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5
청풍표국 최강식객 015화
15화. 아홉 개의 별(4)
객잔의 2층 구석.
임요성과 풍림개가 마주 보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후후. 급하긴. 뭐 나도 그게 좋긴 하지. 자네 정체가….”
“생각하시는 대롭니다.”
“…뭐?”
얼빠진 얼굴로 풍림개가 쳐다보자 임요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어느 정도 추리를 마친 것 같은데, 아닙니까?”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고 그렇게 말….”
“뭘 생각하든 그게 맞습니다.”
잠시 임요성을 쳐다보던 풍림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할 생각이 없군.”
“지금 생각하는 데서 더 깊게 파고들지 말라는 말이죠.”
“음….”
그 말만으로도 임요성이 꽤 깊은 곳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손을 떼는 게 맞다.
지금의 황제는 피로 점철된 아수라도를 걸어 스스로의 힘으로 권좌를 쟁취한 피의 군주니까.
뭔지 몰라도 괜히 덤볐다간 개방, 아니 무림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을 터.
“흠흠. 좋네. 자네의 뒤를 캐는 건 여기까지 하지.”
“판단이 좋으시군요. 빠르시기도 하고.”
임요성이 점소이가 들고 온 차를 천천히 마셨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고광춘의 대우는 깍듯하게 변했고, 이번만 해도 찻값은 받지 않겠다고 전하랬다고 점소이가 슬쩍 전하고 갔다.
“후후. 그게 나의 장점이지. 그럼 다른 걸 물어보겠네.”
“이미 제가 분타주님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 것만으로도 상당한 값을 치른 걸로 생각됩니다만?”
‘하, 이 건방진 새끼.’
풍림개가 시종일관 자신이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에 짜증이 솟구쳤다.
말투도 건방지고.
물론 풍림개는 몰랐겠지만, 임요성은 황자의 수신호위로 활동하며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평대로 대했다.
상대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함도 있고, 자신이 모시는 분은 오직 황자라는 걸 마음속으로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그나마 강호에 나와서 많이 예의를 갖추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풍림개가 속으로 욕을 하다 씨익 웃었다.
‘참자, 이놈 옆에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풍림개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임요성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정적을 상대로 살 떨리던 협상을 하던 황자를 질리도록 보고 자란 게 그였다.
그런 임요성의 웃음을 자신에 대한 호의로 해석한 풍림개 역시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소주로 간다고 했지? 우리 방주한테 연락을 넣겠네. 소주가 속한 강소성을 관할하는 분타주랑 나랑 맞바꾸기로 말일세.”
“그런 얘기를 왜 저한테 하는 겁니까? 그냥 바꾸면 될 것을.”
“흠흠. 그건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강소성으로 내려가는 데는 공자의 지분이 상당하기 때문에….”
“호오, 절 감시하시겠다?”
“어허! 큰일 날 소릴. 어디 우리가 민간인 사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니고 어차피 가서 보게 될 테니 친근하게 대해달라 이 말이지.”
“흐음. 한마디로 제 주위로 뭔가 사건 사고가 많을 것 같으니 그 속에서 굿이나 보고?”
“그렇지! 떡이나 먹… 아니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그냥 잘 지내보자 이 말이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군요. 그래서 제가 얻을 건?”
하아….
“흠흠. 자네가 원하는 정보나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하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지.”
“그런 것들이야 어차피 돈만 주면 다 되는 것들 아닙니까? 그쪽 방주께서 적은 강호백서에만 봐도 하오문이나, 흑도의 정보단체나….”
“허어! 이 사람! 개방은 의와 협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네. 아무한테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하오문이나 흑도의 정보단체와 비교하지 말게!”
내가 보기엔 다 비슷한데?
임요성은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자신이야 실리만 취하면 되니까.
“아무튼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임요성이 팔짱을 풀자 그제야 풍림개도 환하게 웃었다.
사실 분타주 정도 되는 사람이 쉽게 자리를 옮긴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풍림개는 임요성을 보며 확신했다. 조만간 이 젊은이를 중심으로 강호에 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무려 중원 최고 후기지수라는 아홉 개의 별 중 하나를 떨어뜨린 장본인이다.
그럼 자신이 취할 행동은 한 가지. 그 태풍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럼 후일 소주에서 보기로 하세. 그러려면 준비할 게 많으니 난 이만.”
그리고는 부리나케 달려가는 풍림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임요성이 고개를 돌려 객잔 밖을 보니 어느새 표행단원들이 나와서 출발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열 대의 짐마차가 늘어서 있었고, 각 짐마차마다 말을 모는 쟁자수 한 명과 그 옆에 다른 쟁자수가 앉았다.
그리고 곳곳에 표사들이 넓게 배치되었다.
재밌는 점은 선두에는 두혜련과 홍 표두만이 있었는데, 그건 임요성이 합류하기 전과는 사뭇 다른 배치였다.
이름난 악인을 쉽게 때려잡은 강자가 합류하니 굳이 선두에 많은 인원을 배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비록 만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소협 덕분에 저와 제 딸의 목숨을 구하게 되어 실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오.”
그렇게 말한 임요성이 시야에서 멀어져갔고, 고광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많은 이들이 거쳐 가는 객잔이었지만 이번 일은 그의 평생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표행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악인의 등장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무엇보다 의지가 되는 임요성의 합류로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번 일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그건 살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광춘 옆에 선 공천식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 인연이 결코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과 함께.
* * *
표행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요성의 소문이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 의해 조금씩 퍼져가고 있었다.
하북의 악명높은 악당인 혈루쌍괴를 해치우고, 하북 팽가의 대공자를 꺾은 젊은 고수의 등장에 강호의 정보단체들의 눈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팽원호에 비하면 강호에서 차지하는 이름값에 있어서 혈루쌍괴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젊은 신진고수의 등장에 모두가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만난 듯 소문을 퍼다 날랐지만 한 곳만은 달랐다.
“…실패했다고?”
“예…. 하필이면 그 객잔에 뛰어난 고수가 있는 것은 상정 밖의 일이었습니다.”
짜악!
“이 새끼야! 상정 밖? 상정 밖의 일을 상정 범위 내로 처리하라고 널 쓰는 거야! 알아?”
앙칼진 목소리. 겉으로는 세상 우아한 여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뺨을 맞았음에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조차 없는 사내.
“죄송합니다.”
그의 침착한 목소리에 그녀 역시 분을 가라앉혔다.
“후우. 혈루쌍괴가 절정에 오른 이들까지도 잡을 수 있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습니다. 호위인 계두천 역시 그들에겐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계획대로였다면 이미 그들은 모두 시체가 됐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후우, 그러게 그냥 이동 중에 죽여버렸어야 했어.”
여인이 이마를 짚었다.
“괜한 의심을 피하고자 패물을 노리는 어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아 죽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남들 다 보는 객잔에서 일을 꾸민 것이지 않습니까.”
“흠… 그건 그렇지. 그래서 다음 계획은? 그년이 표국에서 나가 있는 사이에 일을 끝내야 해. 알지?”
“예. 팽가의 대공자를 꺾었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전문 살수를 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소주검문의 식객 중에 이번에 들어온 살수를 보내는 게 어떨지요?”
“아버님 댁에 있는?”
“예.”
“흠…. 어디 다른 곳에서 이름을 떨치다가 왔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까지 흘러온 거지?”
“사천 무림입니다. 그곳에서 살수로서 명성을 떨쳤고, 은혈비도(隱穴飛刀)라고 하면 다른 지방에서도 아는 이들이 많은 자입니다.”
“난 금시초문이군.”
“살수 출신이라 그럴 겁니다. 아무튼 사천에서 이름을 얻은 이후, 살수문을 차리려 했으나 사천 무림의 철저한 방해로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본거지가 노출되어 의문의 무리들의 습격으로 아버지와 아내, 동료 살수 모두를 잃고는 한동안 방황이 심했다더군요.”
“그래서?”
“하지만 하나 남은 아들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강호를 떠돌며 자신을 의탁할 곳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력은?”
“절정의 수위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은밀히 기습하면 초절정의 고수까지도 잡아낸다고 합니다.”
“이번엔 실패가 없어야 해. 광혼대의 한 개 조를 내어줘. 아버지껜 내가 말해둘 테니.”
“알겠습니다. 광혼대의 지원까지 받는다면 십 할 확률로 일은 성사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바로 서두르게. 그들이 표국으로 복귀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해. 표국으로 들어와 버리면 골치 아파져. 그 전에 꼭 일을 성사시키도록 해.”
“존명!”
사내가 나가자 멋들어진 비단옷을 입은 중년의 귀부인이 동경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미소를 만들어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남편이라는 작자에게 웃음을 팔아야 했다.
* * *
하북성 팽씨세가. 보통 하북팽가라 불렀다.
강호 최대 무가 중 한 곳이며 독문병기는 폭이 한 뼘에 전체 길이가 네 척에 이르는 거도(巨刀)이다.
거대한 전각군이 늘어선 광경은 가히 한 마을이라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크고 넓었다.
마차가 그대로 통과해도 좋을 정도로 큰 팽가의 정문을 지나 외원과 내원을 통과하는 동안 몇 개의 다른 문을 지나면 팽가의 수장인 팽극환이 있는 가주전이 나온다.
팽극환의 집무실 또한 가문의 주요 인사들이 간단한 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부리부리한 호목(虎目)에 송충이처럼 짙은 눈썹, 그리고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의 중년인.
그가 바로 하북 팽가의 가주 도신(刀神) 팽극환(彭極煥)이다.
천하십대고수인 상천십좌 중 일좌에 올라 있었고, 특히 그는 천무삼신이라 불리며 천외천의 존재로 추앙받았다.
천무삼신(天武三神)은 반신의 영역에 올랐다는 권신 법장대사, 검신 공천진인, 도신 팽극환으로 각각 소림과 무당, 하북팽가의 수장들이다.
그들은 다른 십대고수들과도 격을 달리했다.
천외천(天外天). 그 단어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런 그가 자신 손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 서류를 훑다가 이마를 짚었다.
“이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지? 나가보라고 그리 타일러도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이?”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으나 놀랍게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강천 녀석의 말에 따르면 저잣거리에 있는 객잔에서 어떤 청년과 비무를 벌였는데 무참히 깨졌다고 합니다.”
“뭐? 그 녀석이 무참히 졌다고? 허어…. 그 녀석이 가문의 일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무공에 있어서만은 호승심이 상당한데? 이기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큰 차이로 이기기는 쉽지 않을 텐데.”
“예. 아마도 그래서 그를 따라가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가 소주로 간다고 했거든요.”
“소주라…. 흥. 그래서 신성대연 핑계를 댄 것이로군. 뭐, 나쁠 건 없지. 그런데 흑영….”
“이미 그에 대한 뒷조사를 시작했으며, 소주에 있는 분가인 명호상단의 단주에게 기별을 넣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임요성. 그가 소주에 도착하는 즉시 그의 동향을 알아보라구요.”
“후후. 역시 자넨 역시 내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어.”
“과찬이십니다.”
“알겠네. 그럼 이 건은 바로 처리하도록 하지. 그 녀석이 강호는 넓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로군. 그게 그 녀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음 대 팽가의 가주가 되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
정실 소생의 아들이 팽원호와 팽차호였고, 후처에서 나온 아들이 팽인호였다.
팽극환은 셋에 대한 차별은 두지 않았다.
오직 힘! 무력으로만 평가한다고 했기에 셋은 정치싸움보다는 무력에 집중했고, 객관적인 평가는 팽원호가 단연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팽차호나 팽인호의 성장세 또한 무시무시했다.
아들들의 성장은 팽극환에게 또 다른 삶의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팽원호의 거처에선 한 사람의 잔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