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1
청풍표국 최강식객 011화
11화. 한 줄기 흑풍에 혈루가 내리다(3)
몸을 돌리고 있어 등만 보이는 임요성의 전혀 긴장감 없는 말에 좌중의 모든 눈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뭐?”
혈괴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문득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만하라고 했다. 좀 과하군.”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임요성을 멍청하게 쳐다보던 혈괴의 얼굴이 괴이하게 변하더니 마침내 웃음을 터트렸다.
“풉! 그믄흐르고. 좀 가하근. 아이고 무서워라! 크하하.”
아무런 기도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임요성에게서 어떠한 위압감도 느끼지 못한 혈괴의 비아냥거림에 누괴도 같이 킬킬거렸다.
스윽.
천천히 임요성이 일어섰고, 모두의 눈이 그를 따라 일어섰다.
특히 임요성을 깔보며 무시했던 청풍표국의 표사들과 홍국헌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뒤로 돌아 있을 때는 못 느꼈는데 실제로 보니 더욱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스물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에 호리호리한 학사의 외양을 한 그의 모습에서 어떤 기대를 느낄 리 만무했다.
자기들도, 아니 절정에 이른 호위무사도 손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죽은 상황에 겁 없이 나서다니.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두혜련은 확실히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왠지 걱정은 들지 않았다. 세찬 심장의 고동은 불안함이 아닌 기대감이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런 두혜련의 눈에 덤덤한 어투로 내뱉는 임요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 딸아이 챙기시오.”
임요성이 고광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턱으로 아이를 가리키자, 그가 부리나케 달려가 딸을 챙겼다.
그리고….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오는 임요성의 모습을 혈괴와 누괴는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마치 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처럼.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면서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고, 바로 앞까지 왔을 땐 혈괴의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이, 이게 무슨….’
마치 백척간두의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아찔함이 느껴졌다.
실제 기도를 드러낸 것도, 공력을 이용해 압박을 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표정하게 다가오는 저 사내의 모습에 숨이 멎을 듯했다.
살기.
그렇다. 살기였다. 야수가 그대로 뿜어내는 날것 그대로의 살기가 아니었다.
정제되고 정제된, 갈아내고 갈아낸, 바늘같이 정교하고 미세한 살기.
그러나 그 살기의 바늘이 수백, 수천 개가 되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자, 잠깐! 기다려보게!”
혈괴가 사색이 되어 내뱉은 말에 임요성이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 돈을 주지! 은자 천 냥 어떤가? 그냥 자네가 가만히만 있으며 그 돈을 얻게 되는걸세! 어차피 저자들은 자네와 아무런 연관도 없질 않나!”
은자 천 냥이라는 말에 청풍표국의 표사들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임요성 쪽을 흘깃거렸다.
그 돈이면 서민들로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였다.
자기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들에게서 모른 척 고개만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막을 뚫고 나온 담담히 흘러나온 저음의 목소리는 전혀 뜻밖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글쎄. 저 여인에게 빚을 진 게 있어서 말이야.”
임요성의 말에 모두의 눈이 두혜련에게 쏠렸다.
두혜련은 갑자기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자기가 저 사람한테 돈을 빌려준 적이 있었던가 맹렬히 과거를 헤집었다.
“비, 빚? 빚이 얼만데? 은자 천 냥으로도 안 될 정도인가?”
“…마음.”
“…뭐?”
“생판 모르는 없는 사람이 말을 사는데 오지랖 넓게 간섭해준 마음 말야.”
“아…!”
임요성의 말에 그제야 통주 마시장에서의 일이 생각난 두혜련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고, 그때의 그 작은 도움이 지금의 구명지은으로 보답받고 있었다.
“말…? 오지랖…?”
멍청하게 임요성을 바라보던 혈괴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새끼가!”
참다못한 혈괴가 앉은 자세 그대로 검을 휘둘러 임요성의 목을 단번에 그었다.
아니 그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다만 먼저 선공을 날려야 한다는 직감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직감이야말로 그들이 자기들보다 고수를 상대로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푸악!
극쾌의 발도술!
황자를 지키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암살 시도가 행해진다.
그런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도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나중엔 다른 불량인들이 그의 발도술을 일컬어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 같다 하여 천섬(天閃)이라 부를 정도였다.
어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이미 날아드는 혈괴의 검이 그것을 잡은 손목째로 하늘로 솟구쳤다.
실로 무심하면서도 거침없는 손속에 중인들은 얼굴은 얼이 빠진 듯 멍해졌다.
“어? 어어…?”
머리는 자신의 팔목이 날아가는 걸 인지했음에도, 몸은 아직 통증조차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일격이었다.
혈괴는 임요성의 칼이 칼집에 들어있을 때 그의 목을 날리려 했으나, 극쾌의 발도술에 자신의 손목이 날아가는 걸 빤히 눈을 뜨고 지켜봐야 했다.
“으아아아악!”
뒤늦게 찾아온 통증과 충격에 혈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임요성이 혈괴의 가슴에 흑아를 박아넣었으나, 혼신을 다해 피한 혈괴의 동작에 가까스로 어깨에 박히게 되었다.
“이 새끼가! 죽엇!”
그때 누괴가 괴성을 지르며 허리춤에서 채찍을 뽑아 들고는 임요성의 목을 향해 날렸다.
임요성이 혈괴의 어깨에 뽑힌 칼을 뽑아 채찍을 쳐내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흐흐, 넌 죽었어.”
밑에서 임요성을 올려다보며 흘리는 혈괴의 비웃음.
어깨에 박힌 칼을 내공을 담은 왼손으로 틀어쥐는 바람에 꿈쩍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섬뜩한 독심이었다.
혈괴의 독심과 누괴의 번개 같은 공격에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임요성의 죽음을 예감했고, 두혜련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황에 혈괴의 눈이 찢어질 듯 치켜 떠졌다.
임요성이 혈괴가 잡고 있는 칼을 무심히 놓아버리고는 허리춤에 달려있는 칼집의 윗부분을 오른손으로 움켜쥐고 뽑자 그 속에서 흑조가 뽑혀 나왔다.
그리고는 날아오는 채찍을 흑조로 쳐내고는 그대로 흑조를 던져 정확히 누괴의 목울대를 뚫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칼집째로 혈괴의 심장에 박아넣음으로써 싸움의 매듭을 지어버렸다.
이 모든 것이 한 호흡에 이뤄진 것이었다.
칼집째로 심장에 박힌 채 혈괴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그리고 그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일련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사람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단지 드러난 상황을 봤을 때 임요성의 칼집이 앉아 있는 혈괴의 가슴에 박혀있었고, 역시 그가 던진 두 번째 흑조에 목이 뚫린 누괴가 불신 어린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바닥에 누워있다는 것뿐.
악명을 떨치기 시작하며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사선을 넘어온 혈루쌍괴였으나, 이번 한 번의 벽은 그들에게 너무 높았고,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백번 잘해도 단 한 번의 승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강호의 세계이리라.
툭. 툭.
촤악.
간단히 몸을 정돈한 임요성이 혈괴의 가슴과 어깨에 꽂힌 칼집과 흑아를 회수하고, 누괴의 목에 꽂힌 흑조를 뽑아 각각에 흐르는 피를 바닥에 뿌렸다.
그리고 담담한 얼굴로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손 닦는 수건을 들어 칼집과 두 개의 도신에 묻은 피기름을 닦는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검기나 도기 등을 무기에 둘러서 쓰게 되면 그를 감싸고 있는 내공으로 인해 칼날에 피기름이 묻는 일은 없다.
그러나 임요성의 이번 공격에는 어떤 기운도 사용되지 않은 오로지 검술로 인한 결과였기에 약간의 피기름이 묻은 것이다.
임요성은 불량인 시절 부족한 내공을 보완하기 위해 내공의 쓰임을 다르게 가져갔다.
내기를 마구 방출하는 방법 대신에 내기를 뼈와 근육에 돌려 파괴력은 약한 대신 속도를 올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보통의 절정 이상의 무인들이 내기를 유형화시켜 내공을 방출하는 원심력을 이용한다면, 임요성은 내공을 안으로 수렴하는 구심력 형태의 내기 운용을 사용했다.
그랬기에 지금도 버릇처럼 그렇게 무공을 펼친 것이고, 보도에 가까운 황 노야의 칼이 부족한 파괴력을 보완해준 것이다.
임요성이 칼을 회수하는 일련의 행동 중에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혈루쌍괴의 억지에 모두가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 나선 임요성의 돌발행동과 함께 불현듯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칠흑 같은 검은 무복을 입은 임요성의 몸놀림은 표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홍국헌도 제대로 눈에 담기 힘들 정도였다.
그들 눈에는 뭔가 움직인다 싶더니 검을 든 혈괴의 오른팔이 그대로 잘려 나가고, 누괴의 목에 흑조가 박히더니, 동시에 혈괴의 심장이 칼집에 뚫렸다는 것뿐.
말 그대로 한 줄기 흑풍이 휘몰아친 순간 하늘에서 피가 내리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이들의 별호가 혈루쌍괴이니 피눈물이 내렸다고 해야 할까.
‘이럴 수가. 이립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젋은 나이에…!’
임요성을 보는 홍국헌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혈루쌍괴 개개의 무공은 절정에 이르지 못했으나, 둘의 합격은 절정고수를 잡을 정도라고 했다.
일류와 절정의 차이는 크다.
절정에 이르면 내기성형(內氣成形), 즉 밖으로 유형화된 기를 통해 사람을 해하는 게 가능했기에 일류 무인들이 합격을 한다고 한들 웬만해서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계두천을 손쉽게 처리할 만큼 그들의 합격술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혈루쌍괴를 이리 쉽게 잡다니!
객잔 안에 있던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임요성을 흔들리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임요성이 천천히 칼집에 흑조를 꽂고, 흑조의 손잡이 머리 부분에 다시 흑아를 꽂자 처음 보았던 평범한 칼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실 누가 보면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에 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암수를 썼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임요성에게 숨겨진 칼은 암수라기보다는 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지기 위한 것일 뿐, 딱히 숨겨서 사용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굳이 쉽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일에 여지를 남겨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불량인들 중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한 가지 이유였다.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 선망과 두려움, 신기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때, 임요성은 들고 있던 흑풍아조를 내려다보며 다른 이유로 마음이 착잡해졌다.
‘황 노야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군.’
용문간에서는 너무 황망 간에 일이 벌어졌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기느라 제대로 선물받은 무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보도(寶刀)가 따로 없었다.
살을 베고, 근육을 뚫고 들어가는 데 있어서 아무런 힘이 들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칼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황 노야의 마음이 느껴졌다.
‘썩을 놈. 어디 가서 무기 부러져서 뒈지지 말고 건강하거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황 노야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늘 자신만의 칼을 갖고 싶었으나 작전 중 어찌 될지 몰랐기에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칼을 주문하진 못했다.
대충 기성품처럼 만들어진 걸 들고 왔지만 황 노야의 솜씨였기에 여느 기성품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 황 노야의 작별 선물은 그야말로 마음에 꼭 들었다.
잠시 상념에 잠겼던 임요성이 고개를 들자 그를 숨죽이고 쳐다보고 있던 모두가 몸을 흠칫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