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09
청풍표국 최강식객 109화
109화. 임요성의 사람들(3)
나윤천의 표정을 살피던 구용식이 위로하듯 말했다.
“나도 이번에 단목공자의 뒤를 캐며 알아낸 것이오. 나 대주의 양청무관은 이번 소주검문처럼 소주를 집어삼키기 위해 단목공자와 강소표국주가 행한 일이라는 걸.”
“고맙소. 잊지 않고 알아봐 줘서.”
“뭘. 우린 다 한 식구 아니오.”
씨익 웃은 구용식을 쳐다보며 나윤천이 씁쓸히 따라 웃었다.
“이제 어찌할 거요? 주군께 말해서….”
“아니요. 이런 사소한 일에 주군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는 없지.”
나윤천은 요새 살맛이 났다.
아내가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청풍표국의 소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걸 거들기 시작한 이후로 아무런 걱정이 없어졌다.
아내도 이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오문이라는 흑도에 몸담고 온갖 더러운 일을 할 때는 아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럴듯한 표국의 경비대주를 맡은 남편을 보며 근심을 덜었고, 이제는 그가 모시는 주군이 천하에 위명을 떨치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얼마 전 자신에게 내려졌던 금제도 풀었다.
주군이 이제는 자신을 신뢰한다는 뜻이었고, 그건 꽤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또 뭔가를 부탁하라고? 나윤천이 고개를 저었지만, 구용식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다고 나 대주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오. 어차피 우리가 움직이는 데는 주군에게 보고가 있어야 하고. 나 대주가 주군에게 부채 의식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번 일은 강소표국과 연관된 일이라 무조건 보고를 해야 하오.”
나윤천이 망설였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자 그러지 말고 같이 가봅시다.”
구용식의 재촉에 나윤천이 손이 이끌려 임요성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찾아온 구용식과 나윤천의 설명을 들은 임요성이 입가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 역시 강소표국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는 생각 중이었다.
“헌데, 그들은 자신의 몸을 숨긴 채 드러나지 않게끔 일을 처리해서 무턱대고 처리하기엔 어려움이 있네.”
하지만 강소표국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숨을 죽이고 있어 쉽게 도모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그렇습니다. 무력이야 당연히 저희가 앞서니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응징하는 건 문제 없지만, 그 명분이 중요하니….”
구용식도 동의했고, 듣고 있던 나윤천도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냥 몰래 가서 강소표국주의 목만 따버릴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그 정도의 무력은 있었다.
묵풍조 장로들의 득달같은 수련에 이미 대주급 이상은 자신이 익혔던 무공 외에도 은신술에 대한 수준이 월등히 올라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을 듣다 보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청풍표국은 강호에서 주목받는 세력이 되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주군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다.
세 사람이 그 문제로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때,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사님. 태호상단의 왕 대인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시비의 말에 고개를 든 임요성의 눈에서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왠지 이 일에 대한 좋은 기회를 왕 대인이 제공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대주. 같이 가지. 구 각주도 함께.”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왜 자신들을 왕 대인을 만나는 자리에? 그리고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 * *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왕만금이 턱살을 출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표국의 경비대를 맡고 있는 중요한 사람이니 뭔가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임요성의 부탁에 왕만금이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눈을 빛냈다.
“뭐,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강소표국은 우리가 가는 길에 박혀 있는 작은 돌멩이일 뿐입니다. 고이 빼내어 나 대주께 드리지요.”
실눈을 휘며 웃은 왕만금.
“그럼?”
나윤천이 묻자 왕만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런 일은 무사들께서 나설 일이 아닙니다. 표국과 상단의 싸움은 힘과 힘보다는 돈과 지략 싸움이지요. 서서히 말려 죽이는 것이 저희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왕만금이 자신의 목을 그었다.
“나 대주께서 조용히 마무리를 해주시면 됩니다.”
나윤천이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대인.”
옆에서 임요성이 포권을 취했다.
“저 역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왕만금이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단 며칠 사이에 증명한 사내였다.
이제는 자신이 이렇게 독대를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만큼 거물이 되어버린 사내.
진천비무제를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하고, 천무삼신인 팽극환의 지지를 이끌어낸 현 강호 무림 최대의 기린아.
앞으로 이 젊은 영웅과 함께할 여정이 그의 가슴을 진동시켰다.
“자, 그럼 왕 대인께서 오셨으니 일 얘기를 좀 해볼까요?”
임요성의 말에 나윤천과 구용식이 나가고 총관 이천호가 들어왔다.
“이분이 저희 표국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계시는 총관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천호입니다.”
“어이쿠. 이거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사소한 인사치레로 친분을 텄고, 금세 이번 계약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다.
돈이 얽혀드는 일이라 임요성은 차만 홀짝일 뿐이었다.
이번에 영주로 향하는 조사단이 급히 만들어지면서 표국의 인원을 잘 분배를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임요성과 여산홍이 조사단으로 빠지는 만큼 표행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게끔 할 인원들이 적재적소에 배치가 되어야 했다.
그 첫 논의에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우호적인 손길을 내밀어 준 왕 대인을 부른 것이다.
그만큼 그를 우대해주겠다는 뜻이었고, 무림맹이 끼어들어 처지가 뒤로 밀리는 것 아닌가 고심하던 왕만금의 걱정을 일시에 날려주었다.
표국의 안살림을 총괄하는 총관, 그리고 대외적인 일을 처리하는 총사.
이렇게 두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앞으로 청풍표국을 천하제일가로 만들어 줄 왕만금과의 첫 논의가 이어졌다.
* * *
“…아주 곤란해졌어. 내가 선을 잘못 잡았군.”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진 허인회의 자조 섞인 말이었다.
지금까지 최선의 선택만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이런 일이 터지다니.
“파천도군께 한번 말을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앞에는 소주상단의 단주 가원익이 앉아 있었다.
소주검문이 독사갈 낭인대에게 도륙당하던 그 날 혼자 살겠다고 빠져나왔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그 일 이후 곧바로 강소표국을 찾아갔고, 자신을 받아줄 것을 청했었다.
어차피 같은 상계 쪽 인물인데다가 소주검문을 지운 이상 악감정도 없던 인물이라 금세 의기투합했다.
소주검문이 몰락한 이상 청풍표국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로 폭풍처럼 일들이 지나가더니 이젠 자신을 막아주던 단목인과 단목룡이 동시에 도군에게 죽고, 가문은 봉문까지 해버렸다.
그들은 상계의 인물. 가문에 따로 무사대가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도군이라는 엄청난 별호로 불러야 하는 젊은 사내.
그땐 그가 이렇게 거물이 될 줄은 몰랐다.
“뭐라고 한단 말이오. 듣자 하니 그 소주검문의 딸은 절로 보내고, 아들은 군부에 군역을 살도록 했다곤 하지만 어쨌든 이 일의 원흉이 우린데.”
“모두 단목세가에서 시킨 일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허인회가 한숨을 쉬었다.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우리들의 최대 숙적인 태호상단과 손을 잡았다고 들었소. 그들이 결코 우리들을 가만히 놔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있던 가원익이 내심 저울질을 하기 시작했다.
왠지 이제는 강소표국을 비롯한 그 뒤의 양주상단, 그리고 이어지는 산서상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차피 자신은 이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사람.
차라리 자신만이라도 청풍표국에 백기를 들고 간다면?
반겨주지는 않더라도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목숨과 소주상단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저기…. 제가 상단에 잠시 급한 일이 있다는 걸 깜빡하고….”
“….”
“죄송합니다. 그럼 제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서둘러 나가는 가원익의 뒷모습에 허인회가 씁쓸하게 찻잔을 들었다.
“후후후…. 원래 세상의 인심이란 것이 이런 것이지.”
먹구름이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피할 수도 피할 생각도 없었다.
강호에 몸담은 이상 생과 사는 이미 자신의 손을 벗어난 일이었기에.
* * *
“하하하하. 축하하네. 이것 참. 잠깐 동안 친구가 너무 거물이 되어버렸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사람 좋게 웃는 사람은 바로 팽원호였다.
비록 비무제 일회전에서 탈락했지만, 그는 크게 상처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후련한 얼굴이었다.
그동안 사대성으로 불리며 자신에게 직간접적으로 쏟아지던 시선이 사실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를 따라온 황보익과 조영영 역시 이번 조사단에 합류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형님. 전 형님께서 이렇게 되실 줄 알았습니다.”
황보익이 엄지를 치켜세웠고, 조영영도 밝게 웃으며 거들었다.
“오라버니께서 비무제에 우승하시고 썩은 표정을 짓는 다른 이들을 보니 어찌나 고소하던지. 호호.”
조영영이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다들 고맙군. 자네도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임요성이 차를 마시며 말하자 팽원호도 긍정했다.
“하하. 맞네. 오히려 후련해.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까. 지키는 건 배로 힘들거든.”
딴엔 맞는 말이라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팽원호가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만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실로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또 놀라게 한 친구였다.
처음 만날 때 자신과 친구의 처지가 이제는 반대로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팽원호는 좋았다.
마음껏 배우고 실수할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께서 자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야. 도법에 관한 당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군(君)이라는 칭호를 내리다니.”
“괜스레 미안해지는군.”
임요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응당 아들인 팽원호가 그런 칭호를 받아야 할 텐데 자신이 받으니 왠지 미안해졌다.
임요성도 이번에 발간된 무림맹의 호외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현 무림 최고에 있다는 천무삼신. 그것도 친우의 부친이 자신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파천도군.
별호도 마음에 들었다. 아직 도제니 도왕이니 같은 별호가 주어진다면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팽원호가 눈에 밟혔다.
아들로서 아비의 눈높이를 맞추려 많은 애를 썼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팽원호는 시원하게 손을 내저었다.
“전혀! 그런 생각가질 필요 없네. 난 오히려 친구인 자네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기억하게 도군은 자네가 되었지만, 도신은 양보 못 해.”
은근히 웃는 팽원호를 보며 임요성도 마주 웃었다.
“기대하지. 하지만 분발해야 될 거야.”
“하하하. 이거 겁나는군.”
서로 한참을 웃다가 팽원호가 은근히 말했다.
“내가 조사단의 단주가 내가 되었네.”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자네라면 충분히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남궁헌은 본가로 돌아갔고, 단목룡은 임요성에게 죽어 버렸다.
도문이나 불가에 적을 두고 있는 후기지수들을 딱히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 뒤로 물러났고, 황보혁이 웬일인지 나서질 않았다.
아마도 갑자기 위상이 달라진 임요성 때문인 듯했다.
그러자 두루 친분이 있는 팽원호가 조사단의 단주로 추대된 것이다.
“우리를 영주까지 잘 이끌어주게.”
이제 조사단의 단주인 자신과 자신들을 잘 이끌어 영주까지의 표행을 책임질 총사인 임요성은 운명공동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