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19
청풍표국 최강식객 119화
119화. 혈강마검(1)
만년한철로 된 작은 상자 안에는 다시 천잠사로 짜인 주머니가 보였다.
“으음…!”
저절로 침음성이 날 정도로 역한 피 냄새.
그런데 안에 든 건 아주 작은 곤충이었다.
마치 빈대나 이와 같은 크기로 곤충의 사체가 말라붙은 모습에 임요성은 총군사가 보낸 서찰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래서 신의께서는 원고시라고 부르는 고독의 시조에 해당하는…”
‘원고시… 설마?’
잘은 모르겠지만 이 곤충의 사체에서 느껴지는 사악함이 심장을 옥죌 정도였다.
왠지 이것이 서찰에 적혀 있던 원고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다른 이들은 무기를 고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임요성이 그들 몰래 천잠사 주머니를 품에 넣고 한철함은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아직 맹주의 중독에 관한 건 아무도 몰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요성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갈 때였다.
웅! 웅! 웅!
천장에 묶여 있던 혈강마검에서 붉은 기운이 명멸하면서 기이한 공명음이 일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잉!
갑자기 귀곡성이 울려 퍼졌고, 정신을 갉아 먹는 듯한 귀성에 모든 이들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귀를 감쌌다.
“크으으으윽!”
“끄아악!”
임요성 역시 심혼을 갉아 먹는 듯한 귀곡성에 순간 정신이 핑 돌았다.
급히 강대한 내공으로 밀어내며 힘겹게 눈을 뜨자 공동 내부로 들어오는 한 작은 체구의 중년인이 보였다.
“크하하하하하! 이제 혈강마검은 나의 것이다!”
광소와 함께 공동으로 난입한 이는 바로 혈궁주 혁련희였다.
작은 체구에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걸어오는 모습은 마치 동네 뒷산 산책 나온 한량 같았다.
그의 뒤에는 일단의 호위들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와 친위대는 이미 이곳 근처에 와서 기운을 숨기고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이 동굴에 진법이 있다는 건 그도 느끼고 있었고, 스스로 해제하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고, 임요성 일행이 동굴의 진법을 해제하고 들어가자 시간을 두고 뒤쫓아 온 것이다.
그리고 혈강마검을 조종할 수 있는 혈천광세신공의 기파를 퍼뜨리는 순간 혈강마검이 귀곡성으로 화답한 것이다.
그나마 도를 닦아 파마(破魔)의 기운을 가지고 있던 이들, 소림과 화산, 무당, 공동의 제자들은 상태가 나았지만, 다른 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임요성이 제일 멀쩡했지만, 그 역시 혈강마검의 귀곡성을 몰아내느라 입가에 핏기가 맺혔다.
“호오? 혈강마검의 귀곡성을 견디다니?”
혁련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흥미를 보였다.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뒤에 들렸고, 혁련희가 슬쩍 날린 수강(手罡)이 임요성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버릴 듯이 쇄도했다.
콰앙!
가까스로 임요성이 수강을 쳐냈고, 더욱 진탕되는 내부에 피를 내뿜었다.
“퉷.”
하지만 피를 내뱉고 나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은 임요성이 대갈일성을 터트렸다.
“갈!”
거대한 공동의 내부가 윙윙거렸고, 혈강마검에서 나오던 귀곡성이 딱 멈췄다.
“하하하핫! 그놈 제법이구나. 수강을 쳐내질 않나, 혈천마공의 마기를 흩어버리지 않나. 뭐, 어쨌든 죽일 생각은 없었으니. 어차피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볼 날이 올 테니까. 그러니 굳이 여기서 목숨을 버릴 필요가 있나?”
호흡을 가다듬은 임요성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사이 다른 이들이 내상을 다스리며 비척비척 임요성의 뒤에 섰다.
“애송이 놈이 말본새하고는. 강호의 대선배에게 고개를 조아리지는 못할망정…. 쯧쯧.”
혁련희가 혀를 찼다.
“됐고. 아무튼 나는 저 검만 가지고 가면 된다. 그리고 저 검은 원래 우리, 아니 내 것이지. 원래의 소유자가 자기 물건을 가지고 가는 데 이의가 있나? 그러니 그냥 물러나라는 말이지. 나도 지금 여기서 너희들을 죽이고 분란을 만들 생각은 없으니.”
원래 주인이라는 말에 뒤에 있던 소림의 홍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미타불. 소승의 짐작이 맞다면 그대는 혈궁주 혁련희가 맞소?”
“하여튼 백도 애송이 새끼들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뭐, 무림의 직계 선배도 아니고 아저씨 관계일 뿐이니 참아주마. 그래 내가 당대 군륜혈궁의 궁주 혁련희다.”
그의 말에 임요성을 제외한 모두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흑도3궁의 하나인 혈궁. 그의 행적은 비밀에 싸여 있다.
하지만 그의 무공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일단은 3궁의 궁주에게 내려오는 무공 자체가 마공이라고는 하나 신공절학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의 실력이 낮았다면 이미 곤륜은 현 백도 무림에 의해 다시 수복되었을 터.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실력자였기에 중원 무림에서도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사자의 등장에 이번 소문이 그냥 검 하나를 놓고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에 다들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자신들이 죽는 것보다 여기서 벌어진 일로 강호에 파급될 여파가 문제였다.
하지만 임요성은 그의 이름값보다는 그가 내뿜는 기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이 자를 이길 수 있을까?’
강호에 나와서 마주친 이후 가장 강한 상대였다.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올라오고 심장이 고동쳤다.
두려움보다는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임요성을 무시하듯 혁련희는 느긋하기만 했다.
“자자, 후배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니까? 난 그냥 저 검만 가져가면 된다니까?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됐지? 자아- 이제 저 애기를 가져볼까나?”
그렇게 말한 혁련희가 마치 공중을 부양하듯 천천히 천장으로 상승할 때였다.
파앙!
임요성의 흑아에서 발출된 반월형의 도기(刀氣)가 혁련희에게 날아갔다.
콰앙!
구르릉!
갑작스러운 도기를 쳐낸 혁련희가 다시 땅으로 내려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손엔 어느새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혀 있었다.
튕겨 나간 도기에 공동이 계속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혈강마검이 뭔진 잘 모르지만 그게 당신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생각은 드는군.”
긁적긁적.
임요성의 말에 혁련희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아. 결국 다 죽여야 되려나? 근데 넌 누구지? 아까부터 그 도법. 굉장히 거슬리는데?”
“궁금하면 직접 알아내 보던가.”
콰앙!
단뢰도법 5초식인 묵광이 펼쳐지며 혁련희를 거세게 밀어붙였다.
“크읍!”
애송이라고만 생각했던 임요성의 공격에 혁련희가 당황했다.
흑아와 흑조를 동시에 움직이며 급소를 찌르며 들어오는 공격이 매서웠다.
‘이 나이에 강기를?!’
두 칼에 은은히 맺혀 있는 영롱한 검은 기운은 분명 강기였다.
강기를 외부로 발출하지 않고 안으로 수렴하며 칼을 감싸는 것은 또 다른 상승의 경지.
하지만 뒷걸음질 치며 살펴본 혁련희는 임요성의 무공보다도 그 검은 기운에 눈이 갔다.
팡!
파바바방!
“타아앗!”
임요성이 거세게 몰아치자 혁련희가 못 이기는 척 그의 의도에 따라 동굴을 빠져나왔다.
지금 맞서는 청년 역시 강기의 고수. 강기의 고수 둘이서 맞붙기엔 공동이 좁았다.
괜히 동굴에 깔려 압사하는 경우는 없어야 했다.
만년한철로 잘라버린다는 강기를 두른 흑아로 정확하게 급소를 찔러오는 도격을 혁련희는 뒷걸음질 치면서도 유유히 한 손으로 막아냈다.
무기에 둘러쳐진 강기를 손으로 막아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뜻.
파아앗!
마침내 동굴을 빠져나오고 두 사람이 마주했다.
혁련희가 손을 주물럭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무공… 낯이 익단 말이야. 거기다 검은 기운. 너 혹시 우리 쪽과 관련이 있나? 혹시 부모라던지, 스승이라던지. 이제 우리 둘뿐이니 말해봐.”
동굴에서 따라 나온 이는 없었다. 혁련희의 수하들과 싸우고 있을 터.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호법들의 경지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쉽게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의 적은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 강한 상대.
개방의 용두방주도, 단목세가의 단목인도 이자에게는 비할 수 없었다.
“싸우기 전에 쓸데없는 말이 많군.”
징-!
임요성이 흑아를 고쳐 쥐자 도명이 울렸다.
“크큭. 이 애송이 놈이. 그 입버릇부터 고쳐놔야겠구나!”
스가가각!
혁련희의 권격이 수없이 쪼개지며 임요성에게 밀려들었다.
‘음? 이 무공은!?’
임요성의 눈썹이 들썩였으나 지금은 딴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하나하나의 공격에 강기가 실린 강기의 파편.
채재재쟁!
임요성이 흑아와 흑조를 휘둘러 강기의 파편을 흩어냈다.
“흥!”
하지만 혁련희의 몸이 이미 임요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팡!
철판교의 수법과 함께 정수리를 가르려는 혁련희의 각법 일격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파바밧!
뒤로 물러선 임요성을 향해 다시 권격이 쇄도했다.
파바바바방!
쉬익!
가까스로 피한 임요성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흑아로 혁련희의 권격을 튕겨내고는 다시 흑조가 그의 옆구리에서부터 사선으로 올라갔다.
“헙!”
휘익!
몸을 팽그르 돌리며 흑조의 칼날을 피한 혁련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동시에 내뻗은 각법 일격에 다시 다가가려던 임요성이 두 칼을 교차해 막으며 멈춰 섰다.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무기를 든 사람이 유리하다.
그런데 맨손으로도 임요성을 압도하는 실력에 임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가 쓰는 무공이었다.
툭툭!
“휘유! 제법인데?”
혁련희가 옷을 툭툭 털며 미소 지었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아들뻘 되는 놈이랑 이 정도로 겨룰 줄은 몰랐다.
적당히 놀아주다가 기절시킨 다음 안에 있는 검만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의 경지에 발을 들였다고 실전은 약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임요성의 동작 하나하나는 매우 실전적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흥미를 끄는 점이 있었다.
“아아, 그래 생각났어. 그 도법. 그건 수라궁의 천산탈혼검을 변형시킨 것이로군.”
씨익 웃는 혁련희의 얼굴을 보며 임요성의 눈썹이 꿈틀했다.
묵천의 천도들도 아니고 탈혼검을 알다니.
“천산탈혼검? 내가 쓰는 검법은 탈혼검이다.”
임요성의 대답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혁련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탈혼검? 하하. 넌 그렇게 부르나 보군. 하긴 알았다면 배우지 않았을 테고, 알고도 배웠다면 그 연혁을 모를 리가 없지. 네가 쓰는 무공의 원 뿌리는 과거 천산마교의 무공이다. 특히 천산탈혼검은 살수대의 대주였던 천산혈화 구양화 님이 잘 쓰셨지. 천산마공에서 그 은밀함만을 추출해 따로 만든 검법이지. 알겠나? 네가 쓰는 무공은 너희 중원인들이 마공이라 부르는 천산마공이 모태란 말이다. 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는 혈궁주를 임요성은 담담히 바라볼 뿐이었다.
스승이 살수무공을 개량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그 뿌리가 마교에 있었다니. 하지만 임요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상관있나? 무공은 강하면 그뿐이지.”
“호오? 너… 흑도 쪽이냐?”
“흑도? 내 뿌리를 묻는 것이라면 아니다.”
“흑도도 아닌데 강호의 통념을 무시한다? 그럼 낭인 쪽이거나, 새외 쪽인데… 그런 분위기는 아니고…. 철저히 실전적인 움직임과 그 철학을 녹여 개량한 도법이라면….”
잠시 생각하던 혁련희가 손가락을 튕겼다.
“너, 군부나 황궁 쪽 출신이구먼. 맞나?”
“…굳이 너와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을 돌리는 것을 보니 맞나보군? 황궁에서 필사된 비급이라도 구해서 읽었나? 뭐, 하긴 네 말대로 의미는 없지. 어찌 됐든 재밌는 걸 보여 준 보답으로 나도 조그만 답례를 하지. 내 한 수를 받아보게나. 혈천개벽이라는 것이네.”
후아아아앙!
마치 세상을 그대로 갈라 버릴듯한 굉음과 함께 수강으로 된 거검(巨劍)이 십여 장까지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