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26
청풍표국 최강식객 126화
126화. 무림맹으로 가는 길(4)
며칠 전이었다.
녹림 72채에 속한 천악채에 한 사내가 찾아왔다.
천악채의 채주 웅패산의 머리엔 녹림을 상징하는 ‘綠(녹)’이라는 글자가 적힌 머리띠가 둘려 있어 여타 산적과는 다르다는 걸 당당히 드러냈다.
녹림은 산적 중에서도 강한 이들만 따로 모여 세력을 구축한 자들로, 그들의 무공은 꽤 높았다.
보통 채주급 인물들은 무림팔가나 강호팔문에 속한 이들이 잘못을 저질러 도망을 다니다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강호 공적이 스며드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어지간한 중소문파의 수장급은 되는 실력이었다.
그중에서도 상위 열 명은 녹림십걸이라하여 명문세가의 장로급 실력이었다.
요즘 녹림채는 녹림왕이 죽어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차기 녹림의 총채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각 채주들의 회합이 예정되어 있어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왔다면 내쫓았을 이들이었다.
하지만 채주가 머무는 거처로 수하들 몰래 들어온 중년인.
그는 바로 호남성의 패자인 진주언가의 가주 언충호였다.
웅패산은 처음에 자신을 죽이러 왔나 생각했다.
“궈, 권존이 갑자기 왜… 무슨 일이시오?”
우내십존의 한 명인 권존 언충호. 사실 그와는 아무도 모르게 연수하는 사이였다.
호남성에서 이동하는 표행이나 상행의 경로를 은밀히 알려주고 웅패산이 털어서 일정 부분 가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후후후. 내 좋은 정보를 가져왔지. 이건 정말 큰 건이네.”
도대체 얼마나 큰 건이길래 권존이 직접 온단 말인가.
“이거 보이나?”
언충호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손에 끼워져 있었다.
“그게 뭔데 그러시오?”
“후후. 은망수라는 것이네. 천하일절의 호신용 장갑이지. 어지간한 검기에도 잘리지 않고, 적당히 기를 불어넣으면 강기에도 잘리지 않는.”
“오오. 굉장한 귀물을 얻으셨구려. 그런데 그걸 자랑하려고 예까지 발걸음을 한 건 아닐 테고.”
“쯧쯧쯧. 생각해보게. 이게 어디서 낫겠나?”
“그거야….”
잠시 생각하던 웅패산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그 비고가 참말이었단 말이오?”
웅패산도 비고에 관한 소문을 듣긴 했다.
하지만 얼마 전 녹림왕이 죽었다는 소식에 비고에 갈 정신이 없었다.
자신 역시 총채주에 대한 꿈이 있었으니까.
비록 녹림왕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총채주라는 자리는 중원 전체의 녹림을 관할하는 막강한 권력을 안겨줄 것이다.
그 때문에 잊고 있던 비고의 소식을 언충호가 다시 상기시켰다.
“그렇네. 참이더군.”
“소문에는 가짜라고 하던데….”
“무림맹 측에서 퍼뜨린 가짜 소문이지. 만약 그 사실이 알려져 보게 무림맹이 보물을 독식하려 한다고 얼마나 지탄을 받겠나?”
“음….”
“자, 잘 듣게. 지금부터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어진 언충호의 말에 웅패산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무림맹 철갑기마단이라면… 우리가 좀 손색이 있소. 대주 정도는 내가 어찌해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이들이오. 우리 애들이 버티지 못할 거요.”
“이 사람아. 당연히 자네들만 보내겠나. 이번 건이 얼마나 큰데. 내가 흑도 시장에 들러 낭인들까지 섭외해두었네. 자네 혈랑대라고 들어봤나?”
웅패산이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혀, 혈랑대라면 저 청해에서 가욕관 일대까지 활동하는 극악무도한 낭인대 아니오?”
“흐흐. 그렇네. 이제 좀 구미가 당기는가?”
언충호의 재촉에도 웅패산은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으음… 하지만 거기엔 진천성들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 사람. 그사이에 겁쟁이가 되어버린 건가.”
“그게 아니라….”
“자네 겨우 이런 시골의 산적 두목이나 하고 있을 건가. 제대로 한몫 잡아서 중앙으로 진출해야지. 아랫것들을 그냥 갈아 넣게. 자네를 믿고 따르는 몇몇 충복들만 함께하면 되지 않나. 막대한 돈만 있다면 사람이야 금세 모이는 법. 그리고 어차피 총채주가 되면 따르는 수하들도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해야지. 큰물로 가는데 쥐새끼를 데려갈 텐가.”
언충호의 말에 웅패산이 흔들렸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물론 생각이 똑바로 박힌 자라면 그게 아니란 걸 알았겠지만, 언충호가 말한 총채주라는 마법의 단어는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눈빛이 흔들리는 웅패산을 보며 언충호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이번 일을 기획하며 그는 자식을 잃은 자신을 배려하던 임요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속한 표국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모두 몰살을 당하고, 본인은 역모로 고초를 좀 겪겠지만 어쩌랴, 그게 강호다.
‘미안하군, 임 공자. 하지만 자식을 잃은 슬픔은 이 정도로 덮어지지 않는군.’
그는 이번 보물을 모두 독식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허전한 가슴이 메워질 것 같았다.
그런 언충호의 지독하도록 이기적인 말은 오히려 웅패산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언충호가 결정타를 날렸다.
“가지고 들어오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언충호의 수하가 커다란 목함을 들고 들어왔다.
턱.
“이게… 뭡니까?”
“후후.”
딸깍!
천천히 열리는 목함 안에는 보자기 두 개가 들어있었다.
“산공분이네.”
“사, 산공분이요?”
웅패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강호에 떠도는 산공분(散功粉)이란 것은 대개가 그 수준이 낮다.
하급 무사, 또는 낭인들에게나 쓸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설마 언충호가 그런 걸 가져왔을 리 없다.
웅패산의 반응을 즐기며 언충호가 낮게 웃었다.
“후후. 생각한 대로네. 당가에서 제조한 최상품이지. 절대고수가 아닌 한 이 가루를 조금이라도 흡입하는 순간 적어도 일각은 단전이 돌덩어리처럼 굳을 걸세. 나머지는 해독약이니 미리 먹어두면 될 테고. 물론 혈랑대 측에도 전해줬네. 이 정도면 되겠는가?”
실로 치밀한 계획이었다. 하긴 무림맹과 진천성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마음속으로는 거의 결정을 내린 웅패산이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쯧. 그러니 혈랑대를 끌어들인 거지. 그들에게 뒤집어씌우면 되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네들도 굳이 녹림도라는 티는 말게. 그냥 평범한 산적으로 위장하란 말일세.”
말은 웅패산을 위하는 척했지만 사실 언충호에게는 녹림과 혈랑대가 모두 방패막이였다.
이미 혈랑대에게는 녹림이 미끼가 될 거라고 말해두었다.
녹림은 혈랑대를, 혈랑대는 녹림을 서로의 방패막이로 알고 달려들 것이다.
그리고 언충호와 서문관은 가장 뒤에서 그 과실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무림맹과 진천성.
그 둘 모두를 도모하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그만큼 이번 일을 성공했을 때의 보상은 거대했다.
잘만 진행되면 언가가 천하제일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알겠습니다.”
웅패산은 눈앞에 황금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 * *
“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난무하고 병장기 소리가 가득했다.
“크하하하하하! 닥치는 대로 모두 죽여라!”
웅패산의 외침이 무공을 모르는 쟁자수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녹림도와 혈랑대의 잔인한 손속은 아무리 철갑기마단이라도 쉽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도외시하고 덤벼들었다.
마치 죽기 위해 달려드는 것 같은 불나방처럼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웃었다.
어지간한 악인들은 다 봤다고 생각한 철갑기마대원들도 조금씩 질려가기 시작했고, 광기와 혈향이 지배하는 전장에서 조금씩 집중력이 무뎌져 갔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촤아악!
“크아악!”
같은 대원이라도 무공이 얕은 이가 있기 마련. 그런 이들은 가장 먼저 혈랑대의 먹이가 되었다.
한군데가 뚫리면 바로 밀고 들어와 쟁자수들과 마부를 도륙했다.
“막아라! 절대 저들이 날뛰도록 놔두지 마라!”
장창을 휘두르는 적천수의 눈에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수하들이 죽어 나가자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녹림왕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자신들을 막아설 산적들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혈귀처럼 달려들었다.
진천성들이 있는 쪽 역시 우왕좌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림의 홍천이 날린 백보신권이 적이 아닌 팽원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읍! 홍천! 정신 차리게!”
“하아, 하아, 미, 미안하네!”
무당의 의찬이 날린 검기가 공동의 벽운 정수리 위 머리카락 몇 가닥을 베고 지나가자 벽운이 기겁을 했다.
“도, 도장! 나를 죽일 셈이오!”
“크윽! 미안하오!”
화산의 담명은 난전에서 제대로 매화를 피워내지도 못했다.
다닥다닥 붙은 상황이라 환검이자 변검인 화산의 검공을 펼치기엔 너무 협소했다.
까딱 잘못하다간 아군을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들의 경험이 부족했기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 세력에서 가장 추앙받는 후기지수들.
어딜 가더라도 떠받들어졌고, 소속한 사문이나 가문의 호위들과 동행할 때는 호위들이 모두 해결해주었다.
또는 자신의 이름만 들어도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몇 살에 어떤 무공을 익히고, 어느 경지에 도달하고, 얼마나 내공을 모았는지만 가지고도 무림맹이 발간하는 맹보 1면에 실릴 정도였다.
비무를 하면 천재라며 추켜세웠고, 어쩌다 검기라도 한 번 날려주면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보니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드는 이런 아수라장에서 그들의 손발은 평소처럼 원활하지 않았다.
배에 검이 꽂히고도 웃으면서 달려들어 생채기라도 내려는 악독한 얼굴에 진천성들은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누구라도 정신적 지주가 있어 그들을 다잡을 수 있다면 달랐겠지만 지금 그들에겐 믿고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삐익!
신호음과 함께 갑자기 날아든 하얀 가루.
“흡!?”
격전의 상황에서 숨이 가빠져 있던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루를 흡입하고 말았다.
아차 싶은 생각에 호흡을 멈췄지만 그들이 마신 가루는 최상품 산공분.
이미 내력의 수발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손발이 무거워졌다.
“이, 이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 하지만 그건 생각이 아닌 현실이었다.
삐익!
또다시 울리는 신호음.
팡! 팡! 팡!
여기저기서 수많은 갈고리가 맹호단과 진천성들에게 날아들었다.
“꺄악!”
갈고리를 떼어내려 했지만 금세 두 개, 세 개의 갈고리가 다시 날아들었고, 어깨가 파여나가며 피가 줄줄 흘러내리자 조영영이 비명을 질렀다.
내공도 없는 데다가 약품 처리를 해서 어지간한 도검으로도 잘리지 않는 새끼줄에 달린 갈고리는 악마의 손아귀처럼 살갗을 파내고, 뼈를 긁어냈다.
“크아아압!”
그나마 비고에서 얻은 보검을 가졌기에 가까스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언제 저들의 악의에 무릎을 꿇어야 할지 몰랐다.
촤아악!
곳곳에서 그물이 날아들었다. 이 역시 쉽게 끊어지지 않도록 특수처리된 그물이었다.
그물이 덮치니 운신이 쉽지 않았다.
거기다 끊어내면 다시 날아오고 끊어내면 다시 날아와 제대로 검로를 펼칠 수 없게 만들었다.
날아오는 갈고리, 덮쳐오는 그물망은 점점 죽음의 그림자처럼 그들의 목을 죄어왔다.
“으아아아!”
목이 찢어져라 괴성을 지르며 적천수가 휘두르는 장창에 산적 두 명의 목이 떨어졌다.
이미 이쪽은 조장급 몇 명 빼고는 모두 죽었다.
중앙 쪽으로 눈을 돌리자 치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진천구성들과 다른 신성들 중에는 피해가 없어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보물들이야 탈취당해도 상관없다. 본단에 가서 시말서 한 번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기지수들이 목숨을 잃었다간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마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성처럼 위태로웠다.
이제는 그 고고하던 진천성들조차 악다구니를 쓰며 주먹을,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정형화된 검로니, 투로니 이런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전장을 가득 채운 건 살기 위한 몸부림과 죽이기 위한 악의였다.
그때 문득 내버려 두고 온 파천도군이라는 청년이 생각났다.
‘그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산적들은 그에게 상념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어라!”
치아가 피로 물든 채 달려드는 산적들의 모습은 소름이 돋아나도록 섬뜩했다.
촤악!
달려드는 산적의 목을 베고, 다시 옆에서 칼을 휘두르는 이의 심장을 찔렀다.
“끄아악!”
뒤에서 들리는 비명에 퍼뜩 고개를 돌리자 부대주가 칼에 심장이 뚫린 채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부대주!”
적천수가 달려가려 했지만 대여섯 명의 산적들이 한꺼번에 에워싸는 바람에 달려갈 수도 없었다.
“안 돼에에―!”
누가 좀 도와줬으면.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나타나서 이 악귀 같은 놈들을 처치해줬으면.
적천수가 피눈물을 뿌리며 창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아스라이 들리는 비명 소리.
저 뒤쪽 후미에서부터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사, 살려….”
“아, 악마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