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nake Finds the Wolf Who Played With the Snake RAW novel - Chapter 14
12. * *
알렉의 예상대로였다. 로렌은 소식을 듣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도착한 현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기초를 쌓아 둔 나무판자는 부서져 떠내려 갔고 구부러진 철근은 나무뿌리처럼 흙탕물 위로 비쭉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낮은 지대를 따라 흙탕물이 콸콸 흐르며 주변을 잠식했고 언덕은 물살에 깎여 토사가 무너졌다.
실종자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현장을 가득 채웠다.
“우선 둑부터 막아야 해!”
물살에 쓸려 나가지 않도록 허리에 밧줄을 묶은 인부들은 힘을 합쳐 바위를 들고 있었다. 로렌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터진 둑 앞에 바위를 내려 두었다.
“역시 로렌이구만! 우리 셋이서 힘을 합친 것보다 낫다니까.”
인부들은 바위를 낑낑 옮기면서 로렌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평소라면 자랑스럽게 웃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다른 이들은.”
로렌이 공사 반장을 향해 물었다.
“저쪽에 세워 뒀던 막사가 흙더미에 깔렸는데 거기 갇힌 것 같아. 저 빌어먹을 구멍부터 막아야 뭘 하든 하지.”
“내게 맡겨라.”
로렌은 바위를 번쩍 들어서 터진 둑 앞에 옮겨 두는 것을 반복했다. 덕분에 강을 이루던 물줄기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바위를 내려놓았을 때는 로렌의 무릎까지 수위가 줄어 있었다. 쌓아 둔 바위틈으로 새어 나오는 물을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선방이었다.
로렌은 곧장 막사가 있던 장소로 이동했다. 흙더미에 깔린 막사는 완만한 언덕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었고 그곳을 삽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로렌을 선두로 몸을 사리던 인부들까지 구조에 열을 올렸다.
“흑흑, 신이시여, 제발 제이크와 파울로를 살려 주세요.”
어린 인부 하나가 울면서 삽을 잡았다. 삽을 붙잡은 두 손이 기도하듯 간절했다.
“…다 죽은 신에게 빌 기운이 있으면 삽질이나 한 번 더 하거라.”
로렌의 조언은 평소와 달리 냉정했다. 어린 인부가 상처받은 얼굴로 로렌을 응시했지만 로렌은 뱉은 말대로 삽질을 서두르느라 주변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을 거야. 무사할 거야.’
삽을 뜰 때마다 로렌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삽자루가 힘을 이기지 못해 부러지면 부지런히 새 삽을 들고 와 흙을 파냈다. 곧 삽 머리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았다. 막사 천장이었다.
“찾았다! 모두 이쪽으로 와 보거라!”
시작했다. 두 손에 가시가 박히고 살이 찢어졌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인부들도 로렌을 도와 천장을 들어냈다. 우지직! 소리와 함께 판자가 뜯겨 나갔고 그 틈으로 갇힌 사람들이 보였다. 정신을 잃은 이들이 있었으나 다행히 죽은 자는 없는 것 같았다.
“로렌이 우릴 구했어!”
“오늘만큼은 네가 정말 수호신 같구나!”
생존자들은 로렌을 태양처럼 올려다보며 너도나도 손을 뻗었다. 로렌은 한 명씩 천천히 손을 잡아당겨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성인 남성의 육중한 몸이 어린아이처럼 붕 떠올라 파묻힌 막사를 탈출했다. 그때 인부 하나가 다급하게 둑을 가리켰다.
“로렌, 큰일 났어!”
“무슨 일이지?”
“바, 바위가 흔들려!”
인부의 말대로 둑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바위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바위를 지탱하는 건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했다. 로렌은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생존자를 모두 구할 때까지 바위가 무너지면 안 되었다. 다시 둑이 터져 버리면 저 사람들까지 모조리 쓸려 나갈 것이다.
로렌은 두 다리에 힘을 주고서 바위를 지탱했다. 잔뜩 물을 머금은 치맛자락이 물살에 펄럭일 때마다 다리가 위험하게 흔들렸으나 최대한 발바닥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로렌, 혼자선 위험해!”
인부 서넛이 로렌 쪽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로렌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이 와도 어차피 오래 못 버틴다. 이곳은 내게 맡기고 당장 사람부터 구하거라!”
로렌의 말에 인부들은 머뭇거리다가 무너진 막사 안에서 사람을 꺼내는 데 손을 보탰다. 축 처진 몸들이 하나둘 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버텨야 해.’
온몸이 욱신거렸다. 매초가 지날수록 견딜 수 있으리란 확신이 줄어들었다. 젖은 몸이 춥고 아프고 힘들었다. 무서웠다. 어딘가 부러진 것도 부러질 것도 같았다.
‘제가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발 한 번만 힘을 주세요.’
신이시여. 로렌은 어딘가에 존재할 진짜 신을 향해 절박하게 기도했다. 그러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한때 신이라 불리었던 주제에 또 다른 신께 기도하는 게 모순적이지 않은가.
‘내게 기도를 하던 너희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왕궁 지하에 잠들어 있을 때면 아주 아주 간절한 기도가 속삭임처럼 들려올 때가 있었다. 그땐 잘 몰랐으나 이제는 쏟아지던 속삭임의 무게를 알 것도 같았다.
‘너희들에게 미안하구나. 내가 무지했었다.’
간곡한 기도에도 응답하지 않은 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지금 신을 원망 중인 자신처럼 말이다.
흔들리는 바위를 지탱하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로렌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간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때 인부 하나가 로렌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 구출했어, 로렌!”
“다행이구나.”
마지막 실종자를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렌은 생긋 웃었다. 진짜 신이 제 기도는 들어주지 않았어도 저들만큼은 보살폈던 모양이다.
목숨을 건진 인부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늑대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모든 건 신의 은총입니다!”
그들은 버릇처럼 죽은 신을 향해 감사를 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렌의 얼굴엔 씁쓸한 미소가 퍼졌다.
‘신이 아니라 너희들이 직접 해낸 일이다. 어째서 애먼 신에게 그 감사를 돌리는 건지.’
생각은 그리했어도 심장이 시큰거렸다. 그들이 전하는 따듯한 마음이 찬물에 식어 가는 몸 주위를 맴돌았다.
너희는 지난 긴 세월 동안 내가 돌보지 못한 것들을 지금처럼 해내면서 내게 고맙다고 하였을까. 기쁨이 가득한 순간에도 너희는 그 자리에 없는 나를 떠올렸을까.
‘아마 그랬겠지.’
보잘것없는 신에게 너희의 고귀한 마음을 지금처럼 남김없이 바쳤겠지.
‘이제야 알겠어. 내가 이 왕국의 수호신이었던 이유를.’
내가 되고자 하여 된 것이 아니고 지키고자 하여 지켜 낸 자리가 아니었다. 막스웰과의 맹약으로 떠안게 된 자리도 아니었다.
그대들의 신이 되어 달처럼 빛이 났던 건 그대들의 현실이 어두워서가 아니었다. 그대들이 내게 건넸던, 갚지도 못할 사랑을 받아 그 자리에서 그저 빛났던 것이다. 그걸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를 버린 왕과 나를 잊은 그대들을 원망했던 게 미안해지는구나. 나는 참 속이 좁았던 모양이야.’
로렌은 입술을 꾹 물었다. 그리고 어떤 결심이 선 사람처럼 목에 빳빳하게 힘을 주었다. 상황을 통제하던 공사 반장이 그 모습을 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로렌! 허튼 생각하지 말고 어서 나와!”
수년간 현장을 뛰면서 이 꼴 저 꼴 다 본 공사 반장은 무엇을 눈치챘는지 로렌을 향해 다급히 손짓했다.
로렌은 그 목소리를 듣고 손자에게 좋은 옷을 사 주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관절에 녹이 슨 것 같다며 이번 공사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리라 호언장담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새 옷을 받고 팔짝팔짝 뛸 손주와 그걸 뿌듯하게 지켜보는 반장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지금 여길 떠나면 안 되지, 반장.”
로렌은 바위를 밀어내는 거센 물살을 버티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라는 거야! 헛소리 말고 당장 나와!”
“내가 여길 안 지키면 너희들이 모두 물에 쓸려 나갈 거 아니냐.”
“죽으려고 환장했어? 그러다 네가 죽어!”
공사 반장이 로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젊은 인부 두 명이 반장을 말렸다.
“비켜, 새끼들아!”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반장님. 다 죽고 싶지 않으면 로렌이 버텨 줄 때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해요.”
“반장님이 현장 지휘를 해 주셔야 합니다!”
그들은 부상자들을 옮기며 대피 중인 행렬을 가리켰다. 일부 당황한 무리는 방향도 모른 채 잘못된 길로 이탈해 다치기도 하였다. 제기랄! 반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로렌을 향해 외쳤다.
“난 지금부터 저놈들을 대피시킬 테니 너도 절반 정도가 여길 벗어나면 둑을 포기하고 나와. 끝까지 버티다 뒈지지 말고!”
“걱정하지 마라.”
로렌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흙탕물과 빗물 따위가 얼굴로 쏟아졌지만 미소 짓는 얼굴은 유독 인자했다.
“제기랄, 저 미친 여자가 오늘따라 왜 저리 성스럽게 보이는 거야? 괜히 눈물 나게.”
공사 반장은 손등으로 눈가를 쓱쓱 문지르면서 인부들에게로 부지런히 돌아갔다.
로렌은 바위에서 몸을 떼지 않고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무리의 반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대피할 때까지 기다렸다. 여기서 발을 떼면 흔들리던 바위들이 곧장 무너질 테고 못해도 다리 하나는 부러질 것이 뻔했다. 그리고 다친 몸으로 이 물살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 로렌에게 남은 답안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정말 끝이구나.’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되려 지난 300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숙제를 어설프게나마 해결한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아끼던 이들을 구하였으니 벅차도록 뿌듯했다.
‘미안, 에블린.’
로렌은 죽은 양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게 신 따위가 아니라 평범한 존재가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했는데. 난 한 번쯤 저들을 수호하고 싶었나 봐.’
로렌은 눈을 감았다. 전신이 파르르 떨림과 동시에 힘이 빠졌다. 그 순간 아는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막스웰, 도스턴, 샬럿, 마사 아주머니… 그리고 상처받은 알렉의 모습. 아쉽구나. 기왕이면 웃는 모습으로 나올 것이지.
‘한 번쯤은 그의 소원이 무엇인지 들어 볼 걸 그랬어.’
그때 팔을 뻗어 막아 내던 바위 하나가 크게 흔들리다가 머리 옆으로 쿵 떨어졌다. 쿠구구구― 동시에 뚫린 구멍으로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로렌의 시야가 순식간에 시커먼 흙탕물로 뒤덮였다. 불투명한 시야 사이로 달려오는 알렉이 보이는 것 같았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로렌은 그대로 물살에 휩쓸리며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