을 열거해 가며, 이들 또한 협회 측과 비슷한 류의 계약을 채결했다는 사실을 일러주기도 했고 말이다.
“이재승 디자이너도 아시겠지만, 이 바닥에 ‘영원함’이란 있을 수가 없어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월 플라워’ 역시, 영원히 지금과 같은 기세를 유지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거죠.”
“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럴 때, 새로운 활로를 뚫어드릴 수 있습니다. 안정적인 클라이언트를 소개시켜 드릴 수 있고, 또 안정적인 급여를 수령하실 수 있게 되시는 겁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보험’ 정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안정성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매력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김근태 이사는 지금, 그런 안정성을 보장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달콤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재승이 연신 고개를 끄덕여 대고 있던 찰나.
그런 재승의 모습에서 힘을 얻은 것인지, 김근태 이사가 더욱 격양된 투로 말을 이었다.
“또 몇몇 브랜드와의 무의미한 대립 역시, 쉽게 피해갈 수 있게 될 겁니다.”
“대립이요?”
“협회의 손이 닿아 있는 브랜드라면, 사전에 이런저런 조율을 거칠 수 있을 테니까요.”
간단히 말해 협회 임원들. 즉, 패션계 ‘기득권’(旣得權) 층이 지니고 있는 힘을 이용해 이런저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주고, 안정성을 추가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이내 재승이 눈썹을 한 번 튕겨 보이고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어떤 혜택이 따르는지는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해드려야 하는지는, 아직 듣지 못한 것 같네요.”
“협회의 마스코트(Mascot)가 되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협회와 한 몸인 것처럼, 움직여 주시기만 하면 되죠. 어떤 결정을 내리실 때든, 협회와 상의 후에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 협회는, 이재승 디자이너의 이익을 최우선에 둘 테고요.”
이내 재승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려보였다.
어느 정도의 성공을 약속해 줄 테니, 충성스러운 ‘수족’(手足)이 되어달라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당장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지만, 후에는 수익 분배와 관련된 조항을 추가할 것이다.
기득권의 힘을 이용해, 협박도 아끼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모호하실 것 같아서, 준비해 온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일단 한 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김근태 이사가 제 서류가방 안에서, A4용지 묶음을 꺼내서는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대본입니다.”
“대본이요?”
나직이 되물어 보인 재승이, 막 건네받은 A4용지 묶음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늘 교양 프로그램 녹화 도중 받을 법한 예상 질문 목록과 모범 답안을, 협회 측에서 임의로 작성한 듯 보였다.
간단히 요약해 말하자면, 협회 측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작성된 대본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협회 측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방법은,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그럼 앞서 열거했던 모든 지원을 받으실 수 있는 거죠.”
“잠시만요. 그럼 그동안 협회 측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란 건가요? 그것도 방송에서?”
설마 이토록 대놓고 빨대를 꽂아 넣으려는 시도를 할 줄이야! 재승이 거부감을 내비추자, 김근태 이사가 제 턱을 긁적이고는 답을 내놓았다.
“흠,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양측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자는 거죠.”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그 한마디로, 협회가, 아니, 적어도 김근태 이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듯했다.
어른들의 세계라….
이내 재승이 A4용지 묶음을 도로 협탁 위에 내려두며, 나긋한 투로 답했다.
“멋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도 종종 있나 보네요.”
“예?”
“거절하겠습니다.”
재승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대기실 안의 공기가 한없이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