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nake Finds the Wolf Who Played With the Snake RAW novel - Chapter 27
23. * *
그 시각 로렌은 낯선 여인들 틈에 앉아 공작 부인이 건네주는 과일을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이곳은 티룸이었다. 별궁연회장 위층에 위치한 이곳은 꽤나 비밀스러워서 엘리아나 공주와 공작 부인이 애용하는 장소였다.
“맛있, 네요.”
로렌은 어색한 존댓말을 쓰면서 처음 먹어 보는 달콤한 과육을 삼켰다.
“동쪽에서만 재배된다는 딸기일세. 우리와는 품종이 달라서 크기는 작은데 훨씬 더 달콤하지.”
“처음 먹어 봅니다.”
“이런, 알렉산더 경은 로렌 양에게 이런 걸 안 사 주던가? 그가 이런 걸 구해 오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이기적인 작자가 제 입만 채웠나 보군.”
공작 부인이 알렉을 까 내리면서 로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긴장한 나머지 딱딱하게 굳어 있던 로렌은 공작 부인이 몸을 기대오는 대로 받아 주었다. 로렌은 늑대의 감으로 이 무리의 대장이 공작 부인이라는 걸 알아챘다. 우두머리는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법. 로렌은 도스턴의 당부를 되새기면서 최대한 공작 부인의 심기를 살폈다.
“그런데 아까부터 로렌 양 말투가 좀 마음에 들지 않네.”
“내 말투가 말입니까?”
제 말투라고 해야 했나. 로렌은 말을 고칠 타이밍을 놓치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래. 원래는 좀 더 상대를 내려다보는 그런… 날 짓누르고 의지시켜 버릴 것 같은 말투였잖아.”
공작 부인의 설명은 어딘지 이상했고 달아오른 그녀의 뺨도 뭔가 위험해 보였다. 로렌은 슬쩍 고개를 반대편으로 기울였다. 아까부터 공작 부인의 뜨거운 숨이 자꾸만 귀 끝에 닿아 불편했다. 목에 두른 초커가 아니었다면 더 민망한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어서 평소처럼 말을 놓아, 로렌 양.”
“하지만 귀족에게는…….”
“공작 부인으로서 내리는 명령일세.”
“…알았다.”
“아읏, 좋아요. 기대고 싶어.”
로렌이 말을 놓자마자 공작 부인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속사포처럼 말했다.
‘방금 저자가 내게 존댓말을 하지 않았나?’
로렌은 위험하게 들리는 콧소리를 피해 슬쩍 상체를 반대로 기울였다. 다행히도 공작 부인은 흩어진 머리를 만지작대며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자네들도 로렌 양의 말투가 괜찮다고 보지?”
공작 부인이 맞은편에 있는 귀부인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또한 공작 부인처럼 특이한 부류들인지 ‘그럼요.’, ‘이상하게 중독성 있어.’, ‘재밌는 친구가 생겼네.’ 하며 입을 모았다.
“그럼 로렌 양이 우리 앞에선 말을 편하게 하는 거로 하지.”
공작 부인은 테이블에 따라 놓은 화이트 와인을 로렌에게 건넸다. 이미 그 옆엔 로렌이 다 마신 와인 잔이 두 개나 놓여 있었다.
“그런데 로렌 양은 그대의 소문이 사교계에 파다한 걸 아는가.”
“내 소문?”
“알렉산더 경과 붙어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절차이지.”
신을 사칭하는 미친 여자, 별 볼 일 없는 늑대 수인, 상단주를 홀려 버린 마녀. 공작 부인은 손가락을 꼽으며 퍼져 있는 소문을 한 가지씩 읊었다.
그러면서 로렌의 안색을 살폈다. 기분 나빠 하긴커녕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인자한 모습은 성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어쩐지 의지하고 싶어지더라니까.’
공작 부인은 로렌의 입에 딸기를 하나 더 물려 주었다.
“로렌 양은 알렉산더 경과 있기에는 참 아까운 여인일세.”
“아깝기는. 그렇지 않아. 난 가진 게 없지만 알렉은 가진 게 많거든.”
“호오, 그게 무엇인데.”
“알렉은 나보다 힘이 세고 말재간이 좋다. 셈이 빨라서 돈 계산도 척척하고 웃고 싶지 않을 때도 감쪽같이 표정을 감출 수 있지. 예상외로 요리도 꽤 잘해. 특히 오믈렛.”
로렌의 설명에 공작 부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연히 돈이나 상단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온통 알렉산더 그 본인의 이야기였다. 역시나 알렉산더 곁에 있기엔 너무도 아까운 인재였다.
“그럼 내가 더 나은 것 같아, 로렌 양. 난 알렉산더 경이 못 가진 걸 가지고 있거든.”
“그게 무엇이지?”
“딸기를 칠칠찮게 먹고 있는 로렌 양의 귀여운 모습을 본 것?”
공작 부인의 말에 귀부인들이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머, 맞네요.”
“귀여워라. 이거 체드윅 드레스 신상품 아닌가? 여기도 딸기 물을 흘렸네.”
그들은 앞다투어 로렌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런 독특하고 매력 있는 여자를 어디서 만났냐며 공작 부인에게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나저나 로렌 양은 몇 살이지?”
“아마 320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아서.”
취기가 올라서일까. 로렌은 대충 얼버무리지 못하고 그만 진실을 말해 버렸다.
“깔깔! 컨셉을 끝까지 안 버리는 것 좀 봐.”
“너무 귀여워!”
왜 웃는 거지. 로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배꼽을 붙잡는 귀부인들을 응시했다. 웃음에도 전염성이 있는지 지켜보던 로렌도 덩달아 인자하게 웃어 버렸다.
“내 눈엔 그대들이 더 귀엽다.”
“푸하, 너무 재밌네요. 말투 어떡해.”
“320살이면 로렌 양이 내 언니 할래요? 난 이제 25인데.”
이번에 애를 낳았다는 보베르 백작 부인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언니 동생을 제안했다. 그녀를 향해 공작 부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보베르 부인. 순서를 지켜. 로렌 양은 내 차지일세.”
“너무 인기가 많아져서 안 되겠어. 앞으론 나와 단둘이 있을 때만 말을 놓으라고 할까 봐.” 공작 부인은 장난스레 뒷말을 붙이면서 일행을 견제했다.
그렇게 티룸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귀족들이 모두 무서운 것은 아니구나.’
로렌은 도스턴의 가르침을 잠시 내려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냥 슬프리라 예상했던 막스웰의 결혼식에서 친구를 만들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