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nake Finds the Wolf Who Played With the Snake RAW novel - Chapter 33
28. * *
로렌은 며칠간 알렉의 상단에서 머물렀다.
알렉은 바쁜 와중에도 로렌을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밤마다 옆자리에 누워 따듯하게 데운 타월을 눈 위에 올려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의 붓기는 하루 만에 빠졌지만 알렉은 로렌이 아직도 몰래 울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 신기한 사내야.’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제 심장이 아프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장사치라서 사람을 잘 읽어 내는 걸까.
“이젠 정말 괜찮아.”
로렌은 거울 앞에 선 알렉에게 말했다. 그는 왕국을 떠나는 일족을 배웅하기 위해 외출을 준비 중이었다. 그 목적이 배웅이라기보다는 감시에 가까웠지만 알렉은 로렌 앞에서 ‘배웅’이라는 단어를 썼다.
“뭐가 괜찮은데.”
알렉은 거울로 비치는 로렌을 응시하면서 넥타이를 매었다.
“기분 말이다. 이젠 갑갑하기도 하고.”
하루 이틀은 괜찮았으나 사흘째가 되니 좀이 쑤셨다. 어딘가 갇혀 있는 것은 300년간 진력나도록 경험했다. 알렉의 황금빛 눈동자가 입술을 비쭉 내민 로렌을 조용히 응시했다.
“난 맘에 드는데. 네가 내 곁에 묶여 있는 거.”
알렉이 중얼거렸다. 로렌은 손바닥으로 귀를 비비며 잘못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라 하였나.”
“별거 아니었어.”
어두운 집착이 담긴 동공이 잠시 뱀처럼 길어졌다가 눈을 한 번 깜박이니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가 보마.”
“위험하진 않겠어?”
넥타이를 맨 알렉은 하인이 건넨 재킷을 걸치면서 뒤를 돌았다. 로렌은 ‘지금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게 가장 위험한 것 같아’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내가 연회에서 저지른 일이 큰 잘못이었다면 지금쯤 근위대에게 잡혀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도 없지 않은가.”
“이럴 때만 맞는 말을 하네, 나의 늑대님은. 듣는 사람 아쉽게.”
알렉은 피식 웃었다. 더욱 로렌을 붙잡아 두고 싶지만 핑계도 떨어졌을뿐더러 지금은 바빠서 길게 설득할 시간도 없었다.
알렉은 로렌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럼 사샤의 배웅을 받아. 내가 직접 배웅하고 싶은데 이 빌어먹을 일족 때문에 지금은 정신이 없군. 그리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 아니잖아.” 알렉이 로렌의 귓가에 대고 뒷말을 속삭였다. 로렌의 귓가가 빨개지자 그 귀여운 귓불을 입술로 잘근 씹은 뒤 자세를 바로 했다.
“사샤가 그랬어?”
“무, 뭘 말이냐.”
“지금 내게 와서 외출 부탁해 보라고 조언한 거 말이야. 지금 가면 쉽게 허락받을 거라고 했을 것 같은데.”
“허, 참 나, 무슨 소리를.”
로렌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면서 아니라는 소리는 못 했다. 알렉은 피식 웃으며 귀여운 로렌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자유로운 늑대님이 집 지키는 개처럼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안전해야 해. 무슨 일 있으면 내게 연락하고. 연락할 수단은 사샤가 줄 거야.”
알렉은 조용하게 로렌을 지나쳐 출입문을 열었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사샤가 복도에서 알렉을 반겼다. 그 와중에 사샤는 들고 있던 꿀단지의 꿀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알렉은 놀랍지도 않다는 듯 사샤를 내려다보았다.
“다 들었지? 로렌에게 마도구 하나 줘. 제대로 배웅하고.”
알렉은 긴 다리로 사샤를 훌쩍 넘어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로렌은 넘어진 사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샤는 알렉이 완전하게 퇴장한 걸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로렌의 손을 잡았다. 로렌은 제 덩치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사내를 어렵지도 않게 일으켰다.
우오오― 사샤가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로렌의 뒤로 숨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알렉이 불쑥 나타나 로렌의 손을 잡았다고 화를 낼 것 같았다.
“괜찮으냐.”
“심장이 콩닥거려서 죽을 것 같았죠. 보셨어요, 레이디?”
사샤는 ‘지금 내게 와서 부탁하라고 조언한 사람이 사샤 맞지?’하면서 엿들었던 알렉의 말을 흉내 냈다.
“정말 귀신같다니까요.”
그리 말하면서 사샤는 로렌에게 손바닥만 한 마도구를 건넸다. 돌판에 글자를 쓰면 상대에게 글을 전송하는 신기한 마도구. 남쪽 마탑에서 1년에 딱 한 쌍씩만 만들어 내는데 만드는 족족 알렉이 사들이고 있단다. 로렌은 그 마도구를 주머니에 넣었다.
“장사치라 귀가 밝은가 보다.”
“그래도 제 말이 맞았죠? 헤헤.”
“그래. 네 말대로 지금 가니 순순히 허락을 해 주는구나. 잘하였다.”
까치발을 든 로렌이 팔을 위로 쭉 뻗어 사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2m에 육박한 사샤의 정수리가 아니라 귀 옆 머리 정도에 닿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뭐라고 사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심장이 따듯하게 피어오르는 걸 느끼면서 세상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 알렉이 봤으면 절 죽여 버렸을지도 몰라요.”
자, 어서 갑시다! 사샤가 로렌의 허벅지만 한 팔뚝을 내밀면서 에스코트를 했다.
로렌은 그 팔 위에 손을 올렸다. 에스코트에 서툰지 그가 내민 팔 높이가 높아서 어깨가 불편했지만 그 마음만으로도 참 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