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34
청풍표국 최강식객 134화
134화.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1)
파천도군과 권웅의 싸움은 무림맹 전체로 퍼져나갔다.
구경꾼들이 권웅의 성격을 두려워해 쉬쉬하고 있긴 했지만, 꽤 많은 이들이 비무를 봤기 때문에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맹성의 정문을 사수하는 경비대원들이 쑥덕거리고 있다.
“그 파천도군이라는 공자에게 권웅 가주가 졌다며?”
“자네도 들었구만? 나도 내성 수비대에 있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죽은 걸로 폭주하던 권웅 가주를 막아낸 게 파천도군이라더군.”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파천도군이 절대고수란 말인가? 화경의 경지?”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대다수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권강을 사용한 권웅 가주가 졌다는 건 파천도군도 도강을 썼다는 게 아니라면 말이 되질 않지.”
임요성도 모르는 자신에 대한 소문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맹의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맹의 분위기 속에서 맹성 어딘가 한 줄기 빛이라도 들지 않았다면 칠흑 같은 어둠으로 잠겼을 은밀한 공간에서 두 중년인이 마주했다.
“신의가 왔소. 혹시 맹주에게 심어진 고독을 치료할 방도를 찾아온 것 아니오?”
극히 평범한 외모에 콧수염을 기른 문사풍의 중년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럴 리가 없소. 내가 신의가 와야 겨우 그 방도를 찾을 것이라 얘기했던 것은 그냥 말일 뿐이오. 절대 섭혼고를 빼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오. 그나마 모고를 가진 그분을 데려와 맹주의 몸에 있는 자고를 통제해 빼낼 방법 외엔 없다고 보면 되오.”
“흠. 하지만 신의가 다시 왔다는 건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 아니오. 전에야 진찰을 위해 왔다고는 해도. 이번엔 좀 빠른데….”
“아마 증상을 늦추는 정도일 거요. 그것도 그분께서 오셔서 맹주를 대면하게 되면 모든 게 끝날 것이고.”
“좋소. 의각주만 믿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비원주. 모든 건 우리 뜻대로 될 것이오. 그건 그렇고 파천도군이라는 꼬마가 좀 설치고 다니는 것 같던데….”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맹주의 가장 최측근이라는 비원주와 무림맹 의각의 수장인 능위평이었다.
“일단 지켜보고 있는 중이오. 만약 우리 일에 걸림돌이 될 것 같으면 치워버려야지.”
“후후후. 역시. 난 비원주의 그런 화끈한 모습이 보기 좋소.”
두 사람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밀실에 퍼졌다.
* * *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차를 마시고 계시면 오실 겁니다.”
임요성이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앞에 놓인 찻잔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에 가져갔다.
심심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술도 차도 하지 않는 그였지만, 그나마 차가 나았다.
그런 면에서 그를 불러낸 이의 선택은 마음에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 각 전쯤 임요성은 자신이 쉬고 있던 전각에 몰래 찾아온 사내를 만난다.
내성에 있는 다루(茶樓)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
아마 강호에 막 나왔을 때라면 좀 꺼려졌을 테지만 지금은 거침없이 사내를 따라갈 수 있었다.
현 강호에서 자신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굴까.
무림맹에서 몰래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강호에 딱히 연결점이 적은 그로서는 짐작 가는 곳조차 없었다.
“처음 뵙겠어요. 임 공자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한 중년 부인이 들어왔다.
중년 부인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분위기를 종합한 결론이었고,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만 놓고 보자면 30대 초반 정도의 미인이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설핏 웃는 그녀는 왠지 어디선가 본 듯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낯은 익은데, 우리가 어디서 본 적이 있습니까?”
혹시 몰라 정중히 묻는 임요성을 보며 중년의 미부가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저희가 본 적은 없지요. 하지만 제 동생과는 꽤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압니다만.”
동생이라….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임요성의 눈에 한줄기 이채가 스쳤다.
“환희궁…의 대공녀?”
“호홋! 맞아요. 눈썰미가 있으시네요.”
임요성의 미간이 모였다.
사실 드러난 것만 놓고 보자면 눈앞의 여인이 어머니처럼 여기는 기영란보다도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호호.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몇 년 지나면 동생한테도 같은 느낌을 받을 거예요. 동생은 그동안 내공이 없어 주안술을 사용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밝게 웃으며 농을 던지는 그녀였지만, 임요성은 맘 편하게 웃지 못했다.
그녀와 어머니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분위기를 감지한 듯 현 환희궁의 대공녀, 기영선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대화를 나눠보고자 공자님을 뵙자고 한 거니깐요.”
“대화라….”
임요성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6명인가.’
지금 주위를 둘러싼 은신자들의 숫자였다.
‘무력은 초절정급이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궁의 주전력인 팔선녀를 빼앗기고도 이 정도 전력을 단순 개인 호위로 쓰다니.
임요성의 행동을 대화를 허락했다는 의미로 알아들은 기영선 역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동생과는 조카의 일로 만났다는 말은 들었어요.”
강남 쪽에는 세력이 약하다고 들었는데.
이미 그 정도 사적인 일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우. 그때 참 많은 일이 있었죠. 저도 동생도. 사실 들으셨나 모르겠지만, 우리 둘 사이 그리 나쁘진 않았어요. 아니 지금도 나쁜 건 아니죠. 동생이 단전까지 봉인당하고 쫓겨날 때만 해도 가장 많이 챙겨준 게 나일 거예요. 오히려 본궁과 인연을 끊으려고 한 건 그 아이죠.”
기영선이 찻잔을 놓으며 임요성을 바라봤다.
“혹시 저희 어머니를 본 적 있나요?”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분 성격에 그럴 리는 없겠죠. 아무튼 딸로서 말하자면 최악의 어머니였어요. 뭐 바깥일을 하는 어머니를 둔 자식들의 숙명이겠죠. 하지만 어머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갔죠. 무공을 수련시킨다는 명목으로 당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부르르.
기영선이 치가 떨린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동생은 차라리 나았어요. 애당초 무재가 부족해 눈 밖에 났었으니. 하지만 전 동생이 나눠 가져가야 할 기대를 오롯이 다 받아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기영선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무래도 부모·자식 간의 정은 많이 부족했죠.”
“그래서 독을 썼습니까?”
담담한 임요성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던 기영선이 박장대소를 했다.
“호호호호호! 영란이가 그러던가요? 제가 독을 썼다고?”
갑자기 터진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기영선을 보며 임요성의 미간이 조여들었다.
“호호호. 아, 죄송해요.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에요. 제가 아무리 흑암마녀라고 불린다고 해도 그 정도 악인은 아니랍니다. 어디서 독을 썼는지는 확인 중이지만 아마도 당가에서 나온 것 같아요.”
표정과 반응을 보아하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이 여인을 믿지는 않았다.
“그럼 왜 그분께서 그런 얘기를….”
“뭐, 워낙 사이가 안 좋았으니 그렇게 의심을 했겠죠. 제 말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더군요. 하아…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기영선이 이제야 본론을 꺼내려는 듯 등을 곧추세웠다.
“영란이를 설득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설득을요?”
“네. 과거 영란이를 따르던 애들이 많았어요. 애가 워낙 서글서글하고, 제가 무공 수련에 빠져 있을 때, 그 아이는 궁도들과 같이 어울렸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본궁이 반으로 쪼개졌어요. 힘을 합쳐도 부족할 마당에.”
“그러니까 저더러 그분께 환희궁에서 손을 떼라고 설득을 해달라는 말입니까?”
“맞아요. 거기다가 상천십좌 중 한 명인 단목가주를 죽인 묵룡인가 하는 분과 손을 잡았다는 게 알려지자, 저희 쪽 애들도 흔들리고 있어요. 어찌 됐든 강호는 강한 힘을 가져야 울타리도 크니까요.”
“그냥 강남, 강북으로 나눠서 관리하면 되지 않습니까?”
임요성이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이 물었다.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굳이 하나로 통일해야 하나? 싶은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기영선의 얼굴이 굳어졌다.
“안 돼요.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어요.”
자존심. 결국 자존심인가….
기영선이 임요성의 얼굴을 쳐다봤다.
“강호인의 자존심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강호인에게 자존심이란 목숨과도 직결돼요.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며 세인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쉽고, 그 외면은 결국 힘의 약화를 가져오고, 힘이 약해지면 언제 누구한테 죽을지 모르는 게 강호에요.”
임요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꼈을까.
그녀는 다소 격앙된 표정으로 쉬지 않고 말했다.
“오해하진 마시죠.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만약 그분께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죠?”
“그건….”
기영선이 주먹을 말아쥐며 고개를 숙였다.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는 없죠.”
“굳이 산 하나에 살 필요가 있습니까? 한 마리는 다른 산에 살아도 될 것 같은데.”
“훗…. 공자께선 태생이 강호인은 아니시군요.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다고는 들었지만 강호에 대해 너무 모르시네요. 공자의 말은 결론적으로 틀렸어요. 왜냐면 환희궁이란 산은 하나뿐이니까요.”
임요성이 말없이 차를 입에 가져갔다.
그 모습을 쳐다보며 기영선이 덧붙였다.
“다른 산으로 간다는 건 결국 환희궁이란 산에선 내려가야 한다는 거죠.”
임요성은 차만 마실 뿐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살짝 한숨을 내쉰 기영선이 일어섰다.
“제 의견은 전달되리라 믿을게요. 아, 그리고 혹시 강북에서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동생 일과는 별도로 강호 최고의 실력자 중 한 분이 되신 임 공자님과 척을 질 생각은 없으니까요.”
살짝 고개를 숙인 그녀가 나가자 여섯 명의 기척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혼자남은 임요성이 창가로 다가갔다.
내성에서도 제법 고위직들만 오는 곳인지 화려하고 멋진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비파 소리가 운치를 더해주었다.
아마도 내성에 방문하는 이들이 대화 장소로 애용하는 곳인 듯했다.
하지만 창밖을 바라보는 임요성은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 했던가.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불고 있었다.
* * *
임요성과 기영선이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같은 다루의 다른 층에서 한 여승과 사내가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들에게 지원을 좀 해달라?”
“그렇소. 지금 우리 형편이….”
쾅!
“내 옛 인연을 생각해서 만나주었거늘, 뭐라? 살수단에게 돈을 지원해달라? 미친 것 아닌가? 감히 강호팔문의 항산파에게 청부살인이나 일삼는 살수단체의 우두머리가 따위가? 과거의 연이 아니었다면 당장 그 목이 달아났을 것이네! 내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당장 돌아가게. 그리고는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말게!”
서슬 퍼런 경고를 날리며 일어선 그녀는 바로 항산파의 장문인 각연사태였다.
항산파는 아미파와 함께 강호팔문을 이루는 두 축으로, 둘 다 비구니만으로 이뤄진 문파다.
다만 같은 강호팔문이라도 수행을 중시하는 아미파와는 달리, 항산파는 실리를 중시해 일찍이 산서상인의 뒤를 봐주며 세가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이에 아미파는 그런 항산파를 경멸했고, 항산파는 아미파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라 비웃었으니, 팔문과 팔가가 대립하는 양상과 비슷했다.
각연사태는 오래전 알고 지냈던 사내의 연락에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늘 찾는 쪽은 자신이었고, 그 외에는 일절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렇게 나오면 좋지 않습니다.”
턱.
탁자 위에 올라간 서책 하나.
각연사태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게 뭐지?”
각연사태의 물음에 칠조구가 여유 있는 표정과 함께 답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이런 분위기에 나온 서책 하나라면? 사태께서도 짐작하실 텐데요?”
쾅!
“설마, 지금 나를 겁박하는 겐가!”
노성과 함께 탁자가 덜덜덜 떨렸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다루의 최상부로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사방이 방음 소재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강호인들이 자주 찾는 다루의 특성상 어지간한 기파에도 멀쩡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지만, 각연이 기세를 끌어올리자 그마저도 위태위태했다.
“쯧. 사태. 여기서 날 죽이면 이 서책의 정본이 바로 무림맹주한테 보내지도록 부하에게 일러두었소. 당사자가 없으니 발뺌이 가능하겠지만, 과연… 강호의 눈이 두렵지 않겠소?”
“끄음….”
각연사태가 부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