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
청풍표국 최강식객 1-225화 @북창
청풍표국 최강식객 001화
1화. 잘 가시게 나의 불량인이여(序)
푹!
“끅!”
온몸에 피칠갑을 한 흑의 사내의 부러진 칼에 가슴이 뚫린 초로의 사내가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미 주위는 자신을 따르던 이들의 시체로 산과 바다를 이루었다.
“크으윽… 이… 이… 결국 네놈 하나로 인해… 이렇게 대계가 무너지는가…!”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오. 그동안 죽어간 불량인 모두의 힘이지.”
담담히 읊조리는 사내를 보며 초로의 사내가 씁쓸히 웃었다.
“마지막 남은 널 넘지 못했구나…. 결국 황제는 하늘이 선택한다는 말이 맞았군….”
“글쎄… 겨우 하늘의 선택에 황제가 결정되는 거라면 지금까지 피 흘리며 죽어간 이들이 지하에서 통곡을 하겠군.”
“후후… 건방진 놈. 이제 그 녀석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황위에 오르겠군…. 너희들… 아니 너 때문이지…. 너만 없었다면 우리의 대계는 이렇게 물거품이 되질 않았을 터인데….”
“만약이란 말은 참으로 부질없으면서도 무서운 말이오. 늘 그 단어 때문에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헛된 희망을 품기도 하지.”
“내 나이의 반도 되지 않아 보이는데… 모든 걸 깨달은 것처럼 말하는군….”
점점 생기가 빠져나가는 초로의 사내가 쿨럭이며 핏물을 토했다.
“글쎄. 뭘 깨닫기나 한 건지…. 그런 건 모르겠소. 단지 당신같이 힘을 가진 자들을 죽이다 보면 마지막 순간엔 늘 그런 말을 내뱉더군. 만약 이랬다면, 그때 이렇게 했다면…. 하지만 무의미한 얘기요. 이미 결과는 눈앞에 나와 있으니.”
“그렇군…. 늙은이의 노파심에서 하나 충고하자면… 이제 그의 곁을 떠나게…. 내 모든 대계를 무너뜨린 자네가 허망하게 정쟁의 희생양으로 죽는 것을 저승에서나마 보고 싶지는 않군….”
“…공공의 말이 아니라도 그럴 생각이오. 나도 이제 여기 있기가 많이 힘들거든…. 이제는 모두 끝났는데도, 홀가분하긴커녕 오히려 더 답답한 건 왜 그런지… 혹 그대는 아시오?”
자신의 말에 대꾸가 없어 아래를 보니, 이미 그의 목숨은 끊어진 뒤였다.
그리고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남자를 보며 흑의 사내가 잔뜩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꼭 가야겠나…?”
황포(黃袍)를 걸치고 산악과도 같은 기세를 풍기는 사내가 아련한 눈으로 묻자 앞에 부복해 있던 칠흑같이 검은 무복의 사내가 담담히 말했다.
“예.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자네는 자네가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을 터인데도…? 아, 물론 이 자리는 안 되겠지만 말일세.”
설핏 웃으며 자신이 앉은 황금빛 찬란한 보좌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팔걸이를 툭툭 치자, 목석같았던 흑의 사내의 얼굴에도 살짝 미소가 어렸다.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하하. 사람 참…. 그래, 도대체 떠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번 들어나 보세.”
“이제 여기서 제가 할 소임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소임이 끝났다?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인가. 이제부터 자네가 내 곁을 지켜주어야지.”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시기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형님께서 저를 죽여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님께서 그런 참담한 일을 하시도록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량인(不良人).
과거 왕조에 존재했던 황제 직속 특임 무사들로, 오직 황제의 곁에서 호위 및 정보 수집, 정적의 감시와 암살까지도 행하는 황제의 그림자들이라 볼 수 있다.
그 불량인에서 영감을 얻은 현 황제는 황자 시절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108인의 특임대를 조직, 과거 불량인을 부활시켰다.
특히 앞에 부복한 흑의 무사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무공이 뛰어난 이들만이 모인 호위대 중에서도 황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수신호위가 되었다.
그러나 정쟁의 막바지에 이르러 정적들의 노도와 같은 파상공세 속에서 불량인들은 모두 죽게 되고, 이 사내가 유일하게 남은 불량인이 되었다.
현 황제를 이 자리에 오르게 한 공신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일등 공신이 이 불량인들, 특히 마지막까지 황제를 지킨 바로 이 사내였다.
흑의 사내의 말에 황포를 입은 사내, 이 거대한 제국의 황제가 된 이의 얼굴에 슬픔이 드리웠다.
알고 있다. 이제 부와 명예만을 거머쥘 기회를 눈앞에 둔 이가 떠나려는 이유를.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인 호칭으로 부르는 사내가 떠나려는 이유를.
이제 수성의 시기가 도래한 지금 그의 존재는 자신에게도 저 사내에게도 이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이 불량인의 존재는 결국 피 말리는 수성의 정쟁 속에서 처절하게 이용당하다 죽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떠나려는 것이다.
생각 없이 투덜대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친구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처럼 벌써 불귀의 객이 되어 있었겠지.
호랑이의 심장에 여우의 머리, 그리고 늑대의 잔혹함까지 갖춘 사내가 바로 눈앞에 부복해 있는 이다.
가끔 생각하곤 했다. 만약 이 친구가 황자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아마도 큰 피해 없이 압도적으로 황자들을 몰아쳐서 수월하게 장악하고 황위에 올랐을 것이다.
“…갈 곳은 있는가? 크음.”
그와 함께 넘나들었던 수많은 사선이 생각나서일까. 살짝 갈라져 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황제가 물었다.
“강호로 가보고자 합니다.”
“강호라… 왠지 자네랑 어울리는군.”
“할 줄 아는 게 칼 쓰는 것밖에 없으니 강호로 가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테지요.”
“허허. 칼을 좀 쓰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쓰질 않나? 혹여 무림맹주라도 되면 나도 좀 잘 봐주시게.”
흑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림맹주가 뭐 아무나 된답니까. 무림에서 난다긴다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하는데.”
황제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자네가 누군가에게 무력으로 밀린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네.”
“강호에는 기인이사가 차고 넘친다더군요. 저보다 높은 무공을 가진 자들도 많을 겁니다.”
흑의 사내의 말에 황제가 이번에는 정색을 했다.
“그건 아닐 걸세…. 내 아무리 강호를 경험해보지 않았다고는 하나, 장담하건대 자네 정도의 무인이 강호에서 그냥 칼 좀 쓴다 하는 정도일 뿐이라면 황실은 이미 강호에 먹혔을 걸세.”
“떠난다고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닙니까? 저도 사람입니다만.”
“하하. 자네 사람이었는가? 난 지옥에서 올라온 귀왕이라도 되는 줄 알았네.”
“…제가 귀왕이었다면 그리 많은 동료들이 죽어가도록 보고만 있진 않았겠지요….”
그의 말에 황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는가….”
“…….”
왠지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친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이 모두 죽고 홀로 남았다.
자신이라도 이 지겨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 같았다.
“…자네는 할 만큼 했네. 아니, 그 누구보다도 잘해주었어. 자네가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네. 그리고 성공했기에 그들의 죽음도 의미가 있는 걸세. 사실 하늘은 나에게 황제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자네가 바로 그 천리(天理)를 비튼 힘이었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땅만 보고 있는 사내를 보며 황제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불편한 마음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아였던 제가 그나마 사람 노릇이라도 하고 살 수 있도록 무공을 가르쳐주고, 글도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이제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게 해주신 분이 형님 아닙니까.”
흑의 사내가 어두운 분위기를 피하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황제도 얼굴에서 그늘을 걷어냈다.
“고얀 사람. 더는 잡을 수도 없게 만드는군.”
아쉬운 듯 고개를 젓던 황제가 옆을 보며 말했다.
“들고 오게.”
황제의 옆에서 또 다른 사내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났다.
그리고 황제의 명에 따라 옆에 준비해둔 목함을 가져왔다.
이제는 자신을 대신해 황제를 호위할 무사를 힐끗 쳐다본 흑의 사내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형님의 호위를 맡을 사람이 그여서.
무공이면 무공, 인품이면 인품,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금의위 최고의 무사였다.
이제 황제는 금의위에 힘을 실어줄 모양이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가장 난적이었던 그들.
그 말은 곧 가장 실력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기도 했으니, 그 강한 집단을 황제가 되자마자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금의위 역시 환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시 황제의 직명을 받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자네가 떠날 것이란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네. 오늘 이렇게 말을 늘어놓은 건 헤어지기 싫어 조금이라도 잡아두기 위해서였다는 것만 알아두게…. 그만큼 자네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니…. 열어보시게.”
황제의 말에 흑의 사내가 자신 앞에 놓인 목함을 열어보았다.
고아한 빛이 감도는 흑비늘이 아름답게 박혀있는 소매 없는 호신용 신갑(身鉀)이었다.
“이건…?”
“어때? 마음에 드는가?”
흑의 사내의 눈가가 살짝 흔들렸다.
“떠나는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주냐고? 내 가장 최측근이자 벗이며, 유일하게 내 뒤를 맡길 수 있던 자네가 강호로 나가서 어이없게 죽어버린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나?”
씨익 웃으며 말하는 황제의 얼굴을 보던 흑의 사내가 얼굴을 숙였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불량인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그 누구보다 서럽게 울던 그였다.
여덟 살에 들어와 십 년간의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이겨내고, 이후 다시 십 년간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을 거쳐 결국 최고라는 자리에 올랐다.
동료들의 희생과 적들의 시체를 밟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앞에 있는 이 사내가 한 번씩 지어주던 미소였다.
그리고 그를 황제로 옹립하고자 하는 목표. 그 두 가지가 자신을 지탱시켜준 두 가지 이유였다.
그 두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이루었고, 이제 남은 한 가지는 자신이 버리려 한다.
어찌 보면 도망가듯 떠나는 자신을 위해 이 정 많은 황제는 모든 것을 안배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입어나 보게. 자네가 입는 모습을 봐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군.”
저렇게까지 말하니 거부할 수도 없다.
흑의 사내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상의를 벗자 온몸에 빼곡하게 들어찬 흉터가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의 눈 역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저 흉터의 숫자만큼 자신의 목숨이 구함을 받았으리라.
그리고 저것보다 수배, 아니 수십 배의 정적이 저 사내라는 마지막 선을 넘지 못하고 죽었을 테지.
저런 모습을 보며 염치라는 게 있다면 어떻게 남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내려 준 호신갑을 입고 상의를 걸친 그가 일어서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이제 지금 이 순간이 자신과 그의 마지막이리라.
지금까지는 그가 자신을 지켜주었지만, 이제 먼 길을 떠나는 벗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준비하였다.
누가 보아도 입이 딱 벌어질 안배였으나 황제의 눈에는 성에 차질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저 사내가 자신에게 베푼 것들에 비할 수는 없으므로.
옷을 정돈하고 한 손에 칼을 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자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보던 황제 역시 천천히 자세를 정돈했다.
그리고 다시 위엄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똑바로 눈에 담고 가시게. 짐의 이 모습은 곧 그대가 만들어준 것이니.”
흑의 사내가 황제를 향해 천천히 칼을 들어 올려 군례를 취했다.
“불량인 흑표! 그동안의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였기에, 사직을 청하옵니다!”
“그대의 청을 허하노라. 그리고….”
황제의 입이 무겁게, 그리고 힘겹게 열었다.
“잘 가시게… 나의 불량인이여….”
그의 눈은 슬프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