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14
청풍표국 최강식객 114화
114화. 오황자(1)
“대학사께서 고생이 많으시군.”
“아닙니다. 대학사께선 늘 황자마마의 안위를 가장 걱정하고 계십니다.”
만약 황궁이었다면 제국의 황자 신분으로 살수 나부랭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귀양지. 한 사람이라도 찾아온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삼베옷을 입은 앳된 얼굴의 오황자 앞에 부복해 있는 사내는 핏빛 무복을 입은 혈위였다.
혈위 앞에서 단정한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는 청년이 바로 황자의 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현 황제의 친형제인 오황자였다.
이름은 주겸. 현 황제보다 열 살이 어려 이제 스물다섯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어린 나이와는 무색하게 구렁이가 들어앉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음흉했고 그 처세술이 지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힘이었다.
“그럼 영주가 비고로 시끄러워지는 순간 자네가 날 데리러 올 건가?”
“예. 강호인으로 위장한 제 수하들이 관청을 습격하여 이 귀양처를 지키고 있는 관병들을 모두 부르도록 할 겁니다. 혹여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강호인으로 위장한 이들이 이곳을 지키는 관병들을 죽이고 황자마마를 빼돌린다는 계획입니다.”
“흐음. 그러면 형님께서 나를 찾기 위해 이 잡듯이 뒤지지 않을까?”
“후후. 그래서 대역을 준비했습니다. 황자마마와 비슷하게 생긴 이를 이곳에 두고 이 집 전체를 태울 겁니다. 그러면 마마께서는 돌아가신 것으로 처리될 테고….”
“그럼 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겠군?”
“맞습니다. 이미 마마께서 지내실 곳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하남제일상단을 우리 소유로 만들었고, 마마께선 궁궐만큼 호화로운 곳에서 편하게 지내게 되실 겁니다. 그러다 저희가 모든 준비를 마치면 황위에 오르시기만 하시면 되지요.”
“쿡쿡. 듣기만 해선 모든 게 다 이뤄진 것 같군.”
“맞습니다. 마마께선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후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마마, 황공하옵니다. 저 같은 이를 배웅하기 위해 나오시다니오.”
“그냥 바람도 쐴 겸 나온 것이니 괘념치 말게.”
주겸이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늘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어리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황위를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좋게 본 대학사가 있었기에 다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럼 살펴 가게. 그리고 대학사….”
“잠깐만요! 황자마마!”
갑자기 혈위가 주겸의 말을 막고 대문을 뛰쳐나가며 주위를 둘러봤다.
옆에는 하품을 하다 놀래서 눈만 껌뻑이고 있는 관병이 쳐다보고 있었을 뿐 아무 이상한 점이 없었다.
‘기이하군. 분명히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는데.’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혈위와 주겸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긴 했다.
아주 멀리,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 이는 바로 임요성.
그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관병은 물론, 방 안에서 대화하던 혈위의 기감마저도 속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천천히 자리를 옮겨 거리를 벌렸고, 그 순간 혈위가 눈치를 챈 것이다.
혹 들킬 수도 있겠다 싶어 움직인 것이 오히려 그의 기감에 걸린 것이다.
‘대단하군. 나와 비슷한 경지인가?’
임요성은 설마 들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비슷한 경지에 은신술의 대가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가 급히 움직일 때 터져 나온 기파가 황보혁을 도륙한 곳에서 풍기는 느낌과 비슷했다.
‘저자로군.’
임요성은 이로써 택화림과 오황자, 그리고 이번 비고에 대한 소문 등이 모두 한데 얽혀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아닙니다. 누가 지켜보는 것 같아 잠시 흥분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설마 이곳까지 올 사람이 있으려고.”
혈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파를 펼쳐 사방을 훑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은신술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거라 생각한 그는 자신이 예민했나 싶었다.
“그럼 거사일에 뵙겠습니다.”
“음. 고생해주게.”
그렇게 두 사람이 멀어지는 광경을 지켜본 임요성의 눈이 빛났다.
‘주겸. 결국 내 경고를 무시했구나.’
그리고 임요성 역시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비고가 발견됐다―!”
그 한마디를 기점으로 수많은 무인들이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지?”
아침 일찍 객잔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던 팽원호가 깜짝 놀라 객잔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온통 달음박질을 하는 무인들로 가득했다. 개중에는 경공을 써서 남들보다 훨씬 앞서가는 이들도 있었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때 개방의 한 방도가 서찰을 들고 뛰어왔다.
“이, 이거 보십시오, 단주님! 새벽에 나붙은 방입니다. 거리 곳곳에 이런 방이 나붙었습니다!”
빼앗듯이 훑어본 방에는 대략적인 지도와 함께 비고의 위치가 나와 있었다.
“젠장!”
마치 자신들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붙은 방.
위치는 구의산 중앙에 있는 봉우리를 품은 산이었다.
“젠장 바로 가보세!”
팽원호의 말에 다들 먹던 밥을 내팽개치고 무인들의 뒤를 따랐다. 아니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의 경공을 따를 자는 이곳에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비고가 위치한 산의 초입에서 병장기 소리가 들렸다.
챙! 채쟁!
“개새끼야! 내가 먼저야!”
“이 미친놈이! 내가 먼저라고!”
이미 비고의 보물에 눈이 먼 이들이 시비가 붙어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자신보다 빨리 가는 이들의 뒤통수를 치는 건 비일비재했고, 온갖 암수와 속임수로 서로를 속였다.
이 모두가 자신이 비고를 독식하기 위함이었다.
팡!
그들의 머리 위를 넘어 먼저 가기 시작한 진천구성들.
“저, 저! 진천구성이 보물을 독차지하려 한다!”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가 눈이 벌게져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영주 전체가 비고의 발견으로 들끓고 있을 때 영주 관아 역시 몸살을 앓았다.
“웬 미친놈들이 닥치는 대로 관아를 부수고 있습니다!”
“뭣이!”
영주부 지부대인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어서 모든 관병들을 이리로 집결시켜라!”
혈위의 생각대로였다.
지부대인이 겁을 먹고 인근 모든 관병들을 소집했고, 오황자의 귀양처를 관리하던 관병까지 모두 소집되었다.
몇 년간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야 나겠냐 싶은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였다.
“흐흐. 역시.”
혈위가 사뿐히 집안으로 내려섰고, 이미 혈위가 미리 갖다둔 옷으로 환복한 오황자가 문을 나섰다.
혈위의 손에 잡힌 한 청년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대용품이리라.
“대의를 위해서니 이해하시게.”
무릎을 꿇고 있는 청년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준 오황자가 천천히 걸음을 뗐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서 평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전에 사약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오황자 주겸이 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주겸. 그 발을 멈춰라.”
“음?”
대문 앞에 내려선 푸른 옷의 사내. 어딘가 낯이 익다. 그리고 주겸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설… 마? 흑표… 형?”
주겸의 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흑표의 신위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 중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마저도 형님마마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목숨이 달아났을 터.
“혀, 형님이 어떻게 여기에?”
주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흑표, 아니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주겸. 형님의 말을 어기고 널 죽이려 했지만, 평생을 조용히 살겠다며 울며불며 매달렸기에 살려주었다. 그때의 기억이 난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런데 넌 지금 뭘 하려는 것이냐.”
아무리 귀양을 왔다지만 황자에게 하는 말치고는 거칠었다.
사실 이는 임요성과 주겸이 어릴 적에는 친형제처럼 지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어린 주겸이 임요성에게 형이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였다.
“다시 들어가라. 그럼 이 일은 모른 척해주겠다. 너의 형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물론 저 붉은 옷의 사내는 여기서 죽어줘야겠지만.”
꿀꺽.
주겸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흑표가 죽여야겠다고 말한 사람이 죽지 않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건 무공의 고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건 의지의 문제였다.
“으… 으으….”
주겸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혈위가 대갈일성을 터트리며 주겸을 막아섰다.
“갈! 무슨 짓이냐!”
임요성을 향한 혈위의 고함 소리에 주겸이 정신을 번뜩 차렸다.
“마마. 걱정마십시오. 이곳은 제가 막을 테니 제 수하들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그의 말과 함께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오황자를 둘러쌌다. 그 모습을 보며 임요성의 눈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주겸―! 기필코 이곳에서 내 손에 죽기를 바라는가!”
주겸은 임요성의 서슬 퍼런 호통에 발을 떼지 못했다.
다시 혈위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황자마마를 모셔라!”
자신이 임요성을 막는 사이 수하를 통해 황자를 빼돌리려 할 때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한 인영이 나타나 모옥의 지붕에 올라섰다.
임요성의 호법 여산홍이었다.
그는 당연히 임요성의 호법이었으므로 비고로 향하지 않고 임요성을 따랐던 것이다.
“움직이는 순간 오황자는 죽는다!”
오는 길에 이미 비도를 구해 손에 잔뜩 쥔 여산홍은 움직이는 순간 오황자에게 비도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하! 감히 제국의 황자를 죽이겠다고? 그러고도 너희가 살기를 바라느냐!”
혈위의 비웃음을 임요성이 담담히 받았다.
“상관없다.”
“…뭐?”
“오황자를 죽인 건 너희가 될 테니까.”
“흥, 자신감이 넘치는군! 그럼 이걸 한번 받아보아라!”
혈위가 수하들에게 틈을 벌어주기 위해 여산홍에게 검풍을 날렸지만….
팡!
퓨슉!
“끄아악!”
하지만 임요성의 도풍이 그의 검풍을 상쇄시켰고, 혈위의 수하가 오황자를 엎고 도망치려다 여산홍의 비도에 가슴이 꿰뚫렸다.
같이 바닥에 떨어진 오황자가 신음했고, 혈위가 짜증을 냈다.
“하! 이 새끼들아, 저놈 한 놈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거냐!”
사실 여산홍이 복면인 수십 명을 어찌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황자를 데리고 무사히 여길 빠져나가야 했기에, 괜히 눈먼 비수에 오황자가 맞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그런데 혈위가 짜증을 내자 그들의 눈이 다시 단단해졌다.
복면인들이 날아오는 비도를 죽음을 각오하고 막으려는 마음으로 여산홍에 덤벼들었고, 여산홍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임요성이 여산홍을 도와주려 몸을 신형을 날리려 했지만 혈위가 가로막았다.
“흥! 넌 나랑 볼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촹!
검을 빼든 혈위가 먼저 달려들었다.
채쟁!
검과 도가 부딪혔고, 혈위는 자신의 손목으로 전해져오는 묵직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힘이!’
슈아악!
하지만 도의 무거움을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의 눈앞으로 검은 칼날이 스쳐 지나갔다.
“크윽! 뭐가 이리 빨라!”
흑아로 혈위의 검을 쳐낸 임요성의 왼손에서 발출된 흑조의 움직임에 하마터면 혈위는 두 눈을 잃을 뻔했다.
가까스로 몸을 젖혀 흑조, 소도를 피한 혈위가 거리를 벌렸다.
“이리 빠른 도법이 있었다니….”
이것은 내공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저히 인간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퍽!
임요성의 신형이 사라지고 혈위의 눈앞에 다시 검은 칼날이 나타났다.
촤앙! 채쟁!
두 사람의 병기가 다시 어우러지는 사이 목숨을 던진 복면인들에 의해 틈이 생겼고, 다른 이들이 오황자를 보호하며 모옥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슈아아악!
퍽!
“크악!”
어디선가 날아온 검기에 한 복면인의 가슴이 뚫렸고, 모옥을 나가려던 이들이 여기저기서 날아든 기파를 쳐내다가 모옥을 넘어가지 못했다.
“와아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어디선가 함성이 들려오더니 수십여 명의 무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그들은 바로 인근 무림 방파의 무사들이었다.
귀주의 홍풍검파, 광서의 계림파, 광동의 불산황가.
세 무가의 연합이 임요성을 도우러 달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