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Guard RAW novel - Chapter 13
에필로그
“모두들 수고했고, 일주일 동안 푹 쉬어. 해산!”
한으리함의 김을중 함장이 ‘해산’을 외치자 갑판 위에 모여 있던 해경소속 경찰들은 저마다 활짝 웃으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짐 가방을 집어 올렸다. 열흘간의 선상 근무를 끝내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일주일의 휴식 후에는 또다시 배를 타고 바다를 누벼야겠지만 그래도 집에서 기다릴 가족들과 애인들을 만날 생각에 다들 들뜬 표정들이었다.
“먼저 내리겠습니다, 경사님.”
“그래, 수고했어. 아이는 언제 태어난다고?”
“하하. 오늘내일합니다.”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 경장에게 세종은 싱긋 웃어 보였다.
“이번 주 안에 나오면 좋겠군.”
“안 그래도 마누라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설득하는 중입니다.”
“설득을 해?”
세종이 ‘누굴?‘ 하는 얼굴로 쳐다보자 이 경장이 씨익 웃었다.
“뱃속에 든 애한테요. 놈이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다 압니다. 마누라하고 제가 혼내면 삐쳐서 놀지도 않는다니까요. 하하하하.”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세종은 이 걍장을 향해 웃었다. ‘일주일 후에 뵙겠습니다’ 하고 배에서 내려가는 이 경장의 뒷모습을 보는 그의 얼굴이 우울하게 어두워졌다. 몹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사님, 안 가세요?”
잠시 우울하게 서 있던 세종은 활기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방 싱글거리고 있는 김동운 경장이 보였다.
“황 경장이 왔나 보군.”
세종이 묻자 동운이 신난다는 듯 떠들기 시작했다.
“예. 제가 배에서 내리는 날짜에 맞춰서 ‘휴가 냈답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다는 듯 실룩거린다. 그런 김 경장을 보며 세종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어서 가 봐.”
“예. 아 참! 박 순경, 아니, 박 경장은 이번에도 근무랍니까?”
동운의 질문에 세종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더군.”
그러자 동운의 얼굴에 동정 어린 표정이 가득 퍼져 나갔다.
“또요? 휴, 경사님이 힘드시겠습니다.”
세종은 동운의 동정을 받으며 창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심정을 알아챈 동운은 재빨리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세종은 대꾸도 않고 텅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제길‘이다! 모두들 기다리는 가족들과 애인들 품에 안기려고 발길올 재촉하는데 난 뭔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뭐 하나? 일에 빠져서 하나 있는 애인을 거들떠도 안 보는데!
“휴우.”
오늘부터 또 그여자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집에서 죽치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벌써부터 짜증이 일었다.
“강 경사.”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어 올리던 세종은 문득 둘려오는 목소리에 재빨리 차렷 자세를 취했다.
“예 함장님”
한우리함의 함장이 세종에게 다가왔다.
“아직 안 내렸군.“
“예. 이제 막 내릴려던 참이었습니다.”
“오늘도 애인이 마중 안 나온 모양이군.“
“……”
세종이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자 김 함장은 속으로 웃었다. 해변 근무 이후로 꽤 많이 변했지만 저 고집과 자존심은 여전하다. 솔직히 아주 놀랐다. 해변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강세종이 다시 한우리함을 지원한 사실에 아주 의아해했었다. 자신이 강세종을 다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강세종 또한 한우리함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세종은 끝까지 한우리함을 고집했다. 뒤틀린 부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칠 때는 함장 스스로도 살짝 감동할 지경이었다.
‘함장님께 인정받겠습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다른 함정으로 옮기더라도 한우리함에서, 그것도 한우리함의 함장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서는 그 어느 함정에서도 잘해 낼 수 없다고 말할 때는 진짜 감동을 받았다. 그 결과, 김을중 함장은 강세종울 받아들였다. ‘네깟 놈이 변해 봤자지‘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고, ‘그래, 얼마나 변했나?’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런데 놈이 진짜 변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장은 알 수 있었다. 한층 나아진 인간관계를 보이는 세종의 태도와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의 편에서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긴박한 상황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함장은 강세종 경사를 다시 보고 있었다. 구제불능인 놈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이제는 아니다. 고위 간부들의 회의가 있을 때마다 강세종 덕에 어깨에 힘을 준다. 얼마 전, 동해 바다 어선 침몰 사건 때만 해도 강세종이 이끄는 기동대 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어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중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구출해 내는 쾌거를 이루어 냈고, 또한 달 전에는 몰래 밀수품을 싣고 밀항하려던 중국선박을 성공리에 나포해 훈장까지 받지 않았던가. 그 덕에 김 함장 또한 더불어 고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아무리 강세종 경사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김 함장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세종을 향해 가자미눈을 뜰 수는 없었다. 이제는 욕심나는 대원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함정으로 간다고 말하면 대놓고 말리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김 함장은 세종에게 작은 상을 내리기로 했다. 그가 지금 가장 골치아파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이번에도 전함장 집에 가겠지?”
세종이 어떻게 알았냐는 듯 함장을 쳐다보았다. 요 근래 세종의 육지 생활 중 아주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세종은 전일곤 함장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나중에는 대문도 열어 주지 않는 전 함장의 집 앞에서 밤까지 새며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종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전 함장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그 모든 일의 원천인 박민영에게는 물론이고, 전 함장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고모나 아버지께도 말하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에 혼자서만 아는 비밀이었다.
목적은 단 하나! 박민영의 인사이동에 대한 요구 조건을 들어달라는 청탁이었다!
그런데 함장님이 어떻게?
깁 함장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씨익 웃었다.
“듣자 하니, 애인과 관련된 인사이동에 대해 전일곤 함장에게 힘 써 주십사, 하고 청탁을 넣는다지?”
세종은 속으로 ‘빌어먹을‘ 하고 욕설을 씹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김 함장이 알았으니 이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이제 조금만 더 전 함장을 설득하면 박민영을 24시간 대기 근무인 긴급출동 부서에서 빼낼 수 있는데 김 함장이 알게 되었으니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심각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전 함장이 별로 내켜 하지 않는다고?”
“재 개인적인 일입니다. 함장님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세종은 떨떠름한 얼굴로 씹어뱉듯 말했다. 근무 시에는 상관에게 복종 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고 그의 인생에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물러설 수 없었다. 김 함장이 어떤 식으로 방해를 하더라도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 일이 영 안 풀리는 것 같아서 좀 도와주려고 했더니 싫은가 보군. 그럼 할 수 없지. 일주일 후에 보자고.”
돌아서는 김 함장을 잠시 멍하니 응시하던 세종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튀었다. 그리고 함장실로 내려가려는 김 함장의 앞을 불쑥 가로 막고 섰다.
“왜?”
웃음을 참는 듯 김 함장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세종은 이를 악 물며 간신히 내었다.
“도와주신다는 말씀, 정말입니까?”
김 함장이 씨익 웃었다.
“뭘? 도와줘?”
항복을 받아 내겠다는 듯 김 함장이 슬쩍 늘리는 투로 묻자 세종은 고개를 푹 숙였다.
“도와주십시오.”
‘전일곤 함장이 자네 때문에 고민을 하더군. 그래서 알았지. 알다시피 전 함장이 좀 고지식한 사람이야. 누구 청탁을 받아서 인사이동에 관여 할 인물은 절대 아니지. 하지만 난 아니야. 난 때에 따라서 얼마든지 부하의 뒷일은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해. 난 그렇게 청렴결백하고 앞뒤 막힌 사람은 아니거든. 그래서 전 함장을 내가 설득했지. 그동안 자네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사람으로 돌아와 준 것에 대해 내가 내리는 작은 상이라고 생각. 곧 인사이동이 있을 거야. 남해해경에 소속된 122긴급구조대 박민영 경장은 이제 곧 대한해경으로 이동조치될 거야.’
부아아아앙!
세종은 오토바이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곧 박민영을 만나게 된다. 정확히 보름 만에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매번 배에서 내릴 때마다 그는 동해에서 남해로 내려가는 여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 된다고 반대를 했지만 고집불통 박 민영은 기어이 122긴급출동 구조대에 응시했다. 그리고 예상과 딜리 단 한 번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박민영은 지금까지 그 특별한 자질을 숨기고 있었다는 듯이 122구조대에서 뽑는 테스트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었다. 마치, 이제야 진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는 듯이 그녀는 날아올랐다.
그런 그녀를 세종은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122구조대에 합격해 남해 경찰서로 발령이 났을 때도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그와 멀리 떨어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다가도 122구조대로 활동할 것에 대해 설레어하는 그녀를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근 1년 반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세종은 안 그래도 얕은 인내심이 드디어 한계에 다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그녀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비록 122구조대에서 빼내올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가까이에 두고 봐야 했다.
적어도 배에서 내리면 곧장 얼굴은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고 이제야 그 뜻을 이룰 때가 왔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 왔지만 세종은 개의치 않았다.
아무렴은 어떤가! 박민영을 내 영역으로 데리고 올 수만 있다면!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어, 박 경장 퇴근하나?”
“네. 모레 될게요.”
“아이구 마, 얼굴이 훤하네. 어데 좋은 데 가는 갑다.”
“좋은 데는 아니고요.”
“좋은 데 아이믄 좋은 님 만나러 가나?”
“예. 하하하.”
쑥스럽게 웃는 민영에게 직속상관인 최 경사가 이제는 대놓고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 멀끔한 총각이 또 오는갑다. 박 경장은 좋겠네.”
“아이, 놀리지 마세요, 경사님.”
“그래 만날 연애만 하지 말고 날을 잡아라카이. 혼기 꽉 찼는데 왜 날은 안 잡노? 퍼뜩 결혼해 아도 낳아야지. 지금도 안 늦었나?”
민영은 하하 웃으며 대꾸했다.
“조만간 잡아야죠.”
“와? 애인이 결혼하자는 말은 안 하나?”
“아뇨. 해요.”
만날 때마다 결혼하자고 조르는 세종을 띠올리며 민영은 푹, 웃었다.
“그럼 와 안즉 안 하노?”
“일하느라 바빠서요.”
“누가? 애인이? 애인이 해경특수기동대라매? 그런데 아직도 자리를 안 잡았나?”
“아뇨, 저요. 제가 122구조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좀 더……“
“뭐라카노! 여자가 그만하면 됐지. 뭔 욕심이 그래 많노? 일은 결혼해서 아 놓고도 얼마든지 하지. 일 몬할까봐. 결혼을 안 한다는기 말이 되나. 그러다가 박 경장, 니 애인 도망간대이. 남자는 기다리는 거, 절대 몬한다니까.”
민영은 ‘에이, 설마요’ 하는 얼굴로 활짝 웃었다.
“우리 애인은 절대 도망 안 가요.”
“저 봐라 저 봐라. 저래 자신하다가 애인 보내놓고 우는 아들 마이 봤다. 니, 그라다가 진짜 후회한대이. 애인 단속 단디 해라.”
“네. 그럴게요. 전 그럼 먼저 나가볼게요.”
“그래. 좋은 시간 보내라. 빨리 시집갈 날도 잡고. 알겠제?”
“네.”
활기차게 대답을 하고 민영은 재빨리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걸음음 겨우 진정시키며 되도록 발걸음을 놀렸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또 복도 끌에서 우연히 마주친 경찰서장에게 붙잡혀 10여 분 동안 지루한 설교를 들은 다음에서 비로소 그녀는 경찰서를 빠지나올 수 있었다.
약간 비탈진 길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민영은 저 앞 경찰서 정문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아직 도착 안 했나?
민영은 더욱 걸음을 재촉하며 정문을 향해 뛰었다. 정문을 지나치는 그 순간에도 그녀의 눈에는 찾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가에 우뚝 서서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주위를 훑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다.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 혹시 끼어 있나 싶어서 자세히 살폈지만 그녀가 보고 싶은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직 안 왔나?”
민영은 휴대폰틀 꺼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렸다. 그때였다..
“아!”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u치자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동시에 팔꿈치를 세게 내질렸다.
“윽!”
순간,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민영은 화들짝 놀랐다. 황급히 뒤로 돌아보는 순간, 허리를 꺾고 ‘끄응’하는 신음을 흘리는 세종이 보였다.
“강세종!”
놀라서 재빨리 달려가 그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그러게 왜 갑자기 달려들고 그래! 이런 장난 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으으음 ”
더욱더 아픈 신음을 흘리는 그에게 그녀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아파? 많이 아파? 아 씨, 이번엔 진짜 아프게 질렀는데 ……“
와락.
“헉!”
그가 갑자기 몸을 펴고 그녀를 와락 글어안자 민영은 눈을 휘둥그레떴다. 그 순간, 귓가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쿡쿡, 박민영. 매번 속고도 또 속는 둔탱이.”
눈살을 확 찌푸린 그녀는 그를 홱 밀쳐 버렸다.
“야!”
“하하하!”
이젠 아예 대놓고 웃는 그를 향해 이를 갈던 민영은 신경질적으로 그의 정강이를 딱 차 버렸다. 그런데 이 인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단숨에 그녀의 발길질을 피해 버린다. 아! 더 짜증난다. 다시 발길질을 하려는데 그가 다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거 놔. 안 놔?”
“가만. 가만있어. 오랜만에 만났는데 싸움부터 할 거야?”
민영은 그에게 안겨 툴툴거렸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알았어, 알았어. 미안. 됐지?”
그가 그녀를 풀어 주며 싱긋 웃었다.
“어디 보자, 내 애인. 그동안 잘 살았나?”
민영도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자긴? 자기 잘 지냈어?”
그러자 세종이 기다렸다는 듯이 엄살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니, 못 지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 속이………“
민영은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또 시작이다. 강세종. 만날 때마다 결혼하자고 조르고 122구조대 당장 때려치우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은 11월의 어느 오후였다. 하늘은 푸르렀고, 저 멀리서 바닷바람이 향긋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정말?“
민영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세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함장님이 힘을 좀 써 주시기로 하셨어. 내가 얼마나 불쌍해 보이면 그렇게 하셨겠냐? 배에서 내리자마자 애인 만나려고 남해로 달려오는 것도 모자라, 바쁘신 애인이 시간이 날 때까지 주구장창 방구들만 지키고 있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해 보이셨던 거지.”
강세종은 떼쟁이다. 민영은 그와 연애하는 1년 반 동안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 경장 말로는 배 위에서는 카리스마 대마왕이라는데 어째 그녀의 앞에서는 다섯 살 사내아이처럼 징징거리는지……그런데 세진의 말을 들어 보면 강세종은 어릴때 말썽을 피우고 부모님 말 안 듣는 사내아이이긴 했어도 떼를 쓰진 않았다는데……
그럼, 나한텐 왜 저래?
민영은 그를 뚱하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뭐?‘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그렇게 나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
그녀가 물었다.
“말했잖아아.”
“또 말해! 봐.”
그가 슬쩍 노려보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어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지. 안 그래도 저조한 출산율 문제로 나라 전체가 리를 앓는데 국가를 위해서 애국해야 하지 않겠어? 어서 결혼해서 힘닿는 데까지 애도 낳아야지.”
그녀는 ‘픽’ 하고 웃었다. 곧 죽어도 ‘결혼해서 네가 살고 싶어 죽겠다‘ 이 말은 안 한다.
“그게 나랑 결혼하고 싶은 이유의 전부야?”
그가 슬쩍 그녀를 쳐다보더니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배에서 내리면 날 기다리는 가족들 품에 안기고 싶기도 하고.”
“또 ”
그가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본다.
“또 나랑 결혼하고 싶은 이유 없어? 그게 다야?”
그녀가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치며 묻자 그가 ‘훗‘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를 콩 쥐어박았다.
“아!”
“넌? 넌 나하고 결혼하고 싶은 이유 없어?”
민영은 이마를 문지르며 툴툴거렸다.
“그런 건 남자가 할 말이라더라.”
“누가?”
“황지연 경장.”
세종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황 경장? 저나 잘하라고 해. 남자나 연애에는 통달한 사람처럼 굴더니 김 경장 앞에서는 완전히 고양이 앞의 쥐던데? 김 경장이 하라는 대로 다 하더구먼 뭘. 황 경장사표 쓴 거 알아?”
민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연이가 사표 썼어? 왜?”
“김 경장이 청혼하면서 결혼하면 집에서 자길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민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딱 벌렸다.
“김 경장이 그랬다고 사표를 써?”
세종이 민영을 지그시 응시했다.
“넌 그럴 생각 없겠지?”
“당연하지! 난 내 직업을 사랑해.”
“난? 난 안 사랑하고?”
민영은 또 어린아이처럼 조르는 세종을 향해 웃었다.
“시랑하지. 내가 자길 안 사랑하면 누굴 사랑해? 자긴? 자기도 나 사랑해?”
“글쎄. 하도 속을 썩여서 생각 좀 해 봐야겠다.”
“뭐?”
그녀가 짐짓 눈을 치뜨자 그가 ‘하하’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사랑해, 인마.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 죽겠다는 거 아니냐.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내 구역으로 끌어들이려는 거고.”
그가 그녀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한적한 바닷가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해변에는 두 사람 외에는 작은 인기척도 없었다. 두 사람은 보름 만에 만났다는 사실을 그제야 자각했다. 잠시 잠깐의 입맞춤이 두 연인의 사이에 불을 지폈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잡고 황급히 입술을 가져왔다. 민영은 그에 못지않게 서둘러 입술을 내밀었다. 서로의 입술이 닿고 서로의 숨결을 흡입하며 그리운 향기를 마음껏 들이컸다.
그때였다.
“살려 주세요!”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해 움푹 파인 바윗덩이에 기대어 있던 두 사람은 흠칫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여자의 비명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살려 주세……!”
순간, 두 사람의 눈길이 동시에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했다. 저 멀리 해변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심상찮은 상황이었다. 펄럭이는 스커트가 보였고, 그 스커트의 주인을 에워싸고 있는 불량스러운 남자들.
남자들이 여자를 거칠게 밀치는 것을 보는 순간.
“여기 있어.”
세종이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가만있을 민영이 아니었다. 달리는 그의 뒤로 민영도 뒤었다.
전속력으로 뛰면서 그가 고함을 질렀다.
“있으라니까!”
“웃기는 소리! 나도 경찰이야!”
민영은 그에게 맞고함을 치며 동시에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불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삐이익.!
“꼼짝마! 해양경찰이다!”
그러자 남자들이 황급히 흩어진다. 세종이 소리를 질렀다.
“저쪽을 맡아!”
“오케이!”
세종이 왼쪽으로 도망가는 남자를 쫓아가자 민영은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남자를 쫓아갔다. 자기를 쫓아오는 경찰이 여자음을 안 불량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뭐야? 여자잖아.”
같잖다는 듯 말하는 남자에게 민영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난 여자아니야.”
“뭐? 그럼 남자냐?”
파도가 철썩인다. 푸른 하늘은 맑았고 갈매기가 끼룩거렸다. 민영은 남자를 향해 한 발 다가섰다. 그러자 남자가 흠칫 물러선다.
“나? 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야.”
“씨팔! 뭐라는 거야?”
남자가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민영은 사뿐히 주먹을 피하며 중얼 거렸다.
“난 대한민국 해양경찰 122긴급구조대야! 새꺄!”
그리고 남자를 향해 부웅 몸을 날렸다.
“윽!”
높이 날아오른 그녀가 쭉 뻗은 발끝이 남자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하는 순간, 먼 바다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뿌우우우우!
《블루가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