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36
청풍표국 최강식객 136화
136화.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3)
“후우.”
칠조구가 인피면구를 벗으며 탁자 위에 던졌다.
후드득.
안에 차 있던 땀이 떨어져 내렸다.
실로 오랜만에 땀을 흘릴 정도로 도망쳤다.
“개새끼!”
만약 암살을 한다면 다를 것이다.
상천십좌라도 자신이 마음먹는다면 한 달 안에 암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이길 가능성은 2할 이내로 떨어진다.
도주할 가능성조차 반반.
그래서 후일을 기약하고 자존심을 접었다.
오는 길에 갈아입은 옷만 세 벌이었고, 지나가는 행인을 기절시키고 빼앗아 입은 옷이 두 벌이었다.
그리고 작은 호수와 개울을 지나 빙글빙글 돌고 돌아 이곳으로 왔다.
이곳은 무림맹 인근에 만들어 둔 안가.
주로 무림맹에 들어갈 때 잠시 준비하는 곳이었다.
‘우선 여기서 숨 좀 돌린 다음에….’
콰직!
“헉!”
안가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칠조구가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섰다.
저벅. 저벅.
심령을 자극하는 무거운 발걸음이 층계를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 발. 한 발.
칠조구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곳은 임시로 쓰는 안가.
잠깐 머물다가 가는 곳이다.
당연히 비밀문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젠장!’
칠조구는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아!’
다행히 예전에 살행을 할 때 쓰다남은 당가의 삼보화골분(三步化骨粉)을 던져두었던 기억이 났다.
조금이라도 흡입하는 순간 신경이 마비되고, 이 보 안에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며, 삼 보에 이르기 전에 근육과 살이 녹아 뼈만 남긴다는 극독으로 강호에서 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독이다.
금용극독으로 지정되기 전에 일부 받아 두었던 것을 쓰고 남겨둔 것이다.
후다닥!
급히 이곳저곳을 뒤진 칠조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입 안으로 해독약을 털어 넣을 때 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나?”
바로 그 순간!
푸아악!
칠조구가 삼보화골분을 뿌렸다.
“크하하! 병신같은 놈… 헉!”
당연히 삼보화골분을 맞고 쓰러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내가 이상한 천을 뒤집어쓰자 가루가 모두 흩어져 버렸다.
“제길!”
칠조구가 그대로 임요성에게 쇄도했다.
기회는 지금뿐!
칠조구가 자신의 독문병기인 자모원앙월을 꺼내 들었다.
자모원앙월(子母鴛鴦鉞)은 초승달 모양의 날 두 개를 겹쳐 만든 것으로 포개진 부분의 한쪽 면을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무기다.
권법의 고수가 이 무기를 익숙하게 다루면 가공할 신위를 보이게 되며, 근접전에 있어서는 최고의 공수겸장 무기다.
슈슈슉!
공기를 찢어발기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양손에 쥔 자모원앙월이 막 임요성의 목과 가슴을 동시에 노렸다.
하지만….
이빨이 두 개인 것은 임요성도 마찬가지였다.
차장!
어느새 천잠위건을 걷어낸 임요성의 두 손에는 흑아와 흑조가 쥐어져 있었고, 칠조구의 자모원앙월을 쳐냈다.
“크윽!”
두 손이 저릿저릿했다.
둘 중 한 곳은 가르고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던 게 수포로 돌아갔다.
서걱!
“큽!”
미처 방어를 하기도 전에 두 개의 자모원앙월 사이로 흑아가 스치고 지나가자 가슴에서 핏물이 튀었다.
푹!
역수로 쥔 흑조가 칠조구의 어깨를 살짝 찔렀다. 깊게도 아니라 아주 얕게.
쉬각!
퓨퓻!
기묘한 적막 속에 두 사람의 월과 도가 부딪쳤다가 떨어지고, 다시 맞부딪혔다.
그사이 흑조가 칠조구의 어깨, 가슴을 세 차례 찔렀고, 흑아가 가슴과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치명상을 입힐 정도가 아닌 아주 얕게 말이다.
슈슈슉!
시간이 갈수록 칠조구의 몸에 도흔이 늘어갔다.
담담한 눈으로 전광석화 같은 도격이 이어감에도 치명상은 없었다.
“크악! 이 악마 같은 놈! 차라리 죽여!”
칠조구가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지금 임요성이 하는 행동은 명백히 자신을 농락하는 것이다.
칠조구의 절규에도 섬뜩하리만치 담담한 임요성의 눈!
푸슈슉!
또다시 새겨지는 도흔.
덜덜덜!
언제부턴가 칠조구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칠조구는 낯선 감정이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곧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감정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중원 최고의 살수를 자부하며 살아온 그에게는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감정.
두려움이 밀려들면서 몸도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털썩.
덜덜덜덜.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칠조구가 바닥에 주저앉아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주륵.
자기도 모르게 괄약근이 풀어졌다.
“이렇게 끌 일은 아니었는데, 냄새가 심해서 빨리 끝내야겠군.”
텁.
코를 움켜쥔 임요성이 칠조구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임요성의 탈혼촌열은 과거에 비해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
환희궁주가 시전하는 섭혼술에 비견될 정도였다.
“무림맹에는 무슨 일로 들어왔나?”
“…항산파의 장문인을… 만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탈혼촌열을 시전했을 때보다 훨씬 음색도 또렷해졌다.
억지로 혼을 비트는 게 아닌 완전한 최면 상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항산파의 장문인? 왜지?”
임요성의 물음에 칠조구는 초점 없는 눈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이자가 살막의 막주이며, 십 년 전 당시 자신들을 공격한 이들이란 것을 알았다.
‘그렇군. 그때 우리를 공격했던 놈들이 살막 놈들이었어.’
으득.
눈앞의 이자가 일으킨 일 때문에 스승이 귀천했다.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이렇게 쉽게 보낼 순 없었다.
질문을 이리 비틀고, 저리 파고들면서 살막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파고들었다.
그러다 이상한 말을 듣게 되었다.
“뭐? 주왕을?”
현 제국은 거대한 땅을 반란 없이 통제하기 위해 황제의 형제나 형제의 자식에게 번왕(藩王)이라는 이름으로 일정 영토를 내려 다스리게 했다.
개봉은 오랑캐를 막아내는 북부 지역과 함께 꽤 중요한 요충지라 황제의 핵심 인사를 앉혀둔다.
이곳에는 주왕(周王)이라는 이름의 번왕이 과거 왕조의 황궁이 있던 곳을 주왕부(周王府)로 다시 지어 이용하고 있었다.
임요성의 반문에 칠조구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약 삼 일 후… 거사를 치르도록 명령이… 들어가 있습니다….”
살막에 남아 있는 마지막 특급 살수 네 명을 시켜 주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할 일급살수와 이급살수 모두가 동원된 거사(巨事)였다.
“누가 시킨 거지?”
“그건… 개봉부의 지부대인입니다….”
“뭣? 개봉부 지부대인이?”
임요성이 흠칫했다.
“예….”
생각보다 일이 커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상한 느낌을 주는 이자를 쫓아왔더니 살막의 막주였고, 그와 항산파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주왕의 암살 의뢰를 받았다는 것과 그 의뢰인이 개봉부를 관할하는 지부대인이라는 사실.
“지부대인은 왜 주왕을 암살하려 하나?”
“그건… 저도 모릅니다. 서로 간의 이해만 맞으면 이유는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
“흠….”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돈만 주면 사람을 죽여주는 것이 바로 살수의 정체성.
주왕이라면 현 황제의 숙부로 황자로 있던 당시 후견인이 되어 가장 힘이 되었던 사람이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지금 황제의 입지는 꽤 곤궁해질 것이다.
아마도 그 택화림이란 단체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의외로 넓고도 깊게 그들의 손이 뻗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서로 간의 존재에 대해 모를 것이다.
개별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 하나가 걸려도 전혀 그 윗선을 알 수 없도록 해두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하나하나 다 털어서 그림을 짜 맞춰야 전체적인 그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임요성처럼 정신에 직접 개입해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경우라 가능한 것이다.
“살막의 본단이 어디지? 의뢰에 대한 내용을 모아두는 이런 곳 있잖아? 안가 같은.”
“그건….”
다행히 본단은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무림맹 코앞에 본단을 차려두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적절히 활용한 묘수였다.
“좋아. 그럼 지금 본단엔 누가 있지?”
“이번 주왕의 암살이 워낙 큰 의뢰라서 그쪽으로 모든 인력이 투입되어 현재 본단에는 아무 인력이 없습니다.”
“좋아. 그럼 넌 나랑 지금 본단으로 간다.”
* * *
본단의 기관 장치는 매우 훌륭했다.
만약 칠조구 본인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임요성조차 이곳을 뚫어내는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음.”
막주의 방 안 비밀금고에는 그동안 의뢰를 받은 이들과 그 내용이 적힌 비밀 장부가 있었다.
살막주 정도 되면 이런 장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목숨줄 하나 정도는 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장부는 급 떨어지는 이들에 대한 건 없었다.
거의 대부분이 강호의 유명 인사나 거대 세력들이 그에게 의뢰한 것이다.
이 책자들이 강호에 풀리면 일대 혼란이 발생할 정도로 대단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개봉부의 지부대인이 의뢰한 것도 정리되어 있었다.
“호오.”
임요성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의뢰서를 갈무리에 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책자를 뒤적이던 그의 눈에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항산파 거래 내역’
그가 찾던 것이다.
임요성이 책자의 내용을 훑는 동안 칠조구는 멍한 눈으로 벽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아니었다.
뭔가 자신과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느낌.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신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정한 자신은 뒤에 있는데 자신이 아닌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걸 지켜보는 건 미칠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정신 금제라는 것인가!
분명 머릿속으로는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겉으로는 임요성의 충직한 부하일 뿐이었다.
책자를 덮고 흡족하게 웃던 임요성이 칠조구를 바라봤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을 시킬 때였다.
“전장에 가서 네 이름으로 된 모든 돈을 다 찾아와라.”
바로 돈이다.
* * *
새근새근.
아들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보던 가진표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들이 다친 것도 그러했지만, 꼼짝없이 표국을 갖다 바쳐야 할 생각을 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의 얼굴을 보다 더욱 울컥했다.
“아들은 어떻소?”
“헉! 어, 언제 오셨습니까?”
가진표가 벌떡 일어섰다.
임요성이 뒤에 서 있던 것이다.
그는 칠조구가 찾아온 전표와 함께 방에 있던 귀중품들과 책자들을 모두 꺼내 마차에 실었다.
개중에는 영약부터 금괴, 유사시 쓸 수 있는 극독 등, 유용한 자원들이 많았다.
그리고 천하전장 개봉지점으로 가서 통째로 맡기고 맹으로 복귀한 것이다.
“아, 괜히 오해는 마시오. 아까부터 헛기침을 했는데 집중하고 있었는지 못 듣더군.”
“아… 죄송합니다.”
사내가 머리를 조아렸다.
임요성은 화경의 경지에 들면서 자연스럽게 몸 안의 내기가 갈무리되어, 무공을 익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높은 경지에 오르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격’은 상대로 하여금 무의식에 경외감이 들도록 했다.
가진표국의 가진표 역시 절정의 고수였지만, 자기도 모르게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치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아까 아들이 목에 상처를 낸 이는 살수인데 내가 쫓던 이였소. 나에게서 도망가고자 몹쓸 짓을 벌인 것이오.”
“아… 그렇군요.”
가진표가 씁쓸히 웃었다.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 가진표는 알고 있었다.
아까 아들이 다쳤을 때만 해도 누군지 생각을 미처 못했었다.
하지만 의각에 들어와서 곰곰이 생각해본 가진표는 그가 요즘 강호에 위명을 떨치고 있는 사내라는 걸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뒤쫓던 사내가 아이를 다치게 했다 해도 아무런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임요성은 구름 위의 존재였으니까.
당장 무림맹의 의각에서, 그것도 특실에서 치료를 받게 해준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런 분위기를 느낀 임요성이 의자를 가리켰다.
“잠깐 앉읍시다.”
“예? 아, 예!”
허둥지둥 앉는 가진표를 보며 임요성이 물었다.
“무슨 일이오? 아까 보니 뭔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 같던데.”
“아… 그것이….”
가진표가 망설였다.
사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너무 높이 있는 사람. 어느 정도 급이 비슷해야 비벼볼 텐데….
“부담 없이 말해보시오. 혹시 알려나 모르겠지만 나도 표국에서 일하고 있소. 얼마 전까지 식객이었지.”
“아….”
가진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것 같다. 파천도군이 강남의 한 표국에서 식객으로 있다는.
“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