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Guard RAW novel - Chapter 12
11. 사랑에 규정 속도란 없다. 고로, 속도위반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직?”
“예.”
민영이 아직도 해변에 있다는 진지한의 말에 세종은 인상을 썼다. 태풍이 지나가고 그 뒷정리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 후 해수욕장은 오랜만에 평화를 되찾았다. 바캉스 시즌이 끝난 뒤라 해변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해변을 방문하는 사람은 거의 뒤늦은 휴가를 즐기러 오는 연인들이나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덕에 해수욕장 안전요원들도 시즌이 끝나 가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림 거의 할 일이 없는 해변에서 박민영은 뭘 하느라 아직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세종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땅거미가 지려는 듯 낮 동안 강하게 내리쬐던 햇볕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무전해 볼까요?”
진지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풍 때 긴박했던 상황을 겪었던지라 그 날 이후로 ‘박민영 순경‘에 관계된 일에서는 경찰서 사람들 전부 자동으로 긴장을 한다.
‘큰 사건, 큰 사고가 있는 곳에 박민영이 있다.‘
이 공공연한 비밀은 박민영 순경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본인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채 두 달이 안 되게 해수욕장 근무를 하는 동안 사건이 좀 크다 싶으면 박민영이 연관되어 있었고, 큰 사고가 났다 하면 박 순경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이쯤 되면 경찰서 사람들이나 해수욕장 안전근무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박민영 순경에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가 그 모든 사건,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 모든 사건, 사고에 참견을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특진을 노린 사심을 가지고 있든 없든, 그녀는 그 모든 사건, 사고에 끼어든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개인의 욕심으로 인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노력만큼은 인정하고도 남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래서 이제 이 해수욕장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박민영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근면,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늘 노력하는 그 광대한 오지랖이 승리한 것 이다.
“아니, 됐어,”
세종은 진지한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고 곧장 사무실을 나갔다. 직접 찾아볼 생각이었다.
괜한 걱정일지는 몰라도 그녀가 눈앞에 안 보이면 불안하다. 게다가 오늘 순찰 파트너는 이재섭이다. 그 자식이 마음을 접었다지만 늑대의 본성을 잠시 숨긴 건지 누가 알겠는가. 어린 늑대일수록 믿으면 안 된다.
‘전 정말 안 그러려고 했는데……“
요따위 변명을 늘어놓을지 누가 아는가 말이다.
제길, 내가 어쩌다 여자 꽁무니만 뒤쫓는 신세가 되었지? 빌어먹을!
“보이냐?”
“보입니다.”
‘내 말이 맞지?”
“맞군요.”
민영은 쌍안경을 내려놓고 재섭을 쳐다보았다.
“네 생각은 어때?”
그러자 재섭도 쌍안경을 대고 민영을 마주 보았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무지 안전해 보이는데요?”
“그래?”
“예. 그리고 박 순경님의 그 계획은 전혀 실현 가늠성이 없어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
“예. 자고로 모든 생물은 자기 목숨 문제에 있어서는 냉철하거든요. 더욱이 이기적이기로 말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오만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런 인간이 작년에 죽을 뻔한 일을 또 반복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또 해수욕을 하러 왔잖아. 그것도 해수욕장 폐장을 얼마 남겨 두지도 않고.”
“그러니까요. 이렇게 늦게 왔으니까 지금 물에는 안 들어가고 모래찜질만 하고 있잖습니까.”
재섭의 말에 민영은 그런가? 하는 얼굴로 다시 쌍안경을 들었다. 그리고 렌즈에 비친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포기하고 있었다. 바캉스 시즌 동안 시장 사모는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심어 놓은 정보통들도 올해는 해변으로 휴가를 안 오실 모양이라고 말들을 했다. 시장 사모가 이곳으로 오면 꼭 들른다는 횟집 아주머니가 그랬고, 매년 꼭 한 번씩은 찾아온다던 사우나집 아저씨가 증언한 내용이었다. 분명히 해수욕장이 개장된 이후 시장 사모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바캉스 시즌이 거의 끝나고 해수욕장이 폐장되기 며칠 전인 이때에 드디어 그 건강한 몸이 나타났다.
한 마리 물 곰을 보는 듯 출렁이는 뱃살을 흔들거리며 백사장에 나타난 시장 사모는 정확히 박민영의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확연히 줄어든 해변을 느긋하게 순찰을 돌던 민영은 시장 사모의 출현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비고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분명 시장 사모님이다. 작년에 그녀가 구해 주고 상까지 받았는데 어찌 얼굴을 모르겠는가. 얼굴은 몰라도 몸만 봐도 알아챘을 것이다.
이게 웬 떡인가! 이게 웬 굴러들어 온 호박인가!
아직도 특진을 향한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민영은 ‘에헤라 디 여!’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바다로 들어가서 튜브에 몸을 의지한 채 유유히 파도를 타서야 할 사모님께서는 현재 40분째 모래찜질 중이시다. 바다로 들어가서야 어떻게 파도를 만들어 구해 주는 척이라도 할텐데
물론 얕은 물에서. 원래 튜브 위에 않아 있으면 물이 얕은지 깊은지 모르니까.
그런데 그런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작년에 호된 맛을 봐서 그런지 시장 사모는 물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는 듯했다.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혹시 압니까? 폐장식 때 박 순경님이 이번 여름 해변의 우수 안전요원으로 뽑힐지. 그러면 작년에 공 세운 거하고 같이 해서 승격점수가 채워진다면서요? 그럼 승진하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가 우수 안전요원으로 뽑히겠어? 우수 안전요원으로 뽑히려면 안전요원들의 ‘추천표‘도 받아야 하는데 ……“.
“각 단체장들이 추천하는 항목이요?”
“어.”
“왜요? 희망 있지 않아요? 속 좁은 대원들이야, 시기하고 질투하느라 안 찍어 주겠지만 단체장들은 박 순경님의 근무 태도를 굉장히 높이 사고 있잖아요?”
“모르지. 겉으로는 그런데 속으로는 어떤지……확실한 건 혁혁한 공을 세우는 건데……”
그리고 민영은 다시 쌍안경을 잡고 들여다보았다. 그 모습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
순간, 민영은 거친 숨을 들이켰다. 재섭이 놀라서 재빨리 물었다.
“왜요?”
재섭도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민영은 재섭이 그 장면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엎드려 있던 모래사장에서 눈 짝할 새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날 듯이 뛰기 시작했다. 뒤이어 재섭도 일어서서 뛰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민영은 미친 듯이 모래를 쓸어 내었다. 시장 사모는 여전히 컥컥거리며 숨을 몰아쉬더니 정신을 잃었다. 마치, 심장아비라도 일으키려는 사람처럼 경련을 일으킨 직후였다.
“이리 와서 모래 치워!”
곧바로 뒤돌아 온 재섭에게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치우라고 명령한 민영은 재빨리 시장 사모의 머리 쪽으로 움직였다. 부드럽게 머리를 들어 뒤로 젖힌 후 기도를 열고 어깨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뒷목을 받쳤다. 이윽고 재섭이 모래를 거의 다 치워 내자 그녀는 숨을 훅 들이마신 다음 재빨리 구강호홉을 시작했다. 들이마시고 불어 넣고, 들이마시고 불어 넣는 동작을 2회 반복했다. 그동안 재섭은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안전사고 발생. 모래찜질을 하던 50대 여자 심장마비 일으킴. 장소는 제4망루대 앞 200미터 지점. 반복한다. 긴급을 요한다. 안전사고 발생……“
민영은 시장 사모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아직 숨쉬는 기미 가 없었다. 그녀는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시장 사모의 심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심폐 소생술 교육에서 배운 대로 정확히 30회를 향해 달렸다. 침착하게. 멀리서 앰블런스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두려웠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사모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 특진을 바라지만 사모님의 목숨을 바란 건 아니었다고요! 정말이라고요!
민영은 최선을 다했다. 세종이 옆으로 다가온 줄도 모르고 사모님의 숨을 쉬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특진 같은 거 안 해도 좋으니까 제발 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이동침대와 호흡기를 가져 왔을 때까지도 그녀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세종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일으킬 때까지.
앰블런스가 떠나고 민영은 어느새 다가온 세종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설마 돌아가시지는 않겠지?”
민영이 중얼거리자 세종이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
“걱정 마. 위기는 넘겼다고 했어.”
“정말로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이런 거?”
민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워서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농담처럼, 사모님이 바다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구해 주고 특진을 노렸다는 걸 세종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또 아주 농담도 아니지 않았는가. 물론 진짜 튜브에 구멍을 낼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주 조금은 사모님이 위기상황에 빠지길 기다린 건 사실이었다.
“작년에 내가 구해 준 시장 사모님이야. 이번에도 해변에 오셨기에 혹시 바다에 빠지면 구해 주고……“
더 이상 맏을 잇지 못했다. 세종이 하늘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 깃든 의미를 민영이나 재섭도 눈치 챌 수가 있었다.
‘아, 이 철없는 여자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하는 한탄이 섞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약간의 고혈압 증상이 있어서 올해는 해변에 나가지 마실 것을 권했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그 시점에 때마침 해경에 발견되는 바람에 살아나실 수 있었습니다. 해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는데 사모님께는 정말이지 천행이었습니다.”
“담당주치의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박순경에 대해 칭찬을 하더라니까. 병원으로 달려온 시장님도 아주 기뻐하시면서 박 순경에게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좋아하셨어. 작년에도 사모님을 구 해 준 그 사람이 박 순경이란 걸 알고는 이게 무슨 인연이냐며 아주 황당해 하시더라고. 그러더니 꼭 박순경을 만나야겠다고……“
“아뇨!”
최 경사가 신이 나서 말하는 걸 툭 끊어 버리고 민영이 자리에서 벌썩 일어섰다. 그러자 경찰서 사무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졌다. 민영은 최 경사를 향하 다시 분명히 말했다.
“제가 뭘 했다고요? 전 그럴 자격 없어요. 그러니까 고마워하실 필요 없다고 꼭 전해 주세요.”
“아니, 왜 그래? 그토록 바라던 특진이 눈앞인데?”
최 경사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자 민영은 버력 소리를 질렀다.
“특진 필요 없어요! 저 승진 안 해도 되니까 절대 특진시켜 주지 말라고 하세요! 전 정말 그럴 자격 없다고요! 앞으로 저! 앞에서 특진의 특자도 꺼내지 마세요. 아셨죠? 전부 다 아시겠죠!”
그리고 민영은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민영이 나가고 최 경사가 황당한 얼굴로 세종을 쳐다보았다.
“쟤, 왜 저래?”
“글쎄요.”
세종은 최 경사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무뚝뚝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무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최 경사가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김 경장을 바라보았다. “쟤들, 왜 저래?”
“글쎄요“
김 경장이 세종이 했던대로 따라 할 기미를 보이자 최 경사가 버럭 소리를 질렸다.
“야! 김 경장! 넌 경장이야! 강 경사는 경사니까 개긴다 치고 넌 뭐야!”
김 경장이 당장에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진지한이 불쑥 끼어들었다.
“전 알 것 같은데요?”
최 경사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지한을 바라보았다.
“네가?”
“예.”
“말해 봐.”
썩 기대는 안 한다는 투였다. 하지만 진지한은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
“박 순경님을 위로하러 나가신 거 아닐까요?”
순간, 테이블을 빙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시에 일그러졌다. 마치 생 조개를 씹는 듯 썩은 표정들이었다. 그러다가……
“야! 이 자식아! 누가 그걸 몰라!”
최 경사가 먼저 들고 있던 볼펜을 던지고 나머지 사람들도 앞에 놓여 있던 종이를 던지거나 휴지를 던졌다.
“아, 왜, 왜요?”
진지한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표정을 짓자 최 경사가 뒷목을 잡았다.
“아이고, 혈압이야! 저 자식 좀 치워! 내 보다보다 저런 놈은 또 처음 본다!”
그리고 진지한은 동료 전경들로부터 최 경사의 눈앞에서 치워졌다.
부르르르릉.
민영은 숙소로 돌아가는 시골길을 터벅터벽 걷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끼이익.
광이 번쩍번쩍 나는 오토바이가 그녀의 옆에 멈춰 섰다.
“어이, 아가씨. 어디 가시나? 태워 드릴까?”
민영은 세종의 건들거리는 목소리에 ‘픽‘ 하고 실소를 머금었다.
“어?? 내 호의를 그런 식으로 무시하면 곤란한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돌아섰다.
“곤란해? 왜? 무시하면 어쩔 건데?”
그러자 그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글세, 보쌈 할까?’
“보쌈?”
“그래. 이대로 확 납치해서 도망가는 거지.”
민영은 다시 웃었다.
“어디로 날 납치할 건데?”
“흠……”
잠시 생각하던 그가 갑자기 그녀를 진지하게 응시했다.
“바다가 보이는 내 아파트 어때?”
민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파트? 거긴 너무 멀잖아.”
농담처럼 웃었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아니면 가까운 호텔? 싫으면 어디든지 둘만 있을 수 있는 곳.”
서서히 미소가 사라진다. 민영은 그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 보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눈짓을 했다.
“타.”
마치, 자기 의견에 동의한다면 타라고 하는 뜻했다.
“자자”
갑자기 그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태풍이 불어 닥칠 것을 준비하던 날 두 사람은 서로를 원하는 마음을 드러냈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태풍은 물러갔다. 태풍이 남긴 상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민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의 뒤에 올라탔다. 그가 헬멧을 건네주자 받아서 머리에 썼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힘껏 껴안았다. 순간, 오토바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숙소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철썩! 처얼썩!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장이었다. 바닷가 절벽에 이런 멋진 펜션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오늘 처음 알았다. 거실에서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오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옅은 푸른색 하늘이 그녀의 머리 위로 펼쳐졌다.
끼룩, 끼룩.
갈매기마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어때?”
민영은 뒤돌아보았다. 세종이 문틈에 기대어 서 있었다.
“좋아. 이런 곳은 또 언제 알았어?”
“누구 도움을 좀 받았지.”
“도움? 누구?”
세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비밀이야.”
“뭐?”
민영이 눈살을 찌푸리자 그가 씨익 웃었다.
“그냥 친구라고 알아둬. 여긴 방 하나 잡기도 힘든 유명한 펜션이야. 좀 노는 놈한테 물어봤더니 여길 추천하더라고. 휴가 시즌 때는 이런 독채는 상상도 못해. 그런데 지금은 휴가철도 끝났고 이 집 주인이 친구와 친분도 있어서 나한테까지 기회가 온 거지. 원래는 다른 사람이 예약하려 한 곳인데 잠깐 망설이던 사이에 내가 낚아 챈 거지. 기회는 왔을 때 필요한 건 기동력이거든.”
그가 자만심 가득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좋긴 좋다.”
잠시 그녀와 함께 바다를 응시하던 그가 갑자기 민영을 돌아보았다.
“밥 먹을까?”
그녀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활짝 웃었다,
“어! 배고파!”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둘은 특별히 룸서비스를 주문했다. 펜션에서 룸서비스라니 말도 안 된다는 그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했다. 그러자 정알 룸서비스가 왔다. 그의 설명으로는 가까운 곳에 배달까지 해 주는 음식점이 있단다. 그것도 호텔식으로.
정말로 그가 장담한 것처럼 호텔식 저리 가랄 만큼 훌륭한 식탁이 차려졌다. 물론 호텔 룸에서 뭘 시켜 서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지만 그만큼 훌륭했다.
두 사람은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거의 전부 먹어치으고 후식으로 준비된 아이스크림을 냉동고에서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나란히 퍼질러 앉아 시시덕거리면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특진은 원하지 않는다고?”
내내 웃고 장난을 치던 그가 지나가는 말로 먼저 물었다.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왜?”
“내 능력이 아니잖아.”
“왜 네 능력이 아니야? 너 아니었으면 목숨이 위험했는데.”
“그건 그렇지만 괜히 죄책감이 들어,”
민영의 풀죽은 대답에 세종이 부드럽게 물었다.
“네가 그렇게 원해서 시장 부인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 같아서?”
“꼭 그런 건 아니지만……아니라고 말할 순 없어”
그러자 세종이 그녀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인마, 네가 무슨 무당이야? 그렇게 되라고 빌었다고 시장 부인이 그렇게 되게?”
“아야, 아파!”
그녀가 엄살을 피우자 그가 콧방귀를 꼈다.
“아프긴 뭐가 아파? 살살 때렸는데.”
민영은 인상을 쓰며 그를 노려보았다.
“너, 가만 보면 폭력적 성향이 있어.”
“폭력적 성향?”
“그래. 툭하면 치잖아.”
“내가 언재?”
“전에도 이마를 툭 치고 이번에도 꿀밤 때리고!”
“아, 그깟 꿀밤 하나 가지고 비약하시기는.”
“비약? 좋아.너도 한번 맞아봐!”
그리고 민영은 그에게 꿀밤을 먹이기 위해 덤볐다. 그가 그녀의 꿀밤을 피하려 몸을 뒤로 젖히자 그녀가 그의 몸위에 재빨리 올라탔다.’어어’, ‘엄마야!’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그렇게 방바닥으로 넘어지며 두 겹으로 겹쳐졌다. 세종은 아래에, 민영은 위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불꽃이 튀고 불길이 치솟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급하게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상대의 입술을 핥고 빨고 깨물었다. 입술을 한껏 벌려 서로의 혀를 찾아 휘감았다. 감미로운 신음음 흘리며 격렬하게 키스했다.
다급한 손길로 서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티셔츠를 머리 위로 벗겨 홱 던져 버렸고 그는 그녀의 티셔츠를 벗겨 내자마자 다시 입을 맞추었다. 벌거벗은 남자의 상체와 브래지어만 걸친 여자의 속살이 마주쳤다. 달콤하고 은근한 살 향기에 취하고 부드럽게 부치는 살결에 소름이 돋았다.
헐덕이는 신음과 타액에 젖은 음향이 진동했다.
입술을 떼지 않은 채 그가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돌려 브래지어 후크률 풀었다. 그 순간, 속박되어 있던 젖가슴이 무방비 상태로 드러났다. 그러자 그의 입술이 사냥감을 포획하는 사냥꾼처럼 재빨리 덤벼물었다.
“아!”
민영은 고개를 정히며 신음을 내뱉었다. 열기가 몰려든다. 그의 배 위에 닿아 있는 아랫도리에 뜨거운 열기가 몰려들었다. 엉덩이가 비틀렸다. 양 무릎으로 그의 허리를 옥죄었다. 그러자 아랫도리가 압박되며 쾌감이 치솟았다. 마치, 새로운 감각 놀이에 빠진 것처럼 민영은 허벅지에 더 큰 힘을 주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젖꼭지가 딱딱하게 솟아올랐다. 그 민감한 정점을 뜨거운 혀가 희롱한다. 부드럽게 ?다가 강하게 빨고 이를 세워 물고 비틀었다. 그 모든 동작에 그녀는 미칠 듯한 신음을 내며 반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의 얼굴을 끌어 올려 입을 맞추었다. 격렬하게 혀를 움직였다. 입 밖으로 혀를 내밀어 사납게 빨아들였다.
젖어들고 있었다. 뜨거운 용암처럼 아랫도리가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내려 그의 바지 후크를 풀었다.
지이익.
지며가 내려가고 그가 엉덩이를 들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그러자 그가 앓는 소리를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민영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온 신경이 아래로 가 있었다. 허벅지를 어루만지는 남자의 손길, 엉덩이를 움켜쥐는 강한 남자의 힘. 근육질 허벅지를 세워 그녀의 중심을 강하게 압박하는 은밀함. 이 모든 것에 그녀는 정신을 빼앗겼다.
그가 갑자기 그녀를 밀었다. 민영은 허무하게 그의 옆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허무함은 채 5초도 가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얼굴 여기저기에 키스를 하고 드러난 목과 쇄골을 핥었다. 쇄골의 움푹 들어간 곳에 혀끝을 꽂아 애무하던 그가 다시 머리를 내렸다.
“하아!”
민영은 고개를 홱 저었다. 그가 민감하게 일어선 젖꼭지를 머금는 순간 찌릿한 쾌감이 등줄기률 내달린다. 혀로 둔덕을 핥을 때마다, 젖꼭지를 놀리며 아찔한 감각을 시험할 때마다 그녀는 자지러지듯 헐떡거렸다.
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갔다. 갈비뼈 부근을 배회하던 입술은 더욱 아래로 내려가 배꼽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할짝대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타고 피를 끓게 만들었다. 허리를 비틀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간절함을 안다는 듯 바지를 벗겨 내리기 시작했다. 단 몇 번의 동작으로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민영은 부끄러움에 다리를 꼬았다. 그가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속삭이는 소리가 개미 소리만큼이나 작았다.
“내 거 보는 거야.”
중얼거리는 소리가 너무 낮고 탁했다.
민영은 더 이상 그 뜨거운 눈빛을 견딜 수 없어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다시 몸을 겹쳤다. 아니, 이번에는 온몸이 아니라 몸의 반을.
그녀의 허리 위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가 그녀의 허벅지를 벌려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민영은 당황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가 용납하지 않았다.
“가만, 가만히……“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에 민영은 움찔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다 잠시 후 ‘하악!”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몸을 젖혔다.
세종은 그녀의 무릎을 세우고 골반에 입을 맞추었다. 허리선을 따라 입술을 미끄러뜨리다가 점점 아래로 향했다. 깊은 수풀에 입술을 미끄러뜨리고 혀를 내밀었다. 활활 타오르는 계곡의 정점에 입술을 깊이 묻었다. 열기가 치솟는다. 흘러내리는 용암이 그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이 그를 잠식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견뎌 냈다. 그녀가 헉헉거리는 신음을 내며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절정에 오르는 순간, 하마터면 자신도 절정으로 치닫을 뻔했다.
세종은 다시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아주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눈빛을 응시하며 단단하게 곧추선 욕망의 덩어리를 멀어 넣었다. 부드럽게 밀려들어 간다 싶더니 갑자기 고통스러울을 정도로 빡빡하게 죄어 온다.
“허억.”
거친 탄성을 내뱉었다. 숨 막히게 좁은 입구에 멈춰 서서 그녀를 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입술을 내려 키스했다. 자잘한 키스를 수없이 해댔다. 그녀가 다시 용기를 내어 그의 목을 끌어안올 때까지.
세종은 힘껏 허리를 움직였다. 태풍 속에서 춤추는 파도처럼 거칠게, 때로는 봄바람에 잔잔한 바다처럼 부드럽게. 민첩하고 감미롭게 쾌감을 향해 달렸다. 부드러운 허벅지에 자신의 몸을 묻고 정신을 뻬앗길 만큼 포근한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세차게 밀고 당기기를 하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더 빠르게 더 깊게, 더 강하게.
“아아아!”
“허엇!”
동시에 무너졌다.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두 사람은 동시에 환락의 세계로 떨어졌다.
“어, 어. 왜에?”
여자의 넘치는 애교에 아랫도리가 벌써 설 정도다. 동운은 목소리를 겨무 가다듬고 부름에 대답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주 작정을 했다는 듯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보고 싶어. 너무너무너무너무!] “나, 나도 보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 모레 해수욕장 폐장식이 끝나야 볼 수 있는걸.”
진정 아쉬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루밤은 너무 짧았다. 그 하루에 만나고 데이트하고, 호텔로 직행해 그 밤 내내 사랑을 불태웠다. 번갯불에 콩을 볶는 게 아니라 콩을 볶아서 아주 가루까지 내버렸다. 그래서 더 애가 탄다.
하룻밤 만에 황지연이라는 여우에게 길들여진 김동운 경장은 더 이상 주체적일 수 없었다.
분했다. 단 하룻밤에 백 년 묵은 여우같은 황지연의 마수에 걸려들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레었다. 이런 설렘,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렇지? 참아야겠지? 아잉……나 정말 참기 힘든데에…… 자갸~] “응. 응?”
동운은 자꾸만 일어서는 아랫도리를 손으로 누르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 미치고 환장하겠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됐어?] “두 사람? 아, 강 경사님하고 박 순경? 잘되 가고 있는 것 같던데? 지금까지 안 들어오는 걸 봐서는 분명히 잘됐어.”
[아직 안들어 왔어?] 갑자기 지연의 목소리가 콧소리를 벗어나 정상인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러자 동운도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여자의 콧소리를 이렇게 섹시하게 느껴 본 적은 정말이지 처음이다.
“어. 아직 안 들어왔어. 아까 저녁때 쯤 사무실을 나가서 그대로 행불이야. 두 시간 전에 문자 왔는데 안 들어갈 거니까 문제없게 뒤처리 좀 부탁한다고 하시더라고.”
[어머 그럼 내가 잡아 준 그 펜션에 두 사람이 지금 함께 있는 거야?] “그렇겠지. 거기 아니면 어딜 가겠어?”
[오호호호호. 아휴, 우리 곰탱이 민영이가 제법이네. 맹해서 속도위반 같은 거, 못할 줄 알았는데. 깔깔깔깔.] 동운도 씨익 웃었다.
“그건 우리 경사님도 마찬가지지. 여자는 만났어도 연애는 처음이니까 서툴러. 그나마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니까 이만큼이라도 온 거지. 그리고 사랑에는 속도위반이란 건 없어. 규정 속도가 없는데 어떻게 속도위반이 생길 수 있어?”
[호호호호. 그건 그래. 근데 난 강세종이 연애에 서툴다는 게 의외야. 세종이 걔가 학교 때는 정말 잘나가는 킹카였거든. 여학생들 중에 걔 싫어하는 여자애는 없었을 걸? 연애를 수없이 해 봤을 줄 알았는데…… 하긴 그때도 여학생한테 관심은 없었다더라. 그러니까 여자애들이 더 안달했겠지. 참! 내가 걔 기억해 낸 거, 민영이는 모르지?] “모를 걸? 강 경사님 하시는 걸로 봐서는 얘기를 안 하실 것 같던데.“
[민영이가 자길 짝사랑했었다는 것도?] “어.”
[강세종은 뭐래? 민영이가 고교 때 자길 짝사랑했다니까.] “그냥, 그렇더라고. 별 반응 없어. 자길 짝사랑한 여자애가 한둘이었냐며 건성으로 넘기시던데?”
[어머! 걔, 너무 건방지다! 어쩜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재수 없어! 민영이가 살짝 불쌍해지려고 해.] 지연의 막 나가는 말투에 동운은 살짝 인상을 ㎢?
“황 경장, 그래도 경산데 너무 말을 막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나이가 같아도 ‘세종이‘가 뭐야?”
[어머! 자기 지금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자기랑 나랑만 하는 얘기니까 그런 거지. 내가 설마 사람들 앞에서 그러겠어? 날 그 정도로 밖에 안 본거야?] “어? 아, 아니. 절대 아니지, 내 앞에서는 괜찮지만 혹시 그러다가 버릇되서 사람들 앞에서도 실수할까 봐 걱정돼서 말한 거야. 자기 화났어?”
[흑, 자기 미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도 좀 잘못한 것 같아. 자긴 나이도 어린데 어쩜 그렇게 어른스러워?] 동운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여우도, 여우도 이런 여우는 없을 것이 다. 남자를 아예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남자가 잘못을 지적하자 살짝 삐친 척하다가 곧바로 잘못을 수긍하는 저 태도. 저러니 어떤 남자가 안 넘어 가겠는가.
“내가 좀 어른스렵지. 자긴 날 알면 알수록 더 어른스렵다고 생각할거야. 그러니까 날 더 잘 알아봐.”
[호호호호. 아이, 어떻게 알아봐? 지금 이렇게 멀리있는데 … …] “우리 기다리자. 꾹 참자. 앞으로 디데이는 3일 후야. 폐장식이 끝나는 대로 눈썹이 휘날리게 날아갈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아아, 너무 길어. 3일이라니.] “나도 길어.”
동운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느새 콧소리 모드로 다시 돌아온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아랫도리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측은하게 가라앉았다.
[자기야~] 아아! 죽겠다!
“어, 어?”
[나아……벌써 젖었어.] 허걱! 동운은 당장에라도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몸이 불덩이처럼 타오른다.
“지, 지연씨, 나중에 다시 걸게. 미안.”
그리고 동운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자기야! 자기야! 자기……] 폴더를 닫기 직전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곧장 화장실로 튀었다.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 그 아련한 불빛이 흔들리는 장면은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했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얇은 커튼이 휘날리고 어딘가에서 감미로운 플릇 음이 흘러오고 있었다.
민영은 세종의 품에 안긴 채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함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눈 직후에 바다를 바라보는 평화로움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그녀를 더욱더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민영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그의 숨결을 느꼈다. 따뜻한 입김이 귀에 난 작은 솜털을 곤두서게 했다. 천천히 가슴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에 부드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짧은 미니 로브 아래로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손길에 움찔 허벅지에 힘을주었다.
“침대로 갈까?”
민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금만 더 있다가.”
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사인이 안 맞네.”
“사인?”
“나, 지금 널 안고 싶다는 뜻이야.”
민영은 얼굴을 붉혔다.
“벌써?”
펜션으로 들어와 저녁을 먹은 후부터 지금까지 두 번이나 사랑을 나눴다. 체력을 소모해서 그런지 다시 배가 고파서 여분으로 남겨둔 빵지 다 먹어치우고 이제야 좀 쉬려는데 또 안고 싶단다. 그녀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얘, 변강쇤가? 밤마다 이러면 곤란한데 민영은 그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했다.
“피곤하지 않아?”
“피곤해?”
곧바로 되묻는다.
어, 나 피곤해. 좀 쉬자!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그러는 건 좀 무안할 테니까.
“아니, 나 말고 자기…….“
갑자기 그가 몸을 굳혔다. 그녀가 기대고 있던 그의 가슴이 긴장으로 굳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민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의 털이 실룩거리며 입술이 올라간다. 웃는 건가? 갑자기 그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쿡쿡. 자기라니 갑자기 그렇게 부르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민영은 무안해서 슬쩍 시선을 깔았다.
“내, 내가 그랬나?”
그러자 그가 그녀를 확 끌어안으며 얼굴 여기저기, 드러난 어깨와 목에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다시 해 봐.”
“뭐, 뭘?”
“아까처럼 다시 불러 보라고.”
“싫어.”
“어서. 안 그러면 당장 침대로 간다?”
민영은 그를 곱게 흘기며 조용히 속삭였다.
“자……기.”
그가 아주 좋아 죽겠다는 듯 껄껄거린다. 바보 같다.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야 해.”
“어.”
그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특진 건 말인데.”
“안 해.”
“인마, 그걸 네가 안 한다고 안 되는 거야?”
“내가 거절하면 되는거지.”
“이렇게 뭘 몰라. 특진시켜 주면서 네 의사를 중요시 여길 것 같아? 그리고 시장까지 연관이 된 마당에 거절한다고 되겠어? 그리고 거절 하는 이유는 뭐라고 할 거야? 시장 부인이 잘못되라고 기도를 했더니 진짜 잘못 됐다. 그래서 양심에 찔린다. 그러니 난 특진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럴거야?”
민영은 그의 조리 있는 반론에 입을 쑥 내밀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가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네가 특진에 목을 매는게 싫었어. 시장 부인까지 들먹이면서 그 정도로 집착하는 것도 싫었고. 뭐든 급하게 서두르고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는 법이니까. 늦게 시작했지만 넌 성실하니까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 일은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이 준 기회?”
“그래. 네가 특진에 집착해서 시장 부인을 감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야………“
“위험했겠지. 사람들이 거의 떠난 해변에서 혼자 있던 시장 부인은 네가 아니었다면 아마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목숨올 잃었을 수도 있었어. 그래서 난 네가 그녀의 감사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또, 특진이든 뭐든 위에서 주는 건 다 챙겨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래야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도 쉬워지고.”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민영은 문득 의아한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계획? 무슨계획?”
세종이 씨익 웃었다.
“우리가 함께 있을 계획.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더욱더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계획.”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그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은밀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처럼.
“시장님께 작은 부탁을 하나 드렸지.”
“뭐? 무슨 부탁?”
놀라는 민영에게 그가 다시 웃어 보였다.
“해경의 인사이동에 살짝 힘을 보태 주십사 하는 부탁.”
“인사이동?”
민영은 정말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인사이동. 파출서 근무에서 대한해양경찰서 본관 근무로 이동시켜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을 드렸지. 그렇게 되면 내가 함정에서 돌아왔을때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뭐어! 맙소사! 언제 또 그런 청탁을 넣었어?”
“병원에서.”
별일도 아니라는 듯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싫어!”
갑자기 강력히 반항하는 그녀를 그가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싫어?”
“그래, 싫어. 아니, 아주 싫은 건 아니야.”
“그럼?”
민영은 갑자기 너무나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가 궁금한 듯 인상을 쓴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라도 드는 듯.
그러거나 말거나 민영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경찰서로 인사 발령 나는 건 좋아. 하지만 사무직은 안해.”
“무슨 소리야? 경찰서 본관 근무는 사무직이야.”
“소속만 경찰서지. 일은 다른 걸 할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그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민영은 서프라이즈 폭죽을 터뜨리듯 빵 하고 소리쳤다.
“122구조대! 난 122구조대에 지원할 거야! 시장님께 부탁드려서 이왕 청탁 넣어주실거면 122구조대로 발령 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할거야! 바로 그거야! 맙소사,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 이번에 자기가 동굴에서 조난자 구하는 걸 보고 감탄했었어. 바다와 마치 한 몸인 듯 움직이던 자기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니까. 난 기동대까지는 못 가겠지만 122구조대는 될수 있장아. 그러니까……“
“안돼!“
갑자기 조용한 밤공기를 가르고 험악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민영은 입을 딱 벌렸다. 그가 그녀를 홱 밀치고 일어나더니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위협적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벌거벗은 채.
민영은 민망해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손짓만 했다.
“미쳤어? 그러고 일어나면 어떻게 해! 좀 가리던지!”
그제야 그가 황급히 시트로 거기를 가렸다. 분명 흥분해서 자기가 발가벗고 있다는 것도 잊었던 것이리라.
“절대 안돼!”
그가 다시 반대했다. 완강히.
민영은 그제야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따졌다.
“왜 안 돼? 뭐가 안 돼? 그리고 이건 자기가 안 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내가 안 된다면 안 돼!”
“왜!”
“난 네 약혼자니까!”
헉! 민영은 다시 입을 딱 벌렸다.
“약혼? 아니, 우리가 언제 약혼을 했어?”
“그럼 나하고 결혼 안 하겠다고?”
민영은 또다시 황당했다. 언제 결혼하자고나 했나?
“그런 얘기한 적도 없었잖아?”
“지금 하잖아!”
어이없다.
“그럼 이게 청혼이야?”
“그래! 청혼이든 뭐든 난 너하고 결혼할거고 넌 122구조대 못해!”
“왜! 왜 못해? 결혼이랑 122구조대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어! 난 네가 위험한 일 하는 거, 못 봐! 안 봐! 안 그래도 촐랑거리고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통에 내 간이 졸아들대로 졸아들었는데 뭐? 122구조대를 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 돼!”
“내가 뭘! 아! 몰라 상관없어. 자기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난 할 거야! 꼭 할 거야!”
그리고 둘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한발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팽팽하게 맞섰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던 때에 갑자기 그가 그녀를 덮쳤다. 불시에!
“엄마야!”
민영은 바닥으로 떠밀일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가 이미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온 뒤였다. 그가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녀의 양 손목을 누르고 입술로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를 마구 애무하기 시작했다. 민영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렇다. 그녀의 민감한 부분, 즉 간지럼을 타는 그곳은 그가 만지지도 못하게 했던 그곳은 그녀의 커다란 약점이었다.
“안 한다고 해. 어서.”
“아하하하, 시, 싫어. 못해! 아하하하하.”
민영은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간질이더니 이제는 이를 세워 살짝살짝 긁는다.
“그, 그마안! 미치겠어. 그만해!”
“어서 항복해. 항복할 때까지 할 거야. 멀쩡한 날 4차원의 세계로 끌어 들인 건 너니까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I”
“깥깥갈깥. 모, 못해. 난 하고야 말 거야. 우히히히히히히!”
그밤이 가고 날이 밝을 때까지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펜션의 한 독채에서 기이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음탕한 신음과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그리고 환희에 들든 비명 소리. 이 모든 것이 한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다음에는 하경팀 대표선수 입장!”
119수상안전요원들 쪽 선수들이 모두 모래 코트 안으로 들어온 후 이번에는 여름해양경찰서 팀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오전에 해수욕장 폐장식 이 끝난 뒤 안전요원으로 근무했던 사람들 모두가 해변에 남았다. 회식 내기, 소방서 대 히경의 족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진팀은 그 자리에 모인 안전요원들의 점심 값까지 내야 하니 진다면 지출이 커진다. 그래서 119안전요원들과 여름해경 모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해경 파이팅!”
누군가 외치자 또 다른 한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119파이팅!”
편 가르기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자기가 응원하고 싶은 쪽을 음원하면 된다. 응원하던 팀이 지더라도 회식비와는 상관이 없으니 사람들은 마음 놓고 목청을 돋웠다,
심판으로 나선 민자대(민간자율구조대) 대장이 붉은색 삼각수영 팬티를 입고 코트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사람들 모두 기하학적인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수영복차려 입고 늦어도 너무 늦어 버린 바캉스라도 온 느김이다. 때늦은 휴가가 해변 안전요원들에게 찾아온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삐이익!
그때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선수들이 ‘와아!’ 하는 고함 소리를 크게 내지르고 각자의 자리로 뛰어갔다. 그곳에 민영도 있었다. 비키니 수영복 위에 해경 마크가 새겨진 하안색 티를 입고 수비 자세를 취했다. 안이 다 비치는 앞은 티셔츠 덕분에 안에 입은 푸른색 비키니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여름 동안 그을린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섹시한 자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아까부터 못마땅하게 주시하는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삐익!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상대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여기! 여기!”
“막아!”
“뛰어! 뛰어!”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가 울렸다. 발이 푹푹 파이는 모래 위에서 하는 경기라 공을 차는 것이 여의치가 않았다. 민영도 공이 자신의 방향으로 날아오자 재빨리 뛰어가 발로 받아 냈다. 그 순간, 바로 옆에 서 있던 세종이 그녀가 띄워 올린 공에 강 스파이크를 날렸다.
“와아아아아!”
세종의 스파이크가 먹혔다. 상대는 발 한번 제대로 못 써 보고 공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해경을 응원하던 사람들과 코트 있던 선수들 모두 환성을 질렸다. 민영도 가장 가까이 있던 세종과 얼싸 안았다. 그러자……
“어이, 경기에 집중해!”
“연애는 나중에 하라고!”
“삐이익! 유후!”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두 사람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도 이제는 다 알 판이다. 민영은 얼굴을 붉히며 가장 만만한 전협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전협이 모른 척 시선을 돌린다.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이쪽 공격이다. 세종이 공격 자세를 잡자 민영은 크게 키스를 날렸다. 또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어떻게 된 게 응원 소리보다 야유 소리가 더 크다.
“10분 휴식!”
심판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고 선수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현재 세트 스코어 1 대 1.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지는 팀이 회식비 전액 지불이다.
“아, 아깝다. 아까워. 좀만 더 잘하지!”
경기는 안 뛰면서 입만 산 최 경사의 말이었다. 자기는 진짜 족구 못한다고 후보로도 못 뛴다고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최 경사는 제외되었다. 어차피 경기는 일곱 명이 하기로 했기에 최 경사가 뛰지 않아도 되긴 되었다.
하지만 자기 안 뛴다고 저런 식으로 말하다니.
선수들의 시선이 최 경사를 못마땅하다는 듯 주시했다. 그러자 최 경사가 ‘뭐? 볼만 있어?’ 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그러자 세종만 빼고 전부 깨갱 꼬리를 내렸다.
“불만은 없는데 목은 마릅니다. 시원한 물 좀 주세요.”
그러자 최 경사가 옆에 있던 얼음물을 즉각 대령했다.
“강 경사는 주지. 내가. 강경사가 제일 잘해. 제일! 다른 사람들도 좀 분발해.”
또 선수들의 사기를 마구 꺽어 주신다. 선수들이 대놓고 말은 못하고 구시렁거렸다. 그때.
“오늘 이기면 너희들 전부 우리 집에 데려가서 보양시킬 거야!”
그러자 선수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정말요?”
진지한이 제일 좋아한다. 어린놈이 보양해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냐는 식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래, 인마. 내가 제일 아끼는 술, 내놓을 거야. 너희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을 기대해도 좋아. 하하하하!”
그러자 선수들이 전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필코 이겨서 그 필살의 보양식을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확연해 보였다. 그리고 민영 또한 침을8 삼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 경사가 황당하게 물었다.
“너도 가려고?”
민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히 저도 가야죠.”
“야. 넌 보양해서 뭐 하려고? 이번에 내놓을 건 순수 스테미너 음식이야.”
“저도 스테미너 좋아해요.”
그러자 선수들의 입이 헤벌어졌다. 그때 최 경사가 웃었다.
“그렇겠지. 하하하. 요즘은 여자도 정력이 좋아야 돼. 남자만 정력 좋으면 뭐 하나? 여자가 그걸 받아 줄 힘이 있어야지. 그래, 너도 가자. 너도 가! 강 경사, 좋겠어.”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세종에게 향했다. 그런데 이놈 좀 봐라. 무지 뻔뻔스럽게 나온다.
“글쎄요. 두고 봐야 알죠. 박 순경이 좋을 지, 제가 좋을 지. 가자, 박 순경. 세수나 하러 가자.”
그러더니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민영의 어깨에 떡하니 팔을 둘렸다. 민영은 그런 세종의 가슴에 기대며 활짝 웃었다. “네, 경사님.”
순간, 또다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닭살, 대패, 소름, 기름, 느끼 등등의 단어가 마구 쏟아지 나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야유 속에서도 두 사람은 유유히 어깨동무를 한 채 세면대로 향했다.
“어어! 지금 어디 가는 겨야? 세면대는 저쪽이야.”
민영은 세면대와 멀어지는 길로 가는 세종에게 끌려가며 물었다.
“거긴 사람들이 많아. 우린 저쪽 세면대 갈거야.”
뭐? 사람이 많아? 사람 없는 데 가서 뭘 하려고? 민영은 그의 뒤통수를 보며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니 나 다를까,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해변의 세면대로 끌고 간 세종은 다짜고짜 그녀를 건물 안으로 밀어 넣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당황하던 민영은 그의 키스에 즉각 반응했다. 세종의 머리통을 꽉 쥐고 허벅지 사이로 파고드는 그의 허벅지에 하체를 비볐다.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얽으며 거친 숨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티셔츠가 벗겨졌다.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그가 ‘헉’하고 격한 숨을 내쉬었다.
“제길,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민영은 붉어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뭘 ?”
그가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티셔츠를 벗기면 어떻게 섹시한 몸매가 나올 줄 알았다고. 아까 네가 해변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이걸 상상했거든.”
“뭐어?”
민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가슴으로 내려가는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휴식 시간은 10분이야.”
그의 눈이 간절하게 불타올랐다.
“10분 안에 할 수 있어.”
“미쳤어! 여기서 한다고?”
“문 달고, 아니, 잠그고.”
“안 돼!”
민영이 그를 밀치고 나가려고 하자 그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 대신……“
그녀는 재빨리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안 돼! 무슨 말 할지 알아. 122구조대 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지?”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진지한 투로 말한다.
“그래, 하지 마.”
민영은 바닥으로 떨어진 티셔츠를 들고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할 거야.”
“하지 마.’
“할거야. 꼭 할거야.”
“안돼. 하지마.”
민영은 그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서자 눈을 흘겄다.
“안비킬 거야?”
그가 대답 없이 팔짱을 꼈다.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이다.
“안 한다고 하기 전에는 못 나가.’
“그래?”
“그래.”
완전 우기기 대장이다. 애 같다.
민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살짝 경계한다.
경계심을 풀어 주지.
그녀는 입었던 티셔츠를 다시 벗어던졌다. 세종이 짙은 눈썹을 휘며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민영은 보란 듯이 등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그의 눈이 점점 커진다. 그녀는 천천히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강세종, 네가 이러고도 그렇게 서 있을 수 있겠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가 몸에 잔뜩 힘을 주며 물었다. 민영은 최대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은밀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기 유혹하는 거야.”
“뭐?”
그의 입이 툭 벌어졌다. 민영은 언젠가 에로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살짝 눈을 내리깔며 그 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간다.
아싸! 먹힌다! 먹혀!
민영은 슬쩍 한쪽 어깨를 들어 올리며 몸을 비틀었다. 후크가 열린 브래지어를 손으로 잡고 천천히 뒷음질을 쳤다. 가슴의 상당부분이 이미 드러났다. 그녀가 움직이자 젖가슴도 출렁인다.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인다.
민영은 그를 뜨겁게 바라보며 손을 놓았다.
툭, 브래지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팔로 가슴을 감쌌지만 가슴의 둔덕은 더욱 색시하게 솟아올랐다. 그러자 그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단숨에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엄마야!”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하이에나처럼 사정없이 가슴으로 덤벼든 그가 덥석 젖가슴을 물었다. 주무르고 쓰다듬고 엄지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현란한 애무를 시작했다.
“으음 ”
민영은 애초의 목적을 잊고 그의 머리통을 꼭 껴안았다. 젖가슴을 쥐고 비트는 손길에 ‘악’ 하는 신음을 내뱉고 엉덩이를 움켜쥐는 손길에 허리를 비틀었다.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자신의 아랫도리를 일착시키기 시작했다. 민2은 허벅지를 벌리고 그의 엉덩이에 다리를 척 걸쳤다. 그러다 더욱 강한 욕망이 느껴진다.
“하아, 하아.”
정말 이대로 여기서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문도 안 잠갔는데!
민영은 팬티 속으로 들어오는 그의 손길에 벌써 다리에 힘이 풀렸다. 뜨겁게 팔딱거리는 속살을 헤집는 그의 손길에 그녀는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세종도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단단하게 솟아오른 덩어리를 그녀의: 아랫배에 문지르며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어디선가 바닷바람이 들어왔다. 민영은 창을 통해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바다 갈매기가 두 사람을 훔쳐보기라도 하는 듯 창틀에 내려앉아 가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 순간, 최대한의 인내력을 끌어 모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를 힘껏 밀었다. 놀라는 그를 벽으로 밀쳤다. 그러자 그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뒤로 밀려났다. 민영은 그에게 눈을 맞춘 채 천천히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민영은 수영 팬티 위로 불쑥 솟아오른 욕망의 덩어리를 손으로 슬쩍 건드렸다. 그러자 그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끄응“
그녀는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러자 더 큰 신음이 울린다. 이번에는 아예 손으로 그 부분을 움켜잡았다.
“으으으!”
그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몸을 젖혔다. 벽에 기댄 채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시 이성을 잃기 직전으로 내몰린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욕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이성의 끈흥놓고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누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라서 그런지 터질 듯한 긴장감이 욕망과 합쳐져서 더 큰 열망을 일으켰다.
민영은 심호흠을 길게 하며 다른 생각을 하려고 매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무장해제 되어 그녀의 손길에 반쯤 이성을 잃은 그가 보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민영은 바닥에 떨어진 티셔츠와와 브래지어를 홱 잡아채어 뛰었다. 아니, 튀었다. 공처럼 튀어 빛의 속도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박민영! ”
순간, 그가 상황을 알아채고 달려오기 시작한다. 민영은 모래밭을 마구 뛰었다. 바로 뒤에서 그가 ?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놀리면서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또 뛰었다. 그도 뛰었다.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거기 서! 박 순경!”
햇살은 따스했고 바람은 시원한 해변을 사랑하는 연인이 달리고 있었다. 민영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 잡아 봐라!”
가을이 가까워 오는 어느 여름의 끝자락에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