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08
청풍표국 최강식객 108화
108화. 임요성의 사람들(2)
“음….”
백운학이 맥문을 짚고 살펴보는 순간이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긴장한 표정의 제갈백규와는 달리 모용천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특이하군.”
“특이하다면 뭐가….”
제갈백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평범한 독에 당한 게 아니네.”
제갈백규는 순간 멍해졌다.
맹주가 중독되었는데 당연히 평범한 독은 아닐 거다.
누구나 예상하는 말을 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니 백운학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러니까 단순히 독을 쓴 것이 아니라, 고독을 이용해 은은히 독이 퍼지도록 한 것 같네.”
“고독이라면…!”
제갈백규가 눈을 부릅떴고, 모용천 또한 눈썹이 꿈틀했다.
“그렇네. 지금은 사라져버린 묘족의 잔재지.”
“맞습니다. 워낙 악독한 물건이라 아예 묘족의 씨를 말려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독이라니….”
마음 같아선 다시 진맥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신의라 불리는 백운학이다.
허튼 말을 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맹주님의 모든 음식은 소주방에서 꼼꼼한 검사를 통해 들여오게 되어 있습니다. 고독에 당했을 리가….”
“음. 혹시 요 근래 외부에서 차나 음식을 먹은 적은 없는가?”
백운학의 물음에 모용천이 눈을 떠 그를 쳐다봤다.
백운학은 모용천이나 제갈백규에 비해 한 배분 위의 선배였다.
그와 비슷한 연배라곤 개방의 용두방주밖에 없었다.
만약 무림인이었다면 아무리 선배라도 맹주로서의 권위를 세웠겠지만, 신의에게는 달랐다.
모용천은 깍듯이 선배 대접을 했고, 백운학도 곧 모용천을 편하게 대했다.
제갈백규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다. 신의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재밌었다.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 후기지수가 식객으로 있는 곳에서 만났다니.
게다가 그 식객과 신의가 보통 사이가 아니란다.
갈수록 호기심이 동하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의 물음에 답해야 했지만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음…. 내가 밖에서 음식을 먹은 적이 있었나….”
고개를 갸웃하는 모용천 옆에서 제갈백규가 손가락을 튕겼다.
“작년 소림에서 열린 신성대연에 맹주님께서 참석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랬었지. 그리 멀지 않아 후기지수들 얼굴도 볼 겸 갔었지. 아! 그러고 보니….”
모용천도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치켜떴다.
“예! 그때 사천당가의 가주 당운심이 특별히 최상급 차를 준비했다고 하여 차를 마시지 않았습니까!”
매년 열리는 신성대연이 작년에는 소림에서 개최되었다.
무림맹이 있는 개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당시 모용천이 특별히 참석을 했다.
따로 음식을 먹지는 않았는데, 사천당가주 당운심이 최상급 차를 준비해왔다고 호들갑을 떨며 올리는 통에 얼떨결에 차를 한잔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설마 당가주가 하독을 했으리라고는….
모용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네. 당시 차를 마실 때 내가 얼마나 꼼꼼히 살폈는지 자네도 알지 않나?”
“하지만 당가의 하독술이 워낙 뛰어나 장담하긴 힘듭니다.”
굳은 표정의 제갈백규를 보며 모용천도 침음성을 흘렸다.
그들을 보다가 백운학이 슬며시 말했다.
“흠. 내가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니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는데…. 사실 이번 혈궁의 궁주가 과거 묘족의 생존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네.”
제갈백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그런 소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밝혀진 건 없습니다.”
“그럼 이것도 알고 있나? 묘족이 멸족하던 당시 그들이 부족의 사활을 걸고 개발하던 고독이 있었는데, 극미섭혼고, 극미고라고 하더군. 이 극미고의 특징이 물에 넣는 순간 무색무취무미에 투명하게 변해 절대 알아챌 수가 없다고 들었네.”
“그, 그런…!”
제갈백규 깜짝 놀랐다.
“도대체 그런 건 어디 들으셨습니까?”
“나야 뭐, 남만이든 운남이든 안 다녀 본 곳이 없으니….”
백운학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 극미고를 만드는 게 워낙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서 한 마리만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지.”
그 한 마리가 지금 맹주의 몸에 있는 거라면?
실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만약 백운학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 섭혼고의 존재를 모른 상태에서 모고를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면…?”
제갈백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백운학이 답했다.
“아마 맹주는 극미고에 의해 정신이 통제될 걸세.”
만약 그리된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악인들에 의해 맹주가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몇 달 후 구주대연회가 있지.”
무림팔가와 강호팔문의 수장이 모두 참석하는 대연회였다.
혹시 구주대연회를 노리고 작년에 미리 손을 써둔 것이라면?
“잠깐. 그럼 당운심과 혈궁이 모종의 연수를 맺고 있다는 말입니까!?”
제갈백규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 사람아 그걸 왜 나한테 묻나. 그건 이제 자네가 알아봐야지.”
“크음. 그, 그렇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허면, 원인을 알았으니 당연히 끄집어낼 수 있겠지요?”
제갈백규가 백운학을 보며 물었다.
“그건… 힘드네….”
“예?!”
“…!”
제갈백규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이번에야말로 제갈백규가 제대로 흥분했다.
“그렇네. 아까 말하지 않았나. 물에 들어가는 순간 무형무색무취로 녹아든다고. 사람의 몸은 칠 할이 물로 되어 있네. 당연히 맹주의 몸에 안착하고 있는 고독도 그런 상태로 녹아 들어가 있네.”
“그, 그럼 방법이 없습니까?”
수염을 쓰다듬던 백운학이 말했다.
“모고를 가진 자를 찾아야 되네.”
“하, 하지만 모고를 죽이면 자고의 숙주도 죽…게 되지 않습니까?”
제갈백규가 모용천을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난 죽인다고 하지 않았네. 그자를 찾아서 죽지 않을 정도의 혼수상태로 만든 다음 맹주의 몸에 있는 자고를 모고의 존재로 유인해서 스스로 밖으로 빠져나오게 해야 하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제갈백규가 회의적인 눈으로 물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백운학도 썩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나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야.”
“그, 그럼 일단 당장 당가로 가죠!”
제갈백규가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데 당가주가 이런 일을 꾸밀 정도의 위인인가?”
백운학의 말에 제갈백규도 멈칫했다.
“그도 이미 누군가에게 당했을 수도 있네.”
“하지만 하나 남은 고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묘족이 멸족할 땐 그랬지. 하지만 수십 년이 흘렀어. 만약 소문대로 혈궁주가 묘족의 후예라면 그사이 몇 개를 만들었을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 말씀은 당가주를 찾아가도 그가 모고의 숙주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군요.”
절망적인 소식에 모용천의 얼굴도 펴질 줄을 몰랐다.
“그럼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모용천이 조용히 묻자 백운학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군.”
백운학도 시원하게 자기만 믿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번 일은 자기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구주대연회가 몇 달 후에 열리니 그때까지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둬야겠군요.”
모용천의 말에 제갈백규가 발끈했다.
“준비라니 무슨 준비 말입니까?”
“구주대연회에서 내가 그들에게 정신을 사로잡힐 수도 있고, 설사 모고의 숙주를 찾는다고 해도 또 넘어야 할 산이 많으니… 혹시 모르지 않나. 미리 새 맹주를 뽑아두는 것도….”
“말도 안 됩니다!”
쾅!
제갈백규가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참을 씩씩거리다 다시 백운학을 쳐다봤다.
“정녕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흠….”
한참을 생각하던 백운학이 입을 열었다.
“묘족의 물건 중에 원고시라는 것이 있네.”
“원고시? 그게 뭡니까?”
백운학의 설명이 이어졌다.
원고시(原蠱尸)는 고독지왕이라 불리며 묘족이 만들었던 최초의 고충(蠱蟲)인 원고(原蠱)의 사체, 즉 인간으로 치면 오랫동안 썩지 않고 건조된 목내이라 볼 수 있었다.
이 고충에서 수많은 고독이 생산되었고, 발전을 거듭했다.
이후 원고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사체를 만들어 보존했는데, 특이한 것이 이 원고시로 모든 고독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묘족의 멸족 이후 그게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크윽.”
제갈백규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대로 있으면 몸이 계속 잠식되어 나중에는 완전히 망가져 버려 그때 가서 손을 쓰고 싶어도 못 쓸 수가 있네. 우선 내가 처방을 내려 최대한 고독의 힘을 줄일 수 있도록 해보겠네. 당장은 그게 최선이야. 그리고 자네 정도면 상단전을 어느 정도 열었을 테니, 백회를 통해 최대한 맑은 기운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게. 고독의 힘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세.”
“…알겠습니다. 어찌 됐든 감사합니다. 신의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당할 뻔했군요.”
“나야말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그 이후로 백운학은 몇 가지 처방전과 고독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 등을 일러두고 맹을 나왔다.
어차피 당장은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자신도 알아볼 수 있는 대로 알아볼 작정이었다.
* * *
구용식이 수하가 전하고 간 전서를 읽어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윤천을 불러오도록 시킨 후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이제 청풍표국의 정보각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 꿈꾸었던 대로, 이제 청풍표국의 정보각은 그 어느 정보단체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묵천, 환희궁, 하오문.
적어도 소주 일대만은 손금 보듯 꿰고 있었고, 점점 그 거미줄 같은 정보의 영역을 강소 일대로, 그리고 천하로 넓혀가고 있었다.
비록 강소성을 넘어가는 순간, 다른 하오문도들의 견제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개방도들의 도움으로 극복 중이었다.
노준경이 임요성에게 호감을 가짐에 따라 개방과는 정보 교류를 통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갔다.
그리고 천하전장의 전서각을 십분 활용해 훌륭한 정보체계를 완성해 가는 중이었다.
일간 천하전장주와 임요성의 독대 자리가 있을 예정이다.
자신이 주선했고, 이제는 주군이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중요 인사가 되었기에 자리를 만드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천하전장주가 몸이 달아 있는 상태였다.
“날 불렀다고 들었소.”
상념을 깨며 나윤천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아, 나 대주. 어서 오시오.”
구용식이 자신이 받은 전서를 보여주며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자 나윤천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런 일이….”
구용식의 설명에 주먹을 부서지도록 말아쥐었다.
나윤천 역시 자신의 가문이 멸문한 이유에 분명 어떤 음모가 있으리란 걸 짐작했다.
하오문에 투신한 것도 정보를 얻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급 정보에는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다.
청풍표국에 들어오고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져서 잊고 있었는데, 자신이 흘러가듯 던진 이야기를 구용식이 찾아준 것이다.
그 일로 무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식솔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임요성을 만나며 병세를 회복한 아내가 없었다면 이미 구용식은 몸을 함부로 굴리다 어딘가에서 객사를 했을 것이다.
비록 어렴풋이 짐작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사실을 확인하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나윤천의 눈에서 불똥이 튀어나올 것처럼 이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