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nake Finds the Wolf Who Played With the Snake RAW novel - Chapter 34
29. * *
“이걸 로렌 양과 함께 보러 왔다면 알렉이 절 죽여 버리려고 했을 거예요.”
“그러면 열아홉 번째 죽음의 위기구나.”
사샤는 걸핏하면 알렉이 자신을 죽여 버릴 거라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차 에스코트를 할 때도, 한 그릇에 담긴 간식을 나눠 먹을 때도, 떨어뜨린 가방을 줍느라 손이 스쳤을 때도 사샤는 죽음의 위기를 읊조렸다.
“그나저나 정―말 멋지네요.”
호기심 많은 곰이 새로 지어진 화려한 신전 외향을 보면서 눈을 반짝거렸다. 국혼식 후 문을 연 신전 앞에는 새하얀 대리석을 깎아 만든 신상이 있었다.
‘인간을 닮은 신이구나.’
석상을 보던 시선이 푸른 하늘로 향했다. 진정한 신은 인간을 닮았느냐고 물어보는 눈빛은 어딘가 서글펐다.
“로렌 양, 로렌 양, 저길 보세요. 기념품도 팝니다.”
사샤가 신전 건물 안쪽을 가리켰다. 어디? 몸을 홱 돌리던 로렌이 중심을 잃자 사샤가 어깨를 잡아 지탱했다. 그리고 스무 번째 죽음의 위기를 읊조린다.
“기념품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요?”
“내가 저런 것에 관심이 있겠나.”
“예에? 아까는 같이 구경 가자고 제게 세 번이나 부탁하셨잖아요.”
그래서 알렉에게 허락을 얻어 내는 방법도 알려 줬는데 이러기냐며 사샤가 커다란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곰이 떼도 부릴 줄 아는구나. 남의 집안 구경은 해서 뭐 하는지.”
로렌은 하늘 신의 신전을 가 보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답지 않게 툴툴거렸다. 막상 신전을 보니 제 자리를 빼앗긴 것만 같아서 못난 심술보가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위대하다는 하늘 신의 신전이 내심 궁금했었다. 하늘 신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 호기심 어린 시선이 자꾸 건물 안쪽에 머물렀다.
짤랑. 그때 은화가 가득 든 주머니가 눈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짜잔. 알렉이 로렌 양에게 좋―은 거 맛있는 거 다― 사 주라고 돈 많이 줬습니다만. 이거 안 쓰실 겁니까.”
“…그럼 뭐, 구경은 한 번 해 볼까.”
엣헴. 로렌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고서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앞장섰다.
신전은 화려한 외향과 달리 안쪽은 어둡고 조용했다. 색유리 창문으로 들어온 정제된 빛이 공기를 더 고요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신전 정중앙을 똑바로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날것의 햇볕이었다. 신성함이란 이런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자매님.”
그러던 중 기다란 모자를 쓴 신관이 로렌에게 다가왔다. 곱상한 외모의 신관은 로렌을 뚫어지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분이군요.”
“꽤 볼 줄 아는구나.”
로렌은 쑥스러운 미소를 띠더니 정중앙에 있는 석상을 향해 ‘당신은 꽤 괜찮은 신관을 선발했구나’하고 중얼거렸다.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대신관은 로렌의 시선이 닿았던 중앙 신상을 확인한 뒤 당황한 표정을 겨우 갈무리 지었다.
“괜스레 인사드리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저는 신성제국에서 온 대신관 아우구스트라고 합니다.”
“그래, 난 로렌 루즈벡이라고 한다. 인사는 되었다. 남의 집이 어떻게 생겼나 구경 왔을 뿐이야.”
“남의 집… 말입니까?”
아우구스트 대신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게 모르게 신성한 기운을 풍기는 여인이기에 정체를 알고자 인사를 건넸는데 자꾸만 옆집 할머니 같은 반응이 돌아와 당황스러웠다.
“꽤나 엄숙하고 좋은 집이구나. 참 잘 지었다. 대신관도 싹싹하니 잘 구했고.”
“예?”
“하하, 인사치레는 되었다.”
로렌은 뒷짐을 지면서 배웅은 필요 없으니 네 할 일 하라고 말한 후 사샤와 함께 기념품점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통성명도 했으니 이 집에서 기념품은 몇 개 사 줘야 전직 수호신다운 행동이 아니겠는가.
“여기 오니까 꼬옥 어르신처럼 행동하네요, 로렌 양.”
사샤가 로렌을 쫄래쫄래 따라오면서 평소와 다르게 거만한 로렌의 행태를 지적했다. 고개가 밀랍처럼 빳빳한 것이 꼭 우두머리 늑대가 자태를 뽐내는 것 같았다.
“여기선 절대 기죽으면 안 되어서 그렇다.”
“에, 어째서요?”
“내가 남의 집에 와서 기가 죽어 버리면 나를 믿던 신관에게는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니겠는가.”
로렌의 씁쓸한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사샤가 눈을 꿈벅꿈벅거리며 작은 뒤통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가끔은 로렌 양의 속이 깊은 건지 독특한 건지 모르겠네요.”
“그건 그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느 때는 꿀단지만 찾는 어수룩한 곰이었다가 어느 때는 상처받은 용을 지키는 영리한 수호자가 되니 말이야.”
“수―호자요?”
알렉을 보좌하며 처음 들어 보는 후한 평가였다. 그것이 꽤나 기뻤는지 사샤의 입이 하마만큼 크게 벌어졌다. 기념품점에서 축성 받은 꿀단지 따위를 찾던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로렌은 그런 사샤의 양 손목을 잡아 얌전한 차렷 자세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수룩한 곰이니 어서 구경하고 가는 게 좋겠어.”
그렇게 둘은 신전을 알뜰살뜰하게 관광한 뒤 루즈벡 찻집 앞에 도착했다. 로렌의 한 손에는 신전 기념품이 가득한 커다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본 마을 사람들이 눈을 함지박만 하게 뜨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이, 로렌! 드디어 개종하는 거야?”
“내일부터는 하늘 신이라고 우기려는 건 아니겠지?”
“여보, 저기 찻집 아가씨 좀 보세요. 드디어 정신이 들었나 봐요.”
로렌은 사람들의 반응을 떨떠름하게 여겼다. 왜 저리 호들갑인 건지. 내일은 찻잎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모양이다. 다들 궁금한 걸 물어보려 찻집을 올 테니까.
로렌은 저를 배웅해 준 사샤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사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어.”
“괜찮겠어요, 레이디? 이웃 사람들 반응이 너―무 격한데.”
“저들은 원래 저런 치들이다. 내가 기침만 해도 난리지. 어서 들어가 봐.”
“오늘은 제가 호위를 서야…….”
“곰이 호위는 무슨 호위.”
로렌은 그만 피식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곰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도 만만찮게 힘에는 자신 있던 탓이다.
“어라, 레이디? 지금 상단 2인자인 제 자존심이 살짝 갈라졌습니다만.”
사샤가 두 팔을 굽혀 올리더니 팔뚝에 잔뜩 힘을 주었다. 안 그래도 울퉁불퉁하던 사샤의 팔 위로 근육이 불끈거렸다.
“세상에, 남사스러워라!”
이웃 여인들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리자 로렌은 그만하라며 팔과 마찬가지로 흉포하게 부풀었던 사샤의 옆구리를 찰싹 때렸다.
“아, 따가워!”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사샤가 중심을 잃고 꼴사납게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 근손실이 왔다는 푸념 또한 잊지 않았다.
“내 몸은 내가 지킬 테니 어서 들어가거라.”
로렌은 인자하게 웃으며 사샤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사샤는 따끔한 옆구리를 빠르게 문지르면서 하는 수 없이 마차에 올랐다. 하여간에 잔정이 많은 곰이라니까. 로렌은 신전에서 산 물건들을 들고서 찻집으로 천천히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