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nake Finds the Wolf Who Played With the Snake RAW novel - Chapter 29
10. 재회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잘생긴 왕과 아름다운 공주의 결혼은 동화 속 삽화보다도 아름다웠다.
주변의 축복 속에서 막스웰은 결혼식을 마쳤다.
‘이것은 단순한 결혼이 아니야.’
국왕인 자신이 신성제국의 유일신에게 맹세를 바치는 것을 시작으로 국교가 정식으로 바뀌었음을 선포하는 일종의 의식. 내일부터는 새로 건설한 신전에 새로운 신관이 들어오고 하늘 신 석상이 왕국 곳곳에 세워질 것이다.
‘이제 나의 왕국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을 본뜬 신을 섬기게 되는군.’
이로써 신성제국과 종교 동맹 관계가 되며 주변 왕국 견제가 수월해진다. 어쩌면 제국 신성기사단을 앞세워 땅을 넓힐 수도 있겠지. 종교 전쟁은 그 어떤 명목보다도 정당성을 수립하기가 쉬우니.
‘언젠가 상단주가 비아냥거렸던 말이 떠오르는군.’
저보고 결혼 하나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한 장사치라 했던가. 막스웰은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다. 이깟 결혼 하나에 수천수만의 백성을 갈아 넣어도 얻기 힘든 동맹과 군사를 얻었으니.
‘얻은 것만 있고 잃은 것은 없는 완벽한 거래…….’
잠깐. 잃은 것이 정녕 없던가. 막스웰은 아릿해진 오른 손등을 장갑 위로 매만졌다. 그 아래엔 늑대 신과의 맹약을 상징하는 인장이 있었다. 자신을 건국 왕의 환생이라고 사람들이 떠들게 만들던 바로 그 증표.
‘오늘따라 손등이 화끈거리는군.’
막스웰은 욱신대는 손등을 문질렀다.
죽어 버린 늑대 신이 국혼과 함께 국교가 바뀔 것을 알고 노여워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며 피식 웃던 때.
‘막스웰.’
멀어진 초점으로 꿈속에서 보았던 은빛 머리칼이 살랑이면서 저를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뭐야 이건!’
막스웰은 재빨리 눈앞의 머리칼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전하?”
수발을 들던 시종이 고개를 갸웃대면서 그를 불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방금 보았던 머리칼은 온데간데없고 당황한 시종들의 모습만 보일 뿐.
“아, 짐이 좀 피곤했나 보군.”
등줄기로 식은땀이 또르르 흘러내린 걸 느낀 막스웰은 별실로 들어가 몸단장을 마무리했다. 재킷 위로 주렁주렁 달린 금빛 훈장과 금줄 장식이 빼곡했으나 막스웰은 허전함을 느꼈다. 오늘만큼은 매일 어깨에 두르고 다니던 늑대 가죽을 벗어 두어야 했으니.
시종들은 곧 시작될 결혼 연회를 위해 막스웰의 넥타이와 커프스단추를 손보았다. 그동안 막스웰의 시선은 줄곧 창문에 붙어 있었다.
“결혼식인데 비가 오지 않는군.”
꿈에서 보았던 결혼식은 언제나 비가 내렸다. 그런데 오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기만 하다.
“하늘도 전하의 결혼을 축복하는 모양입니다.”
시종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글쎄. 짐은 비가 내렸으면 하는데.”
“예?”
“그래야 누군가 짐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 것 같거든.”
막스웰은 모호한 말을 흘린 뒤 연회장으로 출발했다.
오늘부로 왕비가 된 신성제국의 황녀가 새로운 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막스웰을 반겼다. 하지만 막스웰은 그 흔한 칭찬 하나 흘리지 못하고 초점을 흐렸다. 황녀의 금발 위로 조금 전 보았던 은빛 머리칼이 아른거렸다.
“꼭 과거 연인이라도 떠올리시는 표정이군요.”
왕비가 막스웰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면서 자꾸 이러면 자신도 옛 연인을 떠올려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알아서 해. 그건 그대의 자유지.”
“결혼 첫날부터 이러기예요? 결혼 전 밀회가 훨씬 더 달콤했었네요.”
말은 그랬어도 왕비는 애초에 기대한 바가 없었던 것처럼 덤덤했다. 두 사람이 커다란 문 앞에 서자 그 앞을 지키던 시종들이 양쪽 문을 활짝 열었다. 국왕 부부는 테라스 형태의 2층으로 입장해 난간 아래로 보이는 귀족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가운데 계단을 따라 천천히 1층으로 내려오며 막스웰이 왕비에게 속삭였다.
“원래 과일은 삼키기 전이 더 달콤한 법이야, 왕비. 지금의 단맛을 잘 기억해 둬.”
“결혼을 과일에 비유하는 건가요?”
“서로 값을 잘 흥정한 과일이지. 썩지 않으려면 너무 붙어 있어도 뜨거워서도 안 돼.”
“하아, 벌써부터 왕비 노릇이 싱거워지네요.”
두 사람의 대화는 건조했으나 연회장으로 입장하는 둘의 모습은 계산한 것처럼 완벽했다.
“정말 아름다운 한 쌍이네요.”
“그림 같은 왕족이에요.”
고귀한 피, 완벽한 혈통. 귀족들은 입에 침이 마르게 떠들기 시작했다. 로렌 또한 넋을 놓고 둘의 모습을 응시했다.
“둘 다 반짝이는 보석 같구나.”
그 말에 왕이 입장하든 말든 로렌만을 바라보던 알렉이 비아냥거렸다.
“흔해 빠진 금덩이고만 뭐가 반짝여.”
‘이곳에서 정말 반짝이는 건 다이아몬드 같은 너’라고 전해 주고 싶은데. 수많은 여자에게 잘도 털어 댔던 가벼운 입술은 그녀 앞에서만 무거운 쇳덩이가 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알렉은 답답한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너는, 그러니까 현 시가 32만 실론의 플로러스 다이아몬드처럼. 그러니까 다이아몬드가…….”
상단주답게 정확한 시세를 들먹이던 알렉이 우물우물 말을 이었으나 막스웰만 바라보는 로렌의 귀에 들릴 턱이 없었다.
“참 잘 어울리는구나. 300년 전에도 그랬지.”
“…이젠 잊을 때도 되지 않았어?”
다이아몬드를 세 번 정도 반복하던 알렉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으면서 한 번 더 입술을 깨물었다. 이딴 말이나 쉽게 튀어 나가는 입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 잊을 때가 되었지. 아마 그럴 것이다. 이젠 전처럼 아프지 않으니.”
로렌은 씁쓸하게 웃으며 귀족들에게 인사 중인 막스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알렉은 그런 로렌의 턱을 조심스레 잡고 제 쪽으로 돌렸다.
“그만 봐.”
“뭐?”
“여기서 네가 제일 열심히 왕을 보고 있잖아.”
“하지만 저들이 주인공 아닌가.”
“주인공은 무슨. 모든 자리에선 시선을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지. 주변 좀 살펴봐. 저기 있는 새신랑보다 지금 나한테 꽂혀 있는 시선이 더 많다고.”
알렉이 황금빛 눈동자로 사방을 눈짓했다. 로렌은 그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살폈다. 그의 말대로 많은 이의 시선이 알렉을 향하고 있었다. 수줍은 여인들의 시선은 이해하겠는데 몇몇 사내들까지도 얼굴을 붉히는 건 뭘까.
그 와중에 로렌은 저를 보던 공작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공작 부인이 요염한 윙크를 날리자 로렌도 화답한다며 눈을 깜박였다. 한쪽 눈만 깜박이는 것이 어려워 두 눈이 함께 깜박였지만.
그러자 공작 부인은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으며 뒤로 넘어갔다. 그녀를 보좌하던 미청년이 ‘괜찮으십니까, 부인!’하며 넘어가는 공작 부인을 지탱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로렌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알렉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표정은 사나워져 있었다.
“무리 생활을 좋아한다더니. 늑대님은 자기 무리 사람이라면 그런 깜찍한 짓도 해 주나 보지?”
“무슨 말이냐.”
“지금 공작 부인한테 윙크했잖아. 그걸 보면 내 속이 타, 안 타?”
알렉이 가슴팍을 탁탁 두드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로렌은 이 예민한 사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눈을 깜박거린 게 속을 태울 일이냐.”
“내가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오늘따라 이상하구나, 당신.”
“시발, 알아. 나도 내가 이상해서 미치겠어.”
“바른말을 쓰거라. 여긴 왕궁이니 특히나 입을 조심해야 해.”
로렌은 도스턴이 제게 했던 충고를 알렉에게 고대로 전했다.
‘내가 지금 왕궁 방문이 처음인 여자한테 잔소리를 듣는 거야? 이런 연회 따윈 질리도록 참여해 본 내가?’
알렉은 기막혀하면서도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들쭉날쭉한 기분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던 막스웰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음을.
“내 결혼을 축하해 줘서 고맙군, 알렉산더 경.”
“…경하드립니다, 전하.”
알렉은 재빨리 로렌을 제 뒤로 보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새로운 왕비에게도 같은 인사를 건넸다.
왕비는 알렉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선이 굵은 이목구비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얼굴.
‘제국에서도 이런 미남은 찾아보기 힘든데.’
한참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큰 키와 다부진 몸은 장사치가 아닌 무관에 가까웠으며 그가 뿜어 대는 아우라는 상대를 움츠러들게 할 만큼 특별했다.
왕비는 잠시 남편이란 존재를 잊은 채 알렉을 감상했다. 그녀가 그러든 말든 막스웰은 알렉이 뒤로 숨긴 로렌을 흥미롭게 바라볼 뿐이다.
“뭐 보물이라도 감추는 것 같군, 알렉산더 경.”
“전하께서 보신 별종이 제겐 보물이라서 말입니다.”
알렉은 오래전 기차역에서 막스웰이 로렌을 별종이라 칭했던 일을 언급했다.
“하하, 아직도 그 말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가. 그나저나 의외야. 그 여인과 헤어진 줄 알았는데 오래가는군.”
“제 연애에 이토록 관심이 많으신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왕비님께서 이토록 서운하시지요. 안 그렇습니까, 왕비님.”
알렉은 저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왕비와 눈을 마주친 뒤 철저히 사업적인 눈웃음을 흘렸다. 남편이 다른 곳에 눈을 두니 네 부인도 다른 사내에게 눈을 두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었다.
“아.”
탄성을 흘린 왕비는 고개를 숙여 붉어진 뺨을 감췄다. 막스웰은 건조한 낯으로 왕비를 힐끔거릴 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의 왕비는 외국에서 온 터라 새로운 사람들을 익히느라 아주 분주한 것이네.”
“그렇습니까.”
“이 정도면 짐이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은데. 자네는 언제 자네의 파트너를 소개할 생각인가.”
“아아, 그래요. 소개해 드려야지요. 이쪽은 제 파트너 로렌 루즈벡입니다.”
알렉은 제 뒤로 숨겼던 로렌을 반만 내보이며 소개했다.
“경의 덩치가 커서인지 반밖에 안 보이네만.”
“그런가요? 몰랐습니다.”
알렉은 뻔뻔하게 웃으면서도 굳이 로렌을 전부 보여 주지 않았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로렌은 알렉의 등 뒤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 늑대는 어느 상황이건 간에 당당하게 상대를 마주하는 법. 남의 뒤에 숨는 그런 비겁한 종족이 아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로렌은 도스턴에게 배웠던 모든 예법을 떠올리며 우아하고 단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소. 로렌 루즈벡이라 했던가.”
“예.”
“짐도 그대를 로렌이라 불러도 되겠나.”
막스웰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건 무슨 뜻이지? 로렌은 슬쩍 알렉의 눈치를 살폈다. 알렉의 입술은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지만 그의 관자놀이에는 푸른 핏줄이 불툭 튀어나와 있었다.
‘저이가 화가 났나. 그럼 거절할까.’
하지만 왕의 명령을 거절했다가는 기차역에서처럼 또 한 번 알렉이 화를 입을지도 몰랐다.
‘나는 괜찮지만 알렉에겐 불똥이 튀어서는 안 돼.’
로렌은 막스웰이 내민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쭈뼛쭈뼛 올렸다.
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숭상하고자 하는 맹약자의 손이 거북했지만 참아야 했다.
‘못된 놈.’
그런 그녀의 손이 막스웰의 하얀 가죽 장갑에 닿는 순간.
“윽!”
막스웰은 손등이 뜨겁게 타는 감각을 느끼며 손을 홱 빼냈다. 막스엘의 돌발 행동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 발 뒤에서 왕을 호위하던 근위대장이 눈을 부릅뜨고서 검을 빼 들려는 찰나.
“괜찮다.”
막스웰이 손을 올려 근위대장을 제지했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을 재빨리 수습한 뒤 오른손 장갑을 벗었다. 그의 손등에는 마법진을 옮겨 둔 듯한 맹약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수군대던 귀족들의 관심이 그 인장으로 옮겨 갔다. 저것이 건국 왕의 환생이라는 증표라면서 식장이 술렁였다.
자칫 부정적으로 흐를 뻔한 여론을 영리하게 바꾼 막스웰은 인장이 드러난 손을 로렌에게 내밀었다.
“잠시 장갑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 이리 다시 로렌 양에게 인사를 청하지.”
“…….”
하지만 인장을 본 로렌은 막스웰이 건넨 인사에 호응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워진 잿빛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리며 인장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그래, 네가 나의 맹약자였지.’
그리고 저를 버린 것 또한 그였다. 그런 그가 다른 종교를 세웠는데도 어째서 저 인장은 여전한 것인가. 어째서 맹약은 깨지지도 비틀리지도 않은 것인가.
‘아직 이름을 돌려받지 못해서겠지. 나의 영혼이 담긴 내 진짜 이름을.’
침묵이 길어지자 분위기가 또 한 번 이상해졌다. 보다 못한 알렉이 개입하려던 순간, 로렌이 꾹 닫힌 입술을 어렵사리 열면서 막스웰이 내민 손을 포개어 잡았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전하.”
“말, 하라.”
막스웰이 로렌과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선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붙잡자 지난 꿈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다. 수많은 장면이 흘러가는 와중에 ‘막스웰’하고 부르던 소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 목소리는 지금 귓가로 들리는 로렌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어찌하여 이 왕국은 늑대 신을 버린 겁니까.”
“버린 게 아니라 늑대 신께서 숨을 거두신 거다, 로렌 양.”
“그럼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 묻는 로렌의 눈빛은 형형했다. 손등 위 인장을 노려보는 눈동자가 ‘네가 죽였다’고 외치고 있었다.
“힘을 소진한 신은 쓸모가 사라져 비통하셨겠지. 그러다 왕국의 이익을 생각해 숨을 거두셨을 거다. 짐은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수백 년간 눈물만 흘리던 신에게 진정한 안녕이 찾아온 것이니.”
막스웰은 그리 대답하면서 미간에 힘을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그저 숨을 거두셨다고만 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진심이 섞여 대답이 길어지고 말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군.’
그리 생각하면서도 막스웰은 로렌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자신의 말에 상처받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작은 머리통을 보니 가슴이 간질거린 탓이다.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 사랑받는 기분?’
막스웰은 은빛 머리칼을 곱게 단장한 저 머리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쓸모가 사라지고 왕국의 이익… 그렇군요.”
로렌은 어금니를 꽈득 물었다. 불길한 예감에 알렉이 로렌의 어깨를 붙잡았다.
“로렌, 잠깐만.”
하지만 로렌은 곧장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막스웰과 맞잡던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손등이 위로 가게끔 돌렸다.
“그럼 다시 돌려주셔야지요, 전하.”
갑자기 달라진 로렌의 말투. 막스웰의 새파란 눈동자에 깊은 의문이 깃들었다.
“무얼 말인가.”
“이름 말입니다. 늑대의 이름.”
그리 말하며 로렌은 손을 덜덜 떨었다. 그 떨림이 막스웰의 심장까지 닿을 정도로.
그녀의 말에 하루 종일 미소만 지어 대던 막스웰의 가면이 무너졌다. 이름을 돌려달라고? 그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게 무슨 뜻이기에 작고 납작한 칼이 심장을 찌르고 비트는 것처럼 가슴이 아픈 걸까.
“로렌 양은 짐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군.”
“돌려줘, 내 진짜 이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서서히 올라와 새파란 눈동자에 닿았다.
“이제 네겐 이런 인장 따위가 필요 없지 않느냐.”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서 막스웰의 인장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더 세게 힘을 주고 싶었지만 맹약자를 해치는 건 불가능해서인지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검을 빼든 근위대장이 “무엄하다!”라고 로렌을 꾸짖으며 검을 겨누려던 때였다.
막스웰은 근위대장을 말리면서 로렌의 은빛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 바로 이 눈이었어. 꿈에서 보았던 그 눈. 햇살을 받으면 찬란하게 오색빛깔로 빛나던 아름다운 눈.
“너는 설마…….”
막스웰이 입술을 달싹이던 때.
“하하, 이 정도면 질투가 날 지경입니다, 전하.”
알렉이 로렌과 악수하던 왕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자, “무엄하다!”라며 또 한 번 근위대장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쩌렁쩌렁 울렸으나 알렉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만 저의 피앙세를 놓아주시지요. 나의 달링도 이만 전하를 왕비님께 돌려드려야지.”
알렉은 막스웰의 손을 꽉 잡고 있던 로렌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던 로렌은 부들부들 떨면서 막스웰을 놓아주었다.
순식간에 힘이 빠진 로렌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날 기억조차 못 하는 네게, 나는 왜 그리 편지를 썼던 걸까.”
높다란 구두 위에서 겨우 중심을 잡던 몸이 비틀거렸다. 알렉은 능숙하게 로렌의 등과 허리를 받쳐 그녀를 부축했다.
“제 파트너가 피곤하여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군요. 저희는 이만 돌아가 쉬어야겠습니다. 경사스러운 날이니 그리 쓴 표정은 말고 편히 즐기십시오.”
알렉은 막스웰과 왕비에게 흠 하나 없는 인사를 남긴 다음 로렌을 번쩍 안아 들었다. 평소라면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다고 주장할 로렌이었으나 그녀는 순순히 알렉의 품에 안겨 강아지처럼 몸을 오므렸다.
“이제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알렉은 그런 로렌의 몸을 더 꽈악 안아 주면서 연회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